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니엘예고 학생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모르겠지만, 힘들었던 이유를 어쩌면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지난 6월 21일 새벽 1시 39분.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한 아파트 화단에서 여고생 세 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모두 브니엘예술고등학교 한국무용과 2학년 재학생이었다.

세 학생이 죽음을 선택한 이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경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를 바탕으로, 입시와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숨진 것으로 보고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달 15일 박서아 씨(가명)를 만났다. 서아 씨는 예고 무용과를 졸업하고, 현재 대학교에서도 무용을 전공하고 있다. 그 역시 예고에 다니던 시절, 자살을 생각했다.

“브니엘예고 사건을 접하고, 아마 저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 같아 (제가) 목소리를 내야겠다 결심했어요. 저뿐만 아니라 예고 출신 동기들도 학교에서 힘든 일을 경험했거든요.”

브니엘예고 자살 사건을 보도한 기사 제목들 ⓒ셜록

서아 씨는 예고 2학년 때부터 압박감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예고 무용과 학생들은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실기’에 집중한다. 학교에서는 실기 평가를 받고, 대학 콩쿠르 준비도 병행한다.

“보통 고등학교 3학년이 힘든 시기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2학년 때 가장 힘들었어요. 그때부터 친구들과 협동해서 창작 발표를 하거나, 개인적으로 콩쿠르 준비를 시작해요. 입시에 발을 들이는 시기랄까요.”

당시 서아 씨는 콩쿠르 5개를 준비했다. 주로 자신이 진학하고 싶은 대학의 콩쿠르나, 전임교사와 잘 아는 교수가 심사하는 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때부터 치열한 ‘순위 경쟁’이 시작됐다고 서아 씨는 말했다. 실기시험 시연회에는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과 등 무용 전임교사들이 전부 참관한다. 학부모와 대학 교수들도 시연회를 보러 온다.

선생님들이 ‘너 순위 떨어졌더라, ○○이는 잘해서 놀랐잖아’ 이런 식으로 비교를 해요. 반대로 제가 실기 성적이 오르면, 다른 친구들이 저와 비교당하면서 저를 싫어하게 되죠. 서로를 적으로 만드는 거예요.”

서아 씨는 학생들을 이간질하듯 경쟁을 부추기는 교사의 말에 내내 마음고생을 했다.

“실기 등수가 떨어져도 욕먹고, 2등을 유지해도 욕먹어요. 1등이 아니면 계속 혼났어요.”

예술고 무용과 출신인 서아(가명) 씨 역시 그 시절 자살을 생각했다. 자료사진.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셜록

실기평가 순위에서 1등을 해도, 다른 압박이 들어왔다.

“학기 초에 실기 1등을 했더니, 선생님이 갑자기 저희 엄마에게 전화해서 ‘신경 좀 더 쓰셔야 한다’고…. 그때는 무슨 소리인지 몰랐는데, 나중에 저보다 실기 등수가 낮은 친구들이 더 좋은 대학에 가는 걸 보고 알았어요. 그때 그 말이 결국 ‘돈 얘기’였다는 걸.”

서아 씨가 졸업한 예고에는 무용과 부장교사와, 현대무용・한국무용・발레 전공별로 전임교사가 한 명씩 있었다. 그리고 학생들과 가장 가까이서 소통하는 건 실기강사들이었다.

서아 씨가 다닌 예고는 외부 학원 등록을 금지했다. 대신 실기강사가 세 명씩 학생을 맡아 소그룹 레슨을 진행했다. 학교 단체레슨 비용은 학교에 지급하지만, 소그룹 레슨 비용은 학부모가 각 담당 강사에게 직접 준다.

교사가 서아 씨 어머니에게 한 ‘신경을 더 쓰라’는 말은, 곧 ‘소그룹 레슨 비용을 더 내라’는 뜻이라고 서아 씨는 생각했다.

“소그룹 레슨을 듣는 게 당연한 분위기였어요. 그런데 소그룹 레슨에서도 세 명의 학생들을 똑같이 가르치지는 않았어요. 강사 눈에 안 차면 ‘넌 굳이 레슨 안 해도 돼, 어차피 대학 못 갈 거니까’라는 말을 들어야 했어요. 정말 그럴 것만(대학을 못 갈 것만) 같았어요. 그때 선생님들의 영향력을 절대적이니까요.”

브니엘예고 사건에서도 레슨 관련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달 22일 MBC ‘PD수첩’은 브니엘예고에 ‘학교장 허락 없이 무용학원을 옮길 수 없다’는 암묵적 규칙이 있다고 보도했다.

브니엘예고 학생이 자살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4년 전인 2021년에도 있었다. 현재 브니엘예고 교장은 당시 평교사였다. 그가 자신과 친분이 있는 학원을 다니다 그만둔 학생에게 고함을 지르고, 학생을 괴롭혔다는 증언이 PD수첩 방송을 통해 전해졌다.

‘예고생’ 서아 씨는 일기장에 속마음을 털어놨다. 일기 내용 그대로 기자가 옮겨 썼다. ⓒ셜록

네 살 때 무용을 시작한 서아 씨는, 자신의 인생을 오직 무용에 쏟아붓고 있었다. 하지만 노력과 관계없이 자존감은 점점 더 낮아졌다. 교사의 ‘말’ 때문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나의 한계에 갇혀 있다. 분명 날 위한 사람들이다. 그 사실이 나를 더 힘들게 한다. (…)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삶을 포기하고 싶게 만든다.”(예고 재학 당시 박서아 씨 일기 일부)

서아 씨가 예고 3학년이 되고, 어느 대학에 입시 원서를 넣어야 할지 고민할 때였다.

