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 판결이 나왔다. 수많은 청년들에게 분노를 안겨준 ‘하나은행 채용비리’ 사건. 23일 법원은 청년들의 쓰린 속을 그나마 달래줄 만한 판단을 내렸다.

“피고인 함영주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한다.”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항소1부(우인성 부장판사)는 23일 업무방해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일부 유죄’를 선고했다. 함 회장은 2022년 3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바 있지만, 이번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2020년 9월 ‘은행권의 정유라 그들은 왜 당당한가’ 프로젝트를 시작해, 지금까지 46편의 기사로 은행권 채용 비리 문제를 보도했다. 그 결과 일부 부정입사자들이 회사를 떠났다.(관련기사 : <8개월 취재, 보도로 부정입사자 23명 정리했습니다>)

23일 서울서부지방법원 앞. 유죄 판결을 받고 법원을 나서는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셜록

함 회장은 2015년 9월부터 2019년 3월까지 하나은행장을 맡은 인물이다. 채용비리 혐의로 항소심 재판이 진행되던 지난해 3월, 그는 하나금융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함 회장은 2015년, 2016년 하나은행 신입사원 공개채용 과정에서, 당초 약 1:1이던 합격자 남녀 성비를 4:1로 맞추라고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또, 일명 ‘SKY 대학’ 출신들에게 특혜를 주라고 지시하는 등 ‘하나은행 채용비리의 정점‘이란 혐의를 받았다. 그의 “잘 살펴보라”는 말 한마디에 학벌과 성별에 따라 면접 점수가 조작됐다.

‘장(長) 리스트’ 보고서가 발견되기도 했다. 함 회장이 은행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장(長) 추천 리스트’를 엑셀 파일로 만들어 채용 추천자들을 관리한 것. 은행장 추천 인물과 임직원 자녀 등이 그 주인공이었다.

23일 채용비리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서부지방법원으로 들어가는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셜록

23일 항소심 재판부는 1심의 무죄 판결을 파기하며, “피고인 함영주는 증거 관계상 2016년 (하반기 신입직원 공개채용 절차) 합숙면접 합격자 선정과 관련해서 특정 지원자의 부정 합격에 개입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관련해서도, “피고인 함영주는 신입 직원의 성별 불균형 선발에도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항소심 재판부는 “부정청탁에 의한 채용이 공적 성격이 강한 은행의 공정한 채용 업무를 방해한다는 것은 분명하다”면서, “이로 인해 정당하게 합격하여야 할 지원자가 탈락했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했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함 회장과 같은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장기용 전 하나은행 부행장은 원심이 유지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벌금 700만 원을 선고받은 하나은행 법인에 대해서도 원심을 유지했다.

함 회장은 이날 법정을 나서며 “(최종심에서) 다시 한 번 판단을 받겠다”고 말했다. 이어 ‘채용비리 피해 당사자들에게 할 말이 없는냐’는 질문에 “최종심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때 말씀드리겠다”며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23일 채용비리 항소심 선고 이후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취재진 앞에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셜록

은행권 채용비리에 연루된 4대 금융지주회사(KB·신한·하나·우리)에서 은행장급이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은 업무방해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은 2020년 2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하지만 법적 다툼 끝에 유죄 판결을 피해간 은행장도 있다. 조용병 당시 신한은행장의 경우 은행 신입행원 공채에서 특정 지원자들에게 불공정 혜택을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지난해 6월 결국 무죄를 확정받았다.

아예 재판에 넘어가지 않은 은행장도 있다. 특정 인물의 부정채용을 지시한 혐의를 받는 윤종규 당시 KB국민은행장(KB금융그룹 회장 겸직)은 채용비리 관련 기소 대상자에서 제외됐다. 국민은행 부정입사자 청탁 메모에 “회장님 각별히 신경”이란 문구도 발견됐지만, 검찰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윤종규 행장을 기소하지 않았다.

반면, 은행권 채용비리에 연루된 인사담당 실무자급의 경우 대부분 유죄를 인정받았다. 오○○ 국민은행 전 인사팀장은 2021년 7월 항소심 재판에서 징역 1년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되기도 했다. 오 전 팀장을 비롯해 국민은행 인사담당자 4명, 신한은행 인사담당자 5명, 하나은행 인사담당자 4명, 우리은행 인사담당자 5명 등 최소 18명이 채용비리 혐의로 유죄를 확정받았다.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채용비리 항소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셜록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2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함 회장에 대한 이번 항소심 판결을 두고 이렇게 지적했다.

“하나은행 채용비리 1심 판결에선 (함영주 당시 행장의 유죄를 증명할) 직접 증거가 없다고 보았는데, 2심에선 여러 가지 정황 등 간접증거를 고려해 유죄라고 판단한 거잖아요. 반면, 인사담당자들은 유죄를 확정받았고요. 그동안 꼬리들이 몸통을 자처해서 (함영주 당시 행장 등) 책임자들의 처벌이 쉽지 않았던 거죠. 하나은행은 함 행장에 대한 유죄 판결이 나온 이상 피해자 구제도 해야 합니다.

취재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사진 주보배 기자 treasure@sherlockpress.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