원고 ‘산양 1’이 재판정에 섰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케이블카 사업 허가를 무효로 해주십시오. 케이블카 사업은 제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공사 과정에서, 또 공사 후에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을 견딜 자신이 없습니다.”

뒤이어 원고 ‘산양 2’도 발언했다.

“인간들은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싶어서 우리를 멸종위기 동물로 지정하고 보호한 것 아닙니까? 케이블카가 들어서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자신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산양들의 법정 투쟁.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가상의 상황이다. 2018년 제기된 실제 소송의 소장 내용을 재구성한 것. 실제로 ‘산양’을 원고로 내세운 소송이 있었다.

2018년 2월 문화재청을 상대로 “설악산을 지켜달라”는 취지로 제기된 소송에는 산양 28마리가 원고로 참여했다. 일러스트 신지현. ⓒ셜록

이 소송에는 사람도 원고로 참여했다. 생태학자 김산하다. 지금은 최재천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가 설립한 생명다양성재단에서 대표와 사무국장을 겸하고 있다. 그는 ‘산양 소송’을 하기 전엔 소송비용을 법원에 ‘담보’로 맡겨둘 수 있다는 걸 몰랐다.

법원이 재판이 열리기도 전에 소송비용부터 담보로 제공하도록 한 이유는 뭘까. 산양의 목소리에 대한민국 법원은 어떻게 답했을까.

“날씨가 좋으니 바깥에서 이야기 나눌까요?”

지난달 22일, 이화여대 종합과학관 연구실에서 만난 김산하 대표는 의자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향했다. 그는 인터뷰 장소로 직접 안내한 야외 벤치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고 했다. 풀과 낙엽이 정리돼 있어 인간이 보기엔 깔끔하지만, 생태적 관점에서는 작은 동물이 살아갈 서식지가 사라진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철저히 사람 중심으로 정리된 거예요.”

그가 뿔 달린 원고와 함께 소송에 나선 이유도 비슷하다. 설악산 생태가 오직 ‘사람만을’ 위해서 파괴되는 걸 막기 위해서다.

산양 김산하 공익소송
생태학자 김산하 ⓒ셜록

강원도는 1982년부터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놓고 싶어 했다. 이미 1970년에 만든 1.1㎞짜리 케이블카가 있지만 더 긴 구간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게 목표였다. 양양군은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지구와 정상인 대청봉 옆 끝청 하단까지 길이 3.3㎞의 케이블카를 놓는 사업을 추진했다.

설악산은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지정된 국립공원이자 천연기념물이다. 유네스코(UNESCO,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가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한 지역이기도 하다.

설악산은 약 5개의 보호구역이 중첩 지정된 곳입니다. (…) 각 보호구역의 근거법들로 무분별한 개발행위를 강력히 제한하자고 약속한 곳이 바로 설악산인 겁니다. 그러나 설악산을 둘러싼 개발의 야욕 앞에서 보호구역 제도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강원도와 양양군의 숙원사업이 되어버렸습니다. 누구를 위한 숙원인지 그 실체는 여전히 모호한데 말입니다.”(녹색연합 홈페이지 <차디찬 바닥에서 다시 싸움을 시작합니다_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지금….> 박수홍 활동가, 2021. 3. 21.)

케이블카 연결 지점인 끝청은 산양이 사는 곳이다.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총 800~920마리의 산양이 산다. 그중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260마리가 설악산에 산다. 산양은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멸종위기 야생동물 I급이자, 문화재보호법이 정한 천연기념물 제217호다.

양양군은 케이블카 설치 사업을 위해 2016년 7월, 문화재 현상변경허가를 내달라고 신청했다. 문화재청은 불허했다. 동물, 식물, 지질, 경관 등 분야별 소위원회를 구성해 케이블카가 설악산에 미칠 영향을 심도 있게 분석한 결과였다. 부결 사유에는 ‘산양 등 야생동물의 서식 환경 악화’가 언급됐다.

양양군은 포기를 몰랐다. 2017년 3월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문화재청의 승인 거부가 옳은지 따져달라고 행정심판을 요청했다. 권익위는 양양군의 손을 들어줬고, 문화재청은 2017년 11월, 결국 조건부로 문화재 현상변경허가를 내줬다. 양양군은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에 한 발 더 가까워졌다.

양양군의 케이블카 사업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환경부, 문화재청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때,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건 동물인데 인간만이 소송에 나설 수 있다는 점에 문제의식을 느낀 사람들도 있었다. 김산하 대표도 그중 하나였다.

산양 28마리와 김산하 대표가 함께, 문화재청을 상대로 법적 싸움을 시작했다. 2018년 2월이었다. 원고 ‘산양들’과 김산하 대표는 문화재청이 양양군에게 허가해 준 문화재 현상변경은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양의 법적 후견인은 박그림 녹색연합 대표가 맡았다.

