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은 공평무사하고 청렴하여야 하며, 공정성과 청렴성을 의심받을 행동을 하지 아니한다.”
‘법관윤리강령’에 나와 있는 판사의 사명이다. 청렴한 자세를 넘어 애초 의심받을 행동조차 하지 말라는 당부다. 판사의 정직성과 윤리적 행동이 대중의 신뢰를 지키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 대목이다.
하지만 대중의 신뢰를 무너뜨린 걸로 모자라 혈세까지 갉아먹은 ‘먹튀판사’들이 법원에 있다. 월급을 받으면서 세금으로 해외연수비까지 지원받고는, 연수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판사들.
법관윤리강령을 거스르는 행동을 했음에도, 대법원은 이들 ‘먹튀판사’들을 상대로 어떠한 징계도 하지 않았다. 세금 환수 역시 일부만 이뤄졌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먹튀판사’ 문제를 보도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책임 관리·감독 기관인 대법원은 후속조치에 손 놓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셜록이 직접 나섰다.

셜록은 지난 18일, 국비로 해외연수를 다녀와 결과보고서를 기한 내에 제출하지 않은 ‘먹튀판사’ 4명을 부패행위로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에 신고했다. 징계 조치와 해외연수 비용 환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셜록은 지난 1월부터, 최근 5년간 국비로 해외연수를 다녀와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판사들을 추적했다.
대법원은 판사와 법원공무원을 대상으로 ‘국비해외연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지원된 해외연수경비는 총 306억 원. 연평균 51억 원의 세금이 지원되는 사업이다.
2020년부터 2025년까지 국비해외연수를 다녀온 사람은 605명. 셜록은 이 중 결과보고서를 기한 내(3개월)에 제출하지 않은 판사 6명을 찾아냈다. 이들은 법원 내규에 명시된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법관 및 법원공무원의 해외연수 등에 관한 내규’ 제15조 2항)
이들 판사 6명이 각자 약 9개월 이상 미국에 머물면서 쓴 해외연수 경비 총액은 1억 4457만 원이다. 기간 동안 급여도 지급된다.(관련기사 : <보고서도 안 쓰고 공짜유학… ‘먹튀판사’ 6명 찾았다>)

이들 중 강○○ 전 판사는 현재 변호사로 살고 있다. 그의 홈페이지 내 프로필에는 ‘결과보고서도 제출하지 않은’ 해외연수 이력이 버젓이 적혀 있다.
이○○ 판사는 이른바 ‘연양갱 도둑’ 판결의 재판부 중 한 명이다. 군인이 군부대 내 연양갱 도둑 용의자를 의심하지 않고 보내줬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사건이다. 이○○ 판사가 속한 재판부는 징계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정작 이 판사 본인은 해외연수 결과보고서를 내지 않은 사유로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았다.
셜록의 취재가 시작되자, 뒤늦게 결과보고서를 제출한 판사도 있다. 김○○, 연○○ 판사는 지난달 각각 결과보고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이들이 해외연수를 다녀온 지 무려 4년 3개월 만이었다.
‘법관 및 법원공무원의 해외연수 등에 관한 내규’ 제15조 4항에 따르면, 결과보고서를 기한 내에 제출하지 않은 국비해외연수자는 연수에 소요된 경비를 규정에 따라 반납하여야 한다.
법원의 환수 규정은 일반 공무원 비해 상대적으로 관대하다. 일반 공무원들은 국외훈련 후 ▲당초 계획한 학위를 취득하지 못하거나 ▲표절 결과보고서 및 연구논문을 쓸 경우에도 세금을 환수당한다. 공무원 인재개발법 시행령 제39조에 명시된 규정이다. 검사들도 이 법을 적용받는다.
이렇게 너그러운 규정에도, ‘먹튀판사’ 6명 중 2명만 해외연수 비용 일부를 환수당했다. 나머지 판사 4명은 한 푼도 환수당하지 않았다. 2020년 뒤늦게 만들어진 환수 규정이 소급적용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셜록은 환수조치를 당하지 않은 판사 4명을 ‘부패행위’로 권익위에 신고했다.
여기서 부패행위는 공공기관의 예산집행 등에서 공공기관에 재산상 손해를 가하는 행위(부패방지권익위법 제2조 제4호 나목)를 말한다. 결과보고서 제출 의무는 해외연수의 성과를 검증하는 유일한 장치다. 세금으로 ‘공짜유학’을 다녀와 놓고선 결과보고서 제출 의무를 다하지 않는 건, 법원이란 공공기관에 재산상 손해를 미치는 행위다.
앞서 셜록은 ‘최초’의 사례를 만들어낸 바 있다. 일명 ‘표절 검사’들을 상대로 국외훈련비 환수를 이뤄낸 것.(관련기사 : <[해결] 표절 검사 5명 훈련비 환수… 셜록이 만든 ‘최초’>) 셜록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세금으로 국외훈련을 다녀와 표절 논문을 쓴 ‘표절검사’ 6명을 찾아내 권익위에 신고했다. 결과는 ‘전원 환수’ 조치.
셜록은 ‘먹튀판사’들을 상대로 또 한 번의 ‘최초’를 만들고자 한다.
과거 초대 대법원장(1948~1957) 김병로는 법관의 막중한 사명감을 이렇게 강조했다. 양심을 저버린 ‘먹튀판사’들에게, 이성을 외면한 대법원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법관은 양심과 이성을 생명처럼 알아야 한다. 법관으로서의 본분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될 땐 사법부를 용감히 떠나라.”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