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그랑. 한밤중 잠을 깨우는 불청객. 현관문에 달아둔 종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집에 도둑이 들었나.
몸을 벌떡 일으켜 거실로 나갔다. 반쯤 열린 현관문 뒤로 어떤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와 가까워질수록 그 음성은 낯설지 않았다.
“이거 뭐 이래! 왜 이래!”
어둠 속, 발을 동동 구르는 노인. 마당에는 여든다섯의 노모가 서 있었다. 엄마는 자꾸 ‘그날’의 꿈을 꾸는 듯했다. 폭탄 8발이 마을에 떨어지던 날. 엄마는 여전히 몽유병에 시달렸다. 벌써 반년이 지났지만.

지난 3월 6일 경기 포천시에서 ‘오폭 사고’가 발생했다. 한·미 ‘연합 합동 통합화력 실사격 훈련’ 중 공군 전투기에서 폭탄 8발이 민가에 떨어졌다. 사고 지점은 ‘승진과학화훈련장’ 인근인 포천시 이동면 노곡리 일대. 이로 인해 민간인 38명이 부상을 당했다.
당시 투하된 폭탄은 MK-82. 길이 2.22m, 무게 227㎏에 달하는 ‘범용폭탄’이다. 주로 밀집된 지역을 공격하는 데 사용되고, 건물·교량 파괴에 활용되기도 한다. 폭탄의 살상 범위는 축구장 하나를 날리는 수준.
사망자는 없었지만, 건물 피해가 막심했다. 국방부 중간조사 발표에 따르면, 이번 사고로 전파된 집은 두 곳. 소파된 집은 202개에 달했다.

그리고 반년 가까이 지난 지금, 마을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지난달 22일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오폭 사고가 발생한 경기 포천시 노곡2리를 찾았다.
1층짜리 낮은 건물에 붙은 간판은 알록달록했다. 식당, 노래방, 미용실, 카페. 공통점은 한낮인데도 불을 끄고 영업을 하지 않는 점. 그리고 창문 혹은 출입문이 깨져 있고 그 위를 비닐로 덧씌웠다는 점이다.
거기에 빨간 글씨가 적힌 채 펄럭이는 현수막과 희뿌연 모래바람이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우리는 대한민국 사람이 아닌가봐.”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 입에서 설움이 터져나왔다.
“더워서 에어컨 틀면 아침까지 계속 틀어야 돼. 그냥 바람이 다 들어오니까 (에어컨을 켜도) 소용이 없어.”
이날 최고 기온은 33도. 창문을 열어도 시원한 바람보다 뜨거운 열기가 들어오는 날이었다. 주민들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금이 간 집에 에어컨을 켰다. 그런 집에 일흔 넘은 노인들이 살고 있었다.

포천시에는 한국군과 미군의 사격장 및 훈련장 9곳이 모여 있다. 이곳 주민들에게 총 쏘는 소리, 포 쏘는 소리, 전투기 소리 듣는 건 일상이다. 한 주민은 지난 3월 ‘오폭 사고’의 그날을 이렇게 기억했다.
여느 때처럼 비행기 여러 대가 머리 위로 지나갔다. 다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비행기 소리. 평소라면 멀리서 “웨앵” 하고 지나갔을 텐데, 그날은 “위이잉” 하는 소리로 평소보다 더 낮고 크게 들렸다는 것이다.
“아야, 저 비행기가 왜 저러냐?”
그리고 그때 “쿠구궁” 하는 굉음과 함께 ‘집’ 근처에서 까만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런 소리는) 전쟁(한국전쟁) 나고 처음이라니까.”
인명 피해를 피할 수 있었던 게 천만다행. 주민들이 대부분 농사일을 하러 집을 비운 오전 10시에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물론 집 안에서 사고를 겪은 주민도 있다. 그는 거실에서 잠들었다가 별안간 유리창 깨지는 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라 현관 쪽으로 기어갔다. 창문부터 현관문, 중문까지 멀쩡한 곳이 없었다고 기억했다.
채소 농장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들은 폭탄의 파편에 직접 맞기도 했다. 태국 출신 노동자는 발목에 파편이 스쳤고, 미얀마 출신의 노동자는 어깨에 파편이 스치면서 어린아이 주먹만 한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이 과정에서 집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살 수 없게 된 주민 13명은 군 관사 등에 거주하게 됐다.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마을. 사고 직후엔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다. 김선호 당시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 김동연 경기도지사, 백영현 포천시장 등이 현장에 방문해 원상복구와 조사, 지원을 약속했다. 군인들은 마을 정비에 나섰고, 주민들은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었다.
“유리가 깨진 건 갈아줬어요. 근데 벽이 어그러지면서 문틀이 뒤틀린 거는 자기들이 손을 못 댄다는 거야.”
포천시에서는 예비비를 투입해 응급복구에 나섰다. 깨진 유리창에 비닐을 덧대는 작업으로 마감했다.
집으로 돌아간 주민들은 불안에 떨었다. 벽에 금이 가거나 기울어진 집. 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는 집. 바람 불면 지붕이 덜컹덜컹 소리를 내는 집. 그들이 돌아온 집은 모두 그런 상태였다.

