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사건’은 피해자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은 큰 불행이지만, 대한민국 구성원들의 성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이 글은 사건 당시 광주 인화학교 재학생, 졸업생, 교사, 활동가 등의 구술 인터뷰로, 그들의 경험과 감정을 언어화하고 그 의미를 되짚기 위해 기획했다.

기억을 환기하고 의미를 되새기고자 하는 취지에서 시작된 이 구술 기록 작업이, 미약하나마 장애인들의 인권 보장을 위한 디딤돌이 되길 바란다. 쉽지 않았을 가슴속 이야기를 꺼내준 구술자들께 깊은 감사와 미안함을 표한다.

광주광역시장애인종합지원센터에서 기획한 이 글은《당신이 모르는 도가니 이야기》(부제 : 소설과 영화에 다 담지 못한 13인의 구술기록집)(도서출판 글을낳는집)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두 번째 구술자는 전응섭 당시 광주인화원 생활재활교사다. 전 교사는 광주인화원생들과 광주인화학교 학생들의 성폭행 사실을 외부에 알렸고, MBC ‘PD수첩’에 인터뷰하여 진상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는 이유로 학교법인으로부터 부당해고를 당했으나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승소해 복직했다. 현재 울산광역시 울주군수어통역센터장으로 장애인 인권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저는 인화원 성폭행 사실을 피해 당사자인 박●● 로부터 최초로 생생하게 전해 들어서 알게 됐어요. 피해 학생의 말에 따르면, 인화원 생활재활교사인 이○○ 교사가 밤마다 오○○에게 “박●● 한테 과자를 준다고 말해서 나에게 데려와라”라고 시키고, 원하는 장소에 오면 오○○ 학생은 내보내고 자기를 성폭행했다고 말했어요.

제가 그 성폭행 사실을 인화원 내 간호사에게 말했더니, 자신이 알아본다면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런데 2주를 기다렸는데 아무 말이 없자 다시 찾아가 “전에 내가 말했던 성폭력 문제 어떻게 해결됐냐?”고 물어보니, 오히려 저한테 막 화를 냈어요.

안 되겠다 싶어서 학교의 학생부장 선생님께 이 사실을 말했어요. 그랬더니 그분도 저보고 “조용히 있어라, 내가 알아서 문제 해결한다”라고 해서 저는 가만히 있었지만, 이○○ 교사에 대한 어떠한 조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저에게 누명을 씌웠어요. 이후에 학생부장은 성폭행 조사를 위해 학교에 방문한 인화학교 동문들과 함께 성폭행 진상을 조사하지 않고 은폐했어요.

영화 ‘도가니'(2011)의 한 장면 ⓒ㈜삼거리픽쳐스/㈜판타지오/CJ 엔터테인먼트

어느 날 제가 조선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공부 중이었는데, 조점래 씨하고 여러 농인들이 남광주시장 근처로 저를 불러서 사실관계를 물어봤고, 저는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을 그분들에게 다 말했어요. 그 다음 날 농인 동문이 학교에 와서 박●●를 불러 성폭행 사실 여부를 물어보자 그 자리에서 저한테 했던 말을 똑같이 진술했고, 저는 증언내용을 휴대폰으로 촬영했어요.

저는 그 다음 날 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에 박●● 학생을 데려가 성폭행 피해 상담을 받게 해서 인화학교 학생들 성폭력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렸고, 상담소장은 성폭행 사건을 광주남부경찰서(이하 광주남부서)에 신고했어요. 제가 2005년 6월 21일 인화원 성폭행 사실을 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에 상담한 것이 ‘도가니 사건’의 첫 외부 고발이었습니다.

학교 측은 제가 성폭행 피해자인 박●●를 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에 데리고 가 상담을 받게 한 후 상담소에서 광주남부서에 신고 접수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급박하게 움직였어요. 학교 측과 학교 측에 동조하는 동문들은 피해 학생들을 생활관으로 모이게 해서 거짓 진술을 하게 하고, 이를 촬영한 동영상을 광주남부서에 제출했어요.

‘도가니 사건’이 외부에 알려진 후 학교 측이 사건 은폐를 위해 저지른 만행을 소문으로 들었는데, 그 전날 밤에 박●●를 식당으로 데리고 가 막걸리나 맥주를 마시게 해서 “나는 성폭행당한 적이 없고, 전응섭 선생님이 저한테 거짓으로 성폭행당했다고 말하라고 시켰다”는 식으로 세뇌했다고 해요. 다음 날 이들은 박●●를 생활관으로 데려가서 제가 시켜서 거짓으로 증언했다고 말할 때까지 반복해서 강압적으로 촬영했던 거죠.

