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가 났다고 치자. 뒷 차가 멈춰 있던 앞 차를 박았다. 뒷 차 운전자의 과실은 명백하다. 그런데 이때 가해자가 직접 현장을 조사하고, 사고 원인을 밝히고, 피해자 인정 여부를 결정한다면 어떨까.
지난 3월 포천 오폭사고도 이와 다르지 않다. 민가에 폭탄을 떨어뜨린 것도 군(軍). 조사를 하고 결과를 내놓는 것도 군이다. 주민들은 이 과정을 불안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진상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복구와 보상도, 재발방지 대책도 모두 지연됐다. 그 과정마저 투명하지 않았다. 피해 주민들의 가슴에는 의심의 싹이 자랐다.
“공군이 피해자들을 균열 내고 피해 규모를 축소하려는 것 같아요.”(피해 주민)
주민들은 군의 ‘셀프조사’를 믿지 못했다. 폭탄은 집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마음속까지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지난 3월 6일 경기 포천시 이동면 노곡리 민가에 폭탄이 떨어졌다. 한미연합훈련에 참여한 KF-16 전투기 두 대에서 폭탄 8발이 비정상 투하됐다. 이로 인해 민간인 38명이 부상당하고, 총 204동의 건물이 피해를 입었다. 포천 지역에서 일어난 오폭사고 가운데, 민간인 부상 규모가 가장 큰 역대 최악의 사고.
피해지역 주민들에게 긴급재난문자는 오지 않았다. 대신 인근 부대에서 군인들이 나와 폭탄 잔해들을 수거해 갔다. 주민들은 전쟁이 난 건지 또 계엄이 터진 건지 아무것도 모른 채, 막연한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군 당국은 사고 발생으로부터 100분이 지난 뒤에야 ‘공군 전투기에서 폭탄이 잘못 투하됐다’고 발표했다. 그마저도 국방부 출입기자단에 문자메시지로 관련 사실을 알리는 식이었다.
공군은 사고 발생 나흘 만인 3월 10일, 중간조사 브리핑에 나섰다. 이영수 당시 공군 참모총장은 노곡리 주민들에게 사과했다. 이어 “조종사들의 좌표 오입력으로 인한 사고”라고 발표했다.
이후 전투기를 조종했던 조종사 2명에 대해 자격심의를 진행하고, 해당 부대 전대장(대령), 대대장(중령)을 보직해임 했다. 지난 6월에는 오폭사고와 관련된 4인이 국방부검찰단으로 송치됐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8월 국방부에 최종 조사결과 발표 계획에 관해 질의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수사 결과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할 예정”이라며, 조종사 등의 처벌에 대해서만 지엽적인 답변을 했을 뿐이다.
조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언제 결과가 발표될지 7개월째 감감무소식. 과연 조종사 등 4인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으로 진상규명이 됐다고 할 수 있을까.
“돈 문제가 생기니까 주민들끼리 갈라서기 시작했어요.”(노곡3리 주민)
군의 조사 지연은 또 다른 문제를 낳았다. 보상금을 둘러싸고 마을에선 ‘진짜 피해자’를 가리는 싸움이 일어났다. 국방부는 피해 주민 227명에게 각 723만 원을 지급한 바 있다. 이때 피해자로 포함된 건 ‘노곡2리’ 주민들뿐. 이웃한 노곡3리 등은 피해지역으로 구분되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문을 열었는데 뒤로 이렇게 나자빠져서 머리 깨지는 줄 알았다니까. 우리 집 앞에 파편이 이만한 게 떨어졌어.”(노곡3리 주민)
아흔이 넘은 노인은 그날을 떠올리며 몸을 뒤로 굴러 보였다. 이곳 주민들에게도 그날의 기억은 선명했다. 밤에 잠 못 드는 주민들이 여기 또 있었다.