“부근에 있는 집들을 그렇게 다 부숴놓고는 안전등급 E(등급)가 (겨우) 두 집이래요. 못해도 그 주변에 있는 10가구는 (E등급) 나와야 돼, 최소. 지붕이 다 그렇게 날아갔는데.”
지자체와 국방부는 피해 건물 206동에 대한 안전진단을 시행했다. 등급은 A에서 E까지 5단계로 구분돼, 파손 정도가 약한 집은 A등급, 살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진 집은 E등급을 받는다. 지난 안전진단에서 E등급은 2동, D등급은 4동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주민들이 체감하는 피해 정도에 비해 한참 모자란 결과였다.
D등급을 진단받은 주민은 수리비로 약 9000만 원을 지원받게 된다. 그는 “수리비로 한참은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이걸 내가 어떻게 수리할 수가 없어. 지붕을 먼저 들어내면 벽이 쓰러지고, 벽을 먼저 고치려고 하면 지붕이 내려앉으니까. 조금씩 보수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허물어서 다시 지어야 되는 수준이에요.”

사고 이후 폴리스라인이 내걸리고 출입이 가로막힌 집. 그는 현재도 국방부에서 제공한 군인 관사에 머무르고 있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집 앞에 밭이 있다는 것. 농사를 짓기 위해 한 시간 반 거리를 걸어와 일하고, 다시 한 시간 반 거리를 돌아가야 했다. 그것도 이 무더위를 뚫고. 여든 넘은 노인에게 가혹한 일이었다. 그는 올해 농사를 ‘망쳐’버렸다.
주민들이 농사일에 손을 대지 못하는 이유는 또 있다. 다름 아닌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때문이다. 이들은 불안, 우울증, 불면 등을 호소했다.
“저기 강원도 (철원군) 용화동 같은 데에서 포 쏘면, 그게 여기까지 들려요. 근데 이게 트라우마가 생기니까 그 소리가 엄청 크게 들리는 거야. 그러면 사람들이 놀래서 대여섯 분한테 (문의) 전화가 막 와. 갑자기 이거 무슨 소리냐고.”(김영학 노곡2리 이장)
“큰 소리가 겁나. 마을회관에는 노인들밖에 없으니까 다들 (휴대전화) 벨소리도 엄청 큰데, 그게 한번 울릴 때마다 가슴이 막 철렁하고. 귀가 쩌렁쩌렁. 무서워.”
“너무 우울해. 농사도 못 지었어. 지금 들깨가 다 지금 엎어져서 땅바닥을 기어.”
포천시와 국방부는 피해 주민들을 대상으로 심리지원에 나섰다. ‘재난심리지원단’을 운영해 마을회관에 본부를 두고, 심리상담, 가정방문 등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상담만으로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에서 약을 타왔다. 약값은 개인이 냈다.

“돈 있는 사람은 자기 돈이라도 내지만, 돈 없는 사람도 많아요. 그러면 병원도 못 가.”
지난 반년간 정부는 어떤 노력을 해왔을까. 포천시는 재난기본소득금으로 1인당 50~100만 원을 주민들에게 지급했고, 경기도는 ‘경기도일상회복지원금’으로 1인당 100만 원을 전달했다. 국방부는 주민 227명에게 각 723만 원의 주민안정지원금을 지급했다.
다만 주민들은 “생활비에 불과하다”며, “사고 이전의 삶으로 복구되기까지는 한참 멀었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그랬어요. (정부에서) 걱정하시지 말라고. 다 복구할 거라고. 복구가 안 되면 이주라도 시켜줄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어르신들 건강만 챙기라고. 그러더니 지금은 누구 하나 오는 사람이 없어.”

