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얼굴을 보면 제일 먼저 딱 떠오르는 두 글자가 있다. ‘고집’.

혼자 카메라를 들고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닌 지 20여 년. 그 세월을 버티게 해준 집념과 의지, 혹은 오기와 끈기 같은 것들이 그의 눈빛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워커에 청바지, 그리고 검은 티셔츠. ‘전투복’마저 고집스럽게 한결같은 이 사람, 구자환(55) 다큐 감독이다.

<레드 툼>(2013), <해원>(2017). <태안>(2020). 그가 만든 세 편의 다큐 영화에는 그의 20년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 사회가 지워버리려 했던 ‘민간인 학살’의 진실이 담겨 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수는 최대 100만 명까지 추산된다. 그야말로 ‘온 국토가 무덤’이었다. 당시 인구가 약 2000만 명이었으니, 학살은 내 가족, 내 이웃의 현실이었다. 지방좌익과 우익의 보복 학살도 자행됐지만, 많은 경우 남한의 군경, 우익단체, 미군의 폭격에 의해 학살을 당했다. ‘이념’이라는 잣대 하나만으로, 재판도 없이 죽이고 죽었다.

‘빨갱이’라서 죽은 사람도 있었고, 죽고 나서 ‘빨갱이’가 된 사람도 있었다. 의심을 품는 사람 역시 ‘빨갱이’가 됐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었고, 산 사람은 말을 잃었다. 학살이란 진실은 의혹이나 소문으로 떠돌았다. 이 사회에서 ‘역사’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지난 8월 24일 레드무비 구자환 감독을 만났다. 경남 창원시 상남동에 있는 그의 작업실. ⓒ셜록

과거의 구자환 감독 역시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에 대해 잘 몰랐다. 경남 지역에서 민중의소리 기자로 일하던 2000년대 초반까지도 그랬다. 그러던 중 2004년 취재 때문에 방문한 한 현장에서 그는 큰 충격을 받는다. 그곳은 마산 여양리,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현장이었다.

“너무 분한 거야, 억울하고. 속고만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나이가 그때 30대 중반이었어요. 자유, 민주, 평등을 부르짖는 이 나라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다 감추고 있었잖아요. 화가 나기도 하고, 내가 참 불쌍하기도 하고, 그때 굉장히 감정이 복잡했어요.”

구 감독은 유족들을 만나면서 학살의 실상을 알게 됐다. 그가 지금도 잊지 못하는 ‘할머니’ 역시 그때 만났다. 할머니는 학살로 남편을 잃었다. 하지만 남편의 죽음을 믿지 못했다. 시신을 확인하지 못했으니, 어딘가에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할머니는 남편을 평생 기다렸다. 행여나, 행여나, 하며 세월이 흘러갔고 할머니는 팔십 노인이 됐다.

그런데 50년 만에 학살지가 확인됐다. 땅을 파보니, 유해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느 것이 남편의 뼈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제 마음에서 남편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걸 할머니는 알았다.

“할머니가 그때서야 면사무소에 가서 남편 사망신고를 해요. 내가 같이 갔거든. 50년 만에 사망신고 하러 갔는데, 이분한테 (신고 지연) 과태료를 물리는 거예요. 막 울화통이 터지는 거죠. (…) 지금도 그분 생각 많이 해요. 내 첫 영화는 그분 덕분에 출발했다고 봐도 돼요.”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돈이 문제였다. 구 감독은 “말 그대로 밥을 굶어가면서” 현장을 찾아다녔다. 여기저기 빚을 내고, 자동차 기름 값이 없어서 발이 묶이기도 하고, 밥값이 없어서 유족들한테 도로 밥을 얻어먹으면서 촬영을 계속했다.

“(유족들을) 만날 때마다 듣던 소리가 그 소리라. 자기들은 한평생 살면서 억울하다는 소리도 한 번 못했다고. (진실을) 세상 사람들한테 좀 알려달라고.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이미 오륙십 년이 흐른 때였다. 사건의 목격자와 유족들은 하루가 다르게 ‘사라져갔다’. 중요한 목격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면 ‘석 달 전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빨리 ‘결과물’로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세상에 내놓은 것이 <레드 툼(Red Tomb)>(2013년 제작, 2015년 개봉)이다. 이 영화로 서울독립영화제 우수작품상과 들꽃영화제 다큐멘터리 신인감독상을 받았다. 영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하지만 세상은 기대만큼 쉽게 바뀌지 않았다.

