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어느 날.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오래 알고 지낸 취재원. 반갑게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목소리가 무겁습니다. 그가 큰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나서 제게 물었습니다.

“기자님…, 백 소장이… 국회의원이 됐어요?”

떨리는 목소리. 그는 한 마디 한 마디 애써 숨을 고르며 말했습니다. “억장이 무너진다”며 시작한 그의 이야기는 “내가 죽어도 곱게 안 죽을 것”이란 섬뜩한 말로 끝났습니다.

그가 말한 ‘백 소장’은 백선희 국회의원(조국혁신당, 비례대표)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제게 전화를 건 사람은 ‘캠핑장에 갇힌 공익신고자’ 최홍범(52)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쓴 게 벌써 2년 반 전이네요.(관련기사 : <공익신고 이후 5년… 나는 ‘캠핑장’에 갇혔습니다>) 그는 여전히 캠핑장에 삽니다. 달라진 것도 있습니다. 캠핑장을 포천에서 파주로 옮겼다는 것. 부인과 이혼했다는 것. 그리고 ‘해고자’가 됐다는 것.

제게 전화를 건 사람은 ‘캠핑장에 갇힌 공익신고자’ 최홍범 씨였습니다. 사진은 2022년 12월 당시 모습. ⓒ셜록

최홍범은 국책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의 운전원이었습니다. 2017년 7월, 우남희 당시 소장의 관용차 사적 사용 의혹이 보도됐습니다. 최홍범은 우 전 소장이 관용차를 타고 교회, 마사지숍, 골프연습장, 여고 동창회 등으로 약 1년간 130회 이상 다녔다고 폭로했습니다.

공익신고 이후 육아정책연구소는 최홍범에게 경위서 작성을 지시하고 업무에서 배제했습니다. 업무배제는 우 전 소장이 퇴임할 때까지, 약 두 달 동안 이어졌습니다.

국무조정실 감사 결과 신고 내용은 사실로 확인됐고, 소장은 감봉 처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육아정책연구소는 되레 최홍범에게 징계를 시도하다 국정감사에서 지적을 받았습니다.

2017년 12월 우남희 소장의 뒤를 이어 취임한 신임 소장이 바로, 지금의 백선희 의원입니다. 최홍범은 신임 소장이 문제를 해결해줄 거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업무배제가 다시 시작됐습니다. 무려 9개월간. 최홍범을 대신해 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대리기사’였습니다.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모멸감. 자괴감, 억울함. 분노. 갖가지 부정적인 감정들이 쌓여갔습니다. 2018년 10월 최홍범은 “중증의 우울에피소드 적응장애” 진단을 받았습니다.

2017년 12월 취임 당시 백선희 육아정책연구소 소장. 육아정책연구소 소장은 차관급 기관장입니다. ⓒ베이비뉴스

2019년 2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베이비뉴스가 사건을 보도한 뒤로 업무배제는 철회됐습니다.(관련기사 : <‘문캠프’ 출신에 기대했지만.. ‘일’ 잃었다>) 하지만 ‘사건’은 또 일어납니다.

2020년 6월, 전 직원이 모인 임시 월례회의 자리. 최홍범도 참석했습니다. 육아정책연구소가 최홍범과의 소송에서 패소한 직후였습니다. 그동안 최홍범에게 주지 않은 수당이 약 3000만 원. 최홍범이 있는 자리에서, 최홍범에게 ‘물어줄’ 돈을 논의하는 황당한 자리였습니다.

경영진의 무책임함은 선을 넘었습니다. 전 직원 앞에서, ‘직원 급여를 깎아서 최홍범 수당을 줘야 한다’는 취지로 말한 겁니다. 놀란 직원들의 불만이 최홍범을 향해 폭발했습니다.

직원 : “원하시는 게 뭔지 여쭤봐도 되나요?”
최홍범 : “그건 제가 개인적으로 말씀드릴게요. 공식석상에서 지금….”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날의 일을 인권침해로 보고 ‘기관경고’를 권고했습니다.

“진정인(최홍범)에 대한 직원들의 비난성 공격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음에도 (…) 심리적 충격과 압박을 주어 수치심과 굴욕감을 느끼게 한 것으로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어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는 진정인의 인격권을 침해하였다.”(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 중)

그날 이후 최홍범은 “우울, 불면, 자살사고” 등이 극심해졌습니다. 결국 의료진의 강한 권고로, 2020년 8월 정신병원에 입원합니다. 입원을 오래 이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비용’ 때문에. 그래서 그해 10월부터 병원 입원실 대신 ‘캠핑장’ 생활을 선택한 겁니다.

한두 달에 한 번씩 병원에 약을 타러 가는 것이 그가 캠핑장을 벗어나는 유일한 ‘외출’입니다. 사진은 2022년 12월 촬영. ⓒ셜록

“의사가 입원을 권한 이유는 그거였어요. 나쁜 생각(자살사고)을 덜 할 수 있다는 거. (캠핑장에 와서) 처음 몇 달은 텐트 밖으로 나가지 않았어요. 주말에는 사람도 많고 시끄럽고 너무 힘들어서, 화장실만 갔다가 계속 텐트 안에만 있었어요.”(최홍범, 2022년 12월 인터뷰)

최홍범은 ‘산재’를 신청했습니다. 육아정책연구소는 “(최홍범은) 성실하게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고 건전한 직장문화를 저해하는 직원”이라며, 산재 ‘불인정’ 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2021년 7월 최홍범의 정신질병은 산재로 인정됐습니다.

