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날짜가 다가올수록 걱정은 사채 이자처럼 불어났다. 이규식은 정말 강연을 할 수 있을지, 청중은 들리지 않는 목소리에 당혹감을 느끼는 건 아닌지, 모든 게 불안했다.

중증 뇌병변 장애인이 마이크를 쥐고 무대에 서는 것 자체에 의미를 뒀으나, 혹시 이런 마음 역시 장애인을 전시해 나의 정치적인 올바름을 내세우는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기도 했다.

책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후마니타스, 2023. 3.)로 약속된 ‘왓슨 북클럽’ 행사 날짜 5월 19일은 빚쟁이처럼 변함없이 찾아왔다. 전동휠체어에 앉은 이규식은 마음대로 뒤틀리는 얼굴 근육으로, 종종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입과 혀로, 인생 이야기를 시작했다.

2023년 5월 19일 서울 서교동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왓슨 북클럽’ 현장 ⓒ셜록

사실 그의 말 중 팔 할은 잘 들리지 않았다. 언어 장애인의 강연을 듣는 건 처음이어서 더욱 그랬다. 하지만 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규식의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활동보조인 김형진은 빔프로젝터 화면에 자막처럼 이규식의 말을 새겼다.

10년간 이규식 활동보조인으로 일했으니, 김형진은 누구보다 그의 말을 잘 알아들었다. ‘하고자 한다면 길은 있는 법’이라는 옛 어른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행사장을 찾은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친구 왓슨(유료독자)은 귀와 눈으로 이규식의 언어를 들었다. 대화, 소통, 교감에 문제는 없었다. 사채 이자 같던 걱정과 근심은 부채 탕감을 받은 듯이 가벼워졌다.

서로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지, 행사는 예정된 2시간을 훌쩍 초과에 밤 10시께 끝났다. 지난 5월 19일의 일이다.

2023년 5월 19일 서울 서교동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왓슨 북클럽’ 현장 ⓒ셜록

행사가 만족스러웠는지 이규식은 강연장을 떠나지 않고 자꾸 내 눈치를 살폈다. 뭔가 기대하는 눈치였다.

“술 한잔 하고 갈까요?”

그제서야 이규식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는 술을 좋아한다. 전동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술집에서 이규식은 술을 한 잔 들이켜더니 내게 툭 던졌다.

“내… 책… 정말… 재밌어요?”

나는 “그렇다”고 말했다. 진심이었다. 나는 이런 의견을 전했다.

“누가 전국 순회 북토크를 추진하면 좋을 거 같아요. 책도 좋고, 오늘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소통하는 것도 좋잖아요. 사실 서로 만날 일도 별로 없잖아요.”

뭔가 결심이 섰는지 이규식은 일대일 비율로 섞은 ‘소폭’을 한 잔 마시고 크게 말했다.

‘왓슨 북클럽’이 끝난 뒤 가진 술자리. ‘소맥’을 입에 털어 넣은 이규식은 박상규 셜록 대표에게 ‘전국 순회 북토크’를 제안했다. ⓒ셜록

박 기자… 당신이 하면 되잖아. 다른 사람이… 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당신이 하면 되지. 박 기자는… 왜 안 해? 당신이 해!”

너무 질렀나 싶었는지 이규식은 소심하게 이 말을 덧붙였다.

“내 책 좀 팔아줘봐요… 나… 책… 많이 팔고 싶어.”

예상 못한 일이었다. 책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를 들고 전국 순회 북토크를 진행해달라니. 이규식의 눈을 보니 취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일단 나도 맥주 한 잔 마시고 생각해봤다.

이규식과 함께 전국을 돌며 ‘왓슨 북클럽’을 진행한다? 나쁘지 않아 보였다. 일단 그의 책은 “한국 사회에서 단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는 중증 뇌병변 장애인의 생애사”로서 의미가 크다. 어렵고 비장한 이야기만 담긴 게 아니라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그동안 셜록의 왓슨 행사는 주로 서울에서 열렸다. 비수도권에 사는 왓슨은 참석 자체가 어려웠다. 어떻게든 지역 행사를 해야 했는데, 인생 자체가 장애인 이동권과 인권운동의 역사인 이규식과 함께한다?

