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을 알리는 비가 내렸다. 예고 없이 찾아온 비 때문에 외투와 가방이 젖었다. 우산을 챙겼어야 했나. 달리는 버스에 몸을 싣자 창밖으로 먹구름 가득한 잿빛 하늘이 일렁거렸다. 지난 4일.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최진경 씨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 날이었다.

“故(고) 최진경 님께서 별세하셨음을 삼가 알려드립니다. 가시는 길 깊은 애도와 명복을 빌어주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녀를 처음 만난 지난 8월 말에도 비가 내렸다. 여름의 끝을 알리던 비. 카페에 마주 앉은 그녀는 이따금 창밖을 내다봤다. 그 시선 끝에는 잿빛 하늘이 있었을까. 어쩌면 비바람을 견디며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이파리, 그도 아니면 자유롭게 낙하하는 빗줄기였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8월 29일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최진경 씨와의 첫 인터뷰이자 ‘마지막’ 인터뷰 ⓒ셜록

최 씨는 2000년부터 17년 8개월간 삼성전자에서 반도체·LCD 공정 연구원으로 일했다. 이듬해 퇴사하고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다. 유해물질이 가득한 ‘문제의 작업장’에서 6년간 일했던 그녀는 2019년 산재 신청을 넣었다. 1년만 기다리면 결과가 나오겠지, 2년만 기다리면 나오겠지. 하지만 그렇게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긴 기다림 끝에 받아든 결과조차 ‘불승인’. 최 씨는 그 사이 온몸으로 암세포가 퍼져 말기 암 환자가 됐다.

그녀는 인터뷰할 때도 통증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미간을 찌푸리다가, 고통이 더 심해지면 한 손으로 쇄골 쪽을 누르며 고통을 지우려 했다. 병마와 싸우는 환자를 오래 붙잡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맛집 투어를 좋아한다는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드라이브하며 시원한 공기 맞는 일을, 두 발로 땅을 밟으며 걷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일상을 좋아했다.

“컨디션 조금 회복하시면 그때는 저랑 커피 말고 맛있는 밥 같이 먹어요.”

빈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지키지 못한 약속이 되고 말았다. 그녀와 나눈 마지막 대화. 병마와 싸우고 시간에 쫓기는 이들에게 ‘다음’을 기약하는 건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이미 그녀는 곁에 없었다.

지난 4일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경희대학교의료원 장례식장에서 최 씨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셜록

최 씨를 만나면서 내 마음에는 한 가지 목표가 생겼다. 그녀와 산재 인정 순간의 기쁨을 나누고 싶다는 것이었다. 기자인 내가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최 씨가 기억하는 작업장에는 창문이나 환풍기 하나도 없었다. 그녀는 화학물질이 가득한 작업장에서 덴탈 마스크 한장에 의지한 채 업무를 이어갔다. 그곳에는 안전 교육도, 매뉴얼도 없었다. 최 씨는 “속이 메슥거릴 정도”로 독한 냄새에 업무 중 헛구역질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얼굴에 아토피가 번지면서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기도 했다.

“연구원이 소수라서 그 사례가 잘 안 보이는 것뿐이지, 하는 일이 굉장히 위험하거든요. 실험하다 보면 다양한 화학물질에 노출되잖아요. 또, 그걸 다양한 방식으로 반응을 확인해요. 안전성이 검증됐는지 안 됐는지를 떠나서 일단 실험하는 거예요.”(이종란 노무사 인터뷰 2023. 11. 4.)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한 차례 산재 불승인 판정을 받은 그녀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공단에 재심사를 요청하거나,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것. 지난 9월부터 기자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 그녀에게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으니 결과를 신속하게 받아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보도를 했다. (관련기사: <반도체, 말기암, 불승인… 나는 홀로 ‘마지막’을 준비한다>)

암 환자에게 시간은 곧 생명과 직결된다. 하지만 때로는 나조차 그 사실을 잊었다. 그녀에게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 직시해야 할 현재는 부정하고, 기적이 일어날 미래만 꿈꾸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 보다.