오명란 광주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소장님이 광주남부서에 인화원 성폭행 사실을 고발했습니다. 인화원 성폭행 사건을 접수한 광주남부서는 강압에 의해 촬영된 성폭행 피해 학생의 거짓 증언 영상이 우리가 제출한 증거 진술과는 상반됐기 때문에 사건 수사에 혼선만 겪다가 6개월 동안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고, 수사는 답보 상태에 빠졌어요. 인화학교 법인 측에 동조하는 동문들이 ‘도가니 사건’의 사건 수사를 고의적으로 방해한 거죠.

그 과정에서 광주인화학교 재학 중 인화원에서 생활했던 2명의 학생이 행정실장이 피해자 박●●를 성폭행한 과정을 목격했다고 저에게 새로운 사실을 알려줬어요.

그 사실을 당시 광주남부서 사건 담당 형사에게 알려 진술받도록 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행정실장은 저를 광주광역시 남구에 있는 국제호텔 커피숍으로 불러 2명의 목격자 학생의 진술을 번복하도록 요청했고, 재학생과의 원조교제와 인화원 성폭행 범죄 사실을 덮기 위해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들어준다면서 저를 회유했어요. 저는 이 회유 사실을 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소장님께 알렸고, 당시 MBC ‘PD수첩’ 인터뷰를 통해 알렸어요.

인화학교 졸업생 고○○ 군은 영화 ‘도가니’를 본 후, 학생들의 성폭력 피해를 직접 목격한 사실을 고백했다. ⓒpixabay

그렇게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많은 사건이 있고 조사도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드러난 사건은, 인화학교성폭력대책위에서 활동 중인 학부모님께 행정실장이 김◆◆ 학생을 묶어놓고 성폭행했다는 사실을 알려 남부경찰서 담당자에게 전달해서 사건조사를 진행했지만 증거가 없어서 무효 처리가 된 사건이에요.

그런데 인화학교에 다니면서 인화원에 살았던 졸업생 고○○ 군이 영화 ‘도가니’를 본 후 “여학생의 손과 발을 묶어놓고 성폭행하는 장면을 내가 실제로 봤다”고 노○○ 선생님에게 말했다고 해요.

인화학교가 폐교되자 교육청에서 임시 조치로 교육연수원에서 학생들을 위해 3개월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던 중, 당시 상담사로 근무했던 노○○ 선생님이 같이 근무하던 선생님에게 이 얘기를 했다고 해요. 그 선생님은 “그 중요한 문제를 왜 즉각 말하지 않았느냐?”면서 화를 냈고, 바로 광주지방경찰청에 신고 조치해서 이후 가해자인 행정실장이 체포되고, 재판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실제로 인화원 성폭행범 검거는 ‘도가니’ 영화가 세상에 알려지자 사회적 공분으로 2011년 경찰청에 인화학교 특별수사팀이 꾸려져서 재수사에 착수하게 돼서 가능했어요.

그때 학교와 선생님들이 저의 행동을 꼬투리 잡기 위해 감시하고 있어서 저는 조심스럽게 성폭행 관련 정보를 인화학교성폭력대책위와 재수사특별팀에 전달했고요, 노○○ 선생님도 증인으로 참석해서 수사에 협조했어요. 재수사특별팀은 행정실장을 조사한 후 체포했어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저와 조사 협조에 관련된 몇몇 선생님들은 광주지방경찰청장으로부터 공로패를 받기도 했어요.

인화원 사건이 MBC ‘PD수첩’ 등 각종 언론으로 세상에 알려지자 학생들은 등교를 거부했어요. 등교했던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집으로 가려고 하자, 교무부장 선생님께서 저한테 학생들의 안전을 우려해 학생들을 집까지 데려다주라고 지시해서 저는 학교의 지시에 따라 학생들을 안전하게 귀가시켰어요.

그런데 학교법인은 학생들의 귀가를 도와주는 제 모습을 학교 옥상에 올라가 마치 학생들 배후에서 등교 거부를 부추기는 것처럼 촬영해서 이를 근거로 저를 부당 해고하는 데 증거물로 첨부했어요. 저는 노무사의 무료 도움으로 전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를 신청했지만, 전남지방노동위원회 위원들이 모두 인화학교 법인 이사장과 지역사회 내에서 유대관계가 있고 사용자 측에 서는 바람에 제가 졌어요.

그래서 다시 중앙노동위원회에 이의 신청을 했는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들은 “비리에 대해서 내부고발을 했으면 오히려 칭찬해줘야지 왜 해고하냐”며 근로자인 저의 손을 들어줘 승소했어요.

인화원 교사들은 부당해고를 인정받고 복직한 전응섭 교사를 왕따시키고 회피했다. ⓒpixabay

저는 중앙노동위원회 소송에서 이겨서 2006년 6월에 다시 인화원에 복직했지만, 학교법인 측은 행정소송까지 제기하며 저를 괴롭혔고, 인화원에서 근무했던 사회복무요원이 학교 측의 지시에 따라 저를 감시하면서 화장실까지 따라다녔고요. 인화원 선생님들은 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 학교측에 보고하면서 저를 왕따시키고 회피했어요.

