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생일날. 미국 워싱턴주에 사는 성재혁(44) 씨가 카메라 전원을 켰다. 그는 오랜만에 아이 이름을 불렀다.

“준이야, 안녕. 아빠야.”

한국 시간으로 3월 31일 자정이 되는 순간이었다. 멀리 떨어져 생일을 축하한 지도 벌써 6년. 비록 아이와 오랜 시간 만나지 못했지만, 생일을 가장 먼저 축하해주는 아빠가 되고 싶었다. 3살에 한국으로 갔던 아이는 벌써 9살이 됐다.

성재혁 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그리움을 전했다. 2019년 11월부터 업로드한 영상이 263개에 달한다. 그동안 “아이를 아빠에게 인도해야 한다”는 법원의 결정도 13번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아이는 돌아오지 못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달 12일 미국에 있는 성재혁 씨와 화상미팅을 진행했다 ⓒ셜록

아이와 완전히 차단된 건 이혼 소송 중이던 2019년 6월이었다. 전처는 아이와 함께 한국에 다녀오고 싶다고 말했다.

성재혁 씨는 꺼림칙하긴 했지만 동의했다. 부부 간 약속한 양육 중재합의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상대의 동의 없이 아이를 워싱턴주 밖으로 이동시키거나 여행 계획과 달리 워싱턴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은 중대한 위반에 해당한다”고 명시돼 있었다. 

“변호사 말로는 “이런 확인서를 쓰고 나가면 큰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만약 아이를 데려오지 않으면 소송을 해야 할 수는 있지만, 아이를 다시 못 만나게 되진 않을 거라고 해서 동의를 한 거거든요.”

약속한 3주가 지나도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소송을 담당하던 변호사에게 이메일이 한 통 날아왔다.

“‘지금은 여권 문제로 한국을 나갈 수 없다. 그러니 준이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내용의 통보를 받았죠.”

아이와 함께 보낸 평범한 일상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성재혁

성재혁 씨는 서울가정법원에 아동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헤이그 아동탈취협약에 따른 청구였다. 법원은 전처 조 씨가 아이를 미국에서 한국으로 데려온 행위를 “국제적 아동탈취”로 판단하고, 2019년 12월 아이를 성 씨에게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아이를 반년 만에 만날 수도 있겠다 했죠.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더라고요.”

판결은 내려졌지만 아이는 돌아오지 못했다. 전처는 항소장을 제출했고, 성 씨는 또다시 법정에 서야 했다. 그때부터 준이를 만나기 위한 아빠의 사투가 시작됐다.

법원은 번번이 성재혁 씨의 손을 들어줬다. 아이를 인도하지 않는 전처에게 과태료가 부과됐다. 적게는 400만 원에서 많게는 800만 원까지 징수했다. 심지어 30일 감치 명령도 떨어졌다.

“13번 ‘준이를 인도하라’는 판결이 나왔고, 아이 엄마는 감치도 됐어요. 그런데도 아이는 못 봐요.”

법원의 결정은 ‘종잇조각’에 불과했다. 판결 확정 후에도 ‘집행문’을 받아야 하고, 집행관이 직접 현장에 나가 ‘강제집행’을 해야 한다. 다만 집행관이 방문한 현장에서 아이가 “가기 싫어요” 하는 순간, 앞선 판결이 무용지물이 된다. 집행관은 “아이가 싫다고 합니다” 하면서 ‘집행불능’으로 결론 내린다.

그러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법원에 아이를 돌려받게 해달라는 소송을 또 한 번 시작해야 한다.

성재혁 씨가 6년간 해온 싸움이 이런 식이었다. 아이와 만나지 못한 시간 동안 오해가 쌓이진 않았을까 걱정됐다. 속절없이 흘러간 시간이 야속했다.

성재혁 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준이와 함께 갔던 장소를 방문하는 영상들을 올렸다 ⓒ성재혁 유튜브 캡처

그는 2022년 12월 31일 아이를 만나기 위해 한국으로 입국했다. 새해를 앞둔 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들의 아파트를 찾아가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전처와 그 가족들에게 연락을 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대신 경찰이 그를 붙잡았다.

“누가 인상착의 보고 신고를 했는데, 길 가는 분 중에 수배자가 있다고 해서요.”

강력범죄를 저지른 지명수배자도 아닌데, 누가 이 사람을 알아보고 신고했을까. 경찰은 그가 “감금, 정보통신망상의 명예훼손, 사문서위조 혐의를 받아 수배 중에 있다”고 말했다. 경찰이 말한 범죄들은 전처가 성 씨를 고소한 사건들이었다.

그는 인근 경찰서로 임의동행 했다. 성재혁 씨는 미국에 있어 소환조사를 받지 못한 사정 등을 설명하고, 고소 건에 대한 출석을 약속한 뒤에야 경찰서를 나올 수 있었다.

결국 성 씨는 준이를 만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서울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당황한 전처와 그 가족들, 그리고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 준이가 있었다. 정말 우연히 일어난 일이었다.

