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오늘은 안 가면 안 돼?”

아들은 매일 하는 작별인사에도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다. 그건 박성원(가명, 41세) 씨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줄 아빠가 아이에게는 더욱 필요했을 텐데. 수호(가명, 8세)가 울음을 터뜨릴 때면 성원 씨도 코끝이 시렸다.

두 사람 모두에게 힘든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성원 씨는 저녁이면 아이 맡길 곳을 찾았다. 병상에는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를 아내가 있었다. 성원 씨는 옷깃을 붙잡는 고사리 같은 손을 뒤로하고 아내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의 시련을 극복하면 다시금 단란한 가정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절실한 바람을 버리지 않았다.

가족들은 귀선 씨가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을 때만 해도 금방 일상으로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박성원(가명) 제공

아내 여귀선 씨는 2017년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다. 그때 귀선 씨의 나이는 서른다섯. 처음에는 단순히 운이 나빠 생긴 병일 거라고 짐작했다. 유방암은 예후도 좋다는 말에 치료에 전념하면 금방 일상으로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그녀는 대구에서 서울까지 홀로 오가며 통원치료를 받는 것도 어렵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귀선 씨의 사촌오빠는 생각이 달랐다. 여 씨의 질병이 “삼성에서 근무하다가 생긴 병 아니냐”며, ‘반올림’이라는 단체를 소개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2007년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 씨 사건을 계기로 결성됐다. 지금까지도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들의 산재 인정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여귀선 씨는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열여덟 살 나이로 삼성디스플레이 기흥공장에 입사한다. 그때가 2000년 12월. 한 달간 교육을 마친 뒤에는 천안사업장으로 이동한다. 이후 귀선 씨는 7년 2개월간 LCD 제조공정에서 근무했다. 이때 각종 화학물질과 방사선에 노출된 채 일했고, 고된 교대근무까지 계속했다. 귀선 씨는 잦은 감기와 두통, 하혈, 방광염 등을 겪었고, 결국 건강 문제 때문에 퇴사하게 된다.

귀선 씨는 반올림의 도움으로 ‘삼성전자 반도체·LCD 산업보건 지원보상위원회’에 지원·보상 신청을 넣었다. 이내 보상 지원금이 나왔다. 귀선 씨는 그제야 비로소 ‘내게 생긴 유방암이 산재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게 된다.

직업성 질병으로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들은 그때부터 피 말리는 ‘시간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pixabay

“기대가 있으니까 저희도 (산재) 신청을 했어요. 담당 노무사님도 근무 연수라든지, 교대근무 여부, 공정 라인 등을 고려했을 때 해볼 만하다고 이야기를 하셨거든요.”(박성원 씨 인터뷰 2023. 10. 7.)

여귀선 씨는 2019년 12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녀가 앓고 있는 유방암을 산재로 인정해달라는 것. 귀선 씨는 기대를 안고 여러 자료를 모아 제출했다. 그러나 현실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산재 ‘승인’이라는 반가운 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았다.

“2019년 1월에 아내가 유방암 4기 진단을 받았어요. 그러면서 의사 선생님이 ‘2년 정도 남았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당시에는 혼자 통원치료 다닐 정도로 건강해서 (의사 말을) 안 믿었는데, 점점 아픈 게 눈에 보여요. 약을 바꾸면 바꿀수록 체력이 안 좋아지더라고요.”(박성원 씨 인터뷰 2023. 10. 7.)

아이는 어느새 훌쩍 자라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박성원(가명) 제공

그녀는 어느새 홀로 거동하기도 어려운 유방암 4기 환자가 됐다. 그녀의 건강이 이처럼 악화되는 동안에도 근로복지공단은 그녀의 산재 판정 여부를 알려주지 않았다.

“기다리는 시간이 막연한 게 제일 힘들었어요. 언제 결과가 나오는지 알면 기다리기라도 할 텐데, 이건 전혀 알 수가 없어요. 진행 상황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왜 지연되고 있는 건지에 대해서 안내도 없고요. 계속 ‘접수는 됐지만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이런 상황인 거예요.”(박성원 씨 인터뷰 2023. 10. 7.)

당시 경제활동을 할 수 있었던 건 박성원 씨뿐이었다. 그는 일을 하면서 아픈 아내를 간호하고, 동시에 어린 아들을 돌봐야 했다. 귀선 씨가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을 때, 아이는 겨우 두 살이었다. 성원 씨는 지난날을 떠올리며 “체력적인 한계보다도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너무 컸다”고 호소했다.