감시가 얼마나 심했던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밤에 잠자다가 깼을 때 마시려고 머리맡에 놓아둔 물조차 혹시 누군가가 안 좋은 어떤 거라도 넣었을까봐 걱정돼 안 마시고 버릴 정도로 신경이 예민했고 분위기가 살벌했어요.

물론 그 중 조수경 선생님은 제 편에 서주셔서 그나마 많은 위로와 힘이 돼주셨지만, 나머지 선생님들은 전부 법인 사람들 편이었어요. 다시 인화원으로 복직해서 근무하는데 인화원 선생님들이 저와 같이 근무하는 게 불편했는지 저를 근로시설로 옮겨달라고 학교 측에 건의해 근로시설로 옮기게 됐어요.

인화원 졸업생, 즉 동문들은 ‘도가니 사건’ 전에는 지역사회에서 서로 친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했어요. ‘도가니 사건’ 전까지는 동문들과 법인의 유착관계를 몰랐는데 정작 사건이 발생하니 동문은 양쪽으로 갈라져서 대립했어요. 광주인화학교 법인 측에 동조하는 쪽과 인화학교성폭력대책위에 협조하는 쪽으로 서로 갈라지고 대립하더라구요.

당시에 교감이었던 김□□ 씨가 저를 불러 “당신은 김■■ 씨 쪽이냐, 조점래 씨 쪽이냐?”고 물었어요. 저는 누구 편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역사회 내에서 조점래 씨하고 비교적 가끔 만나지만 김■■ 씨하고는 자주 만나는 사이가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어요. 이 사람이 무슨 의도로 물었는지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건이 발생하자 이 사람은 어느 쪽과 손을 잡아야 자기들에게 유리할지 미리 계산하고 있었던 거 같아요.

결국, 학교는 김■■ 씨하고 결탁했습니다. 그 당시 김■■ 측 동문들은 광산구수어통역센터가 새로 세워져 신규 통역사를 채용할 때 ‘도가니 사건’ 피해 학생의 통역은 하지 말 것을 요구했고, 만약에 ‘도가니 사건’ 피해자를 통역할 경우 채용을 거부하고 해고할 수도 있다는 조건을 내걸고 통역사를 채용했다는 사실을 그 당시 채용됐던 통역사들을 통해서 알게 됐어요.

그래서 사건이 터졌을 때 수어통역사들이 ‘도가니 사건’ 피해자들의 통역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해 그 당시 프리랜서인 김창호 통역사가 통역을 전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화 ‘도가니'(2011)의 한 장면 ⓒ㈜삼거리픽쳐스/㈜판타지오/CJ 엔터테인먼트

‘도가니 사건’ 당시 유관기관의 행태는 구청, 시청 그리고 교육청도 똑같았어요. 당시에 시청 고위급 공무원 한 사람은 근무 중 낮술을 마신 상태에서 “자기들끼리 좋아서 한 거 가지고 뭐하냐”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서, 인화학교성폭력대책위와 동문들 그리고 학부모님들이 분개해서 시청에 항의 차 함께 쳐들어간 적도 있어요.

그만큼 공무원들은 장애인 인권에 대한 인식과 개념이 부족했어요. 관리·감독 기관인 교육청도 광주인화학교에 대한 책임과 해결책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했어요. 보다 못해 인화학교 학생들은 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함께 교육청에 쳐들어가 쇠사슬을 목에 걸고 천막 수업을 하고 농성도 하고 그랬어요.

저는 지금 다시 2005년으로 돌아가도 그때처럼 똑같이 ‘도가니 사건’을 고발했을 겁니다. 제가 근무하는 직장에서, 그것도 장애인을 돌보고 교육하는 신성한 교육의 현장에서 장애학생이 밤마다 성폭행을 당한다는 천인공노할 상식 밖의 말을 듣고 어떻게 외면하겠어요.

당시에 박◆◆ 학생이 있었는데 밤 8시경에 제 방에 찾아와서 “말하기 좀 혐오스러운데요, 이해하고 들어주세요”라면서 “행정실장이 자기를 화장실로 데려가서 차마 듣기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음란한 짓을 했다”라고 자세히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런 얘기는 여자 선생님께 말씀드려야지 왜 여자 선생님께 말 안 하고 남자 선생인 나한테 말하니?”라고 물었더니, 박◆◆ 학생이 “주변 여자 선생님께 말씀드렸는데도 거짓말이라고 안 들어주고 무시하고 외면했어요, 그래서 선생님께 말하는 거예요”라며 울었어요. 그러니 만약 다시 2005년과 똑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저라도 나서야 하지 않겠어요?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