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가리고 아웅이 따로 없다. ‘문제’ 사학재단의 이사들을 쫓아내놓고, 그중 한 사람의 부인을 임시이사장에 앉혔다. ‘정상화’라 부를 수도 없을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서울 성북구 우촌초등학교에서 벌어졌다.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에 이은 공익제보자 탄압으로 논란이 된 우촌초.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10월, 우촌초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일광학원 이사 8명을 전부 임시이사로 교체했다. 임시이사장은 한혜빈(71) 서울신학대학교 명예교수다.
옛 재단 이사회가 남긴 폐단을 개선하고 학교 정상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임시이사회. 그런데 임시이사들을 향한 서울시교육청의 검증에는 큰 구멍이 있었다. 바로 한혜빈 임시이사장과 일광학원 전 이사장인 이규태(75) 일광그룹 회장의 ‘각별한’ 인연 때문이다.

한혜빈 임시이사장은 서울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2019년 정년퇴직 했다. 남편인 유석성 교수 역시 서울신학대에서 일하며, 2010년 9월부터 2016년 9월까지 총장을 역임했다.
한혜빈 교수와 남편 유석성 총장이 함께 있던 서울신학대.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은 그곳의 이사였다. 이규태 회장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서울신학대 서기이사를 맡았다.
한혜빈 명예교수의 남편인 유석성 전 총장의 재임기간과도 일부 겹친다. 이규태 회장은 유석성 총장 시절, 2013년 5월 준공된 서울신학대 100주년 기념관 건축분과위원장도 맡았다.
더 직접적인 인연도 있다. 이 회장이 서울신학대 이사 임기를 마친 2012년부터 한혜빈 명예교수는 일광복지재단 이사를 맡았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광복지재단은 일광그룹 산하에 있다. 일광복지재단의 초기 이사장도 이규태 회장이다.
현재 일광복지재단에는 이규태 회장의 부인 A 씨와 큰아들 B 씨도 이사로 등재돼 있다. 한혜빈 명예교수는 ‘일광복지재단’ 이사로 현재까지 약 13년째 이름을 올리고 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한혜빈 명예교수의 남편 유석성 전 총장은 일광학원의 이사였다. 유석성 전 총장은 2021년 5월 일광학원 이사로 취임해 2023년 2월 잠시 사임했고, 5개월 뒤 다시 취임해 지난해 9월 임시이사회 구성 직전까지 이사직에 있었다. 남편이 물러난 학교 이사회에, 부인이 임시이사장으로 온 것이다.
한마디로 이규태-유석성-한혜빈 세 사람은 ▲서울신학대 총장(교수)과 이사로 ▲일광복지재단 전 이사장과 이사로 ▲일광학원 전 이사장과 이사로 단단히 얽혀 있는 관계다.

일광학원이 운영하는 우촌초는 대한민국에서 학비가 가장 비싼 사립초등학교다. 2023년 기준 1년 치 학부모 부담금은 1529만 원.
일광학원에 새로운 임시이사가 선임된 배경에는 이사회 운영 문제가 있었다. 2019년 우촌초 스마트스쿨 비리를 최은석, 이양기, 유현주, 박선유 등 공익제보자들이 서울시교육청에 신고했다. 우촌초와 일광학원 감사 과정에서 일광학원 이사회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은 정황이 발견됐다.
일광학원 이사회는 2006년 11월~2020년 1월 무려 13년 이상 이사회 회의가 실제로 열리지 않았음에도 회의록을 허위 작성했고, 이사가 아닌 사람이 회의록에 대리서명 하는 식으로 방만하게 운영돼왔다.
2020년 8월 서울시교육청은 일광학원 이사회 임원 전체의 취임 승인을 취소했다. 하지만 일광학원이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약 4년간 이사회는 더 유지됐다.
지난해 8월 서울시교육청이 최종 승소했다. 유석성 전 총장을 비롯한 구 이사들은 임원취임 승인이 무효화됐다. 서울시교육청은 이사회의 빈자리를 전부 임시이사들로 채웠다.(관련기사 : <[해결] 우촌초 제보자 복직 꿈 커진다… 재단 ‘최종 패소’>)

