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 외딴 곳에 자리한 시설에서의 첫날은 언제나 눈물이었다. 서러움과 외로움은 3년이 가고 5년이 가도 무뎌지지 않았다. 중증 뇌병변 장애인이라고 생각, 감정이 없는 건 아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지? 나는 이런 삶에 만족하고 있나?’

뇌성마비 장애인 철규(가명)도 그 추운 겨울밤에 스스로에게 수없이 물었을 거다. 그의 가슴속 대답 역시 “이런 삶에 만족하지 않는다”였을 테고. 사고 터지기 전날 밤 철규는 “여기서 나가겠다”고 소리치며 난리를 피웠다.

이튿날 아침, 그의 방엔 주인 잃은 휠체어뿐이었다. 철규는 보이지 않았다. 탈출이었다. 걷지도 뛰지도 못하는 철규는 어떻게 나간 걸까. 시설 책임자인 목사님과 직원들이 주변을 수색에 나섰다.

철규는 멀리 가지 못했다. 두 팔로 기어봤자 어차피 거기서 거기였다. 철규는 시설에서 가까운 도랑에 빠져 있었다. 철규는 얼어 죽었다.

장애인 시설에서 살던 시절의 이규식 ⓒ이규식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후마니타스, 2023. 3.)에는 그날 이규식이 받은 충격이 적혀 있다.

‘아, 나도 혼자 밖에 나가면 죽겠구나. 장애인이 안전한 공간에서 혼자 벗어나면 죽는 거구나. 아무리 재미없어도 이렇게 갇힌 공간에서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게 정답이구나.’

오답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규식의 내면에 다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지루하고 재미없어도, 안전하니까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는 걸까?”

정답을 알면서도 오답을 말하는 스스로에게 이규식은 짜증이 났다. 밥도 안 먹고 예배도 거부하길 며칠, 이규식은 시설 책임자인 목사님을 찾아갔다.

“나, 여행 가고 싶어요. 여행 보내줘요!”

목사님은 ‘얘가 뭘 잘못 먹었나’ 하는 눈으로 이규식을 바라봤다.

“어디 가고 싶은데?”
“제주도요!”

정말 가고 싶어서 그리 답한 게 아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곳에 제주도였다. 목사님도 이규식처럼 선을 넘었다.

“그래, 가라! 제주도.”

전동휠체어도 없던 1990년대 초반 여름에 벌어진 일대 사건. 사실 목사님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가긴 네가 어딜 가니. 버스나 겨우 타보고 한 바퀴 돌다가 돌아오겠지.’

그도 그럴 것이 이규식의 뇌병변 장애는 중증이다. 왼팔로만 수동 휠체어를 겨울 밀 수 있을 뿐, 신체 대부분은 그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그런 그가 어떻게 혼자 제주도 여행을 간단 말인가.

일은 이미 벌어졌다. 이규식은 목사님의 도움을 받아 경기도 양평 버스터미널에서 목포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휴게소에서 화장실도 못 가니 아침부터 밥도 안 먹고 물도 마시지 않았다. 배는 고파도 가슴은 떨렸다. 그렇게 이규식은 선을 넘었다.

이규식의 최근 모습. 제주도 여행은 그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셜록

목포터미널에 도착하니 저녁이었다. 버스에서 내려달라, 휠체어를 꺼내 앉혀달라, 제주행 배가 떠나는 목포항은 어디냐, 거기까지 좀 휠체어를 밀어줄 수 있느냐…. 홀로 세상에 나온 첫날, 이규식은 낯선 사람에게 부탁하고 또 부탁했다.

사람들은 여기까지 밀어주고, 저기까지 끌어줬다.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지에 따라 할 수 있는 데까지 이규식의 휠체어를 밀었다. 그렇게 이규식은 목포항에 닿았고, 혼자 힘으로 ‘티켓팅’에 성공했다.

‘배 타는 곳이 어디지…?’

