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0억 원.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이 2012년부터 2024년까지 약 12년 동안 국외학술연수 예산으로 집행한 돈이다. 해외연수 혜택을 누린 건보공단 직원은 총 124명이다.
이렇게 많은 건보공단 예산을 들여 ‘공짜유학’을 보내지만, 이중에는 표절이 의심되는 ‘엉터리’ 결과보고서를 낸 직원들이 있다. 그런데도 건보공단은 이들을 상대로 연수 비용을 환수하기는커녕, 일부를 승진 대상에도 올렸다.
건보공단은 보건복지부 산하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이다. 학자금부터 항공료와 체재비까지 모두 공단 재정으로 지원되는 국외학술연수 제도. 연수를 받은 건보공단 직원들은 결과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그 가운데 표절이 의심되는 부정·부실 결과보고서 4건을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확인했다.
최대 표절률은 61%. 해당 결과보고서를 쓰는 데 연수 비용 약 6500만 원이 지원됐다. 하지만 9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도록 건보공단은 연수 비용을 환수하지 않고 있다.

셜록은 2012년부터 2019년 사이 제출된 건보공단 국외학술연수 결과보고서 78건을 입수해 표절 여부를 일일이 살펴봤다.
표절 심의 사이트 ‘카피킬러’로 검증한 결과, 4개의 표절 의심 결과보고서를 확인했다. 카피킬러 검증 기준, 집계된 표절률은 각각 61%(정○○), 32%(박○○), 32%(백○○), 29%(신○○). 통상 학위논문의 경우 ‘표절률 20% 이상’은 연구윤리 위반으로 인식된다.
셜록은 이중 가장 높은 표절률 61%로 집계된 국외학술연수 결과보고서를 직접 한 문장 한 문장 비교하며 검증했다. 건보공단 인천경기본부 소속 정○○ 과장이 작성한 결과보고서다.
정 과장은 2015년 8월 10일부터 2016년 9월 8일까지 약 1년간 호주 멜버른대학교로 국외학술연수(직무과정)를 다녀왔다. 이후 2016년 9월 결과보고서 <비만관리 및 호주 비만 정책 사례 연구>를 제출했다.
정 과장이 작성한 결과보고서는 주요하게 세 가지 저작물을 베낀 걸로 의심된다. ▲대학비만학회가 2012년 발간한 <비만치료지침> ▲보건복지가족부(현 보건복지부)가 2009년 발간한 <비만바로알기>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내과학교실 소속 송○○·성○○이 2013년 대한내과학회지에 투고한 <비만 : 서론>이 그것이다.
본문을 살펴보면, 거의 ‘복사-붙여넣기’ 수준으로 문장을 그대로 가져왔다. 아예 베낀 문장으로만 채워진 페이지도 있었다. 보고서 내 전체 문장 522개 중 동일한 문장이 258개나 됐다.
정 과장이 해당 결과보고서를 쓰기 위해 호주에 1년 동안 체류하면서 쓴 국외학술연수 비용은 약 6502만 원. 연수 기간 동안 급여도 따로 지급받는다.
정 과장을 비롯해 표절 의심 결과보고서를 쓴 직원 4명이 쓴 국외학술연수 비용은 모두 2억 2113만 원이다.

표절로 얼룩진 결과보고서를 제출했다는 건, 연수 자체가 엉터리로 진행됐다는 뜻. 비용 환수는 당연한 조치다. 하지만 이들 4명은 연수 비용을 한 푼도 환수당하지 않았다.
무슨 이유일까? 당시에는 ‘환수 규정’이 없었기 때문. 건보공단은 2020년 ‘교육훈련규칙’을 개정해 국외학술연수 비용 환수 규정을 명시했다(제44조의2). 하지만 소급적용을 인정하지 않는다.
뒤늦게 문제가 드러나도, 아무런 불이익이 없다는 것. 표절 의심 결과보고서를 쓴 정 과장은 오히려 2025년 상반기 3급 시험승진 대상자에 포함됐다.
셜록이 이전에 보도한 ‘먹튀판사’ 사례와 유사하다. 셜록은 수천만 원의 국비로 해외연수를 다녀와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먹튀판사’ 6명을 추적해 보도했다. 하지만 이들 역시 뒤늦게 만들어진 환수 규정 ‘덕분에’ 해외연수 비용을 한 푼도 환수당하지 않았다. 징계 또한 받지 않았다.(관련기사 : <보고서도 안 쓰고 공짜유학… ‘먹튀판사’ 6명 찾았다>)
정말 환수는 불가능한 걸까? 건보공단의 ‘의지의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국외훈련비 환수 규정(공무원인재개발법 시행령)은 이미 2016년부터 있었다.
건보공단 직원들은 공무원은 아니지만, 준정부기관으로 통상 직속 상위 기관인 보건복지부의 규정을 준수한다. ‘교육훈련규칙(내규)’에 환수 규정이 명시돼 있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환수 규정을 자발적으로 따를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건보공단 해외연수 문제를 셜록에 제보한 ‘내부자’ A씨는 이렇게 비판했다.
“공단이 문제를 덮으려는 이유는, 매년 실시하는 정부 공공기관 평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등급을 낮게 받을수록 직원 성과급 금액이 하향되기 때문에 언론이나 외부에서 신고를 하지 않는 이상 (문제를) 덮는 경향이 있습니다.”

셜록은 건보공단에 반론을 요청했다. 건보공단은 “국가공무원이 아닌 공단 직원은 공무원 지침을 적용받지 않아 교육훈련비를 환수할 수 없다”는 형식적인 답변만 반복했다.
기자는 표절 의심 결과보고서를 쓴 직원 4명에 대한 징계 여부도 물었다. 이에 대해 건보공단은 “특정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로 징계 여부를 공개할 수 없다“고 답했다.
기자는 수차례 시도한 끝에, 정 과장의 반론도 들을 수 있었다. 지난 5월 21일, 정 과장과 직접 통화를 했다. 하지만 기자의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정 과장은 이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죄송합니다. 통화하고 싶지 않습니다.”
과거 검찰은 셜록이 밝혀낸 전·현직 ‘표절 검사’ 총 6명을 상대로 국외훈련비 일부를 환수 조치했다.(관련기사 : <[해결] 표절 검사 5명 훈련비 환수… 셜록이 만든 ‘최초’>) 국외훈련 규정도 바꾸고, 논문 심사도 강화했다.
오늘날 국민들로부터 공정성과 투명성을 의심받으며 중요한 개혁의 대상으로 꼽히고 있는 검찰. 그런 검찰조차도 ‘국외훈련 연구논문’ 관련 표절 문제가 제기되자 조치에 나섰다. ‘도덕적 해이’를 보인 검사들을 상대로 환수 등 후속조치를 하는 게 무너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
건강보험 재정 문제가 국민들의 걱정거리가 된 것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내부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조차 손 놓고 있으면서 어떻게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