“원래 <레드 툼>까지만 만들고 끝내려고 했어요. 그런데 <레드 툼> 개봉하고 나니까, 여기서 손 놔서는 안 될 것 같은 거예요. ‘사람들은 왜 이렇게 관심이 없지?’ 화가 나기 시작하는 거죠. ‘그럼 알 때까지 해줄게’ 하고 더 붙어버린 거지. 그러다 여기까지 온 거죠.”

구자환 감독의 다큐멘터리 <레드툼>(2013), <해원>(2017), <태안>(2020) 포스터들 ⓒ레드무비

그래서 나온 두 번째 영화가 <해원(解冤)>(2017년 제작, 2018년 개봉)이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들도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한국전쟁 발발 전의 제주 4․3사건과 여수순천 10․19사건부터, 전쟁 초기의 국민보도연맹 학살과 형무소 재소자 학살, 그리고 수복 이후의 부역혐의 학살까지, 다양한 성격의 사건들이 존재한다.

하나하나의 사건과 사건들은 서로 원인이 되기도 하고 결과가 되기도 하면서 엮여 있다. 구 감독은 모든 사건들의 공통적인 배경이 되는 ‘하나의 원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이 영화는 ‘역사 교과서’라고. 제 영화들 중에 개인적으로 제일 애정이 가는 건 <레드 툼>인데, 사람들이 더 많이 봐줬으면 하는 건 그래서 <해원>이에요.”

<레드 툼>의 현장이 주로 경남 지역이었다면, <해원>에서는 전국으로 확장됐다. 북쪽으로는 경기 고양 금정굴부터, 남쪽으로는 제주도까지 혼자 카메라를 들고 찾아다녔다.

많은 유족들이 오랜 세월 침묵을 강요받아왔다. 유족들을 옭아맸던 연좌제의 고통. ‘빨갱이’ 가족이라는 낙인은 이웃과 친척마저 등을 돌리게 했다. ‘아버지가 좌익으로 몰려 죽었다’는 이야기는 차마 자식들에게도 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삼켜온 이들이 많았다.

이분들은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말을 토해내는 거죠. 나는 그렇게 표현해요. 평생 말하지 못했던 것들, 가슴속에 감춰져 있던 것들을 막 풀어내요. 내가 질문할 필요도 없어요. 슬프면 같이 슬퍼하고, 화나면 같이 화내고, 그분의 감정을 받아들이면서 인터뷰를 해요. (…) 어떤 분은 처음엔 인터뷰하기 싫어하시다가도, 끝나고 나면 ‘이렇게 말하고 나니까 속이 다 시원하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야기 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씀도 많이 하시고요.”

구 감독은 이런 인터뷰와 기록이 그들을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기자로 일할 때부터 그가 품어온 신념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이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으니까. 자신의 영화가 유족들에게 실제로 어떤 도움을 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기억하는 ‘단 한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구 감독은 인터뷰 기록을 이어왔다.

“유족 분들은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말을 토해내는 거죠. 나는 그렇게 표현해요.” ⓒ셜록

<레드 툼>의 키워드가 ‘고발’이었다면, <해원>의 키워드는 ‘역사’였다. 진실을 고발하고, 역사를 조명한 뒤에는 또 무엇이 와야 할까. 구 감독이 세 번째 영화에 담고자 한 키워드는 바로 ‘화해’였다. 그래서 <태안>(2020년 제작, 2022년 개봉)을 만들었다.

태안 지역은 한국전쟁 초기 국민보도연맹에 대한 군경의 학살과, 인민군 점령기 좌익에 의한 학살, 그리고 수복 이후 부역혐의 학살까지, 연쇄적인 학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 곳이다. 죽인 자의 후손들과 죽은 자의 후손들은 지금도 한 마을에 살고 있다.

