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엄마 다리가 아프다.”
2016년 11월, 김인규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가슴이 내려앉았다. 어머니는 열흘 전 요양병원인 논산시립노인전문병원(이하 논산노인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내분비질환의 일종인 쿠싱증후군과 심한 두통을 앓았다. 입원 당시 어머니는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거동에 문제없었다.
“새벽에 화장실 다녀오시다가 넘어지셨어요. 검사할 예정이에요.”
간호사의 말에 김인규는 진료와 검사를 요청했다. 60대 노인 환자에게 낙상사고는 치명적일 수 있다. 김인규는 당장 병원으로 달려갈 수 없는 형편이어서 병원의 대처를 믿었다. 요양병원에는 24시간 의사 상주가 원칙이니, 의료진이 잘 대응하리라 생각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이 검사 안 해도 된다고 하시네요.”
간호사는 반나절 만에 말을 바꿨다. 오전까지만 해도 검사할 예정이라고 했는데. 오후에는 검사가 필요 없다고 전했다. 마뜩잖은 점은 더 있었다. 어머니는 전화할 때마다 “아프다”는데, 병원 쪽은 “괜찮다”고만 했다. 의문은 많았지만, 김인규는 병원의 결정에 따랐다.
믿음은 원망으로 돌아왔다. 어머니의 병세는 날로 심각해졌다. 잘 걷지 못 하고, 나중에는 누워서 생활했다. 몸에 욕창과 수포가 생겼다. 병원은 “움직이면 위험하다”며 어머니에게 기저귀를 채웠다. 같이 산책하고, 병원 근처 음식점에 갈 정도로 건강했던 어머니는 가족도 몰라보기 시작했다.
2017년 1월 어머니는 논산노인병원에서 백제종합병원 중환자실로 이송됐다.
김인규가 어머니의 몸 상태를 정확히 알게된 것은 어머니가 중환자실로 옮겨지고 나서였다. 의사는 “좌측 고관절은 부러졌고, 엉치뼈 쪽은 깨져서 염증이 심하다”면서 당장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인규는 뒤늦게 어머니의 의무기록지를 확인해봤다. 아픈 어머니는 당시 말은 못 했지만, 끊임없이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낙상사고 이후 체온이 오르고, 혈압은 떨어진 것으로 나와 있었다.
김인규는 분노가 차올랐다. 열이 오르고 상태가 나빠지는 게 보였는데, 왜 그동안 검사를 하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어머니는 중환자실로 가기 전까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 받았다. 진통제인 타이레놀을 처방하고 얼음팩을 준 것이 낙상사고 이후 대처인 것으로 의무기록지에 나와 있었다.
따져 묻고 싶은 지점은 더 있었다. 의무기록지에 따르면, 주치의 이강문(가명)은 고작 일주일 한 번꼴로 김인규의 어머니를 살폈다. 간호사들은 하지도 않은 일을 의무기록지에 적는 등 상습적으로 간호기록을 허위로 썼다. 몸도 일으키지도 못하는 환자에게 산책을 시켰다는 식으로 말이다.
낙상사고 이후 김인규의 모친은 백제종합병원에서 네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2019년 11월 세상을 떠났다.
책임 문제를 두고 병원과 김인규는 여전히 공방을 벌이고 있다. 백제종합병원은 김인규를 상대로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의사 이강문은 노인 환자들을 두고 어디서 무엇을 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강문은 논산노인병원에 없었다. 백제종합병원에 있었다. 그는 논산노인병원에서 노인 환자를 돌본 뒤, 백제종합병원으로 넘어가 불법 진료를 했다.
이강문은 논산노인병원 소속이어서, 백제종합병원에서는 자기 이름으로는 처방을 내릴 수 없다. 그는 백제종합병원 소속 의사인 김상규(가명) 이름을 빌려 불법으로 진료를 봤다.
논산노인병원 소속 의사 이강문의 ‘두 집 살림’은 우연한 기회에 드러났다. (2화. 주치의 조작에 엉터리 처방.. 환자는 ‘질식사’)
2017년 5월 뇌경색을 앓던 A 환자가 백제종합병원에서 질식사했다. A 환자 보호자는 의무기록지를 보다가 주치의 표시란 ‘이강문’이 아닌, ‘김상규.’가 적힌 걸 발견했다. 특이하게 이름 뒤에 점(.)이 붙어 있었다.
집중치료실 입실동의서나 간호정보 조사지에도 주치의가 모두 ‘김상규.’으로 적혔다. 간호사와 협진을 본 의사까지 의무기록지를 허위로 쓴 것이다.
의료법 제22조 3항에 따르면 의료인은 진료기록부 등을 거짓으로 작성하거나 고의로 사실과 다른 내용을 기록해서는 안 된다.
논산노인병원 소속 의사 이강문은 요일을 가리지 않고 백제종합병원으로 출근했다. 이는 2017년 1월 백제종합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김인규의 어머니 의무기록지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2017년 2월부터 6월까지 이강문을 뜻하는 ‘김상규.’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십여 차례 등장한다. A 환자 사례처럼, 이강문은 김상규 이름으로 백제종합병원에서 주치의 노릇을 했다.
