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사건’은 피해자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은 큰 불행이지만, 대한민국 구성원들의 성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이 글은 사건 당시 광주 인화학교 재학생, 졸업생, 교사, 활동가 등의 구술 인터뷰로, 그들의 경험과 감정을 언어화하고 그 의미를 되짚기 위해 기획했다.

기억을 환기하고 의미를 되새기고자 하는 취지에서 시작된 이 구술 기록 작업이, 미약하나마 장애인들의 인권 보장을 위한 디딤돌이 되길 바란다. 쉽지 않았을 가슴속 이야기를 꺼내준 구술자들께 깊은 감사와 미안함을 표한다.

광주광역시장애인종합지원센터에서 기획한 이 글은《당신이 모르는 도가니 이야기》(부제 : 소설과 영화에 다 담지 못한 13인의 구술기록집)(도서출판 글을낳는집)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세 번째 구술자는 박은혜 당시 인화학교 재학생이다. 박 씨는 1991년 출생으로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 일반 학교에 다니다 소통의 불편함을 느끼고 인화학교와 인화원에 들어가서 중3 때까지 생활하였다. 인화학교 재학시절에 친구로부터 성폭행 사실을 듣고 이를 선생님에게 알렸고, ‘도가니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자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천막 농성에 합류하며 현장을 지켰다.

이후 홀더 그룹홈에서 생활하면서 ‘카페홀더’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독립해 살고 있다.(편집자주-‘카페홀더’는 인화학교 출신 농인들이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형태의 커피숍이다)

어렸을 때 일반 유치원을 다니고 일반 학교를 8살까지 다녔습니다. 그런데 소리를 다 듣지 못하니까 그다음에 인화학교로 와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17살까지 쭉 다녔어요. 집에서 학교에 다니고 싶은데 제가 그때 광주광역시 남구 방림동에서 살아서 너무 멀어서 학교 옆에 있는 인화원에 들어가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도가니 사건’이 일어난 그때까지 인화학교에 다니다 고1 때 광주전산고등학교로 옮겼어요. 원래 고1이면 17살인데 제가 1년 휴학하고 18살에 고1로 다시 들어가서 늦게 졸업했습니다.

제가 장애인이 돼서 어려운 거나 또 불편한 거는 많이 있었습니다. 8살 전에 유치원 다니면서는 조금씩 말도 가능했습니다. 한쪽이 소리 안 들리고 했지만 말할 수 있었어요.

7살 때부터 청각에 좀 더 이상이 생기면서 완전히 소리가 사라지게 됐고요. 그러면서 이제 청인들이 말을 하면 소리를 듣지 못하니까 무슨 말인지 이해도 못했고, 입 모양을 보고 조금씩 알고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하고도 친해지기가 어려웠고 제가 농인이다 보니 소통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광주에 농학교가 어디 있는지 알아보시고 수어를 배우게 하려고 데리고 갔고, 제가 8살 때 수어를 전혀 모르고 그냥 마음대로 엉터리 수어를 사용할 때였습니다.

구술자 박은혜 씨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17살까지 광주 인화학교를 다녔다. 광주 인화학교 학생들은 모두 수어를 사용했다. ⓒ셜록

인화학교 들어가서는 애들이 전부 다 수어를 사용해서 소통이 잘 안 됐고, 그때 가서 지화(指話) ㄱ, ㄴ 배우고 나서 그때부터 수어를 조금씩 배우고 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편집자주-지화는 한글 자·모음이나 숫자, 알파벳 철자 하나하나를 손과 손가락 모양으로 표시하는 방법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수어도 잘하게 됐습니다.

광주 인화학교 안에 기숙사(인화원)에서 다니는 것을 포기하고 중3 16살 때 작은 아빠랑 같이 살게 됐어요. 작은 아빠에게 “기숙사 사는 거 불편하다.”라고 했더니 작은아빠가 “그럼 친척이니까 같이 살자. 내가 너 키우고 싶다.”라고 해서 작은아빠 자녀들 3명이랑 저랑 같이 해서 4명이 살게 되었습니다.

작은아빠 집에 살다가 인화학교 아이들이 있던 홀더 그룹홈에서 생활하기 시작했습니다. 홀더에서는 지적장애인 2명, 농인 2명 이렇게 살았어요. 처음에는 농인들만 있었을 때는 갈등이 별로 없었는데요. 밤에 늦으면 안 되고 거기에서 하지 말아야 하는 규율들이 싫어서 21살에 독립해서 나왔어요.

