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몸을 마음대로 만진 성추행 교사는 200만 원에 죄를 탕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그는 마치 답이 정해진 수학 문제를 풀 듯 강제추행 피해자에게 말했다.
“통상 이런 경우 200만 원에 합의하는 거야.”
성추행 가해 교사는 집요했다. 피해자가 전화를 안 받으면, 번호를 바꿔가며 연락했다. 전화가 안 통하면 문자를, 문자도 안 되면 SNS로 메시지를 보냈다. 부인을 대동하기도 했다. 부인과 함께 피해자가 다니는 학교 앞을 서성이며, 피해자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합의 강요’가
전형적인 ‘2차 가해’라는
사실을 몰랐을까
인천생활예술고등학교에서 30년간 교사로 일한 가해 백 씨 이야기다. 2019년 6월 <셜록> 기사를 통해 백 씨의 문제 행위가 처음 알려졌다. 그로부터 1년 3개월이 흘렀다. 보도 직후 수사가 시작돼 지난 3월 기소가 이뤄졌다. 오는 24일, 백 씨에 대한 1심 선고가 나온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백 씨는 2014년 11월부터 2019년 5월까지 학생과 교사 14명을 상대로 강제추행을 했다. 이들 중 10명은 백 씨의 제자이면서, 사건 당시 10대 청소년이었다. 가장 어린 피해자는 만 15세였다.
<셜록> 기사 대로 남자인 백 씨는 자기보다 어린 남자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동성 간 성추행이 범죄인지 몰랐던 피해자들은 오래 속앓이만 한 채 고발하지 못했다.
‘선배 교사의 짓궂은 장난이겠지.’
‘좀 이상하긴 해도, 선생님만의 친밀함 표현 방식이겠지.’
검찰 공소장에는 백 씨의 범행이 상세히 나온다. 그는 학생의 민감한 부위에 기습적으로 신체 접촉을 하곤 했다. 백 씨가 학교 복도, 교무실에서 후배 교사들을 추행하기도 했다. 교사 중에는 정교사 전환을 원하는 기간제 교사들이 주로 피해를 봤다.
법원은 성추행 교사들에게
최근 실형을 선고하는 추세다
지난 2월 청주지법 형사합의 11부(나경선 부장판사)는 “생리 주기를 적어내면 가산점을 주겠다“며 성적 수치심을 주는 발언을 하고 학생들을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여자중학교 교사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서울북부지법 형사합의 13부(강혁성 부장판사)는 지난 2월, 교실에서 자는 학생의 손등에 입을 맞추거나 귓볼과 엉덩이를 만지는 등 제자 19명을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여자고등학교 교사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성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이 강화되는 추세를 감안하면, 백 씨의 실형 가능성도 높은 편이다.
수사 직후 백 씨는 혐의 자체를 부인했었다. 피해 교사들이 경찰에 피해 사실을 고백하기 시작했을 때만 하더라도, 백 씨는 “나는 그런 적 없다“며 잡아뗐다. “피해자가 피해 일시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 않느냐“고 항변하기도 했다.
피해를 고백하는 사람이 늘자 백 씨는 태도를 바꿨다. 경찰이 인천생활예술고등학교 전교생을 상대로 피해 조사를 한 결과, 재학생 10명이 백 씨에게 강제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그때부터 백 씨는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합의금을 줄테니 봐달라“고 읍소했다.
일부 피해자는 백 씨와 합의를 했다. 백 씨는 합의를 거부한 피해자에게 ’300만 원 특별 합의‘도 제안했다.
이때부터 피해 교사 A 씨는 탄원서를 쓰겠다고 결심했다. A 씨는 경찰 수사 단계부터 백 씨 측에게 “합의할 생각이 없으니 전화하지 말라“고 했지만, 백 씨는 계속 A 씨에게 연락해 괴롭혔다.
“죄송합니다.”
“백 선생님. 이거 2차 가해인 거 아세요? 전화하지 말라고요. ‘죄송하다’고만 하시지 마시고, 뭘 잘못했는지 말씀해보세요.”
백 씨 변호인도 집요한 합의를 시도했다. 그 탓에 A 씨는 신경정신과 약을 먹으며 지냈다.
해당 변호사는 공판에 참석한 <셜록> 기자에게 소리를 치기도 했다. “피해자들이 대부분 합의를 한 것이 사실이냐“라고 묻는 기자에게 “가해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동을 하지 말라, 당신같은 딸이 있다“고 말했다.
“유니세프 등 불우이웃돕기 단체에 다른 피해자분들과 같은 금액으로 기부를 해서 더욱 반성하고자 합니다.”
백 씨 변호인은 최근 기부를 언급했다. 그는 “A 씨가 합의금을 받지 않으면, 불우이웃 돕기에 돈을 대신 내는 것으로 속죄를 표시하겠다“는 SNS 메시지를 A 씨에게 보냈다.
성범죄 가해자가 사회 단체에 돈을 기부하는 건, 형량을 줄이려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일부 법관이 성범죄 가해자들이 낸 사회단체 기부 영수증을 양형기준상 감경요인으로 인정하면서 이런 일이 생기곤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A 씨는 다시 법원에 탄원서를 냈다.
“저는 피해 상황을 자꾸 상기하게 하는 그 연락이 싫었습니다. 신경정신과에 가서 약을 처방받으며 불안감을 조절하곤 했습니다. 무거운 처벌을 바랍니다. 판사님.”
인천지방법원에 백 씨의 처벌을 원하는 탄원서를 낸 사람은 또 있다. 10년 전 인천생활예술고를 졸업한 B 씨다. 2010년에 학교를 졸업한 B 씨는 앞서 <셜록>과의 인터뷰에서 “백 씨가 남학생들을 오랜 기간 성추행해왔다“고 밝혔다.
B 씨는 “수사 기관이 파악한 피해 규모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며 법원에 강한 처벌을 요구했다.
졸업생 피해를 감안하면,
피해 규모는 빙산의 일각이다
“백 씨에게 당한 학생들은 훨씬 많을 겁니다. 저를 비롯해서 2010년 졸업한 학생들만 따져도 10명은 될 겁니다. 10년 넘게 학생들을 성추행한 그의 죄는 절대 가볍지 않습니다.”
백 씨는 제자들에게는 혐의를 인정한 적 없다. 그는 작년 10월, 인천생활예술고 재학생들에게 “자신의 행동이 친밀함과 사랑의 표현이었지, 고의나 의도한 행동이 아니었다“면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글을 공개적으로 쓰기도 했다.
백 씨에 대한 선고공판은 오는 24일 오후 2시 인천지법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