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교수 엄마 덕에 ‘가짜스펙’을 쌓아 고려대학교에 입학한 딸의 이야기를 보도한 날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기자님의 고대 입학비리 관련 오늘 자 기사를 읽고 혹시 기자님이라면 이 문제를 다뤄주실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용기 내어 연락드렸습니다. 제가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인데, ○○대 A 교수도 거의 유사한 방법으로 자녀 논문을 만든 사실에 대한 제보를 하고자 합니다.“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진 유명 교수 A의 미성년 자녀 부정논문 의혹 제보 메일이었다.
바로 다음 날, 연이어 또 다른 제보 메일이 도착했다. 이번엔 한 국립대 교수 B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B 교수가 동료 교수에게 부탁해 본인의 자녀들을 SCI급 논문에 공저자로 넣어줬다는 의혹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미성년 자녀 부정논문’ 제보들. 셜록이 보도한 ‘가짜 고대생’ 사건처럼, 부모찬스로 부정논문에 이름을 올리고 그걸로 손쉽게 학벌을 얻은 학생들이 얼마나 더 있는 걸까.(관련기사 : <교수 엄마 덕에 ‘가짜스펙’… 고려대, 입학취소 안했다>)

교육부는 2022년 4월 ‘고등학생 이하 미성년 공저자 연구물 검증결과’를 발표했다. 미성년자가 공저자로 등재된 연구물 1033건을 조사한 결과, 그중 96건에서 미성년자가 부당하게 저자로 등재됐음을 확인됐다는 것. 약 9%만 부정논문으로 인정됐다. 하지만 셜록에 도착한 두 건의 제보 사례는, 교육부가 확인한 ‘미성년 부당 공저자’ 사례에 포함되지 않았다.
알고 싶었다. 두 논문의 내용은 무엇이고, 저자는 누구인지. 왜 교육부에서 검증한 미성년 부당 공저자 사례에 해당되지 않는지. 직접 논문을 보고 판단해보고 싶었다.
셜록은 지난해 11월, 과거 교육부가 검증한 ‘미성년 공저자’ 논문 1033건의 제목을 정보공개 청구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공개를 거부했다.
“귀하께서 청구하신 자료는 감사 및 인사 관련 사항으로서,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가 포함되어 있어 (…) 비공개 처리함을 알려드립니다.”

기본적으로 논문은 ‘기밀’ 자료가 아니다. 누구나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보고, 도서관에서 열람할 수도 있다. 교육부는 “감사 및 인사 관련 사항”이라 주장했지만, 교육부의 미성년 공저자 연구물 검증은 3년 전인 2022년에 이미 끝났다. 논문 제목이 공개된다고 할지라도, 교육부의 “감사 및 인사” 업무에 이제 와서 지장을 줄 리는 만무하다.
더욱이 미성년 공저자 연구물 중 국가나 공공의 예산이 투입된 연구가 있을 수 있다. 미성년 부당 공저자가 확인된 논문 중에서, 저자로 함께 등재된 교원은 69명이었다. 그들 중 약 65%인 45명은 ‘국가연구개발사업’으로 해당 연구를 진행했다. 교사가 국민 세금을 활용해 제자들의 ‘스펙 쌓기’를 도와준 셈이다.
65%라는 비율을 미성년 공저자 연구물 1033건 전체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공공의 지원을 받아서 진행된 연구가 상당수 포함될 것으로 짐작되지만 정확한 수를 가늠할 순 없다. 교육부가 논문 정보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가 세금으로 지원한 연구개발 사업의 결과물은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원칙이다.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은 세금이 투입된 연구물의 경우 투명한 공개를 원칙으로 못 박았다. 국가안보 등 기밀 수준의 연구개발과제를 제외하곤 말이다.
결국 교육부의 미성년 공저자 논문 정보 비공개 결정은, 교육부의 검증 결과는 검증받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교육부의 검증 결과를 의심하지 말고, 국민은 더 알려 하지 말라는 뜻. 하지만 이런 태도야말로 교육부의 검증 결과에 대한 의심을 더 키울 뿐이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2022년 ‘유나와 예지 이야기’ 프로젝트를 보도했다. ‘부모찬스’를 활용해 만든 논문을 대학 입시에 부정하게 사용한 학생들을 추적했다.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수는 한 연구논문에 고등학생 딸과 친구 이름을 부당하게 넣었다.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연구비 1억7200만 원을 받아 진행된 연구였다.(관련기사 : <‘의사쌤‘ 유나와 예지의 말할 수 없는 비밀>)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교수는 연구논문 두 편에 자기 딸 이름을 올렸다. 교육과학기술부와 교육부의 사업 과제로 각각 연구비 6000만 원을 지원받아 진행한 연구였다.(관련기사 : <‘대한민국 인재’의 논문 부정.. 서울대 교수 셋 연루>)
정치권에서도 미성년 자녀 논문 문제는 뜨거운 감자였다. 한 정치인의 자녀는 고등학생 시절 ‘아빠찬스’를 이용해 논문의 공저자로 등재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논문이 자녀의 대학 입시 자료로 활용했다가, 결국 입학이 취소되기도 했다. 또 다른 정치인의 고등학생 자녀도 ‘아빠찬스’를 이용해 여러 편의 논문과 영어 전자책을 작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비슷한 사례가 수도 없이 쌓이면서, 현재는 입시 제도 자체가 바뀌었다. 교육부는 미성년자가 공저자로 등재된 논문을 대입 스펙으로 활용하는 제도를 2017년부터 지속적으로 축소해왔다. 교육부는 2022년 이후로는 학생부와 자기소개서에 학생들의 소논문을 기재하는 걸 전면 금지시켰다.

교육부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게 두려운 걸까? 어쩌면 지금까지 드러난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지 모른다. 교육부가 공개하지 않은 미성년 공저자 연구물엔 얼마나 더 많은 문제가 숨어 있을지 현재로선 그 누구도 짐작하기 어렵다.
하지만 교육부는 미성년 공저자 논문의 제목조차 알려줄 수 없다고 비공개 처분을 내린 것. 셜록은 지난 1월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똑같은 사유를 들며 비공개 처분을 반복했다.
결국 셜록은 지난 16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교육부의 정보 비공개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내용의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중앙행정심판위원회를 운영한다.
누군가 부정논문을 입시자료로 활용해 대학에 입학했다는 건, 반대로 누군가는 열심히 노력하고도 억울하게 탈락했다는 의미다. 미성년 공저자들의 부정논문은 지금도 여전히 어느 학술지에 실려 있거나 도서관에 꽂혀 있을 것이다.
알아야 바로잡을 수 있다. 누가 어떤 논문을 썼고, 어떻게 대학에 갔으며,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현재 그들의 행복은, 과거 부정논문과 입시부정에 뿌리를 두고 있는 ‘불의의 열매’는 아닌지.
셜록은 행정심판을 통해 미성년 부정논문과 그 논문에 실린 이름들을 추적할 예정이다.
한편, 셜록은 지난 2022년에도 ‘미성년 공저자 연구 부정논문’을 알려달라고 교육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관련기사 : <부정 논문 공개는 “개인사생활 침해”라는 교육부>) 하지만 교육부는 당시에도 사생활 침해 등을 이유로 들며 정보를 비공개 처리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