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기자님이 직접 입원해보세요.”
인터뷰 할 때 취재원들은 기자에게 입원을 자주 권했다. 이들은 “백제종합병원의 실체를 쉽게 아는 길은 입원”이라며 “대충 증상을 지어 말해도 입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보험 회사로부터 보상금 더 받기 위해 진단서 등을 뗄 일이 있으면 일부러 백제종합병원을 간다는 사람도 있었다. 백제종합병원 의료시스템이 그만큼 허술하다는 지적이다.
나는 입원에 회의적이었다. ‘그래도 종합병원인데 입원이 쉽게 될까’란 생각 때문에 망설였다.
걱정은 기우였다. 지난 12월 12일, 외래진료를 시도해보기 위해 백제병원을 찾았다가 바로 입원이 결정됐다. 취재원들의 조언대로 허리를 가리키며 증상을 대충 둘러댔다.
“일주일 전에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졌어요. 그 후부터 허리가 불편해요.”
“실손보험 들었어요?”
병원 측은 정밀 검사를 위해 입원하자고 했다. 진료 시작 3분도 채 안 돼 나온 결정이다.
실손보험 가입 여부를 의사가 직접 묻는 것도 특이했다. 담당의였던 오아무개 신경외과 의사는 실손 보험에 가입했는지를 진료 중에 물어봤다. 그는 백제종합병원 부원장이다.
오 부원장은 “실손보험에 가입했다면, 하루라도 입원하는 게 이익”이라며 비싼 MRI 검사를 보험 회사에 청구하려면 입원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바로 입원 여부에 따라 실손보험 한도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통원 치료하면 보험 회사로부터 받을 수 있는 병원비는 하루 최대 25만 원 정도인 반면, 입원하면 그 한도가 연간 5000만 원으로 훌쩍 뛴다. 즉, 입원만 하면 환자와 병원 모두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고가의 비급여 검사가 필요할 때 의사는 환자에게 달콤한(?) 제안을 하곤 한다.
나는 실손보험을 가입하지 않았지만, 입원 취재를 위해 사실과 다르게 말했다. 그 후 입원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간호사는 입원에 앞서 피검사와 X레이 촬영이 필요하다며 절차가 적힌 쪽지를 건넸다. MRI는 일정이 잡히는 대로 알려주겠다고 했다. 이처럼 취재원들의 말대로, 백제종합병원 입원은 쉬웠다.
“검사항목이 많아서. 오래 걸리겠네요. 수십 가지예요.”
첫 번째로 한 검사는 피검사였다. 검사 항목은 수십 가지에 달했다. 검사를 진행한 임상병리사는 검사항목이 많아 검사 소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의무기록지를 떼어보니 당시 피검사 항목은 총 54개였다. 피검사에만 청구된 의료비가 36만 원에 달했다. 심장효소 검사나 자가면역표적 검사와 같이 증상과 무관한 검사도 있었다. 과잉진료에 대한 의심은 피검사 단계부터 굳어지기 시작했다.
뼈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실시한 검사는 X레이와 MRI 촬영이었다. 오 부원장은 X레이 촬영 결과도 나오지 않았는데 내게 MRI 검사가 필요하다고 권했다.
MRI 검사는 비급여 진료였다. 총 71만 원의 비용을 환자나 보험 회사가 전부 지불해야 했다.
링거 맞지 않았는데, 링거 비용 청구… 위생은 엉망
병실 배정도 매끄럽지 못했다. 다인실에 입원하고 싶다고 했지만, 간호사는 “현재 1인실밖에 없다”면서 “(다인실에) 자리가 나면 옮겨주겠다”고 나를 1인실로 안내했다.
없던 병실은 1인실로 옮긴 직후 생겨났다. 내가 거듭 다인실을 요구하자 간호사는 “2인실에 자리가 있는데 옮길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고, 뒤늦게 2인실로 옮겨줬다.
백제종합병원의 입원 수칙은 특이했다. 병상 식탁에는 ‘식사 제공 시 수저를 주지 않는다’는 공지가 적혀 있었다. 수저를 따로 챙겨오거나 별관 2층 마트에서 사야 한다고 알렸다.
의료소모품의 일부도 직접 사 오라고 했다. 주사 마개라고 불리는, 혈액 응고를 막는 헤파린캡도 필요하면 환자가 직접 병원 매점에서 사오는 구조였다.