“(민간인 학살 진실규명의) 최종적인 목적은 결국 화해인 거예요. 화해라는 목적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어요.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끔 하고, 서로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하고 사과하고 그렇게 살아야 되는 거죠. 그런데 이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결국 국가입니다. 유족들 스스로는 절대 해결하지 못해요.”

‘화해’ 뒤에 자연스레 따라온 말은 ‘국가’였다. 왜 그럴까. 국민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한 국가. 도리어 국민을 향해 총을 겨눈 국가. 재판도 없이 비무장 민간인을 살해한 국가. 이제라도 국가가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만이 진정한 화해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그래서 그가 주장하는 것이 ‘국가 추념일 지정’.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희생자 추념일을 정해서 국가가 공식 추념행사를 진행하고, 책임 있는 사과와 화해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하는 거다. 구 감독은 “유족들은 지자체가 지역 위령제만 지원해도 국가로부터 위로받는 것처럼 생각한다”며, “그런 유족들한테 국가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간인 피학살자를) 100만 명까지 이야기합니다. 10만 명이든 1만 명이든 엄청난 숫자예요. 왜 그런 걸 덮어놓고 갑니까? 깨끗하게 사과하고, 모든 책임은 국가에 있다, 국민 개개인에게 있는 게 아니다, 말해야죠. 그래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유족들이 서로 화해할 수 있게끔 하는 게 국가의 역할인 거죠. 나는 그걸 국가 추념일 지정으로 풀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고발의 <레드 툼>에서 역사의 <해원>, 화해의 <태안>까지. 그리고 이제 ‘국가의 책임’을 영화에 담을 계획이다. 지난여름부터 촬영을 시작한 네 번째 영화의 현장은 전남 장흥군. 그는 스스로 “이번이 마지막 영화”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참 서글프다.

이제 증언해줄 분들이 너무 없어요.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분들 중에 생존해 계신 분이 정말 얼마 안 돼요. 그런 분들이 여럿 이야기해주셔야 당시 상황을 재구성할 수 있는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희생자들은 최대 100만 명까지 추산된다. 사진은 지난 5월 충남 서산시 봉화산 ‘서산 부역혐의 민간인 희생사건’ 유해발굴 현장 ⓒ진실화해위원회

구 감독은 스스로 “영화의 작품성보다는 기록성을 먼저 생각해왔다”고 말한다. 70여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건의 기억을 간직한 수많은 사람들이 세월과 함께 사라져갔다. 한 분이라도 더 살아 있을 때, “나 하나라도 힘 닿는 데까지 기록해두자”는 게 소박한 목표였다.

그가 만든 세 편의 영화는 2021년 12월 국가기록물로 지정돼 국가기록원에 보관됐다. 영화 세 편이라도 국가가 보관한다는 게 참 다행이었다. 20여 년 동안 모아둔 영상자료들을 잘 보관하는 것, 또 후대에 잘 물려주는 것이 평소 구 감독의 큰 걱정거리였기 때문이다.

“<레드 툼>에 출연했던 유족이나 목격자 분들은 지금 거의 다 돌아가셨다고 이야기해도 될 것 같은데, 그분들은 돌아가셔도 영상 속에는 살아 있어요. 영상을 보는 사람들한테는 살아 있어요. 그분의 감정, 느낌, 내용들을 하나도 왜곡 없이 들려줄 수 있는 게 영상이니까.”

전문적인 아카이빙 작업을 거쳐서 국민 누구나 편하게 찾아볼 수 있게 하고 싶다는 바람도 있다. 하지만 구 감독 한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 “이 영상자료들을 보관하자고 연락 온 데가 한 군데도 없다”고 탄식하듯 말하는 그의 눈빛에 깊은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민간인 학살이 전 국민적인 이슈가 되는 것은 아마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안 올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죽고 난 이후에 후대 사람들이 (중요한 자료로) 쓸 수 있을 거다, 그런 생각을 해요. 이게 나한테도 귀중한 자료지만, 뒤에 볼 사람한테 굉장히 중요한 자료인데….”