“준아, 아빠야. 너무 오랜만에 본다, 그렇지?”

아이와 헤어진 지 3년 만이었다. 그가 한 발 다가가니 아이는 한 발짝 물러섰다. 입을 굳게 닫고 눈만 맞추는 아이. 아빠 품 안에 안겨서 떨어질 줄 모르던 준이는 훌쩍 자라 있었다.

부자의 우연한 상봉은 30초도 되지 않아 끝났다. 전처와 그 가족들이 아이를 데리고 가버렸다. 뒤를 쫓자 아이 엄마는 “무서워요” 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등 떠밀려 가는 동안에도 아이는 뒤돌아서 저를 봤어요. 계속 눈이 마주쳤거든요. 아이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지, 무슨 감정을 느꼈을지가 궁금하더라고요. 한동안 그 기차에서 준이를 만나는 꿈을 꿨어요.”

성재혁 씨는 전처가 주장하는 것처럼 “정말 아이가 아빠를 무서워한다”면 그런 반응을 보이진 않았을 거라고 주장한다.

집행관이 준이의 학교에 찾아갔던 날을 재연한 단편영화 ‘Do you remember dad’ 중 ⓒ성재혁

특히 집행관이 학교로 찾아갔던 날을 떠올리며 확신했다. 집행관들과 아동심리전문가는 2023년 7월 아이의 학교에 찾아갔다. 아이를 성재혁 씨에게 인도하기 위해서였다.

아이는 전처와 그 가족 사이에서 멍하니 책상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학교에 방문한 아동심리전문가, 송미강 지인정신분석상담연구소 소장이 넌지시 물었다.

“준아, 어릴 때 아빠랑 찍었던 영상 한번 볼래?”

그러자 아이는 고개를 들어 눈을 맞췄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제 인생도 제 인생이지만, 준이에게도 하나뿐인 인생이고, 하나뿐인 어린시절인데, 어떻게 보면 정상적인 양육 환경을 빼앗기고 아빠가 없는 상태에서 자라도록 한 게 당사자 인생에서는 정말 큰일이거든요.

국제적 아동탈취 사건의 피해자가 된 부모는 성재혁 씨뿐만이 아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2일(현지시간) ‘2025년 국제 아동 탈취에 관한 연례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한국을 포함한 15개국이 ‘아동 탈취국’이라는 오명을 썼다.

미국에서 준이는 지금도 실종 아동으로 분류돼 미국 실종학대아동방지센터(NCMEC) 사이트에 사진과 이름이 등록돼 있다 ⓒNCMEC 사이트 캡처

국제아동납치 민간부문에 관한 헤이그 협약(이하 ‘헤이그협약’)은 불법 탈취된 아동의 신속한 반환과 면접교섭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협약이다. 대한민국은 2012년 12월 헤이그협약에 가입해 이듬해 법률을 발효해 협약에 따르고 있다. 이에 따라 부모 중 한 명이 정당한 사유 없이 다른 나라로 16세 미만의 자녀를 빼앗아 가면 원래 국가로 아동을 돌려줘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올해까지 4년 연속 ‘헤이그 협약 미이행 국가’로 선정됐다. 보고서 내용에는 “납치 아동의 반환 요청 중 44%가 12개월 이상 해결되지 않았다”며, “평균적으로 사건들이 2년 6개월 동안 해결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특히 집행 과정에서 “부모가 자발적으로 반환 명령에 따르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사법적 결정이 일반적으로 집행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다.

아동 반환이 이루어진 사례로는 미국인 존 시치(55) 씨가 있다. 그는 지난해 5월 자녀들을 되찾았다. 헤어진 지 4년 5개월 만이었다. 그는 한국에 체류하며 장기간 러닝머신 위에서 시위를 이어갔고, 사람들은 그의 사연에 귀를 기울였다.

“존 시치 씨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예외적인 경우죠. 집행관, 법원의 해결 의지가 다 뭉쳐져서 아이들이 돌아왔던 거예요. 금전적으로도 정말 많은 돈이 들었을 거고요. 4년 정도 한국에서 살면서 일자리도 구하지 않고 시위를 했잖아요. 그게 일반인한테는 쉽지 않은 일이에요.

미국에서 치과의사로 일하는 성재혁 씨는 ‘평범한’ 아빠다. 한국에 장기 체류하거나 생계를 접고 싸움을 이어갈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다. 그는 지난 6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며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사법기관에 대한 불신이었다. ‘허울뿐인 법’에 부자의 운명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성 씨가 제작한 단편영화는 한국, 미국, 유럽 등 세계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성재혁

그는 자신과 아이의 이야기를 직접 단편영화로 만들었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영화에는 그가 지난 6년간 분투한 시간이 녹아 있다.(관련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aWe_clYtPJ4)

나중에 준이가 커서 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영화를 보고 저를 떠올릴 수도 있잖아요. 아빠는 늘 준이를 보고 싶어 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아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요.”

아이의 기억 속에 아빠로 남기 위한 그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제가 준이를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대한민국도 아이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