이규식은 제주행 티켓을 쥔 왼손으로 휠체어를 밀었다. 혼자 만난 낯선 세상, 설렘만큼 고되고 힘들었다. 배를 찾아 느리고, 힘들게 헤매는데 갑자기 휠체어 속도가 빨라졌다.

“제주도 가시는 겁니까?”

부탁도 안 했는데, 한 20대 청년이 이규식의 휠체어를 밀기 시작했다. 그 청년은 계단형 승선 입구에선 승무원과 함께 이규식의 휠체어를 번쩍 들어 옮겼다. 그 청년 덕에 무사히 제주행 배를 탔다. 이윽고 배가 항구를 떠났다.

생애 처음으로 망망대해에 선 이규식. 밤바다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계단과 문턱이 많았다. 그때 그 청년이 또 나타나 이규식의 휠체어를 갑판까지 밀어줬다. 바다엔 불을 켠 어선, 하늘엔 별이 반짝…. 그때 청년이 입을 열었다.

“제주도에 여행 가는 길인데, 하루 일하고 하루 놀고 이렇게 할 계획이에요. 돈이 별로 없어서요.”

그때 이규식의 머리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돈을 댈 테니 3박 4일간 저랑 같이 여행합시다.”

청년은 휠체어에 앉은 이규식을 훑어봤다. 많이 난감 했는지 청년은 선뜻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규식의 가슴에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이 청년을 어떻게든 잡아야 한다.’

“내가 밥 사주고, 재워주고, 술도 사줄게요. 나랑 같이 여행합시다. 나 좀 도와줘요…. 우리 같이 다녀요…. 네?”

몇 번 설득 끝에 청년이 “오케이” 했다. 이규식의 눈에 청년의 얼굴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 보였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배는 제주항에 닿았다. 청년은 휠체어를 밀고 뭍으로 내렸다. 중증 뇌병변 장애인 이규식과 낯선 청년의 제주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두 사람은 택시를 탔다. 제주가 처음인 이규식은 “어디든 멋진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기사에게 말했다. 택시기사는 룸미러를 통해 이규식와 청년을 이상하게 바라봤다.

“두 분은 어떻게 여기까지…?”

이규식이 배에서 처음 만난 사이라고 말했다. 기사는 영화 <비포 썬 라이즈>의 한 장면이라도 본 듯이 미소를 지었다.

“아…. 그러면 저도 동참을 좀 할까요? 3박 4일 동안 제가 두 분을 모시겠습니다!”

택시기사는 용두암으로 차를 몰고, 한라산 1100고지 쪽으로도 운전대를 틀었다. 도깨비도로에선 이규식을 휠체어에 앉히고 ‘역주행 체험’도 시켜줬다.

20대 청년은 여행 내내 이규식과 한 방을 썼다. 아침저녁으로 이규식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식당에서 식사를 도왔다. 장애인 활동지원사 제도는커녕 개념조차도 없던 시절, 그는 그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아침에는 어김없이 택시기사가 차를 몰고 나타났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기사는 유명 관광지는 물론이고 ‘현지인 코스’로도 이규식을 안내했다. 뿐만 아니라 사진기를 가져와 이규식과 청년의 모습을 찍었다.

제주도 여행 중 택시기사가 찍어줬다 ⓒ이규식

‘칠성사이다’ 간판이 있는 어느 장소에서 휠체어에 앉은 이규식과 20대 청년은 택시기사를 바라봤다. 택시기사는 자기를 바라보는 두 사람을 사진기에 담았다.

3박 4일 여행이 끝날 무렵, 택시기사는 사진관에서 즉석으로 사진을 현상했다. 그는 이 사진을 이규식의 손에 쥐여줬다.

“이것도 추억인데, 잘 간직하세요.”

어떤 추억은 역사적 순간이 되기도 한다. 이규식에겐 낯선 청년과의 3박 4일이 그랬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어서 헤어지기 싫었으나 어차피 약속은 ‘3박4일’이었다. 처음 왔을 때처럼, 이규식과 청년은 제주항에서 헤어졌다.

“저는 혼자서 며칠 더 놀다 가겠습니다.”