그의 유튜브 채널 ‘다큐몹(Documob)’에는 그가 만든 영화가 모두 ‘무료로’ 공개돼 있다. 유료 플랫폼에 공개할 것을 권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는 말을 듣지 않았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알게 되길 바라는 그의 한결같은 고집이다.

“나에게 불을 붙여준 작품. 감독님 감사합니다.”(유튜브 <레드 툼> 영상에 달린 댓글)

“고생 끝에 <레드 툼>을 개봉했는데, 쫄딱 망한 거죠.(웃음) 답이 나오더라고요. 이건 돈 안 되는 일이다.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것들, 나는 그것만 찾자. 어차피 내 안에 있는 세포가 돈 버는 세포는 절대 아니다. 이거 하면서 돈까지 벌려고 했으면 지금까지 못 했을 거예요.”

“답이 나오더라고요. 이건 돈 안 되는 일이다.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것들, 나는 그것만 찾자.” ⓒ셜록

“혹시나 또 그런 세상 돌아올까 싶어서 겁이 나요. 옛날 세상 돌아올까 싶어서 겁이 나는 거라. 아직까지 남북이 갈려서 안 있는교? 갈려 있는데 겁이 안 날 턱이 있는가. 겁이 나는데….”(영화 <레드 툼> 중에서)

구 감독의 영화는 70여 년 전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영화 밖의 현실은 지금도 달라진 게 없다. 만약 지금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학살 역시 반드시 재현될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특히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고 평화와 인권에 대한 기준이 크게 후퇴했다고 진단했다. 자나깨나 ‘반공’을 외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 한국전쟁 당시와 다를 바가 없다는 거다.

지금도 전쟁 나면 똑같은 상황 벌어집니다. 내가 100% 장담해요, 100%. 지금 정권 잡은 사람들 하는 행동을 봐요. 사고 수준이 한국전쟁 당시 그대로 머물러 있어요. 박근혜 정권은 계엄령 준비했잖아요. 실행됐으면 수없이 죽었습니다. 우리가 상상도 못했잖아요. 전쟁 상황이 벌어지고, 지금 국민의힘 같은 세력이 정권을 잡고 있으면 학살은 또 일어나요. 100%.”

“다들 귀찮아하잖아요. 그때나 이때나 관심 없잖아요.”(영화 <태안>의 메인 카피)

그렇다면 “그때나 이때나 관심 없”는 민간인 학살의 진실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구 감독은 “역사의 비극은 반복된다”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1960년 4․19혁명 이후 국회는 ‘양민학살사건조사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조사에 나섰다. 당시만 해도 사건 이후 10여 년밖에 지나지 않은 때라, 많은 증인과 증거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듬해 5․16쿠데타가 일어나면서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유족회 대표들은 ‘용공분자’로 몰려 감옥에 갇혔고, 희생자의 묘와 묘비는 훼손됐다. 희생자 명단 등 자료들도 불탔다.

“그때 가해자들이 처벌받았다면 한국 사회 전반이 바뀌었을 겁니다. 국민들에게 생명과 인권에 대한 의식이 각인됐을 거예요. 그럼 5․18 같은 사건은 일어날 수가 없죠. 권력자도 국민을 함부로 못 죽입니다. (국민을) 죽이면 나도 죽는다는 걸 알면 절대 못해요. 근데 권력자가 국민을 죽여도 아무 일 없다는 게 머릿속에 박히니까 5․18 같은 게 일어날 수 있는 거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에 벌어진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권력자들의 머릿속에 잘못된 ‘교훈’을 심어준 것. 구 감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오늘날 한국사회의 여러 모순들이 출발했다고 말했다. “역사의 틀이 이미 거기서 잘못 짜인 것”이라는 설명.

끝으로 후배 기록자들을 위해 해줄 말이 없느냐고 물었다. “지금 당장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라”는 대답. 한 줄의 대답으로 그의 인생이 모두 설명된다. 그래서 구 감독은 오늘도 카메라를 들고 현장으로 간다. 지난 20년 세월이 그에게 심어준 ‘확신’을 따라.

“지금이라도 진실을 알려주지 않으면 역사는 또 반복된다, 그게 내 확신입니다.”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