마을 주민 대다수가 일흔을 넘긴 이곳. 노인들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어 관심도 없는 듯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러다가 어르신들 돌아가시겠어요. 우리 어머니도 올해 아흔넷인데, 집에도 못 돌아오시고 군인 관사에서 돌아가시게 생겼어요. 아무리 좋은 곳을 마련해줬다고 해도 제 집에 사셔야 편안하게 생활하시는 거죠.”
‘오폭 사고’로부터 약 보름 뒤, 경북 지역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최악의 ‘괴물’ 산불로 불리던 재해였다. 마을 주민들도 이재민들을 걱정했다. 당시 성금과 물품을 모아 위로를 전하기도 했다. 그때 ‘아름다운 연대’라며 보도될 뿐, 오폭 피해 마을 주민들의 고통은 ‘지나가버린 일’이 된 듯했다.
“여기는 가해자가 명확하게 있는 거잖아요. 더군다가 가해자는 군인이니까 국가가 책임을 져야지. 우리가 새 집을 좋게 지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원래대로는 해줘야 되는 거 아니냐고. 근데 국방부에서 너무 무책임한 것 같아. 뭘 어떻게 살라는 거야. 천막 치고 살라는 거야, 노인네들이?”
주민들은 포천체육공원 앞, 5군단 사령부 앞,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뙤약볕 아래에서 ‘오폭 피해 주민들을 위해 피해보상 및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주민들을 만나주는 사람은 없었다.

반년 가까이 시간이 지났지만, 사고의 그날과 달라진 게 없는 주민들의 삶. 이창진 피해배상투쟁위원회 사무국장은 절박함에 ‘농성’까지 고민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의 나이는 올해 64세. 마을에서 가장 ‘젊은 남자’다.
“방송에 나와야 대통령이나 차관, 장관 이런 사람들이 와. 근데 그놈의 방송에 나가는 게 하늘에 별 따기더라고요. 솔직히 내가 나이만 젊으면, 가족만 없으면 정말 타워크레인에 올라가서 농성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텔레비전에 나올 거 아니야. 그런(고공농성을 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알겠더라고요.”
왜 이렇게 보상과 복구가 늦어지는 걸까. 국방부는 지난 7월 17일 공군본부 지구배상심의회를 개최하고, 지난달 12일 국방부 특별배상심의회를 개최했다. 이어 “손해사정이 완료된 사건에 대해 순차적으로 ‘신속하게’ 배상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 집들 중에는 공사를 하고 있는 곳도 있었다. 파손이 심했던 두 곳이었다. 두 곳 모두 개인 보험금으로 공사를 하고 있다. 국방부의 해명처럼 정말 ‘신속하게’ 처리가 됐다면, 지난 6개월 동안 다른 집들도 이곳처럼 복구를 시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국방부는 덧붙여, “육군 5군단과 공군은 마을을 청소하고, 피해 주민 의료상담, 물리치료, 복약지도 등을 지원하고, 포천시 보건소와 협조해 마을주민 심리상담 및 치료를 병행했다”라고 밝혔다.
다만 마을 주민은 “심리상담은 초기에 이루어졌고, 현재는 병원 갈 때 이동을 도와주는 정도 외에 특별히 지원받은 게 없다”며, “노래교실, 어항 만들기와 같은 프로그램은 치료와는 동떨어진 듯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국방부는 “김용태 국회의원(경기 포천·가평, 국민의힘)이 대표 발의한 특별법 제정을 위해 관련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며, “군 유휴지 활용방안에 대해 협의를 진행 중이고, 훈련 시행 전 주민안내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태 의원은 지난 5월 ‘군사훈련영향지역 주민 보호 및 사고 피해 보상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는 대규모 군사훈련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훈련장에 인접한 지역을 ‘군사훈련영향지역’으로 정하고, 사고 발생 시 원활한 피해복구, 지원, 예방 등으로 주민을 보호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루아침에 집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반년째 ‘안전한 나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붕 위에 덮은 얇은 비닐은 지난여름 폭우를 막을 수 없었다. 바람에 날아가 버리거나 따가운 볕에 삭아버리기 일쑤였다. 이들은 겨울에 닥칠 찬바람과 시린 눈이 무섭다.
이들이 바라는 건 하나. 일상으로의 복귀다. 지붕이 무너질까 불안해하지 않고, 가스 배관이 폭발할까 겁내지 않고, 새벽마다 밭으로 나설 수 있던 그날로.
금방 해결될 것처럼 호언장담하던 이들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다. 기울어진 집 아래 노인들이 산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