최 씨는 “짧으면 3개월, 길면 6개월 남았다”는 의사의 말 이후에도 2년 넘게 투병 생활을 이어왔다. 나는 그녀의 ‘비범함’이 좋았고, 쉽게 믿어버렸다. 이번에도 분명 그녀는 병마에 맞서 싸워 이겨낼 거라고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시간은 낭만을 비웃으며 잔인하게 흘렀다. 나는 결국 그녀의 부고 메시지를 받고 말았다.

5년간의 투병 끝에 최진경 씨는 유명을 달리했다 ⓒ셜록

빈소에 도착해서야 투병하기 전 건강한 모습의 그녀를 만났다. 사진 속 최 씨는 선글라스를 쓴 채 하늘을 올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영정사진이었다. 생기가 도는 사진 옆에는 사뭇 어울리지 않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故(고) 최진경 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동안 그녀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못할 것 같다고. 나는 아직 그녀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없었다. 이제 그녀는 세상에 없지만 산재 승인을 위한 싸움은 아직 남아 있다. 최 씨가 산재 인정을 받는 날, 나는 그제야 그녀를 떠나보내고 그 이름을 제대로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도 부모님은 잘 모르세요. 친언니한테만 사실대로 말하고, 부모님한테는 간에 전이가 돼서 4기 진단을 받았다고만 이야기했어요. 며칠 전에도 의사 선생님이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며, ‘가족들과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는데…. 암 환자한테는 치료받는 것보다 그게 더 어려운 것 같아요.”(최진경 씨 생전 인터뷰 2023. 8. 29.)

최 씨는 지연되는 산재 인정과 고통스러운 항암치료와 비싼 약값보다도 어려운 것이 있다고 토로한 적 있다. 가족들에게 악화되는 몸 상태를 직접 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려운 말을 삼키던 그녀는 사망하기 1~2주 전에야 부모님께 의사의 말을 전했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그때도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고는 구체적으로 말씀 못 드렸어요. 부모님 속상해하실까 봐. 그래서 엄마는 진경이가 떠난 걸 조금은 받아들이고 계시는 것 같은데, 아버지는 갑작스럽다고 생각하시는지 아직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시는 것 같아요.”(최 씨의 언니 인터뷰 2023. 11. 4.)

최 씨의 어머니는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목발에 의지한 채 사람들을 맞이했다. 그녀에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자, 머지않아 딸을 잃은 부모의 절규가 들렸다. 찢어지는 울음 소리에 사람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훔쳤다. 그녀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나 역시 한참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최진경 씨는 5년의 투병 기간 중 4년을 기다렸다.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승인이란 결과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면서. ⓒ셜록

“첨단전자 산업은 기술이 발전하면서 공정이나 장비가 계속 바뀌잖아요. 과거에 내가 있었던 그 라인(스핀코터)은 지금 존재하지도 않는데, 4년 동안 뭘 조사했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죠.”(최진경 씨 생전 인터뷰 2023. 8. 29.)

역학조사는 근로자의 질병과 작업장의 유해요인 사이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조사다. 최 씨의 역학조사를 실시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2019년 5월 역학조사 의뢰를 받고 아무런 조사를 진행하지 않다가 2023년 2월이 돼서야 역학조사를 시작했다.

주목할 지점은 최 씨가 일했던 라인은 그녀가 퇴사하기 전 사라졌다는 것이다. 당시 현장을 기록한 자료조차 없는 상황에서 ‘사라진 라인’을 조사하는 데 소요된 시간은 단 2개월이었다. 역학조사를 토대로 역학조사평가위원회는 근로자의 질병과 작업장 유해요인 사이의 상관관계가 낮다고 결론 내렸다.

