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영(가명) 씨는 5년차 변호사이자 한 아이의 엄마다. 이제 겨우 첫돌을 지난 아이 곁에는 늘 보호자가 필요하다. 다행히 홍 씨의 엄마가 먼저 손을 거들고 나섰다.
지난 14일 첫 인터뷰. 그때도 출근 전 아이를 엄마에게 맡기고 오는 길이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시작되는 ‘육아전쟁’. 엄마가 없었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홍 씨는 그런 엄마를 오랫동안 증오했다. 심지어 6년간 아예 얼굴을 보지도 않았다.
“저는 스물일곱 살까지 엄마를 철저히 미워했어요. (부모님이) 이혼하기 전부터 아빠가 엄마를 따돌렸거든요.”

홍 씨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부모님은 서류상 이혼했다. 두 사람의 성향은 정반대였다. 권위적이고 언변이 뛰어난 아빠, 차분하지만 폭력 앞에 무기력한 엄마.
폭력에 못 이겨 엄마가 집을 나간 날들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자녀들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너희 엄마가 무식해서 뭘 잘 몰라.”
그가 내세울 수 있는 건 단 하나. ‘대학교 졸업’이라는 완장이었다. 아빠는 학력 수준을 들어 엄마를 비하했다. 엄마가 옆에서 버젓이 듣고 있을 때도 모진 말을 쏟아냈다.
“엄마가 너희 버린 거야.”
“엄마 따라가면 인생 망한다.”
“나(아빠)만큼 너희 생각하는 사람 없어.”
처음에는 엄마에 대한 연민도 있었다. 그러나 어린 홍 씨에게 엄마의 침묵은 곧 실망으로 이어졌다. 폭력에 맞서지도, ‘자식을 버렸다는 말’에 항변하지도 못하는 엄마.
직접 애정을 확인하고 싶었던 날도 있었다. 도영 씨는 용기 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진짜 우리 버리려고 한 거 아니지?”
“네가 지금은 잘 몰라도 크면 엄마를 이해하게 될 거야.”
모호한 답변이었다. 엄마는 ‘큰 딸의 마음보다 본인이 우선인 사람’ 같았다. 부모라기엔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아빠의 폭력성은 분명히 보였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를 따르지 않으면 내 인생이 큰일 날 것 같더라고요.”
홍 씨에게 아빠는 폭력의 가해자인 동시에 불쌍한 존재였다. 그의 폭력을 비판하려고 하면, 오히려 죄책감이 밀려왔다. 결국 그는 이렇게 믿었다. ‘내가 좋은 딸이 되면 아빠의 폭력성도 사라지고 우리가 행복해질 것’이라고. 물론 그 ‘우리’는 엄마가 빠진 아빠와 홍 씨 그리고 두 동생, 네 식구만을 의미했다.
그 마음으로 홍 씨는 아빠의 기대에 부응해 열심히 공부했고, 서울의 한 대학 법학과에 진학했다.
엄마와 완전히 접촉이 끊긴 건 대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서류상으로 이혼은 했어도 함께 살던 엄마가 아빠와 완전히 갈라섰다. 홍 씨는 놀라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는 이미 ‘나쁜 사람’으로 자리 잡혀 있었으니까.
다만 경제적 부담은 커졌다. 그동안 꾸준히 경제활동을 했던 건 엄마였기 때문이다. 아빠는 IMF 이후로 오랫동안 재기하지 못했다. 대신 그는 일용직을 전전하며 불안정한 가계를 유지했다. 도영 씨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이들 교육비나 병원비 등 목돈이 필요하면 엄마에게 빌리기도 했다. 그러나 자녀들이 엄마와 접촉하는 것만큼은 반대했다.
“동생이 엄마 만나는 걸 눈치채면, 저를 불러서 이런 얘기를 했어요. ‘내 말은 안 들어도 네 말은 들으니까 (네가 동생한테) 엄마랑 만나지 말라고 해라, 연락하지 말라고 해라.’”
장시간 아빠로부터 ‘엄마에 대한 증오’를 배웠지만, 동생들의 의지까지 꺾을 수는 없었다. 대신 아빠가 눈치챈 것 같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삶의 균열은 예상보다 사소한 순간에 찾아왔다. 그날도 아빠는 별거 아닌 일에 분노했고, 어김없이 말했다.
“내 집에서 나가!”
당시 과외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던 홍 씨는 결심했다. 나가서 살 수 있겠다고. 그로부터 한 달 만에 집을 나왔다.
가장 큰 건 아빠를 향한 죄책감이었다. 아빠의 기대를 저버린 자신이 잘못한 것 같았다. 그때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알게 됐다. 아빠한테 정서적으로 밀착됐던 상태가 정상은 아니라는 걸.
몇 달 뒤, 집에 짐을 챙기러 가던 길. 거리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엄마?”