“아내의 병세는 계속해서 악화되어 죽음의 고비도 넘기며 가까스로 삶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렇게 힘들게 투병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가계의 상당 부분이 자기의 병원비와 간병비로 들어가는 것에 대한 상황을 미안하게 생각하며 투병을 하고 있습니다.(…)

산재 신청 후 판정에까지 이르는 시간이 이렇게 장기간 지체되지 않고 빠른 시간에 결정이 이루어지면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덜해지지 않을까요?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산재 진행 사항이 너무 더디게 이루어져 가는 오늘, 이렇게 몇 자 적어봅니다. 하루하루 고비를 넘기고 있는 아내를 생각해서 부디 산재 판정을 서둘러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2021년 8월 박성원 씨가 쓴 편지 일부)

하지만 성원 씨의 간절한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여귀선 씨는 2021년 9월 생을 마감했다. 성원 씨가 편지를 쓴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때였다.

여귀선 씨는 2021년 9월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4개월 뒤… ⓒpixabay

수호는 그 뒤로 ‘엄마 보고 싶다’는 말을 잘 하지 않았다. 귀선 씨가 병실에 누워 있을 때는 습관처럼 했던 말이지만.

이듬해 1월 고(故) 여귀선 씨는 산재 ‘승인’ 판정을 받았다. 산재 신청한 지 2년 2개월, 사망한 지 4개월 만이었다. 뒤늦은 판정에 성원 씨는 더욱 가슴이 사무쳤다. 먼저 떠나 보낸 게 꼭 ‘제 탓’인 것 같았다.

생전 귀선 씨가 부탁한 게 딱 하나 있었다. 4인실이 아닌 1인 병실에서 치료받고 싶다는 것. 당시 성원 씨는 홀로 치료비와 생활비를 모두 감당하고 있던 터라,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끝내 아내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다.

“암 환자 같은 경우에는 의료 제도권에 있는 치료 말고도 제도권 밖에 있는 치료도 많이 있거든요. 그런 걸 많이 해 보고 싶었는데, 그런 치료들은 또 온전히 저희 부담으로 해야 되니까 당시에는 해줄 수가 없었어요. 그런 거 왜 못해줬을까…. 뭐가 그렇게 아깝고 중요하길래 그거 하나 못해줬을까….”(박성원 씨 인터뷰 2023. 10. 7.)

가족들은 지난날을 그리는 것조차 죄스럽다. 귀선 씨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떠안은 건 오직 가족들뿐이었다.

산재 신청한 지 4년 4개월 만에 돌아온 근로복지공단의 통보. 그들은 최진경 씨의 유방암을 직업성 암으로 보기 어렵다고 전했다 ⓒ셜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 그 현장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죽기를 바라는 건 아닐까? 문서로도 남아 있지 않는 그곳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리 문제가 있던 곳이라도 ‘문제 없는 작업장’이 될 수 있잖아요.”(최진경 인터뷰 2023. 8. 29.)

지난 8월 만난 또 다른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최진경 씨는 고(故) 여귀선 씨 사례를 언급하며, 역학조사 장기화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최 씨는 삼성전자 기흥연구소에서 17년간 근무한 연구원이다. 그녀 역시 화학물질에 노출돼 있었다. 이후 유방암 3기 신청을 받고 산재 신청을 했다. 그리고 무려 4년 4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그 긴 기다림 끝에 받아든 것은, 허무하게도 산재 ‘불승인’ 판정. 그 사이 암은 자라 온몸으로 퍼졌다.(관련기사 : <반도체, 말기암, 불승인… 나는 홀로 ‘마지막’을 준비한다>)

근로복지공단 자료에 따르면, 산업재해 역학조사 기간은 최근 5년간 2배 이상 증가했다. 역학조사는 근로자의 질병과 작업장의 유해인자 사이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조사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수행하는 역학조사를 기준으로, 5년 전 평균 513일이 걸리던 역학조사 기간은 1072일(올해 8월 기준)까지 늘어났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내부 기준인 180일과 비교했을 때도 약 6배나 더 걸린 것이다.

