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4년 3개월 만에 제출한 판사님의 해외연수 결과보고서엔 무슨 내용이 들어 있을까.
규정대로라면 해외연수 이후 3개월 안에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보고서 제출 규정을 어긴 판사들이 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찾아낸, 일명 ‘먹튀판사’다.
셜록은 최근 5년간 해외연수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판사 6명을 찾아냈다. 이들은 길게는 1년 짧게는 9개월간 미국에서 해외연수를 했고, 학비와 체재비(항공료, 생활준비금, 귀국이전비, 의료보험료 등)로 총 1억 4457만 원을 지원받았다. 그동안 급여도 지급됐다.
하지만 단 한 명도 징계를 받지 않았고, 지원금 환수도 일부에게만 이뤄졌다.(관련기사 : <보고서도 안 쓰고 공짜유학… ‘먹튀판사’ 6명 찾았다>)

‘해외연수 보고서 미제출’ 판사 6명 중 2명은, 셜록의 취재가 시작된 뒤 결과보고서를 제출했다. 김○○ 판사는 셜록이 질문한 당일(3월 6일)에, 연○○ 판사는 이틀 후(3월 8일)에 각각 결과보고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① <형사재판절차에서의 피해자 보호 및 형사중재제도의 도입을 중심으로 하는 회복적 사법에 대한 연구>
② <미국 법원의 통번역시스템의 발전과 우리나라 법원에의 적용 가능성에 대한 고찰>
두 판사가 제출한 결과보고서 제목들. 해외연수 종료 후 약 4년 3개월 만에 제출한 보고서의 내용은 뭘까? 하지만 현재로서는 알 수 있는 게 제목밖에 없다. 둘 중 누가 어느 보고서를 썼는지도 알 수 없다. 대법원이 판사 해외연수 결과보고서를 꽁꽁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셜록은 3년 전부터 판사 해외연수 제도를 검증하기 위해 애썼다. 지난 2022년 셜록은 2019년부터 약 4년간의 판사 해외연수 결과보고서 원문을 공개하라며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하지만 대법원 답은 ‘비공개’.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이유를 댔다.
판사들의 해외연수 결과보고서는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다. 대법원은 국회의 자료요청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지난 2020년 김용민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경기남양주시병)의 자료요청에, 대법원은 “선례가 없다”며 제출을 거부했다.
올해 집행된 법원의 ‘국비 해외연수’ 예산은 약 53억 원. 판사 72명과 법원공무원 40명이 대상자로 선정됐다. 한 사람당 평균 4759만 원을 지원받은 꼴이다.

해외연수 결과물을 전부 비공개하는 건 판사들밖에 없다. 일반 공무원들(중앙 정부부처)은 인재개발정보센터를 통해 국외훈련 결과보고서 원본 전체를 공개하고 있다. 지자체 공무원의 경우에도 국외훈련 연구보고서를 기관 홈페이지 등에 게시한다.
같은 법조계에 있는 검사들도 일부 공개하고 있다. 법무연수원은 심사를 거친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원본 일부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우수 논문을 선발해 국외훈련검사 연구논문집을 매년 발간하기도 한다.
판사들은 해외연수 대상자가 누구인지도 공개되지 않는다. 매년 발간하는 ‘검찰연감’을 통해 해외파견 및 장단기 연수 대상 검사 리스트를 공개하는 검찰과도 대조되는 대목이다.
김예찬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이하 정보공개센터) 활동가는 이렇게 지적한다.
“법원이 (법관 해외연수) 정보를 비공개한 이유는 업무기간 중에 공개됐을 경우 인사관리 업무나 어떤 사업이 방해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해외연수가 끝난 것들은 결과보고서를 공개해야 맞는 거죠.
법관 해외연수 자체가 세금으로 가는 제도잖아요. 여기에 따른 의무를 이행했느냐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결과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거죠. 다른 공무원들은 이미 해외연수 결과보고서를 다 공개하고 있는 건데, 법원의 공무원인 판사들만 공개가 안 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환수 규정도 ‘판사들에게만’ 너그럽다. 판사의 경우 해외연수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경우에만 세금을 환수하고 있다. 대법원 ‘법관 및 법원공무원의 해외연수 등에 관한 내규’(제15조 2항)에 의한 것.
