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경기 포천시 소흘읍에 위치한 박흥주 대령의 묘소. 그곳에서 추모제를 지내던 사람들 입에서 탄식이 터져나왔다. 묘원에서 30㎞ 떨어진 민가에 폭탄 8발이 잘못 떨어졌다는 뉴스였다.

“뉴스 보고 갔더니 난리가 났어. 군인들이 현장을 통제하고 서 있고. 폭탄이 또 터질 수 있다고.”(김영철 포천깨시민연대 전 대표)

사고 발생 약 한 시간 뒤 도착한 마을은 아수라장이었다. 폭탄이 떨어진 도로는 군인들이 출입을 통제했다. 추가 폭발을 우려한 조치였다. 부러진 나무들이 도로 위에 나뒹굴고, 건물 유리창은 성한 곳이 없었다. 그 옆으로 나무에 박힌 포터 트럭과 들것에 실려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지난 3월 오폭사고 당시 경기 포천시 노곡2리 모습 ⓒ이창진 제공
지난 3월 오폭사고 당시 경기 포천시 노곡2리 모습 ⓒ이창진 제공

지난 3월 6일 경기 포천시 노곡리에 ‘오폭사고’가 발생했다. 한미연합훈련 중 공군 전투기에서 폭탄 8발이 민가에 떨어진 것. 공군은 사고가 발생한 지 1시간 40분이 지나서야 사고 경위 등에 관한 공식 입장을 내놨다.

재난문자는 오지 않았다. 주민들은 전쟁이 난 건지, 사고가 난 건지 알 수 없었다. 영문도 모른 채 불안에 떨었을 뿐이다.

“저희는 이번에 한미연합훈련 하면 안 된다고 계속 경고했어요. 자칫 북한을 자극해서 전쟁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잖아요.”

김영철 포천깨시민연대 전 대표는 당시 훈련 자체에 우려를 표했다. 때는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탄핵 심판을 받던 시기. 12·3내란에 가담한 혐의로 국방부 장관, 행정안전부 장관, 육군참모총장, 방첩사령관 등 장군 17명, 영관급 장교 13명이 구속 또는 직무에서 배제된 상태였다.

군 지휘 체계가 무너져 있었던 것. 김 씨는 ‘참수부대’까지 동원된 공세적 훈련이 북한을 도발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김영철 포천깨시민연대 전 대표가 지도를 보여주며 군 부대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 ⓒ셜록

시민들은 항상 부담을 안고 사는 거죠. 그 주변 지역(오폭사고가 발생한 민가)뿐만 아니라 우리 포천시 전체에 부대가 많다 보니까 ‘전쟁’이 남 일이 아닌 거예요.”

포천시는 우리나라에서 군부대 사격장이 가장 많은 곳이다. 한국군과 미군의 사격장·훈련장만 9곳, 규모는 1500만 평으로 여의도 면적의 15배에 달한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승진훈련장과 주한미군 최대 사격장인 영평사격장도 이곳에 있다.

“결국은 이게 반복되는 거죠. 한 20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17년 전에도 민가에 폭탄이 떨어졌다. 한국군 단독으로 실시한 ‘호국훈련’ 중 전투기 2대가 공중에서 충돌하면서 발생한 사고. 이중 한 대가 충돌 후 중심을 잃고 논으로 추락했다. 다행히 조종사는 낙하산을 이용해 탈출하면서 목숨을 건졌다.

이때 전투기가 충돌하면서 무게 75㎏의 공대공미사일(AIM-9) 4발이 지상으로 떨어졌다. 미사일 3발은 폭발하지 않은 상태로 수거됐고, 1발은 두 동강 난 채 발견됐다. 추락 지점에서 불과 70~100m 거리에 민가와 마을이 있었지만, 인명 피해는 없었다.

폭탄이 떨어져 생긴 구덩이에 색이 다른 콘크리트를 메웠다 ⓒ이창진 제공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그동안 포천 지역에서 발생한 오폭·오발·화재 등 민간인 피해 사고들이 얼마나 되는지 직접 조사했다. 2000년 이후 보도를 통해 확인된 사례만 무려 29건. 올해 3월의 오폭사고까지 포함하면 30건이다.

그러나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사고들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한국전쟁 이후 70여 년간 이 지역에서 군사훈련이 계속돼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가시화되지 않은 피해는 사례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2006년 1월에는 영평사격장에서 날아온 도비탄에 주민이 맞아 부상을 입었다. 도비탄은 지면에 닿았다가 튕겨져 나온 탄환이다. 해당 주민은 미군 훈련시설인 영평사격장에서 날아온 10㎝ 크기의 도비탄에 어깨를 맞았다. 그는 인근 병원에 10여 일 입원해 치료를 받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각종 포탄과 중화기가 발사되는 군부대 사격장 일대는 산불 위험도 있다. 군 훈련 중 사용한 조명탄, 예광탄이 산에 떨어지면 산불로 번지기도 했다.

2019년 1월에는 예광탄 파편이 불무산 일대에 튀어 불이 시작됐다. 미군과 산림청은 헬기를 동원해 불길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강풍 때문에 불길이 쉽게 잡히지 않아 진화에는 나흘이나 더 걸렸다. 특히 군사분계선 접경지에 있는 사격장의 경우, 지뢰의 위험 때문에 진화 인력을 육상으로 투입하기가 더 어렵다.