약 4년간의 기나긴 소송 끝에 겨우 우촌초 정상화의 키를 잡게 된 것.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은 임시이사 검증에 실패했다. 허무하게도, 일광학원 옛 재단 이사 부인에게 학교 정상화 핵심인 임시이사장 자리를 줬다.
서울시교육청은 “한혜빈 임시이사장이 이규태 회장 측근인 줄 전혀 몰랐다”고 해명했다. 한혜빈 명예교수가 제출한 경력기술서에는 일광복지재단 이력이 빠져 있어 몰랐다는 입장이다.
서울시교육청은 한혜빈 임시이사장과 유석성 전임 이사가 가족이라는 사실도 파악하지 않았다. 일광학원 설립자인 이규태 회장과의 친인척 여부는 검증해야 하지만, 구 이사와의 가족관계는 검증 대상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서울시교육청이 검증하지 못한 건 그것만이 아니다. 한혜빈 명예교수는 애초에 ‘문제사학 정상화’에 적합한 인물로 보기 어렵다. 한혜빈 명예교수 자신도 학사비리에 연루돼 ‘경고’ 조치를 받은 바 있기 때문이다.
한혜빈 명예교수는 2015년경 서울신학대 교수 시절, 대학원에 재학 중인 재단 이사장 조카에게 출석 특혜를 줬다. 이사장 조카가 수업에 오지 않아도 출석 처리를 하고, 장학금까지 지급해 논란이 됐다.

“지금 임명된 임시이사들은 외부 압박을 다 견뎌낼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이소라 서울시의원)
“임시이사를 뽑은 목적을 보면 당연하다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임시이사를 추천받아서 뽑은 겁니다.”(정효영 서울시교육청 교육행정국장)
지난해 11월 15일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행정사무감사에서 나온 이소라 의원(더불어민주당·비례대표)의 질의. 당시 서울시교육청은 일광학원 임시이사들이 선임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으니 지켜봐달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은 임시이사장 자리에 이규태 회장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한혜빈 명예교수를 임명했다.
“과연 교육청이 우촌초 정상화 의지가 있었는지 의구심이 드는 사안입니다. 한혜빈 임시이사장의 자리에 우촌초 문제를 깊이 이해하고 있는 인물을 선임해야 합니다.“(이소라 서울시의원)

서울시교육청은 한혜빈 임시이사장의 거취에 대해 “임시이사 임기 연장 여부에 대해서는 논의할 수 있지만, 해임 사유가 되긴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한 임시이사장이 학교 정상화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고 판단될 때에는 교육청이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 해임안을 건의할 수 있다.
손영실 전 서울시교육청 고문변호사는 “한혜빈 임시이사장이 서울시교육청에 제출한 경력기술서에 고의로 일광복지재단 이력을 누락했다면, 공무집행방해죄로 교육청이 고소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지난 4일 전화로 한혜빈 명예교수의 반론을 들었다. 서울시교육청에 제출한 경력기술서에 일광복지재단 이력을 누락한 이유를 묻자 “다른 복지재단 활동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기자) 얘기를 들으니 (일광복지재단 이력이) 생각났다”고 말했다. 고의로 누락한 게 아니라는 취지다.
이규태 회장과 서울신학대 시절부터 이어진 오랜 인연에 대해서는 “아주 옛날 고릿적 얘기”라며 “개인적인 관계는 없다”고 밝혔다. 일광복지재단에서 함께 이사로 활동하는 이규태 회장의 부인 A 씨와도 “알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관계는 없다”고 말했다.
덧붙여 한혜빈 명예교수는 2월 중순경 일광학원 임시이사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중대결심을 하려고, 그러니까 그냥 복지(관련 일만) 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일광학원 임시이사회에서 손을 떼겠다는 뜻이냐 다시 묻자, “아뇨, 그건 하여튼 뭐 저 나름대로…”라고 확답을 피한 채 전화를 끊었다.
조아영 jjay@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