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모습의 빌라가 빽빽하게 들어선 경기도 안산시 한 주택가. 줄지어 주차된 차로 인해 운전으로 골목길을 지나기 힘들었다.

지도 애플리케이션에 방문지를 검색하고도 한참 헤매다 벽에 손글씨로 쓰인 주소를 보고 겨우 그곳을 찾을 수 있었다. ‘인천공항 어느 가족’ 루렌도 가족의 거처다.

집안에 볕이 드는 시간이 하루 1시간은 될까. 방 세 개에 20평 남짓 규모의 집은 어두웠다. 비가 오면 침수가 걱정되는 반지하에 여섯 식구가 살림을 차렸다.

반지하는 한국만의 독특한 주거 공간 아닌가. 봉준호 감독도 한국의 반지하를 뜻하는 영어 단어를 찾지 못해 힘들었다는 그곳에 앙골라에서 온 여섯 식구가 산다.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루렌도 가족의 집 ⓒ이명선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초인종을 누르자마자 루렌도 부부가 문을 열고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루렌도가 한국어로 또박또박 인사를 건네자 하얀 이가 어두운 반지하에서 환하게 빛났다.

루렌도의 부인 보베테는 기자를 와락 껴안았다. 방에서 나온 네 아이는 쭈뼛쭈뼛 한국어 실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각자의 방식으로 기자에게 반가움을 표시했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29만 원 반지하 집.

인천국제공항 환승 구역에서 288일간 먹고 자던 것과 비교하면 그나마 나은 공간이다. 주변의 도움으로 여섯 식구가 몸을 누이는데 필요한 금액을 마련했다.

가재도구는 전국 곳곳에서 도착했다. 대부분 중고제품이었다. 누군가는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을 기증했고, 어떤 이는 새 출발을 하는 루렌도 가족을 위해 집들이 선물로 사줬다.

선물 중에는 에어컨과 제습기도 있다. 장롱과 서랍장 뒤로 검은 그림자처럼 곰팡이가 번지기 시작하자 루렌도를 돕는 한 한국인의 도움으로 에어컨을 설치했다. 안산지역자활센터도 루렌도 가족의 사정을 듣고 제습기를 기증했다. 보베테는 자신들을 챙겨주는 친구들이 고맙다며 가슴 위로 두 손을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보베테가 안산글로벌청소년센터에서 배우고 있는 한국어 수업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명선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루렌도 가족은 비록 아프리카를 떠났지만, 아프리카 속담으로 알려진 이 말을 자주 떠올린다. 이 말은 한 아이가 온전하게 성장하는 데는 이웃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루렌도 가족은 안산시글로벌청소년센터, 한국디아코니아, 난민과함께공동연대, 아산복지재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 수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다.

반지하의 곰팡이도 루렌도 가족의 달라진 일상을 막진 못했다. 루렌도 가족에게는 자신을 지켜준 친구들이 있었다.

루렌도는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 인천공항에서 노숙하던 시절부터 선물 받은 물건 대부분을 버리지 않았다. 아이들 교육용 책은 차곡차곡 서랍장에 꽂아 두었다. 옷도 계절별로 옷장에 정리했다. 루렌도 가족에게는 이것이 가장 큰 보물이다.

루렌도 부부는 인천공항 노숙 시절 기증 받은 책과 학습 도구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이명선

기자가 루렌도 가족을 찾은 지난 22일은 한국어 선생님이 방문하는 날. 일주일에 두 번,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지닌 전문 강사가 루렌도 집을 찾는다. 오후 2시, 선생님이 올 무렵이 되자 루렌도는 바닥에 놓인 화이트보드를 김치 냉장고 위에 올렸다. 휴지를 뜯어 화이트보드를 하얗게 닦았다. 식탁의 위치를 주방 가운데로 옮겼다. 식탁은 임시 책상이 됐다.

