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빗줄기는 ‘막장’의 더위를 식혔다. 한낮에도 불을 켜지 않으면 빛이 들어오지 않는 방. 퀸 사이즈 매트리스를 놓으면 방 안 네 귀퉁이에 닿는 곳. 서울 용산구에 있는 동자동 쪽방촌이다.
“여기는 사람의 막장이에요.”
최갑일 씨는 쪽방촌에서 50년간 생활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현재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이사로 있는 그는 지난 14일 동자동 쪽방촌 다크투어를 진행했다. 쪽방 주민들의 주거환경을 보여주고, 이들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였다.

하필 비가 왔다. 칙칙한 회색 콘크리트 건물 사이로 가파른 언덕. 빗물이 언덕 위에서 아래로 쏟아지듯 흘러내렸다. 한 손에는 핸드폰, 한 손에는 우산을 쥐고 미끄러운 언덕을 올랐다. 최악의 날씨였다.
반면 박승민 동자동사랑방 간사는 “날이 좋아(?) 다행”이라며 웃었다. 한낮의 무더위는 물론 밤에도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던 동자동. 더위를 씻어주는 비였다. 쪽방촌 주민들에게는 반가운 손님이었다.
건물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났다. 페인트 칠이 벗겨진 외벽과 곳곳에 흉터처럼 남은 균열들이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곳에 있는 80% 이상의 건물이 70년대 전후로 지어졌다. 단열, 방음, 난방에 취약하고, 십여 명이 화장실과 샤워실을 공동으로 쓰고 있었다.
닭장 같은 건물들 사이로 난 길도 비좁았다. 어떤 길은 중형차 한 대도 지나갈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골목은 오토바이 한 대 지나가면 사람이 건물 쪽으로 몸을 밀착해야 할 만큼 좁았다.
그런 골목보다 훨씬 몸을 웅크려야 했던 곳. 주민들이 살고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방음에 취약하다는 말과 달리 내부는 고요했다. 대신 어떤 방문 앞을 지날 때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최갑일 씨는 방문을 살짝 열어놓은 곳의 내부를 보여줬다.
문을 활짝 열기 전까지는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던 방에 노인이 누워 있었다. 그는 방에 불도 켜지 않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벽과 벽 사이에 압축봉을 달아 옷들을 걸어둔 탓에, 텔레비전 불빛이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은 듯했다.
노인은 사람들이 제 방을 둘러보는 게 익숙한지 이불 뒤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텔레비전 아래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만 사람들을 반길 뿐이었다. 양팔을 펼치면 이쪽저쪽 벽에 닿을 만큼 작은 방. 미지근한 바람만 부는 곳이었다.

통로를 지나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열자 날파리 떼가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이곳에 사람은 없었다. 대신 코를 틀어막고 싶을 만큼 시큼하고 느끼한 악취가 풍겼다. 방문 앞에 놓인 냄비에 음식이 담겨 있었다. 한여름 불 앞에서 요리할 때 느껴지는 더위가 그 좁은 방 안에서 느껴졌다.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다란 통로를 빠져나왔다. 통로에는 녹색 플라스틱으로 된 술병 궤짝이 쌓여 있었다. 그 안에 소주병 수십 개가 담겨 있었다.
방문 앞에는 신발들이 세워져 있었다. 어떤 곳은 두 켤레, 어떤 곳은 다섯 켤레. 현관도 공용이다.

“우리도 사람답게 한번 살고 싶다, 그런 소망이죠. 저야 이제 삶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저도 친구한테 ‘우리 집 와서 커피도 한잔 먹고 이야기도 하고 가라’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그런데 쪽방에 어떻게 친구들이 놀러 가겠어요.”(최갑일)
누군가에게는 ‘부끄러운’ 삶의 터전인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언젠가부터 기자들이 찾아오더니 정치인들까지 문을 두드렸다.
기자들은 여름철 폭염과 함께 ‘단골처럼’ 찾아와 열악한 주거환경을 알리고, 정치인들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며 주민들을 위로하겠다고 방문했다. 그러나 주민들의 사정을 잘 알고, 그에 맞는 도움을 주는 이는 없었다.
“주민들이 제일 실망하는 부분이, 필요한 걸 안 주는 거예요. 어차피 후원 받는 거를 나눠주는 거거든요. 과자, 짠 것, 단것. 근데 우리(주민들) 다 기저질환자이기 때문에 그런 거 먹으면 안 되죠, 사실.”(박승민)

허울뿐인 위로가 아니었던 순간도 있었다. 국토교통부는 2021년 ‘서울역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 재생사업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쪽방촌 주민들이 “기존 쪽방보다 2~3배 넓고 쾌적한 공간을 현재 임대료 15% 수준으로 저렴하게 거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을 마련하겠다”는 계획. 먼저 철거되는 지역에 거주 중인 주민들에게 인근 게스트하우스 등 임시 거처도 마련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주민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소식이었다.
공공개발 계획 발표 이후 며칠. 동자동 골목에 ‘빨간 깃발’이 하나둘 내걸리기 시작했다. 토지·건물주들이 공공개발에 반대한다며 꽂아둔 것이었다. 이들은 공공개발 철회와 동시에, 민간개발로의 전환을 요구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토부가 발표했던 공공개발 계획은 진전이 없다. 그 사이 140여 명의 쪽방 주민들이 숨을 거뒀다.