역학조사 지연 문제는 오래도록 지적돼 왔다. 근로복지공단 자료에 따르면, 질병으로 산재를 신청한 뒤 역학조사 결과를 기다리다 사망한 노동자는 최근 5년간 111명에 달한다. 그중 한 명이 고(故) 여귀선 씨다.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처리 지연으로 고통받은 최진경 씨는 “(근로복지공단의) 직무유기 같다”고 지적했다 ⓒ셜록

역학조사 처리 지연 문제가 불거지자 과거 고용노동부는 한 차례 산재 처리 절차를 개선한 바 있다. 고용노동부는 2018년 ‘추정의 원칙’을 도입했다. 추정의 원칙은 근로복지공단과 법원의 판결을 통해 업무 관련성이 인정된 선례가 있을 때, 그와 동일·유사 공정 종사자에게 동일·유사질환이 발생한 경우 역학조사를 생략하는 원칙을 말한다. 

그러나 유방암(업무 관련성이 인정된 직업성 암 8가지 중 하나) 환자인 최진경 씨, 고(故) 여귀선 씨는 역학조사 생략 대상에 들지 못했다. 원칙 적용 기준이 협소하기 때문. 역학조사 생략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작은 단위로 세분화된 의미의 ‘동일’한 공정에서 직업성 암으로 인정받은 선례가 있어야 한다. 이런 방식의 추정의 원칙은 생략의 범주가 너무 작기 때문에 빠른 처리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난 12일 국정감사에서 산재 처리 지연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추정의 원칙’ 도입 이후에도 산재 처리가 지연되는 문제에 대해 “패스트트랙(역학조사를 생략하는 것)을 도입하고 신속한 재조사를 하고 있지만, 인력 부족을 비롯한 인프라 노후화 등 여러 요소가 작용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문제 해결을 위해 “역학조사 집중 처리 기간 운영, 민간 위탁 사업 추진 등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시간과 싸우는 직업병 피해자들 인포그래픽 ⓒ셜록

지난달 27일 국회에는 산재 판정 지연 문제에 대한 대책으로 ‘산재국가책임제’ 법안이 발의됐다. 우원식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서울 노원구을)이 대표발의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 법안에는 역학조사 기한을 180일로 정하고, 그 기한을 넘기면 피해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선보장’ 조항이 포함됐다.

산재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그거잖아요. 조금 더 나은 치료를 해보고 싶다는 거. 결과가 지연되더라도 먼저 보상을 해주면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힘이 많이 되죠. 또, 국고를 활용해야 하는 거니까 (손실을 막기 위해) 아무래도 역학조사도 기한에 맞춰서 잘 이행될 것 같고요.”(박성원 씨 인터뷰 2023. 10. 7.)

성원 씨는 ‘산재국가책임제’가 있었다면 “아내에게 더 나은 치료를 해줄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이어 현재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간병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표하기도 했다.

“그동안(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과 반올림이 싸워온 세월 동안) 변화는 있었죠. ‘추정의 원칙’이 도입되고, 삼성이 (직업병) 근로자에게 보상하는 변화도 있었어요. 그런데 여전히 산재로 싸우다가 죽는 사람들이 많아요.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꼭 여럿 죽어야만 (제도가) 변해요.”(이종란 노무사 인터뷰 2023. 9. 23.)

세상이 더디게 바뀌는 동안에도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하루도 멈추는 법이 없는데, 행정은 “인력”과 “인프라”를 탓하며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죽기 전에 산재 승인을 받고 싶다는 피해자들의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신호영(가명) 씨는 피 말리는 산재 인정 싸움을 6년째 이어오고 있다 ⓒ셜록

한편, 역학조사가 아닌 다른 이유로 산재 처리가 지연되기도 한다. 6년간의 기다림 끝에 법원으로부터 산재를 인정받은 신호영(가명) 씨의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못했다. 법원의 산재 승인 판결에 불복한 근로복지공단이 항소를 한 것.(관련기사 : <법원은 산재 인정, 공단은 불복 항소… “죽어야 끝날 일인가”>)

근로복지공단의 항소 배경에는 법무부의 지시가 있었다. 근로복지공단은 신호영 씨 사건에 대해 항소를 포기했으나 법무부가 이례적으로 항소 제기 의견을 낸 것. 최근 3년간 법무부가 항소제기 의견을 낸 것은 올해 4건뿐. 2021년과 2022년에는 전무한 일이었다.

지난 23일 국정감사에서 박종길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은 “법무부로부터 항소를 제기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것”을 시인했다. 이어 산재 승인 지연 문제로 고통받는 피해자들에 대해서 “저희(근로복지공단)가 과정 관리를 더 잘하도록 하겠다”며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진 못했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