병실의 위생 상태는 좋지 않았다. 바닥은 끈적했고, 먼지가 구석구석 많았다. 냉장고는 녹슬어 있었다. 커튼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붉은 얼룩이 묻어 있었다.
특히 침대 위생이 나빴다. 손이 잘 닿지 않는 곳에는 먼지가 덩어리째 묻어나왔다. 응급 시 의료인을 부를 수 있는 비상 전화기는 침대마다 달려있지 않았다.
식사는 가격에 비해 부실했다. 끼니당 6천 원이 책정되어있었지만, 반찬 가짓수와 질은 가격에 미치지 못했다. 두부조림과 멸치볶음, 시금치와 김치 반찬에 소고기뭇국과 밥이 메뉴로 나왔지만, 배달되는 동안 식어서 맛이 떨어졌다.
백제종합병원의 부실한 식사는 이 병원에 입원했거나 보호자로 있었던 사람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사항이다. 똑같은 반찬이 연달아 나오고, 단백질이 함유된 반찬이 메뉴가 자주 나오지 않아 보호자들이 따로 반찬을 챙겨오는 경우가 잦았다는 제보가 많았다.
입원 이튿날 아침, 의사가 내게 검사 결과를 통보했다. 몸에 이상이 없다고 전하면서 일주일 치 약을 처방해줬다. 애초에 아픈 곳이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1박 2일 입원으로 발생한 의료비는 총 138만 원. 이 중 93만 원 가량이 본인부담금, 나머지 45만원은 건강보험공단에서 지급했다.
병원 측은 과잉 진료에 이어 진료비도 부당하게 청구했다. 나는 1박 2일 입원 동안 링거 주사를 맞지 않았는데, 진료비 내역서에는 링거 투약비로 약 3만 원이 포함됐다.
백제병원에서 일하는 한 간호 관계자는 의사들이 과잉진료를 부추기는 이유는 인센티브 때문이라고 했다. “의사가 환자에게 MRI와 같은 고가의 검사를 하도록 유도하면 결제 금액의 일정 부분을 의사에게 지급한다”고 지적했다.
다년간 환자 몰래 의료비 과다 청구… 심평원 “전수조사 불가”
백제종합병원의 진료비 과다 청구는 이번만이 아니다.
백제종합병원에 부모를 입원시킨 적 있는 김인규는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비급여 진료비 확인요청을 통해 의료비 일부를 돌려받았다. 돌려받은 의료비는 모두 123만5000원에 달했다.
네 번 비급여 진료비 확인요청을 했는데, 네 번 모두 돈을 돌려받았다. 김인규의 추천으로 비급여 진료비 확인요청을 한 다른 환자도 의료비를 일부를 환불 받았다.
김인규의 부모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의료비 과당 청구 수법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선택진료비를 청구할 수 있는 의사가 아닌데도, 선택진료비를 추가 부담시키는 방식이다. 김인규 어머니의 고관절을 수술한 이아무개 정형외과 의사는 선택진료가 가능한 의사가 아니었지만, 백제종합병원 측은 이 비용을 부당하게 청구했다.
선택진료비제도는 환자가 특정 의사를 선택해 진료를 받을 경우 15~50%의 추가 비용을 물리는 제도다. 1963년부터 시행됐다가 환자들로부터 자주 불만이 나오자 2018년 1월 폐지됐다.
두 번째 수법은 급여항목을 비급여로 청구하는 식이었다. 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되는 진료 항목임에도 그렇지 않은 항목인 것처럼 꾸며서 환자에게 본인부담금을 더 물렸다.
백제종합병원은 몇 가지 항목을 수년간 부당 청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례로 말초 산소포화도 검사에 사용하는 재료는 급여로 청구할 수 있음에도 비급여로 반복적으로 청구해 환자에게 부담을 지운 것으로 확인됐다.
의료비 과다 청구를 담당하는 부처인 심평원은 이런 사실을 알고도 손을 놓고 있다.
위 내용이 담긴 공익신고를 접수한 심평원은 지난 12월 “본인부담금 과다징수 사실이 확인되지만, 김인규의 진료비 내역만으로는 현지 조사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심평원은 “백제종합병원의 모든 진료 형태가 과다징수라고 볼 만한 증거자료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