불러 세우니 화들짝 놀라며 돌아서는 중년 여자. 주름이 늘어난 엄마였다. 6년 만이었다. 엄마는 도영 씨를 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엄마가 우는 건 처음 봤거든요. 자기 감정 표현을 잘 안 하시던 분이거든요. 그때 그냥 마음이 확 풀렸어요. 몇 년 동안 안 봤는데도 제 안에 보고 싶은 마음이 되게 컸고,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고 표현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엄청 컸나 봐요.”
어른이 돼도 부모 앞에서는 여전히 아이였다. 그들의 애정과 관심이 필요하고, 보호 아래 자라고 싶어 하는 아이.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 마음의 벽이 무너졌다.

홍도영 씨는 부모님의 이혼 과정에서 한쪽 부모를 완전히 만나지 못했다. 아이에게도 비양육자를 만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다만 “그때는 엄마를 만나게 해줬더라도 안 만나고 싶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때 저는 아빠한테 정서적으로 기울어져 있어요. 엄마에게 증오, 적개심이 있는 상태에서 만난다면 당연히 (만남을) 거부하겠죠. 아이의 심리 상태에 따라 점진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봐요.”
홍 씨는 비양육자를 거부하는 자녀에 대한 “섬세한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녀를 거부하던 부모와 바로 만나는 게 아니라, 심리상담이 동반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비양육자에 대한 심리상담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가 계속해서 거부하는 상황에서 ‘저건 아이의 진심이 아닐 수 있다’고 조언해줄 조력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부모님의 이혼과 더불어 ‘부모 따돌림’을 경험했다. ‘부모 따돌림’이란 ‘이혼 과정에서 한쪽 부모가 자녀를 조종해 다른 부모에게 등을 돌리게끔 하고, 자녀 역시 그 부모를 적대시하며 거부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부모 따돌림’ 같은 경우는 어쨌든 한쪽을 배척하게 만들어요. 그 사람이 실제로 아이를 안 보고 싶어 하는 게 아닌데,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닌데, 그렇다고 믿게 만듦으로써 결국엔 아이의 마음에 큰 구멍 하나를 남기는 거죠. 저도 오래도록 심리상담을 받았어요. 결핍, 죄책감 같은 것들이 남아 있었죠.”
홍도영 씨는 아빠가 엄마를 향해 폭력과 폭언을 쏟아내는 환경에서 자랐다. 특히 이혼 후에는 엄마와의 접촉도 완전히 끊겨버렸다. 그는 자연스레 아버지의 생각에 감응하고, 엄마를 “나와 동생들을 버린 무책임한 사람”이라며 증오했다.
그는 ‘부모 따돌림’이 교묘하게 이뤄지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홍 씨 역시 “아버지의 폭력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언변이 좋고, 자기 표현을 잘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동화됐다”고 덧붙였다.
5년차 변호사인 그는 수많은 이혼소송을 대리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상처받을 ‘피해자’인 아이들. 하지만 그들이 가장 소외돼 있는 모습을 보면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기분이었다. 그럴 때면 채 아물지 않은 마음의 상처가 다시 욱씬대곤 한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보도한 ‘5초 만남’ 조현주(가명) 씨 사건도 홍도영 씨가 수임한 적 있다. 이혼 9년 차인 조 씨는 아이를 만나러 한 달에 두 번 대전으로 향한다. 하지만 아이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엄마랑 할 말 없어” 하고 돌아서는 아이. 그렇게 딸의 뒷모습만 바라본 지도 벌써 3년째다.(관련기사 : <안을 수 없는 딸… 500시간 기다려 ‘5초’ 만납니다>)
홍도영 씨는 초년 변호사 시절, 조 씨 사건을 맡았다. 엄마를 거부하는 아이. 그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 알았다. 나도 ‘부모 따돌림’의 피해자였다는 걸.
“아동의 의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것 같아요. 한쪽은 아동도 독립적인 주체다, 그러니까 이들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된다고 이야기해요. 반면 다른 쪽은 보호해야 될 대상이고, 어른들이 적극적으로 의사결정해야 된다고 하는데, 저는 그 중간 어디라고 생각하거든요.”
법은 아이러니하다. 어떤 경우에는 아이의 말이 절대적이고, 어떤 경우에는 신빙성 없는 증언이 되곤 한다.
홍 씨가 지적한 법의 한계는 ‘유아인도의 강제집행절차’에 있었다. 재판부가 아동을 인도하라는 판결을 내렸더라도 아이가 거부 의사를 밝히면 집행관이 아이를 인도할 수 없었다. 홍 씨는 아이의 “‘싫어’ 한마디가 진심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 역시 한때 엄마를 거부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최근 대법원은 이와 관련해 22년 만에 예규를 개정하기도 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지난 1월 재판부가 유아인도 판단을 내리면 아이가 거부 의사를 비쳐도 반드시 인도하도록 개정하고, 2월부터 적용하고 있다.
“이행명령은 보통 7일 내로 아이를 돌려주라는 것인데, 안 돌려줘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납니다.”
그리고 여기, 지난 5년간 ‘아이를 만나게 하라’는 법원의 결정을 13번이나 이끌어내고도 지금까지 아이를 만나지 못하고 있는 아빠가 있다. 그 아빠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