인화학교 다닐 때 한 반에 학생이 7~8명 정도 있었습니다. 청각중복장애인(편집자주-청각장애인이면서 청각장애 이외의 한 가지 이상 다른 장애를 복수적으로 가진 장애인으로, 여기서는 청각+지적 장애인을 말한다.)이 2명 있었고요, 구화(口話)하는 애가 한 명 정도, 그다음에 농인들이 한 4~5명 정도 있었습니다.(편집자주-구화는 잔존 청력 또는 상대가 말하는 입술 움직임, 얼굴 표정 등을 통해 그 뜻을 알아듣고 음성언어로 말하는 방법이다) 학교에서 수학도 배우고요, 기술도 배우고요, 국어도 배우고요, 도덕도 배우고요, 과학도 배웠어요.

선생님들의 수어통역은 그렇게 잘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수어는 했어요. 못한 선생님도 있고 잘하는 사람도 있고요. 또 이제 필담으로 많이 쓰기도 하고요. 선생님들이 단어 같은 거 잘 모르면 그냥 넘어가 버리고, 알고 있으면 좀 알려주고요.

조수경 선생님은 수어를 알고 있었고, 나머지 선생님은 보통, 그렇습니다. 다 엉터리였어요. 그러다 보니까 공부하는 데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냥 거의 공부 시간에 많이 자거나 놀거나 그렇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선생님들이 수어를 그렇게 잘하지 않았기 때문에 집중이 쉽진 않았습니다. 아주 기본만 알려주니까 대략 봐도 다 아는 내용을 알려줬어요.

영화 ‘도가니'(2011)의 한 장면 ⓒ㈜삼거리픽쳐스/㈜판타지오/CJ 엔터테인먼트

어느 날 제가 직접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학교가 다 끝났는데 어느 반에 한 사람이 있었어요. 다 같이 학교 퇴근하고, 저도 밖에서 놀고 선배 언니랑 같이 빵 먹고 있었는데, 학교 안에 기숙사 옆에 불이 다 꺼져 있었는데 1층에 행정실 하나만 불이 켜져 있었어요. 학교 밖 주차하는 곳에서 창문에 빛이 보이니까 제가 밖에서 봤어요. 그 학교 관계자가 “빨리 와봐. 컴퓨터 한번 봐봐.”라고 저를 불렀어요.

선배 2명이랑 같이 있었는데 언니 한 명은 그냥 가고 다른 선배랑 둘이 같이 ‘다 갔는데 왜 혼자 남아 있을까? 일이 바빠서 남아 있나 보다.’ 궁금해서 갔더니 갑자기 와서 보라고 했고 1~2분 정도 보니까 컴퓨터에서 야한 동영상을 보면서 바지 내리고 자위행위를 하고 있었어요.

어렸을 때 너무 놀라서 징그러웠습니다. 자위행위 하는 모습을 보고서 제가 너무 당황했습니다. 변태 같았습니다. 어떻게 어린애들한테 보여줄 수 있는지 기분이 너무 더러웠습니다.

‘도가니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학교의 성폭행 사건이라든가 아니면 비리라든가 하는 것들에 관해서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게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도 초6인지 중1인지는 모르겠는데 같은 반 친구 말을 들은 건 중1이었던 것 같고, 영상을 본 건 초6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습니다.

처음 시작이 저였어요. 제가 중1 때 지적장애 있는 친구가 말해 줬어요. 저는 보지는 못했는데 같은 반에 지적장애 있는 여자친구가 하나 있었어요. <도가니> 영화 보면 약간 장애가 있는 여자친구가 나오는데요. 그 친구가 자기 성폭행당했다고 중1 때 말을 하고 중2, 중3 때에도 계속 말했어요.

이제 3학년 때 그게 터져서 학교에서 시위가 일어나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도가니》 책이 나오게 되고, 영화도 나오게 되고. 이렇게 확 퍼지게 됐습니다.

그 친구가 중복장애가 있었는데요.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했을 때 처음에는 확인할 수가 없으니 믿지도 않았고, 지적장애가 있으니까 거짓말한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계속 얘기를 하는 거예요. 친구가 성폭행당하는 걸 보지 못했고 처음에 그 말도 믿지 못했는데, 나중에 제가 그 학교 관계자가 영상을 보는 걸 보면서 그럴 수 있었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성폭행에 대해서 듣고 처음에 화가 났는데 말은 하지 않았어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담임 선생님한테 말했어요. 그 친구가 말한 거에 대해서 믿지 못했는데, 나중에 말씀드렸죠. 학교 관계자가 야한 동영상을 보면서 자위행위를 하는 걸 보고 믿게 됐다고요.

그 사람이 기숙사에서 직접 그 아이를 사탕 준다고 불렀어요. 운동장에 오라고 해서 그걸 제가 봤는데 그 지적장애 아이한테 사탕을 줄 테니 오라고 했어요. 그 친구에게 오라고 했을 때 저는 이제 그 사람한테 성폭행당할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왜냐하면, 컴퓨터로 야한 동영상을 보면서 저희 앞에서 자위행위 하는 것을 봤기 때문에요. 그래서 또 사탕 준다고 오라고 하는데 화가 났어요.