이런 불법 행위는 병원 측의 지시 없이는 불가능하다. 병원 측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이강문을 논산노인병원 소속 의사라고 신고한 채, 백제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보게 했다.
결국, 이강문이 백제종합병원에서 활동하는 동안에는 논산노인병원의 노인 환자들은 방치된 셈이다.
‘왜 병원은 이런 불법 행위를 했을까.’
바로 돈 때문이다. ‘의사 이강문의 이중생활’은 논산노인병원-백제종합병원 모두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일이다.
논산노인병원은 의료인을 부풀려 신고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를 더 받을 수 있다. 백제종합병원은 의사 인건비를 덜 쓰면서 진료비를 벌었다. 이렇게 벌어들인 두 병원 수입의 근본 바탕은 당연히 국민 세금, 국민건강보험에서 나오는 요양급여다.
요양병원인 논산노인병원이 돈을 버는 구조를 알면 이해가 더 쉽다.
요양병원은 입원환자 수에 비례해 수익을 낸다. 환자 수와, 입원 기간이 늘어나면 병원이 받는 요양급여도 늘어난다. 진료 행위에 따라 수가를 받은 ‘행위별 수가제’를 따르지 않고, 환자의 입원일수에 따라 비용을 청구하는 ‘일당 정액수가제’를 따른다.
즉, 인력과 비용을 ‘덜’ 쓸수록 ‘더’ 버는 구조인데, 이는 의료의 질이 떨어트리는 주요 배경이기도 하다.
요양급여를 결정하는 또 하나의 변수는 의료인 수다. 요양병원은 의료인을 많이 등록할수록 요양급여를 더 받는다. 정부는 병원이 의료인을 적게 고용한 채 환자만 늘리는 걸 막으려는 취지로, 의료인을 많이 고용할수록 더 많은 요양급여를 지원한다. 의사, 간호 인력 확보수준에 따라 요양급여를 차등 지급한다.
병원은 이렇게 ‘의료인 등록은 논산노인병원에, 불법 진료는 백제종합병원에서’ 방식으로 국민 세금을 자기들 주머니로 챙겼다. 이런 꼼수와 불법이 공식적으로 확인되면, 두 병원은 부당수익을 돌려줘야 한다.
사실상 노인 환자 70명당 의사 1명 진료… “야간 당직 의사 없어”
이재효 논산노인병원장은 앞서 밝힌 문제와 의혹에 대해 지난 1월 11일 이렇게 말했다.
“시립병원(논산노인병원) 환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시립병원 의사가 백제종합병원에서 일하는 건 아무 문제 안 돼.”
이 원장은 논산노인병원 관련 의혹 전반에 대해 부인하면서 ‘의사 쪼개기’가 법적으로 문제없다고 주장했다. 의사 한 명이 요양병원인 논산노인병원과 백제종합병원을 오가며 진료를 봐도 괜찮다고 했다.
이 원장의 주장대로, 의사 한 명이 두 병원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한 병원에서 20시간 이상 일하더라도 다른 병원에서 20시간 미만 일한다고 신고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의사 이강문의 사례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는 논산노인병원에서만 일한다고 신고하고 백제종합병원에서도 일했다. 이 과정에서 병원은 의사 면허를 대여하도록 하고, 간호사에게는 의무기록지를 허위로 쓰라고 했다.
“야간이라도 응급상황 터지면 백제종합병원 의사가 대신 뛰어오면 되니까 (논산노인병원에 당직 의사가 없어도) 괜찮아.”
하루 평균 입원환자가 300명 이하 규모의 요양병원은 응급상황을 위해 의사 1명을 무조건 당직 인력으로 두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재효 병원장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백제종합병원 야간 당직 의사가 논산노인병원 야간 당직을 대신 서기도 한다고 밝혔다.
환자 진료를 하지 않는다고 밝힌 이재효 병원장을 제외하면 논산노인병원 소속 의사는 2명. 신경과 의사 이강문, 송서혁(가명)은 일주일 중 절반은 백제종합병원에서 일하고, 나머지 절반은 논산노인병원에서 일한다.
의사 두 명이 격일로 출근한다면, 논산노인병원에 입원해 있는 70명에 달하는 노인 환자는 하루 평균 의사 한 명이 책임지는 셈이다.
김인규는 논산노인병원과 백제종합병원의 여러 문제와 의혹을 지난 2019년 5월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공익신고했을 때 구체적인 자료가 필요하면 전화로 요청해달라고 했지만, 관심이 없더라고요. 보건당국은 물론이고,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논산시와 논산보건소 모두 (자료 요청) 전화를 하지 않았어요. 저에게 증거를 가져오라고 합니다.”
신고 내용을 전달받아 조사를 진행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논산노인병원 쪽의 요양급여 부당청구에 대해 언급조차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공익신고 내용에 대한) 수사기관의 수사결과 등이 보건복지부로 통보되면 필요한 행정조치 등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논산시도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고 김인규는 전했다. 논산시는 논산노인병원의 설립 주체임에도 “(불법) 증거를 가져오라”는 말만 반복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