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을 징역 4월에 처한다.”
“와!”

법정 안을 가득 채운 인파 사이로 함성이 터졌다. 양육자 박연수(가명) 씨와 양육비해결총연합회(양해연) 활동가들의 목소리였다. 판결이 이어졌다.

“다만, 이 판결 확정일부터 1년간 이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곧바로 탄식이 쏟아졌다. 아쉬움에 판사에게 항의하는 이들, 눈물을 훔치는 이들도 있었다. 집행유예가 아니라 실형이 선고되기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실망감에 고개를 저었다.

송영식(가명, 가운데) 씨가 징역 4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건물을 나서고 있다 ⓒ셜록

8일 수원지법 평택지원 형사4단독(노민식 판사)은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양육비이행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송영식(가명) 씨에게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80시간을 명령했다. 지난달 11일 검찰은 징역 6개월을 구형한 바 있다.(관련기사 : <안에선 “미안” 밖에선 말싸움… ‘배드파더’ 첫 형사재판>)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자백하고 있고, 다른 증거에 대해서도 유죄로 인정된다. 양육비 지급에 관한 화해 권고 결정이 내려진 2017년 이후에 피고인(송영식)이 미지급한 양육비 액수가 상당하다. (…) 양육비 미지급에 관한 피고인의 범행에 관해 도덕적인 비난을 넘어 형사처벌 필요성이 높다.”(2023. 11. 8. 판결 내용 일부)

송 씨와 박 씨는 2003년 결혼해 세 자녀를 낳았다. 하지만 송 씨의 외도로 둘은 이혼 소송을 택했다. 법원은 2017년 1월, 비양육자 송 씨가 자녀 한 명당 30만 원씩, 매월 90만 원을 박 씨에게 지급하도록 판결했다.

송 씨는 법원 판결에도 양육비를 제때 지급하지 않았다. 양육자 박 씨의 주장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3년 10월까지 박 씨가 미지급한 양육비는 4000만 원에 달한다.

양육비 미지급자의 ‘배드파더’를 형사재판 법정에 세우기까지 걸리는 과정 ⓒ셜록

양육자 박 씨는 양육비를 받기 위해 소송을 2019년부터 시작했다. 양육비 이행명령, 감치명령 그리고 형사재판 법정에 송 씨를 세우기까지 흘러간 시간은 약 4년. 송 씨는 지난달 징역 6개월을 구형받고도, 끝내 자녀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법원은 이런 송 씨에게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검찰에서 6개월을 구형했지만, 실형의 처벌을 받을 리 없다는 생각으로 양육비이행법을 무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2023. 11. 7. 양해연 보도자료)

다만 판사는 송 씨에게 경고했다.

“피고인이 양육비 미지급 형사처벌의 영역으로 포함된 이상 다시 이런 사건으로 법원에 오게 됐을 경우 오늘처럼 (판결)될 거라고(집행유예를 받을 거라고)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송 씨가 또 양육비를 주지 않는다 해도, 박 씨는 양육비 이행명령 신청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송 씨를 법정에 세우기까지 걸린 4년의 시간을 또 보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송영식(가명) 씨가 취재진을 피해 법원 주차장으로 뛰어가고 있다. ⓒ셜록

선고가 끝나고, 사람들은 차례로 법정을 나섰다. 박 씨는 붉어진 눈시울로 송 씨를 뒤따랐다. 법원 출입구로 향하는 층계에서 박 씨는 울화통을 터트렸다.

“좋냐, 이제? 집행유예 나오니까 좋냐고!”

송 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법원 출입구 앞에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 뿐이었다. 문 밖에는 방송사 카메라와 취재진이 그를 기다렸다. 송 씨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쏜살같이 주차장으로 내달렸다. 그는 쫓아오는 취재진을 피해 법원 울타리를 뛰어 넘어 사라졌다.

이번 판결에 대해 양육자 박 씨는 검찰에 항소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양육비 이행명령 신청하고, 형사고소(와 재판)까지 온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는데….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더 고통을 받아야만 이 사회에서 (양육비를) 받아줄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비양육자(송 씨) 아까 도망치는 거 보셨죠? 이번 판결이 너무 아쉬워요.”(박연수, 가명)

형사고소를 진행한 양육자 박연수(가명) 씨가 선고 직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셜록

실형 선고를 통해 엄중한 법의 심판이 내려지길 기대했던 이영 양해연 대표는 “양육비이행법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결과가 또 만들어졌다”며 판결에 유감을 표했다.

더 이상 양육비이행법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앞으로 어떻게 양육비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물어본다면 답이 없다. 판사는 똑같은 사건으로 또 형사재판에 서게 된다면 징역에(실형에) 처할 거라고 알렸다. 또 4년 동안 절차를 밟아서 법정에 세워야만 그때 가서 강력한 처벌을 하겠다면, 그게 아이들 생존권을 보호하는 법이 되겠나.”(이영 양해연 대표)

이 대표는 2018년 이전을 떠올렸다. 양육비는 사회적인 문제가 아닌 개인적인 문제라고 여겼던 시절. 2018년부터 양육자들은 단체를 만들어 조직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21년 양육자들은 양육비이행법 개정을 이뤄냈다.

이 대표는 양육비이행법 개정 취지에 맞는 단호한 법 집행으로, ‘양육비 미지급은 범죄’라는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제 법원에도 변화가 필요한 순간이라는 것이다.

“결국 (양육비 해결은) 재판부의 일이다. 그런데 법원에서 이런 식으로 판결해서 다시 과거로 돌아갔다.”(이영 양해연 대표)

지난 8일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앞 양육비해결총연합회 활동가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셜록

한편 검찰은 최근, 양육비 미지급 사건에 대해 약식명령의 가벼운 처벌을 하지 않고 정식재판에 회부하겠다는 원칙을 세운 바 있다. 양해연에 따르면, 일부 양육비 미지급 사건들이 벌금 300만 원, 500만 원 등 약식명령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대검찰청은 지난 6일 “양육비 채무 미이행으로 인한 양육비이행법 위반 사건에 대해 원칙적으로 구공판(정식재판 회부) 하는 내용의 사건처리 기준을 전국 검찰청에서 시행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양육비 미지급 기간, 미지급 액수, 이행 노력 정도를 살펴보고, 고의적인 양육비 미이행이라고 판단되면 ‘양형 가중 요소’로 고려할 방침이다. 양육비를 1회도 지급한 적이 없는 경우, 재산을 보유하고도 고의로 지급하지 않거나 재산을 은닉한 경우 등이 해당된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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