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려서 용산어린이정원에 들어가면 안 되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겁니까? (…) 용산어린이정원은 사유지가 아닌데,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닙니까?“(25일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금지 국가인권위 진정서 제출 기자회견 김은희 용산시민회의 대표 발언 중)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금지당한 시민들이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들이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금지당한 지 약 두 달 만이다.
김은희 ‘온전한생태평화공원조성을 위한 용산시민회의(이하 용산시민회의)’ 대표와 김수형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하 대진연) 환경동아리 ‘푸름’ 대표 등 시민 총 24명은 25일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그리고 대통령경호처의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금지 조치로 인해 인권을 침해당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이들을 대리해 진정인으로 나섰다.
셜록은 윤석열 대통령 부부 ‘색칠놀이’ 프로그램을 소셜미디어에 알렸던 김은희 대표와, 그와 함께 당일 동행한 용산 주민 5명이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금지당한 사실을 지난 8일 최초로 보도한 바 있다. 이후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금지당한 시민이 최소 23명이 추가로 더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관련기사 : <최소 23명 더 있다… 용산어린이정원 ‘블랙리스트’>)
김은희 대표는 7월 22일 용산어린이정원을 방문했다. 김 대표는 특별전시의 일환으로 용산어린이정원에서 진행 중인 윤석열 대통령 부부 ‘색칠놀이’ 프로그램을 사진으로 찍고, 개인 페이스북 계정에 올렸다.
김 대표가 찍은 ‘색칠놀이’ 사진은 지난 7월 말 여러 소셜미디어에서 공유됐다. 많은 언론사가 해당 사진을 인용해 “용산어린이정원에서 아동을 상대로 ‘대통령 우상화 교육’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이후 8월 2일, 김 대표는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금지 사실을 인지했다. 그와 함께 7월 22일 용산어린이정원을 출입한 용산 주민 5명도 출입을 거부당했다.
대학생 수십 명도 그에 앞서 출입금지를 당했다. 7월 11일 용산어린이정원 방문을 신청한 대진연 대학생들은, 방문 예정일 하루 전인 7월 10일 오후 6시경 돌연 “입장이 불가함”을 알리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셜록은 대학생 23명이 실제로 출입금지 메시지를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대학생들은 출입금지 인원을 40여 명으로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이들 중 대다수는 이전에 용산어린이정원을 방문해본 적도 없다.
김은희 대표와 용산 주민 5명, 그리고 대진연 대학생 수십 명 모두 25일 현재까지 출입금지 상태에 놓여 있다.
대통령경호처는 지난 14일 국토교통부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 환경부와 함께 보도설명자료를 내고 “불법적인 행위가 확인된 당사자에 대해 대통령 경호·경비 및 군사시설 보호, 용산어린이정원의 안전 관리 등을 고려해 통제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통령경호처는 누가, 어떤 불법적인 행위를 했는지는 정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용산 반환부지 임시개방구간 관람 규정’ 제5조(관람신청 및 입장) 6항 “관리기관장은 반환부지 관련기관의 요청이 있을 경우 예약신청 또는 현장접수를 받은 대상자의 출입을 제한할 수 있다.”
LH는 위 ‘출입 제한 조항’ 규정을 근거로 김 대표와 용산 주민 5명, 그리고 대학생들의 출입을 제한했다고 기자에게 밝혔다. LH는 국토교통부로부터 용산 미군기지 반환부지에 대한 유지 관리 및 운영을 위탁받았다.
‘출입 제한 조항’은 7월 10일 신설됐다. 지난 5월 4일 용산어린이정원이 개방된 지 겨우 두 달 만에 만들어진 조항이다. 용산어린이정원 측은 오직 ‘출입 제한’ 조항만을 새롭게 추가하기 위해 규정을 개정했다. 출입 제한 조항이 신설된 바로 그날, 대진연 대학생들을 상대로 바로 적용됐다.
출입금지 피해자들이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한 사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당사자에게 출입금지 사유를 설명하지 않는 점이다. 용산어린이정원 측은 출입금지를 당한 당사자 모두에게 ▲출입금지를 요청한 관련기관이 어디인지 ▲출입금지 요청 사유가 무엇인지를 설명하지 않았다.
김은희 대표는 “출입금지를 당한 지난 2일 용산어린이정원 정문에 있는 안내 담당자에게 문의했지만, ‘위의 방침이다. 사유를 말해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와 함께 7월 22일 동행했다가 출입금지를 당한 용산 주민 A 씨 또한 “LH에 전화로 직접 문의했지만, 출입거부 사유에 대해 정확한 안내를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김수형 대진연 환경동아리 푸름 대표 역시 “출입 거부 사유를 알기 위해 용산어린이정원 측에 전화로 수차례 문의했지만,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LH는 기자에게도 “출입이 제한된 사람들은 관계기관의 요청이 있어 ‘용산반환부지 임시개방구간 관람 등에 관한 규정’에 의거 현재 출입을 제한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사유 등은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대표변호사는 지난 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행정절차법에는 처분사유를 고지하도록 돼 있는데, 그 사유를 당사자에게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면 문제”라고 꼬집었다.
두 번째는 특정인의 출입을 막는 행위는 차별행위라는 점이다. ‘출입 제한 조항’은 그 자체로 논란의 여지가 있다. 특정 행위나 물품 반입을 금지하는 것이 아닌 특정 ‘인물’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규정상 출입 제한의 대상이 되는 ‘인물’의 조건과 사유도 밝히고 있지 않다. 특정 기관의 요청에 따라 언제든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의 출입을 막을 수 있는 ‘블랙리스트’ 조항인 것이다.
다른 기관의 관람 운영 규정과 비교하면, ‘출입 제한 조항’의 특이성은 확연히 드러난다. ‘청와대 관람 운영 규정’의 경우 음주, 흡연, 취사 등 특정 행위와 화기 및 인화물질, 전동킥보드 등 특정 물품의 반입을 제한하고 있다. ‘기관의 요청에 따른 특정 대상자’의 출입을 제한할 수 있다는 조항은 찾아볼 수 없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출신 B 변호사는 지난 2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용산어린이정원 관람 규정의 경우 법률로써 기본권을 제한한 게 아니기 때문에 기본권 침해로 볼 수 있다”고 자문했다.
이어 그는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금지를 당한 시민들은 행복추구권과 행동자유권, 그리고 ‘블랙리스트’ 관점에선 표현의 자유까지도 침해당했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용산시민회의와 대진연은 25일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기 앞서, 인권위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금지는 인권침해”라고 주장했다.
김은희 대표는 “용산어린이정원의 문제점에 대해 계속 목소리를 내는 것이 대통령 심기를 건드려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이냐“면서 “용산어린이정원은 사유지가 아닌 모든 사람들이 출입가능한 곳인데,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박근하 대진연 소속 대학생은 “윤석열 정부는 국민들과 소통을 하겠다는 이유로 용산어린이정원을 졸속으로 개방했다”면서 “용산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문제를 처리하지도 않고, 용산어린이정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개방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국민들도 가려서 (출입을) 받아 분노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대진연 소속으로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금지당한 피해자다. 그는 마지막으로 윤석열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용산어린이정원 토양오염의 진실을 알고 있는 대학생들이어서 무서웠습니까? 저희는 이번 사태를 통해 ‘윤석열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대진연이 올라간 게 사실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출입까지) 막을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취재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사진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