케이블카 산양 공익소송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지난달 8일 YTN 라디오 ‘슬기로운 라디오생활’에 출연해 “유럽의 알프스에 가 보면 케이블카가 6000개다”라며 “전 세계에서 (이에 대해)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없다”고 말했다 ⓒpixabay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법원은 소송비용 얘기부터 꺼냈다. 소를 제기하고 약 두 달이 지난 2018년 4월, 소송비용을 법원에 미리 맡겨두라는 취지의 ‘소송비용 담보제공 명령 결정’이 떨어진 것이다.

민사소송법 제117조에는 어떤 경우에 법원이 이런 신청을 할 수 있는지 명시돼 있다. 원고가 대한민국에 거주하고 있지 않거나, 소송기록상 청구가 ‘이유 없음’이 명백할 때 등이다.

소송이 대법원까지 이어질 경우를 대비해 책정된 액수는 약 930만 원이었다. 원고를 법률 대리한 서국화 동물권연구를위한변호사단체 PNR 대표는 이때를 회상하며 “기가 막혔다”고 했다.

“법리적 고민과 심리도 거치지 않고 소송비용을 미리 내라고 하는 건 위법이라는 취지로 항고를 제기했어요.”(서국화 변호사, 2023. 3. 30. 인터뷰)

같은 법 제124조에는 “담보를 제공하지 아니하면 법원이 소를 각하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한마디로 소송비용 930만 원을 법원에 미리 맡겨두지 않으면 소송 자체가 이뤄지지 못할 수도 있단 거다.

“담보제공명령은 결국 원고 중 산양이 원고에 포함되었다는 점만으로 내려진, 성급하고 부당한 것입니다. (…) 3심까지의 소송비용을 미리 모두 납부하여야만 동물권 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인지, 소송이 진행되기도 전에 원고들의 패소를 예단하고 있는 듯한 법원의 태도가 개탄스럽습니다.”(동물권연구를위한변호사단체 PNR 홈페이지 <[소식] 산양소송 진행상황>, 2018. 7. 2.)

소송에서는 문화재청의 허가가 원고들의 이익을 침해했는지보다 먼저 따져봐야 할 게 있었다. ‘산양은 원고가 될 수 있는가’였다. 변호인단은 법원이 미리 소송비용 청구서부터 내민 이유는 “산양이 소송 당사자였기 때문”이라고 봤다. 변호인단은 소장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노예제 폐지, 여성 참정권 인정 등 여러 권리가 인정된 건 수많은 노예, 여성과 그 지지자들의 피 나는 투쟁에 따른 결과였습니다. (…) 1809년만 해도 미 대법관은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은행(법인)이 회사의 이름으로 소송을 수행할 수 있을까 의문을 표시한 바 있습니다. (…) 재판부는 환경이나 자연물을 인간의 이익에 수반하는 부수적인 존재로만 보고 당사자 능력을 검토조차 하지 않는 기존의 인간 중심적 사고를 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원고 측이 ‘소송비용 담보제공 명령’에 불복해 제기한 항고는 기각됐다. 2018년 6월, 원고 측은 시민단체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측의 도움을 받아 930만 원을 법원에 맡겼다.

설악산 산양 공익소송 cctv
설악산에 설치된 CCTV에서 관찰된 산양 ⓒ녹색연합

재판은 2018년 9월 딱 한 번 열렸다. 보통 수년씩 걸리는 재판 결과는 약 1년 만에 나왔다. 2019년 1월, 원고 산양들과 김산하 대표는 졌다. 원고 측은 소송비용이 부담돼 항소를 포기했다.

“어쩌면 질 걸 알면서도 시작한 싸움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도 모든 역사는 변화를 위해 쌓은 디딤돌이 축적된 결과잖아요. 어쨌든 시도함으로써 돌다리가 하나 쌓이는 거라고 생각했죠. 소송을 통해서 케이블카 문제를 알릴 수도 있고요. 물론 (재판이 열릴 거라는) 기대를 아예 안 했던 건 아닙니다. 그래도 ‘최소한 재판이라도 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이제 소송비용을 해결해야 했다. 민사소송법 제98조에 따라 소송에서 지면 상대방 변호사 비용까지 물어야 한다. 피고 문화재청 측의 보조참가인으로 소송에 참여한 양양군은 2019년 8월, 1600만 원대의 소송비용을 확정해달라고 법원에 신청했다. 다음 해 2월 법원은 그 중 312만 원을 원고가 부담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놨다. 법원은 소송비용을 결정할 때 대법원이 정한 ‘변호사 보수의 소송비용 산입에 관한 규칙’을 따른다.

산양의 후견인 박그림 대표가 속한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의 도움을 받아 원고 측은 2020년 9월 312만 원을 해결했다. 소송비용이 납부되자 법원은 같은 해 10월 담보제공명령을 취소했다.