약 9개월간의 업무배제도, 최초의 우울증 진단도, 전 직원 앞에서 이뤄진 ‘마녀사냥’ 도, 정신병원 입원도, “직장문화를 저해하는 직원”이란 의견서 제출도, 정신병원 대신 선택한 캠핑장 생활도, 모두 백선희 의원이 육아정책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동안 일어난 일입니다.

“저도 옛날엔 연예인들 자살했다는 뉴스를 보면 이해가 안 갔거든요. ‘쟤네는 돈도 많은데 왜 죽을까?’ 근데 이제 다 이해돼요. 물론 저는 그런 행위(자살)를 하진 않았지만, 늘 생각을 하고 근처까지 찍고 왔잖아요. 마음이 무너진 거예요.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쉬워지면 죽는 거거든요. 그 마음은 거기까지 가본 사람만 알아요.”(최홍범, 2025년 1월 인터뷰)

백선희 소장의 뒤를 이어, 2021년 1월 박상희 소장이 취임했습니다. 최홍범은 산재요양 기간이 끝난 뒤에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6개월 단위로 질병휴직이 연장됐습니다. 박 소장은 2023년 2월, 최홍범이 머무는 캠핑장을 방문해 면담과 식사를 나누고 가기도 했습니다.

최홍범이 사는 텐트. 지난 7월 경기 포천시에서 파주시로 캠핑장을 옮겼습니다. ⓒ셜록

지난해 5월에는 황옥경 소장이 취임했습니다. 그리고 최홍범은 ‘병가 연장 불가’ 통보를 받습니다. “질병휴직 기간 만료에 따라” 7월 4일부터 직무에 복귀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직무 복귀가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환자는 현재도 불안감 및 우울감이 상당히 높으며 사회적응에도 큰 어려움이 판단됩니다”라는 내용의 진단서(2024. 6. 24.)를 제출하며 병가 연장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명령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결국 2024년 9월 3일자로 직권면직이 통보됩니다. 공익신고자,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 정신질병 산재 피해자 최홍범은, 공익신고 이후 7년 2개월 만에 결국 ‘해고자’가 됐습니다.

해고 과정에 대해 육아정책연구소 측에 질문하려 했으나, 7일 연구소 관계자는 “개인 인사문제와 관련된 사안이라 답변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알려왔습니다.

최홍범은 캠핑장에서 하루에 두 끼만 먹습니다. 때마다 장을 봐서 먹을거리를 가져다주는 고마운 지인들이 있습니다. 최홍범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두 가지, 소음과 ‘사람’입니다. 인파가 붐비는 시끄러운 곳에 가면 두통과 공황장애 증상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한두 달에 한 번씩 경기 고양시에 있는 병원을 방문해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습니다. 그가 캠핑장 밖으로 나오는 것은 이때뿐입니다. 지난 4월 어느 날, 병원 가는 길에 알았습니다. ‘백 소장’이 ‘백 의원’이 됐다는 걸. 저한테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건 그날 말입니다.

백선희 국회의원의 2015년 6월 의정보고서 표지. “정치의 종착점은 국민”이라고 합니다. ⓒ백선희의원실

백선희 전 소장은 12월 13일,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12월 12일 대법원에서 징역형이 확정된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그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을 승계한 겁니다.

“제가 회사에 분명히 얘기했어요.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으니까. 저는 그게 원인이 돼서 정신질병 산재를 받았잖아요. (…)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회사에서 사과 한마디만 해줬어도 이렇게까지 오래 안 갔을 것 같아요.”(최홍범, 2022년 12월 인터뷰)

자그마치 8년입니다. 공익신고 이후 흐른 시간이. 국무조정실이 공익신고 사실을 인정해도,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침해를 인정해도, 법원이 승소 판결을 내려도,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를 인정해도, 캠핑장 밖으로 한 발짝 나가기도 힘든 ‘유배’ 생활이 5년 가까이 이어져도, 그동안 아무도 최홍범에게 ‘미안하다’ 한마디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그에게 사과하지 않아서, 그는 누구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올해 초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이제 생계조차 걱정해야 합니다.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백선희 의원은 조국혁신당 원내대변인입니다. 지난달 30일 그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논평을 발표했습니다. ⓒ백선희의원페이스북

최홍범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백선희 의원은 알까요. 7월 2일과 3일 두 차례 전화를 걸었습니다. 연결은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마다 긴 메시지를 남겼지만 답장도 오지 않았습니다.

“국민들이 편안한 일상을 살아가고, 젊은이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 조국혁신당은 늘 정의와 상식의 자리에 서 있겠습니다.”

백선희 의원이 지난해 12월 13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의원 선서와 함께 한 말입니다.

지난 8년간 최홍범에게는 단 하루도 “편안한 일상”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정의와 상식의 자리”에서 이탈한 그의 인생에 대해 책임감을 느껴야 할 사람은 정말 단 한 명도 없는 건지. 백선희 의원이 말한 정의와, 제가 아는 정의는 정말 같은 단어인지.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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