“피해 정도를 자꾸 은폐하려고 하니까 노곡2리와 3리 사이에 갈등이 생겨버린 거예요. 피해 규모를 축소하는 게 걔들(군) 입장에서는 좋잖아요.”
오폭사고의 파장은 컸다. 사람이 다치거나 집이 무너진 건 물론, 폭탄 파편에 의해 재산 피해를 입은 주민, 그날의 트라우마로 잠 못 드는 주민들까지. 그러나 공군은 그 지역을 ‘노곡2리’에 국한시켰다. 뒤따르는 마을 간 분쟁은 손 놓고 지켜보는 식이다.
임종훈 포천시의회 의장은 지난달 “오폭사고 피해보상을 확대하라”며 국회 국방위원회에 입장문을 전달하기도 했다.
임 의장은 “현재 국방부가 노곡2리에 한해 보상을 추진하고 있으나 실제 피해 접수 건수는 노곡리 일원에서만 300여 건에 달하며 인접 지역까지 피해가 확산된 상황”이라며, “주택·차량 파손, 축사·농작물 피해, 신체적·정신적 피해까지 다양하게 보고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보상 범위를 모든 피해 접수 지역으로 확대하고, 피해 실태를 재검증해 합리적인 배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축소’ 논란에 따른 문제는 또 있다. 국민성금 80%가 피해 주민들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 국민들은 사고 직후 피해지역 주민들을 돕기 위해 성금을 보냈다. 약 한 달간 모인 오폭피해 지정기탁금은 총 2억 2000만 원. 이중 현재까지 집행된 성금은 겨우 4600만 원뿐이다.
노곡2리 피해 주민들은 지난달 23일 포천시에 국민 성금의 일부를 지급해달라고 요청했다. 정신과 치료비 보전 및 향후 지원 요구였다.
포천시 역시 주민들의 갈등을 앞세워 책임을 회피했다. “모든 피해 주민들의 동의 없이는 지급하기 어렵다”는 입장. 그리고 “피해자들이 선정돼야 균등 배분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국방부의 늑장 조사를 핑계 삼아 주민 간의 갈등을 방기한다는 비판이 나왔다.(관련기사: <오폭사고 209일… 국민성금 80%는 전달도 안 됐다>)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한 것은 국방부와 포천시뿐만이 아니었다. 국회 역시 무관심했다.
지난 13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첫째 날.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출석했다. 하지만 이날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 17명 중 그 누구도 ‘포천 오폭사고’에 관해 국방부 장관에게 질의하지 않았다.
국정감사를 앞둔 지난달 22일, 피해 주민들이 70여 명이 직접 국회를 찾아 호소한 바 있다. 이들은 정부의 책임 있는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복구와 보상, 지원 문제 해결을 촉구함과 동시에,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 훈련은 결코 국방이 아니”라며 “국민을 지키지 않고 죽음으로 내모는 훈련은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정감사장에 국방부 장관을 불러 앉혀두고도, 피해 주민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국회의원은 없었다.
국정감사 둘째 날인 14일에는 진영승 합동참모본부 의장이 국회에 출석했다. 이날도 역시 합참의장에게 ‘포천 오폭사고’에 대해 질의하는 국회의원은 아무도 없었다. 국회는 한·미 동맹 강화만 강조했을 뿐, 오폭사고 책임이나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었다. 오히려 폭염 등으로 연기된 한미연합훈련의 실행 계획에 대한 질의가 이어졌다.

아이러니한 건 또 있다. 이번 사고의 책임을 논하는 데 있어서 ‘한미연합군사령부(한미연합사)’라는 존재는 지워져 있다는 점. 포천 오폭사고는 한·미 ‘연합 합동 통합화력 실사격 훈련’ 중에 발생했다. ‘한·미 연합합동훈련’이란, 한국군과 미군에 소속된 2개 군종(육군, 해군, 해병대, 공군) 이상의 부대가 함께하는 훈련을 뜻한다.
사고 당일, 인근에서 김명수 당시 합창의장과 제이비어 브런스 주한미군사령관이 훈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사고 이후 “전적으로 제 책임”이라며 사과한 건 이영수 당시 공군참모총장뿐이다. 사과와 함께 잠시 중단됐던 비행훈련은 단계적으로 재개됐다. 사고 발생 나흘 만이었다.
“지금 (조종사 등 4인에 대한 수사만으로) 꼬리 자르기 식 조사를 하고 있어요. 재발방지 대책도 한국군이 아닌 한미연합사에서 세워야 할 거고요. 결국 주한미군이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잘하겠다’ 이런 입장을 발표해야 된다고 생각해요.”(노주현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사무국장)
군의 소극적인 조사에 주민들의 목소리는 지워지고 있다. 조종사와 지휘부 4인에 대한 조사와 처벌만으로 다음 사고를 예방할 순 없다. 2000년 이후 포천시 군사시설 인근에서 발생한 오폭·오발·화재 등의 피해만 30건에 이른다. 이 모든 일이 단지 일부 개개인의 실수로만 설명될 수 있을까.(관련 기사: <2000년 이후 사고만 30건… ‘오폭’은 우연이 아니다>)


포천 오폭사고 이후 8개월 가까운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아직까지 피해 주민들에게 복구도, 보상도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의 일시적 지원만 있었을 뿐이다. 사고의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고, 책임 있는 자가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필연적인 사고를 예방하는 길이다.(관련기사 : <‘오폭’ 이후… “94세 노모, 군 관사에서 돌아가실 판”>)
“저기 강원도 (철원군) 용화동 같은 데에서 포 쏘면, 그게 여기까지 들려요. 근데 이게 트라우마가 생기니까 그 소리가 엄청 크게 들리는 거야. 그러면 사람들이 놀래서 대여섯 분한테 (문의) 전화가 막 와. 갑자기 이거 무슨 소리냐고.”(김영학 노곡2리 이장)
한여름 무더운 바람과 빗물이 들이치던 ‘부서진 집’에 찬바람이 불어온다. 천지를 뒤흔드는 전투기의 굉음과 포성은 끊이지 않는다. 주민들은 다가오는 겨울이 두렵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