이리저리 고민하는 내 눈빛을 향해 이규식은 술잔을 들어보였다. ‘어때? 내 아이디어 괜찮지?’ 하는 의기양양한 표정. 나는 잔을 들어 이규식과 건배를 했다.

“오케이! 콜! 합시다.”

이규식과 셜록이 전국 순회 북토크를 연다 ⓒ셜록

‘이규식과 함께하는 셜록 전국 순회 북토크’는 이렇게 기획됐다. 갑작스럽게 결정됐지만, 좋은 행사가 될 듯했다. 그동안 강연, 북토크 무대의 주인공은 늘 비장애인이었다. 장애인 청중석이 마련된 행사장은 많아도, 경사로가 설치된 단상까지 완비된 강연장은 전국에 거의 없다. 이런 인프라는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장애인은 듣는 사람이지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편견, 장애인은 청중이지 강연자는 될 수 없다는 차별과 낙인 말이다.

5월 ‘왓슨 북클럽’을 진행한 서울 서교동의 창비서교빌딩은 장애인이 접근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하지만 이규식이 강연한 ‘50주년기념홀’의 단상에도 휠체어 이동이 가능한 경사로는 설치돼 있지 않았다. 그 탓에 이규식은 단상 아래에서 강연을 했다.

이규식과 전국 순회 북토크를 하면 ‘강연장 단상’부터 바꿀 수 있을 듯하다. 이는 결코 사소한 사안이 아니다. 바꾸기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대규모 군중이 아니더라도 이규식이 전국을 돌며 강연을 하면 장애인-비장애인의 이해의 폭도 넓힐 수 있을 듯하다. 중증 뇌병변 장애인도 무대에 설 수 있고, 강연할 수 있다는 걸 이규식이 직접 보여주면 그 자체로 ‘장애인차별철폐 운동’이 될 수도 있다. 의미는 물론이고, 재밌는 시간이 될 게 분명했다. 더 무슨 이유가 필요한가.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강연자로 부르지 않는 건, 불편하기 때문일 거다. 말할 때 일그러지는 얼굴을 보거나 더듬거리는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불편이 아니라, 장애인이 폭로하고야 마는 비장애인들의 위선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런 불편 말이다.

이규식 전국 순회 북토크는 의미는 물론이고, 재밌는 시간이 될 게 분명하다 ⓒ셜록

이번 프로젝트는 ‘북토크’에만 멈추지 않는다. 책 속의 이야기를 기사로 풀어보고, 이규식과 그의 가족, 활동보조인 김형진 씨를 취재해서 보도할 예정이다.

‘이규식과 함께하는 셜록 전국 순회 북토크’ 첫 번째 장소는 광주광역시다. 오방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공동주최 하기로 했다. 광주-전남 지역에 거주하는 왓슨 여러분의 많은 참여 바란다. 왓슨이 아닌 분들도 참석이 가능하다. 현장에서 셜록의 친구 왓슨으로 가입해줄 거라 믿는다.

원활한 행사 준비와 진행을 위해 아래 안내에 따라 신청해주시면 좋겠다. 재밌고, 신나게, 조금씩 세상을 바꿔가는 행사가 되길 소망한다.

▲일시 : 2023년 7월 6일(목) 오후 6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이후 30분간 저자 사인회)

▲장소 :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 다목적홀(광주 서구 회재로 905)

▲인원 : 100명

▲사회 : 배경내(‘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이야기손님 : 이규식, 김형진(이규식의 활동보조인), 김미숙(장애여성, 광주장애인가정상담소 국장)

▲참가 신청 : 아래 구글폼으로 7월 4일(화)까지 받습니다

☞ https://forms.gle/PuFmNyWrTCP5aKMN9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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