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기본권이 침해되는 상황에 헌법재판소가 구제해주지 않으면 어떤 정부 기관에 도움을 청할 수 있나….”(용산어린이정원 출입제한 헌법소원 청구인 조안정은 씨)

지난해 일부 시민들이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금지당했다. 이들은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거부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시민들의 청구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렸다. 헌재가 전원재판부에 회부도 하지 않은 채 사전심사에서 각하 결정을 내린 걸 두고 소극적 판단을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안내견 학교에서 찍은 사진을 용산어린이정원 특별전시에서 전시한 모습(위). 위 사진을 도안으로 한 색칠놀이 사진(아래) ⓒ셜록

문제의 발단은 지난해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은희 ‘온전한생태평화공원조성을 위한 용산시민회의(이하 용산시민회의)’ 대표는 개인 페이스북에 대통령 부부 색칠놀이 사진을 게재하며, 대통령실이 주최한 ‘특별전시’를 비판했다. 많은 언론사가 해당 사진을 인용하며, “용산어린이정원에서 아동을 상대로 ‘대통령 우상화 교육’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어쩌면 단순한 해프닝에 그칠 뻔한 논란은 또 다른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른바 용산어린이정원 ‘블랙리스트’ 사건.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취재를 통해 약 30여 명의 시민들이 용산어린이정원에 출입을 금지당한 사실을 밝혀냈다.

출입 제한 대상에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 ‘색칠놀이’ 프로그램을 소셜미디어에 알렸던 김은희  대표와, 그와 함께 용산어린이정원을 출입한 용산 주민 5명,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소속 대학생 20여 명 등이 있다. 심지어 대학생들 중 대다수는 이전에 용산어린이정원을 방문해본 적도 없었다.(관련기사 : <최소 23명 더 있다… 용산어린이정원 ‘블랙리스트’>)

용산어린이정원에 있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 기념식수. 그 뒤로 대통령실이 보인다. ⓒ셜록

용산어린이정원에 대한 관리 및 운영 위탁을 받은 건 한국토지주택공사(LH)다. LH는 ‘출입 제한 조항’ 규정에 따라 이들의 출입을 제한했다고 밝혔다.

“제1항(사전 예약신청) 및 제2항(현장접수에 관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관리기관장은 반환부지 관련기관의 요청이 있을 경우 예약신청 또는 현장접수를 받은 대상자의 출입을 제한할 수 있다” (용산 반환부지 임시개방구간 관람 규정 제5조(관람신청 및 입장) 6항)

이 조항은 특정 인물을 콕 집어 출입을 제한할 수 있는 사실상의 ‘블랙리스트 규정’이다. 특정 행위 혹은 물품 반입을 금지하는 게 아닌, 특정 ‘대상(인물)’의 출입을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 청와대나 궁·능 등 다른 기관의 관람 운영 규정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항이다.

심지어 ‘관련기관’의 요청만으로 개인의 출입을 제한할 수 있는 조항이다. LH는 관련 기관이 어디인지, 또  어떤 사유로 특정 인물의 출입 거부를 요청하는지 등을 밝히지 않고 있다. 명시적인 기준도 없이 사실상 기관의 입맛대로 특정 인물의 출입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해당 조항이 생겨난 것은 지난해 7월. 용산어린이정원이 개장한 지 약 두 달 만에 오직 ‘출입 제한 조항’만을 새롭게 추가하기 위해 규정을 개정했다.

‘블랙리스트’에 올라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제한받고 있는 김은희 대표가 용산어린이정원 개방 중단 문화제에 참석했다 ⓒ셜록

김은희 대표와 김수형 대진연 환경동아리 ‘푸름’ 대표 등 시민 총 19명은 지난해 10월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거부 행위와 출입제한 조항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특정 시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출입제한 조치의 부당성을 밝히겠다는 취지였다.

“청구인들은 피청구인의 이 사건 개방구간 출입거부행위가 청구인들의 헌법상 보장된 일반적 행동자유권, 알권리, 표현의 자유,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고 생각하여, 이를 다투고자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합니다.”(헌법소원심판청구서 청구이유 발췌)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1월 21일, 이들이 제기한 헌법소원심판 청구에 대해 각하를 결정했다. 헌재는 청구가 들어오면 재판관 3명으로 구성되는 지정재판부에서 사전심사를 한다. 사전심사 결과, 청구 요건에 충족하지 않았다고 봤다.