김산하는 “산양을 봤다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만큼 귀한 동물이다”며 “개발을 향한 욕망 때문에 설악산 생태를 해쳐선 안 된다”고 말했다 ⓒ셜록

패배를 감수한 싸움, 어떻게 보면 무모한 싸움에 뛰어든 이유로 김산하 대표는 “산양이 설악산에서 있는 그대로 사는 것이 곧 나의 이익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설악산에 사는 산양의 이익은 왜 우리 모두의 이익일까. 김산하 대표는 산양이 설악산에 사라진 뒤에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해 설명했다.

“산양은 산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풀을 뜯어먹고, 분변을 합니다. 그러면서 풀의 씨앗을 옮기고 흙을 헤집어놓고 하는 것들이 이 숲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활동이거든요. 동물이 그걸 해야지 결국 숲이 함께 돌아가요. 동물이 생태에 약간의 교란, 분산, 이동 이런 것들을 하면서 식물의 경쟁 구도를 관장하기도 하는 건데, (산양이 사라지면) 이런 활동이 정지되겠죠.

그러면 그곳에 아마 힘들게 살고 있던 또 다른 멸종위기 식물 또는 균류 버섯 같은 것들이 대거 영향을 받을 수 있겠죠. (…) 산양이 없어지면 다른 생물도 영향을 받고 그런 생물들이 하나하나 없어지면 기후 상도 달라질 수도 있는 거예요. 토양의 순환도 달라질 수도 있고요.”

김산하 대표는 소송 과정에서 일종의 모순을 느꼈다.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서 나선 소송이 아닌데, 법적으로는 김산하 개인의 이익이 얼마큼 어떻게 침해당하는지 따지는 일이 중요했다.

“이익이라는 게 결국 뭐죠? 예를 들어서 작년에도 엄청난 이상기후 현상들이 많았는데 저는 그로 인한 직접적 피해를 받았거든요. 전 국민이 직접적 피해를 받았죠.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체계 때문에 피해를 받은 건데, 그러면 (그 피해 정도를 따지는 일은) 어떻게 되는 거죠? 누가 내 재산 뺏은 거랑은 좀 다르잖아요. (사법부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법적으로 해석할 준비가 안 돼 있다는 거죠.”

우리나라는 동물을 소송 당사자로 인정한 적이 없다. 2003년 도룡뇽이 원고가 됐던 소송에서도, 2007년 황금박쥐가 나선 환경소송에서도 법원은 동물이 ‘원고로 적격하지 않다’고 봤다.

해외에서는 자연물의 법적 권리를 인정한 판례가 있다. 1979년 미국 하와이에서는 희귀 새 ‘빠리야(palilla)’가 서식지를 지켜달라는 취지로 환경단체와 공동 원고가 돼 소송을 제기했다. 연방지방법원 및 항소법원은 빠리야를 원고로 인정하는 동시에, 재판에서도 빠리야의 손을 들어줬다.

1996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바다쇠오리가 공동 원고로 제기한 소송에 대해 “바다쇠오리는 멸종위기종보호법에 따라 보호를 받는 종으로, 자신의 권리로 소송을 제기할 원고적격이 있다”고 봤다.

산양
산양의 목소리를 알리기 위해선 930만 원을 미리 법원에 맡겨둬야 했다 ⓒ국립공원공단

강원도와 양양군의 끈질긴 시도 끝에 결국 케이블카 사업은 허가됐다. 올해 2월 27일, 환경부가 오색 케이블카 설치 사업을 조건부로 승낙하면서다. 이후 지리산, 소백산 등 명산을 끼고 있는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다시 케이블카 사업에 불을 붙이고 있다. 김산하 대표는 올해 2월 27일을 ‘생태적 국치일‘이라고 명명했다.

너도나도 케이블카 설치한다고 전국이 몸살을 앓겠죠. 저는 이제 설악산을 가지 않을 생각입니다. 가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네요.”

그는 공익소송에도 패소자 부담 원칙을 적용하는 현실이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기후변화 등 환경에 관한 소송은 비교적 명확히 공익소송에 속하지 않나요? 이런 경우에 한해서만이라도 (패소자 부담 원칙에) 예외를 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뭔가 방법이 필요해요. 소송비용을 바로 없애주지 못하더라도 무기한 연기해주는 등의 방법으로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산양 소송 재판이 ‘한 번이라도’ 열릴 수 있었던 건, 법원의 명령에 따라 원고 측이 930만 원을 담보로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재판은 열리지도 못하고 각하될 수 있었다.

공익소송에 나서기 위해 돈 1000만 원 정도는 미리 준비해야 한다면, 어느 누가 쉽게 나설 수 있을까. 주머니 사정이 괜찮은 사람만이 ‘공익’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일까.

 

주보배 기자 treasure@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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