“제가 한 대학교에 가고 싶다고 전임(교사)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학생 30명이 모인 자리에서 ‘니가 무슨 자격으로 그 대학에 가고 싶다고 하냐’는 면박도 들었어요. 난 더 열심히 하고 싶은데, 이미 다른 사람들이 제 길을 정해둔 것만 같았어요.”

고민을 털어놓을 곳도 없었다. 오직 경쟁만을 이야기하는 선생님들, 입시 전쟁의 ‘적’이 돼버린 친구들.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난 노력이 부족하다. 다들 그렇게 말한다. 내 ‘열심히’는 ‘열심히’가 아니란다. 그 누구도 오늘 나에게 수고헀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다. (…) 나는 나를 아끼는 법보다 버리는 법에 더 익숙해진 것 같다.”(예고 재학 당시 박서아 씨 일기 일부)

오직 경쟁만을 이야기하는 선생님들, 입시 전쟁의 ‘적’이 돼버린 친구들 ⓒ픽사베이
고립감은 서아 씨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학교에서 진행한 ‘학생정서행동 특성검사’에서 우울감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교실 칠판에는 교내 상담실에 방문하라는 안내와 함께, 서아 씨와 몇몇 친구들의 이름이 적혔다.

전임(교사) 선생님이 칠판에 적힌 이름들을 보더니, ‘정신에 문제 있는 애들만 불렸네’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때 너무 충격 받았어요.”

원망의 화살은 결국 서아 씨 자신에게 향했다.

‘내가 무용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에 자신을 뒷바라지 하는 부모님을 생각하니, 자책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괜히 무용을 하겠다고 해서, 제가 잘하지도 못하는 일을 하겠다고 해서 부모님만 고생하시는 것 같았어요. 학교에서는 제게 (무용을) 못한다는데, 그래도 부모님은 할 수 있다고 지지해주셨죠. 그 사이에서 다 포기하고 싶었어요.”

서아 씨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중증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점점 버티기 버거웠다. 아침에 아버지 차를 타고 학교 앞에 도착하면 몸이 떨렸다.

“‘학교에서 또 혼나겠지’ 생각만 하면 (몸이) 너무 떨렸어요. (학교 앞에 도착했는데도) 눈물이 나서 차에서 못 내리는 날도 많았어요. 학교 앞에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죠.”

서아 씨도 한 차례 자살을 시도한 적 있었다. 다행히 아버지가 경찰에 서둘러 신고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서아 씨가 예고 재학 시절 쓴 일기 일부. 일기 내용 그대로 기자가 옮겨 썼다. ⓒ셜록

서아 씨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그는 살기 위해 학교에서 도망쳤다. 서아 씨는 3학년 2학기부터 졸업식 날까지 학교에 가지 않았다. 대신 외부 레슨을 받으면서 입시를 준비했다. 학교에 우울증 진단서를 계속 제출한 덕에 결석 처리는 막을 수 있었다.

“그때 친구들이 저를 원망했어요. 제가 학교에 가지 않으니까, 선생님이 화가 나면 제 탓을 했대요. 저 때문에 학교 분위기가 안 좋아졌고, 제가 민폐를 끼쳤다고요.

서아 씨는 대학생이 됐다. 대학 교수도 서아 씨가 나온 예고 교사와 아는 사이였다.

“전공 수업에서 교수님이 제게 ‘너 ○○예고 나왔다며? 평판관리 잘해라’라고 했어요. 무용계가 참 좁다고 다시 느꼈죠.”

하지만 서아 씨는 예전처럼 선생님의 말에 휘둘리지 않았다. 서아 씨를 둘러싼 환경도, 서아 씨도 달라졌다.

“(과거 자살을 시도한 적 있지만) 지금은 살아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학교생활도 재밌고,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는 상황이라 감사해요.”

네 살 때 무용을 시작한 서아(가명) 씨. 연습실과 무대에서 보낸 시간은 인생의 전부였다. ⓒ픽사베이

역설적이게도, ‘인생의 전부’라 여긴 무용을 놓아버리니 오히려 새로운 인생의 길이 보였다. 서아 씨는 이제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네 살에 시작한 무용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저는 무용을 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무대에 서고 싶었던 사람이라는 걸 대학에 와서 깨달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무대에 서는 다른 일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인터뷰를 하고 나서 일주일쯤 지났을까. 서아 씨는 기자에게 고등학생 시절 쓴 일기장 사진과 함께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저는 아직도 자책해요. 저를 괴롭힌 선생님들이 이 기사를 보고 상처받지 않을까. 그분들은 진정으로 저를 위해서 모진 행동을 하신 건 아닐까….

하지만 더 이상 눈치 보고 싶지 않아서 용기를 냈습니다. 제가 만약 예고 시절 끝까지 버티지 않고 스스로 생을 끝냈다면, 그분들은 또 누굴 탓했을까요. 그분들은 제가 죽지 않아서 다행인 줄 알아야 합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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