“우리는 4년 동안 쉬지 않고 투쟁하고 있어요. 그런데 사실 되게 많이 지치기도 했죠. (초기) 2년 동안은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근데 시간이 지나도 전혀 진척이 없으니까 힘이 빠져 있는 단계이기는 해요. 우리 주민분들도 아프시고 하니까요.”(박승민)
희망고문은 잔인했다. 정부는 공공개발 계획 이행을 촉구하는 주민들의 목소리에 더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기관에 찾아가서 항의를 하면 담당자가 또 바뀌어 있었다. 동자동 쪽방촌의 주거권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수도가 고장 나서 집주인한테 좀 고쳐달라고 이야기하면 ‘너 나가, 당신 아니어도 들어올 사람 많아’ 이런 식으로 갑질을 해요. ‘우리는 돈(방세) 제대로 다 주는데 왜 고쳐주지 않냐’고 말도 못하게 되는 거죠.”(최갑일)
집주인은 무심했다. 집에 하자가 생겨도 보수해주지 않겠다며 배짱 부렸다. 1.5평짜리 그 작은 집조차 절실한 누군가가 있으니 말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서울시는 2022년 쪽방촌 공용에어컨 설치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박승민 간사는 “쪽방 건물 65개 중 에어컨을 설치한 곳은 몇 군데 안 된다”고 말했다. 게다가 “에어컨을 설치했다고 주민들의 만족도가 높은 것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왜 그럴까.
에어컨은 각 방이 아닌 복도에 설치됐다. 그러다 보면 복도 구석 쪽에 있는 방에는 에어컨 바람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또 있었다. 에어컨 리모컨을 건물주가 가져가 버린다는 것. 전기요금 걱정 때문이었을까. 공용에어컨이 설치된 건물이든 아니든, 방이 복도 구석에 있든 그렇지 않든, 어차피 쪽방 주민들이 에어컨 바람을 쐴 일은 별로 없었다.
‘인간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리는 에피소드는 또 있다. 하루는 박승민 간사의 지인이 쪽방촌에 정수기를 설치해주겠다며 수요조사를 요청했다. 심지어 유지비와 설치 비용도 따로 들지 않았다.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그러나 건물주들에겐 쓸데없는 일처럼 여겨진 걸까. 정수기 무료 설치 제안을 수락한 건 딱 한 군데뿐이었다. 그나마도 건물이 너무 낡아 배관 설치가 어렵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대신 월세는 성실하게 올렸다. 2025년 기준 서울에 사는 1인가구가 수급할 수 있는 주거급여는 월 최대 35만 2000원. 현재 쪽방촌의 월세는 30만 원 중반대로 형성돼 있다. 주거급여가 오르면, 쪽방촌 월세도 딱 그만큼 올랐다. 주거급여에 따라 월세가 책정되는 식. 에어컨, 창문, 방 사이즈 등 옵션에 따라 40만 원을 넘기는 곳도 있다.
“공공개발 발표 이후에는 이런 일도 있었어요. 건물 주인이 ‘나는 민간개발 원하니까 내 건물은 쪽방 지정에서 빼달라’고 서울시에 요청했더니, 정말 그 건물이 더 이상 쪽방이 아니게 된 거예요. 그러면 쪽방 주민이 받는 혜택들을 또 못 받으니까 거기 주민들은 이사를 하시게 되고.”
박승민 간사는 “쪽방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다 보니, 집주인이 “이 건물은 쪽방이 아니다” 하면 시에서도 용인해줄 수밖에 없다.
쪽방이지만 ‘쪽방 아닌 걸로 간주되는’ 건물이 늘어나는 건, 서울시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일지도 모른다. 관리해야 하는 주민들이 줄어든 셈이니까. 그러나 그곳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에게는 치명적이다. 쪽방 주민이기에 받을 수 있던 물품 지원, 하루 8000원 상당의 급식비 지원, 의료비 지원 등이 하루아침에 끊기게 되는 것이다.

현행 주거기본법은 최저주거기준을 14㎡로 규정한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면적. 쪽방은 그에 한참 못 미친다.
“여기서 삶이 제대로 되겠어요? 처음에 태어날 때는 다 똑같이 알몸으로 태어났지, 뭐 하나 더 갖고 태어난 거 아니잖아요.”
최갑일 씨는 “쪽방촌에서 지병으로 사망하는 이들도 있지만,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이들도 있다”며 탄식했다.

불법 증축된 건물 외벽에 앙상한 철골이 그대로 드러난 곳. 당장 내일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집. 그 안에서 위태로운 일상을 견디는 사람들이 있다. 정부가 약속한 ‘공공개발 계획’을 기다리며.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