일반 공무원들의 경우 더 엄격하다. 일반 공무원들은 국외훈련 후 ▲당초 계획한 학위를 취득하지 못하거나 ▲표절 결과보고서 및 연구논문을 쓸 경우에도 세금을 환수당한다. 공무원 인재개발법 시행령 제39조에 명시된 규정이다.
2019년부터 2025년 현재까지 15명의 중앙행정부처 공무원이 ‘학위미취득’을 사유로 체재비 일부를 반납했다. 셜록이 인사혁신처를 통해 입수한 자료다.
표절 연구논문을 써 세금 환수를 당한 검사들도 있다. 법무부는 국외훈련 연구논문 표절을 사유로 지금까지 검사 6명의 국외훈련비를 환수했다. 셜록이 ‘표절 검사’ 6명을 찾아내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한 결과다.
일반 공무원이나 심지어 검사들에 비해서도 관대한 환수 규정. 법원은 이것조차 뒤늦게 만들었다. 대법원은 2020년 10월 ‘법관 및 법원공무원의 해외연수 등에 관한 내규’를 개정했는데, 이때 해외연수 경비 환수 조항이 추가됐다.
뒤늦게 환수 규정을 만들고선 소급적용도 하지 않는다. 개정된 내규가 시행되는 날(2021년 1월 1일) 이후에 출국하는 대상자부터 환수 규정을 적용한다는 예외 부칙을 달아놨다. 셜록이 찾아낸 ‘먹튀판사’ 6명 중 4명이 환수대상자에서 제외된 건 이 때문이다.
징계에 있어선 더더욱 관대하다. ‘먹튀판사’ 6명 중 아무도 징계를 받지 않았다. 대법원 윤리감사1심의관실은 지난 2월 12일 셜록에게, “최근 5년간 해외연수 결과보고서 미제출을 사유로 한 법관 징계 내역은 없다”고 밝혔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국비 해외연수를 교육훈련이 아니라, ‘포상’으로 여기는 법원 내부 분위기 때문일까?
통계 결과가 이런 의심을 뒷받침한다. 김남국 당시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경기안산단원을)이 2020년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국비 해외연수 판사 861명 중 178명이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약 21%, 다섯 명 중 한 명 꼴이다.
초등학생도 교외체험학습을 하면, 대개 일주일 안에 보고서를 낸다. 그런데 법관이란 사람들이 세금으로 해외연수를 다녀와서, 다섯 명 중 한 명은 보고서도 제출하지 않는다. ‘아이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는 것조차 부끄러울 판이다.
반면, 같은 기간 해외연수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법원공무원은 없었다.
“국민의 세금으로 가는 연수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 연수 보고서가 가지 못한 다른 법관들에게 경험을 공유하고 또 법원에서 사법적인 발전을 위한 토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 연수 보고서는 단순하게 금전적인 세금 낭비를 통제하는 것을 넘어서서 연수를 실제 내실화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고 보입니다.”(2020년 10월 7일 국회 국정감사, 김남국 의원)
셜록이 직접 검증한 최근 5년의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 5년간 국비로 해외연수를 다녀와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법원공무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세금으로 공짜유학을 다녀온 것과 다름없는 ‘먹튀판사’가 6명이나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판사 해외연수 제도는 결과보고서가 공개되지 않아 검증이 어렵다. ‘먹튀판사’가 있어도 너그러운 내규 때문에 세금 환수도 제한적이다. 징계 또한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세 박자가 어우러진 결과, 국비 해외연수 제도는 판사들의 특혜를 넘어 특권이 돼버렸다.
셜록은 그동안 국외훈련 후 표절 논문을 쓴 검사 6명을 찾아내 권익위에 신고했다. 결과는 ‘전원 환수’ 조치. 해외연수 후 결과보고서를 내지 않은 판사들에게도 셜록은 ‘액션’을 준비하고 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