청년은 제주에 남았다. 다시 목포로 돌아가는 바닷길, 망망대해에 선 이규식은 3박 4일 전의 그 이규식이 아니었다. 부푼 가슴은 잦아들지 않았다. 바다보다 이규식의 가슴이 더 출렁거렸다.

“나가자. 이젠 시설에서 나가자. 이렇게 여행도 할 수 있는데, 내가 왜 평생 시설에서 살아야 하나. 나가자. 밖으로 나가자.”

양평 산속의 시설에 돌아온 뒤 이규식은 한동안 깊은 잠을 잤다. 얼마간의 떠날 준비를 거쳐 이규식은 목사님에게 “떠나겠다”고 말했다. 때마침 세상에는 전동스쿠터가 나와 이규식에겐 이동의 폭과 자유가 커졌다.

시설에서 나온 이규식은 사회 속에서 살며 전동휠체어를 타고 어디든 다닌다 ⓒ셜록
깊은 산 시설에서 나온 이규식은 사회에서 살고 있다. 서울 혜화동의 한 술집을 찾은 이규식. ⓒ셜록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아마 지금 누군가가 다시 나에게 공동체 혹은 시설로 돌아갈 거냐고 물어본다면? 당연히 대답은 ‘아니오’다. 가끔 비탈길에 휠체어가 넘어질 뻔도 하고, 신호를 잘못 봐서 사고도 날 뻔하고, 돈이 없어 굶을 때도 있지만, 그 모든 게 나의 선택이고 나의 자유다.

주는 것만 먹고,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일과를 아무 의미 없이 하기보단 다소 위험하더라도 자유가 있는 지금이 훨씬 좋다.”

장애인 이동권 활동가 이규식, 인권활동가 이규식, 장애인의 인권과 권리를 위해 가끔 지하철을 막고 버스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이규식…. 그 수많은 이규식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 덕에 서울의 여러 지하철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됐고, 저상버스가 서울을 누빈다.

무작정 떠난 제주도 3박 4일 여행은 추억이면서, 삶을 바꾼 터닝포인트가 됐다.

“나 혼자 거기까지 갔는데, 내가 뭘 못하겠나 싶었지. 시도하고 도전하니까 되더라고. 그리고 그 청년….”

이규식은 우연히 만난 그 청년을 자기를 바꾼 사람이라고 했다.

“내가 세상으로 나와도 괜찮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야. 그 청년 덕에 내가 세상으로 나온 거야. 진짜 고마워. 이름도, 나이도 잊었는데 꼭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어.

당신 덕에 인간답게 살고 있다는 감사 인사를 하고 싶어. 내가 이동권 투쟁하면서 뉴스에 많이 나갔으니까, 어쩌면 그 청년을 날 보고 있을지도 모르지. 꼭 만나보고 싶네. 박 기자, 어떻게 좀 찾아줄 수 없어?”

무작정 제주도 여행을 떠난 이규식, 그를 도우며 3박 4일을 함께한 청년. 이규식과 셜록은 이 청년을 찾고 있다. ⓒ이규식

그 청년의 이야기는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에서도 가장 감동적인 내용이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이 청년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일단 이렇게 기사를 쓰고, 사진을 공개해본다.

이규식은 1969년생이다. 이규식은 그를 “20대 청년”으로 추억하나, 사실 둘의 나이 차는 크지 않다. 이규식의 기억에 따르면, 자신보다 두세 살 어리다고 한다. 1970년대 초반 생일 거다. 제주도 여행은 1993년부터 1995년 사이의 일이다. 

이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이규식과 함께하는 셜록의 전국 순회 북토크가 다 끝나기 전에 그가 나타나면 좋겠다. 두 사람이 무대에 서는 장면을 상상해본다.(관련기사 : <셜록이 ‘뇌병변 장애인’ 이규식과 전국 북토크를 합니다>)

1993년과 1995년 사이 어느 여름, 이규식과 제주도 여행에 선뜻 나선 청년을 찾는다 ⓒ셜록

 

취재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
그래픽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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