경기도 용인에 사는 한국어 선생님은 우연한 기회에 루렌도 가족의 사연을 접했다고 했다. 루렌도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자원봉사자를 찾는다는 한국디아코니아의 요청 글을 보고 한동안 아이들을 맡아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처음으로 어른이 아닌 아이들을 가르치는 기 아무개 선생님은 직접 어린이용 교육 자료까지 만들었다.

“돌아가면서 어떤 과일을 좋아하는지 말해 볼까요?”

“저는 포도를 좋아해요.”

루렌도 자녀들이 한국어 수업을 받는 모습. ⓒ이명선

싱크대와 냉장고로 둘러싸인 좁은 주방은 금세 교실로 변했다. 어설픈 한국어가 주방을 가득 메웠다. 한국어 수업을 받을 때만큼은 레마(10), 로데(9), 실로(9), 그라샤(7) 네 남매의 출발선은 같다. 셋째 실로를 제치고 막내 그라샤가 손을 들고 먼저 말하기도 하고, 둘째 로데가 오빠 레마를 가르치기도 한다.

루렌도 부부는 그런 아이들을 지켜봤다. 자원 봉사하러 온 선생님을 힘들게 하지는 않을까, 부부는 긴장을 놓지 않았다. 식탁 옆에 놓인 소파에 팔짱을 끼고 앉아 아이들이 선생님 지도를 잘 따르는지,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는지 살폈다. 부부는 ‘수업 감독’ 역할을 하면서 틈틈이 도둑 수업도 받았다. 루렌도 부부의 입이 시종일관 우물거렸다.

그러다 부부가 토론 삼매경에 빠졌다. 프랑스어나 포르투갈어에는 없는 ‘을’과 ‘를’ 조사의 쓰임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가 목소리가 커졌다. 누가 보면 부부싸움으로 여길 듯했다.

조사의 쓰임을 두고 얼굴을 붉히리라 상상 못한 기자는 그 사정을 듣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현재 두 사람은 안산시글로벌청소년센터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루렌도 가족의 책장. 루렌도가 자녀들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이명선

루렌도 가족을 가장 자주 보러오는 사람은 안산시글로벌청소년센터의 박정완 사회복지사다. 그는 루렌도 네 아이의 한국인 학부모 역할을 하는 동시에 만능해결사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한국어 수업이 한창일 때, 박 씨가 루렌도 집을 찾자 아이들이 “선생님“하며 달려가 안겼다.

현재 네 아이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 본 나이대로라면 레마는 4학년, 로데 실로는 3학년에 입학해야 했지만, 한 학년씩 낮춰 입학했다. 한국어가 서툴고 공항 노숙이 길어진 탓이다. 그라샤는 나이에 맞춰 1학년에 입학했다. 코로나 19 감염 우려로 수업시간은 짧지만, 네 아이는 5월 20일부터 학교에 다닌다.

안산시글로벌청소년센터는 학교와 루렌도 부부 사이에서 다리를 놓는다. 아이들 담임 교사가 학부모에게 전달할 특별한 공지사항이 있으면 센터 소속 박 씨가 대신 듣고 루렌도 부부에게 전한다. 아이들의 학습 과정을 자세히 드는 것도 박 씨다. 박 씨는 종종 루렌도 집을 찾아 아이들의 알림장과 교재를 살피고, 네 아이의 담임 선생님과 종종 통화를 한다.

| “제가 담임 선생님들과 통화해보면, 아이들이 수학 같은 과목은 잘 하는 편인데, 한국어를 이해 못 하면 안 되는 과목은 어려워한다고 해요. 3학년 레마는 한국어를 이해해야 풀 수 있는 문제가 많아서, 어려움이 크고요.”