4년간 시작도 하지 않았던 조사. 하지만 조사를 시작하자 결과는 2개월 만에 나왔다. 밀린 숙제를 ‘해치우듯’ 진행된 조사에 대해 “졸속조사”라는 비판도 나왔다(10월 12일 국정감사,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국회의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인터뷰에서 남긴 마지막 그녀의 모습. 장례식장을 나오며 조금 더 일찍 그녀를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늦장 행정’으로 공분을 산 이들은 과연 그녀의 죽음 앞에 어떤 말을 할까 ⓒ셜록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 그 현장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죽기를 바라는 건 아닐까? 문서로도 남아 있지 않는 그곳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리 문제가 있던 곳이라도 ‘문제 없는 작업장’이 될 수 있잖아요.”(고(故) 최진경 씨 인터뷰 2023. 8. 29.)

최진경 씨가 바랐던 소원은 단 하나. 죽기 전 산재 인정을 받는 것이었다. 근로복지공단 자료에 따르면, 질병으로 산재를 신청한 뒤 역학조사 결과를 기다리다 사망한 노동자는 최근 5년간 111명에 달한다.

산재 처리 지연은 오래된 문제다. 고용노동부는 2018년 반도체·디스플레이 종사자에 대한 산재인정 처리절차를 간소화하는 ‘패스트트랙’을 도입했다. 직업성 암(백혈병·다발성경화증·재생불량성빈혈·난소암·뇌종양·악성림프종·유방암·폐암)에 걸린 경우, 동일·유사 공정 종사자에게 동일·유사질환이 발생했다면 역학조사를 생략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당 지침은 최 씨에게 적용되지 못했다. 인정 기준이 협소하기 때문이다.

지난 9월 국회에는 ‘산재국가책임제’로 대표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이는 “역학조사 기간을 180일로 설정하고, 이를 초과하는 경우 피해자에게 일단 보상금을 지급한다”는 ‘선보장제도’를 법제화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지난 9월 최진경 씨와 주고 받은 마지막 문자 메시지. 그녀는 나날이 건강이 악화되는 걸 느끼면서도 끝까지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고 싶어 했다. ⓒ셜록

“산재 인정을 받으면 치료비와 생계비에 보탬이 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제 몸 상태가 당장 하루 앞을 장담하기가 힘듭니다. 꼭 산재법이 개정되어 더는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으면 좋겠습니다.”(10월 12일 국정감사장에서 낭독된 최진경 씨의 마지막 편지 일부)

이종란 노무사는 아픈 몸을 이끌고도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세상을 위한 목소리를 내준 최 씨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어 ‘반도체 노동자의 인권과 건강지킴이 반올림’ 역시 “‘더는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산재인정과 재발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최 씨의 빈소를 방문한 우원식 국회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애통한 심경을 전하고, “이제 故 최진경 님의 질문에 국회가 답할 차례”라고 말했다.

유해물질 가득한 연구실에서 그녀를 지켜줄 ‘우산’은 없었다. 지금도 일하고, 아프고, 병과 싸우는 또 다른 ‘최진경들’의 머리 위에 과연 우산은 있을까. 오늘도 누군가의 머리 위에는 보이지 않는 비가 내린다.

그녀에게 끝내 하고 싶지 않았던 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故) 최진경 씨 약력 및 산재 관련 경과>

1974. 12. 9. 출생
2000. 1. 삼성디스플레이(구 삼성전자) 기흥연구소 연구원 입사. 광소재 개발, LCD 칼라필터 연구원으로 17년 8개월간 근무.
2017. 8. 퇴사
2018. 8. 유방암 진단. 항암치료 시작.
2019. 3.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보상보험(요양급여) 신청
2019. 5. 근로복지공단이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역학조사 의뢰(2023. 1.까지 약 4년간 아무런 조사 없이 지연)
2023. 2. 역학조사 시작(사업장 자료제출요청 및 근로자 면담조사)
2023. 4. 역학조사 2개월 만에 종료. 역학조사평가위원회 심의 후 ‘업무관련성 낮음’ 결론.
2023. 7.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업무상질병판정위 판정결과 ‘불승인’. 현재 불승인에 대한 불복절차(심사) 중.
2023. 10. 국회 국정감사에서 고인의 마지막 편지 대독
2023. 11. 4. 별세(향년 48세)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