주민들은 차를 탈 때도 불안했다. 2023년 10월에는 도로를 달리던 차에 5.56㎜ 총알이 박혔다. 사고 현장은 영평훈련장에서 약 1㎞ 떨어진 곳. 달리던 차량 유리창에 총알이 날아와 박혔다. 운전자는 다치지 않았으나, 인명피해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사고였다. 월러드 벌러슨 당시 주한미8군 사령관은 사고 8일 만에 공식 사과했다.

2020년 8월에는 미군 장갑차와 주민의 SUV 차량이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어둠 속에서 앞서가던 장갑차를 발견하지 못하고 들이받은 것. SUV에 타고 있던 탑승자 4명은 전원 사망했다.

경찰은 SUV 운전자가 음주운전을 했다고 발표했다. 다만 미군에도 과실은 있었다. 장갑차 대열 앞뒤로 호위 차량인 ‘콘보이’를 대동해야 한다는 ‘훈련안전조치 합의서’상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

포천시에서 발생한 군사 시설 인근 민가 사고 연표 ⓒ셜록
포천시에서 발생한 군사 시설 인근 민가 사고 연표 ⓒ셜록

“(포천시 영북면) 운천리에서 훈련 중이던 미군이 사람 죽인 적도 있어요. 그게 80년대 초였는데, 미군이 차에 타서 가는 길에 아주머니 한 분을 쏴죽이고 그랬어요. 그 자리에서 죽었는데, 전두환 국보위 시절이라 신문에 실리지도 않았지.”

김영철 전 대표는 과거 전화국에서 군 통신 지원을 담당했다. 그러면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도 알게 됐다. 그는 민간인이 피해를 입은 군 훈련 사고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사훈련으로 인한 사고와 소음은 주민들의 일상을 위협했다. 포천시민들은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안전을 보장하라는 목소리를 직접 내기도 했다. 2014년 영평·승진사격장 대책위원회, 2015년 포천시 사격장 등 군 관련한 시설 범시민대책위원회, 2025년 노곡2리 전투기폭격피해배상투쟁위원회 등이 조직됐다.

하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다. 수십 차례 군 훈련 중 사고가 발생했지만, 그때마다 잠깐 훈련이 잠깐 중단됐다가 이내 재개됐다. 위험은 그대로였고, 사고는 재발했다. 지난 3월 오폭사고 역시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다.

오폭 사고 당시 부상자를 치료하는 모습 ⓒ이창진 제공

지난 3월 발생한 오폭사고로 민간인 38명이 부상을 당했다. 건물 피해는 총 204동, 217가구에 달했다.  이영수 공군참모총장은 그로부터 4일 뒤,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

국방부는 사고에 대해 조종사가 좌표를 오입력하고, 이후 올바르게 입력됐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방부조사본부는 오폭사고와 관련된 조종사 2명 및 전대장과 비행대대장을 지난 6월 국방부검찰단으로 송치했다.

“책임 소지가 불분명하죠. 사실 이 훈련을 총지휘한 사람은 한미연합사(한미연합군사령부) 사령관일 텐데, 그런 쪽에서는 도의적으로라도 책임을 지겠다는 입장 표명도 전혀 없고… 이런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사고 책임과 진상 규명, 보상 및 복구와 재발방지 대책 수립 등 모든 논의에 있어서 ‘미군’이란 존재는 쏙 빠져 있다. ‘한미연합훈련’ 중에 일어난 사고임에도, 사고 이후 한미연합사의 책임 문제에 대해서는 무게 있게 다뤄지지 못했다.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 역시 피해 규모와 복구 및 보상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포천 주민들과 함께 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해온 박준의 국민주권당 상임위원장은 “훈련을 주관하는 한미연합사가 방관하는 태도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과와 책임의 주체는 공군이 아니라 한미연합사 사령관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주현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사무국장 역시, 한미연합사가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조치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꼬리 자르기 식으로 조사하고 있어요. 재발방지 대책도 한국군이 아닌 한미연합사에서 세워야 할 거고요.  결국 주한미군이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잘하겠다’ 이런 입장을 발표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사고 당시 국방부는 “표적 좌표 중복확인 절차를 보완·강화하고, 주민들이 국가배상 절차에 따라 신속한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마을 위로 전투기와 포탄이 날아다니는 훈련은 앞으로도 계속되는 한, 마을은 늘 위험에 노출돼 있을 수밖에 없다. 지난 세월 수많은 사고가 반복됐던 것처럼.

부서진 집은 아직도 복구되지 않았다. 집 안으로 빗물이 새어 들어오는 집에 사는 피해 주민. ⓒ이창진

’오폭사고’로부터 반년. 집들은 아직 복구되지 않았다. 주민들은 기울어진 집에 살거나, 머물 수조차 없이 집이 부서진 경우에는 군인 관사에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집 무너질까 마음 졸이며 지샌 밤만큼 수심이 깊어졌다.

지난 8월 주민들은 “여태 보상받은 것 하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사고 이후 경기도, 포천시, 국방부는 지원금을 지급했다. 이들은 “그 돈은 생계비일 뿐 집 수리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멀쩡한 집을 부쉈으면 복구라도 해주든지, 그게 안 되면 이주라도 시켜달라”고 호소했다.(관련기사 : <‘오폭’ 이후… “94세 노모, 군 관사에서 돌아가실 판”>)

수십 년간 반복된 사고. 불분명한 책임과 미봉책 수준의 대책이 반복됐다. 그 연장선상에서 결국 지난 3월의 오폭사고까지 일어났다. 외면받던 ‘주민들의 고통’이 수십 명의 부상자를 낳은 대형사고로 드러난 것. 책임과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고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지 않는 한, 주민들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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