영화 ‘도가니'(2011)의 한 장면 ⓒ㈜삼거리픽쳐스/㈜판타지오/CJ 엔터테인먼트

가해자는 많아요. 행정실장, 또 교장 선생님, 또 그 외에 다른 선생님들도 여럿 있었어요. 가해자가 많았어요. 다 미쳤어요. 나도 당할 뻔했어요.

성폭행 사건이 알려지고 학교 안에서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이 분위기를 알고는 있었는데, <도가니> 영화 때문에 다른 많은 사람이 알게 됐잖아요. 아주 복잡했죠. 시위도 하고요.

2007년에 등교 거부하고 시 교육청에서 천막 수업을 할 때 참여해서 같이 했어요. 선생님들 잘못한 거에 대해서 벌을 주라고도 하고, 해임시키라고 하고, 그런 거에 대해서 저희가 같이 모여서 시위했어요.

인화학교가 너무 골짜기에 좀 구석진 데 있다 보니 쉬쉬하고 성폭행이 자행되고 있었어요. 벙어리, 말 못하는 장애인이 무식하다고 생각하고, 두려워서 신고를 못 할 줄 알고 선생님들이 성폭행했어요. <도가니> 영화나 이런 게 아니었으면 지금까지도 아마 쉬쉬하고 알려지지 않았을 거예요. 처음에는 나도 믿지 못했지만 내가 최초로 본 이후로 제가 화가 나서 말을 했어요.

사건이 진행되면서 예전 교장 선생님은 나가고 새롭게 여자 교장 선생님이 왔어요. 새 교장 선생님께 달걀도 던지고 밀가루도 뿌리고 책도 던졌어요. 새 교장 선생님이 수어도 못하고, 장애인에 대해서도 너무 몰라요. 관심도 없고요. 교장 몰아내고 여자 교장 선생님이 처음 왔을 때는 기대했는데, 바뀐 뒤에도 학교 성폭행 사건은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어요.

그때 학생들이 새 교장 나가라고 요구했던 건 성폭행 사건이 많이 있었는데도 학교 선생님들이 계속 가르치고 있고, 지금까지 학교 안에 있고 아주 뻔뻔하기가 그지없고요. 학교 다니면서 계속 가르치는 걸 보니까요. 그래서 저희가 시위를 했어요.

성폭행했던 분들 전부 벌도 주고, 그분들 다 쫓아내고 죄가 무거우니까 경찰에 고소도 하고, 조사도 하고, 진술서도 쓰고, 성폭행한 거를 조사받으면서 ‘네. 아니요.’ 답변했는데 CCTV 있는데도 “한 적 없어, 한 적 없어.” 그랬다고요. 다 촬영하고 있어서 거짓말 못하는데 한 적 없다고 그래요. 너무 웃겨요. 우리나라 법이 너무 웃겨요.

중3 때 학교가 난리가 난 뒤로 선생님들 해임하라고 재판이 진행되고, 재판에 불려가서 증언도 하고 해결이 아직 안 됐는데요. 중3 때까지 서구청, 교육청 들어가서 선배들하고 힘을 합쳐서 시위도 했어요.

구술자 박은혜 씨는 후배들만큼은 바르고, 예의 있고, 인격적으로도 성숙한 선생님들에게 교육받기를 간절히 바란다. ⓒpixabay

인화학교에서 나쁜 짓을 했던 선생님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은 “벌레보다 못한 짐승. 똑바로 살아라.” 선생님이잖아요.

후배들은 바르고, 예의 있고, 인격적으로도 성숙한 선생님들에게 교육받았으면 좋겠어요.
농인들에 대해서 너무 모르는 엉터리들이 많고 농학생들에 대한 예의가 없어서요. 예의 바른 것이 가장 중요하고요. 부모님 같은 선생님에게 배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인화학교 다니면서 가장 안 좋았던 기억은 농인들이 말 못하고, 말하지 말라고 하면 말 안 하는 줄 알고 무시하고 벙어리라고 부르고 그게 제일 안 좋았던 기억입니다.

저 농인이에요. 말을 하는 데 듣지를 못하잖아요. 아이들 몸이 아픈 것하고 똑같아요. 엄마가 장애인으로 낳고 싶어서 낳은 것도 아니잖아요. 아픈 것도, 약한 것도 장애인이지만 다 극복하고 살 수 있어요. 수어는 아름다운 거예요.

처지를 바꿔 생각해 보세요. 말할 수 있는 청인인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세요. 말할 수 없는 처지에서는 부러워요. 그러면 노랫소리도 듣고, 바람이나 하늘 여러 가지 좋은 소리가 많잖아요. 하나님이 만드신 그 세계의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을 축복으로 생각하셔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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