지정재판부(재판장 문형배)는 청구인 중 일부가 행정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걸 두고 “다른 법률에 따른 구제 절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절차를 모두 거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이 사건 출입거부행위는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에 해당한다고 판단된다”면서 “청구인들은 이 사건 출입거부 행위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해야 하고 이러한 절차를 모두 거치지 않은 채 제기된 헌법소원심판청구는 부적합하다“고 보았다.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거부를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은 이미 제기됐다. 지난 10월, 헌법소원을 제기한 시민 19명 중 4명이 대표로 LH를 상대로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거부 무효 확인 행정소송도 제기했다. 김은희 대표와 용산 주민 2명, 김수형 대표가 소송에 참여했다.

이에 대해 헌재는 “(대표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4명을 제외한) 나머지 청구인들은 행정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없다. 그렇다면 청구인들은 다른 법률에 의한 구제절차를 모두 거치지 않고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해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보았다. 청구인들 가운데 행정소송을 이미 제기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섞여 있는 점을 이유 삼아 각하를 결정한 것.

헌법재판소의 “소극적 판단”에 청구인들은 아쉬움을 표했다 ⓒ주용성

하지만 헌재의 이번 판단을 두고 너무 소극적인 판단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김성순 변호사(법무법인 한일)은 “권리구제형 헌법소원은 ‘보충성’을 요건으로 하고 있으나, 보충성의 요건을 완화하거나 예외를 넓게 인정하고 있다는 판례를 고려할 때 이번 헌재의 결정은 소극적인 판단이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보충성’은 법적으로 다른 구제 절차를 모두 거친 후에 청구할 수 있다는 헌법소원 심판청구 요건을 말한다.

반례를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실제 셜록은 ‘법조기자단 개방화 소송’에서 헌법소원심판 청구인으로 나선 경험이 있다. 당시에도 서울고등검찰청과 서울고등법원을 상대로 ‘기자실 사용 및 출입증 신청 거부 취소’를 제기한 행정소송과 함께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때는 지정재판부의 사전심사를 통과했다. 최종 구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보충성 요건은 문제 되지 않았다. 현재 셜록이 제기한 법조기자단 개방화를 위한 헌법소원은 전원재판부에 회부돼 심리 중이다.

헌법소원 청구인 김은희 대표는 헌재의 각하 결정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금지 사건은 시민의 기본권이 침해된 사건입니다. 시간이 지나 여론의 관심에서 사라져서 그런지, (헌재에서) 법적인 판단을 유보하려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을 묻어버리려고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한편으로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헌재가) 어떤 판단도 정치적으로 하나 그런 생각도 듭니다.”

김 대표는 해가 바뀐 1월 11일 현재까지도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거부당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용산어린이정원 개방 중단 문화제에 참여한 한 시민의 피켓. “누구를 위한 어린이정원인가” ⓒ셜록

한편, 헌재는 지난 10월 27일 LH 측에 사실조회를 요청했다. 헌재는 청구인들에 대해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제한한 사실이 있는지와 그 근거 규정에 대해 물었다.

이에 LH는 “관계기관 요청에 따라 시스템만을 제공하였으며, 구체적인 출입제한 현황 등을 파악하고 있지 않는다”는 형식적인 답변을 반복했다. 셜록이 LH 측에 ‘관련 기관’이 어디인지 질의할 때마다 돌아왔던 바로 그 답변이다.

LH는 끝내 밝히지 않았지만, ‘관련 기관’은 스스로 자신의 정체를 실토하기도 했다. 셜록 보도 이후, 대통령경호처는 국회에 출석해 용산어린이정원에 이들에 대한 출입금지 조치를 요청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관련기사 : <대통령경호처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금지, 우리가 요청했다”>)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금지당한 시민 등 총 24명은 지난해 8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기도 했다. 국토부와 LH, 그리고 대통령경호처의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금지 조치로 인해 인권을 침해당했다는 주장. 셜록은 이들을 대리해 진정인으로 나서기도 했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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