코로나19 확산으로 루렌도 자녀들이 온라인 수업을 받게 되자, 주변 사람들이 루렌도 가족에게 PC와 태블릿 PC 등을 기증했다. ⓒ이명선

사실 코로나 19로 학습의 어려움은 컸다. 온라인 수업을 위해 이곳저곳에서 어렵게 PC와 태블릿 PC를 구했지만, 온라인 수업으로 한국어를 배우기는 힘들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보조하지 않는 한, 아이들은 멍하게 화면을 들여다보는 일이 잦았다. 학습 프로그램에 로그인하는 것부터 막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등교를 시작하면서 그나마 사정이 나아졌다. 학교 친구들이 루렌도 아이들을 반갑게 맞았다. 막내 그라샤는 반 친구들이 자신에게 다가와 “머리를 만져봐도 돼?“라고 물은 후로 친구들과 가까워졌다. 같은 반인 로데와 실로에게는 과외선생님을 자처하는 든든한 친구들이 많다. 첫째 레마에게도 친구들이 하나둘 씩 생기고 있다.

매일 등교를 한다는 기쁨도 잠시, 최근 ‘1주일에 한 번 등교’로 지침이 바뀌었다. 코로나19가 다시 확산하면서, 맞벌이 부부, 조손가정, 한부모 가정부터 긴급돌봄을 실시하기로 하면서 등교 수가 줄었다. 루렌도 부부는 그 후로 첫째 레마 걱정을 많이 한다. 나이가 찼는데 한국어 배울 기회를 놓치기 때문이다.

“레마가 나이가 제일 많아서 빨리 한국어를 배워야 하는데, 듣고 말할 기회가 줄어서 걱정이에요. 언어가 늦으면, 위축될 수도 있고요.”

고혈압으로 인한 합병증을 앓는 루렌도는 하루 세 번 혈압 수치를 확인해야 한다. 혈압을 재는 루렌도 옆에서 막내 그라샤가 휴대전화를 가지고 놀고 있다. ⓒ이명선

아직 난민 자격을 얻지 못한 것도 걱정이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이 인천공항 출입국 외국인청장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루렌도 가족은 난민 심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항소심 판결이 확정됐지만, 난민 심사를 거쳐야만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난민 면접일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그때까지 루렌도 가족은 기타 비자 ‘G-1’를 주기적으로 연장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7월 3일부터 루렌도 부부가 일할 수 있다는 점이다. 루렌도 가족과 같은 난민신청자들이 G-1 비자를 받고 6개월이 지나면 ‘체류자격 외 활동허가‘를 받아 취업 활동을 할 수 있다. 루렌도 부부에게 6개월이 되는 시점이 7월 3일이다. 난민신청자는 도박장과 같은 사행업소나 유흥주점 등을 제외하고는 구직활동을 할 수 있다.

루렌도는 과거 앙골라에서 프랑스어 강사와 택시기사로 일한 경력이 있다. 보베테는 은행에서 창구 직원으로 일했다. 무슨 일을 했는지 이젠 별로 중요하지 않다. 주머니 사정 탓에 일자리를 가리기 어렵다. 루렌도는 폐기물재처리업체에서 일할까 고민 중이다. 출입국외국인청으로부터 취업 허가를 받으면, 주중은 폐기물재처리업체가 있는 경기도 화성에 머물 계획을 품고 있다.

“아이들이 태권도를 배우고 싶어 하는데, 조만간 돈을 벌어서 태권도 학원에 등록시킬 겁니다.”

루렌도 가족이 뼈 해장국집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 ⓒ이명선

인터뷰를 마치고 루렌도 집 주변에 있는 식당을 함께 찾았다. 루렌도 부부는 “우연히 뼈 해장국을 먹었는데 맛이 좋아서, 손님이 찾아오면 그걸 대접한다“고 했다. 뼈 해장국을 먹는 도중, 가게 주인이 서비스라며 아이들 앞에 음료수를 가져다줬다. 웃으며 ”또 오라“고 말했다.

루렌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 부동산업체에서는 반가운 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렌도 가족의 집을 계약해 준 부동산이었다. 아이들이 고개를 내밀어 “안녕하세요” 외치자 부동산에서 어른이 나와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어와 인종이 달라도 마음은 통하는 것처럼 보였다.

해 질 녘, 주택이 촘촘한 골목길에 앙골라에서 온 루렌도 가족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퍼졌다. 루렌도 부부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구절을 다시 떠올렸다.

이제 안산은 루렌도 가족에게 고마운 ’우리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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