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녀를 몰랐습니다. 얼굴 한번 본 적도 없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먹어봤다는 그녀의 ‘밥 한 끼’ 먹어본 적도 없습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그녀를 알았습니다.

“춥고 외로운 투쟁을 해본 사람 치고, 유희 동지의 밥을 안 먹어본 사람이 있을까요?”(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추모의 글 중에서)

그런데 이상합니다. 그게 더 미안했습니다. 얻어먹어서 미안한 게 아니라, 얻어먹은 적이 없어서 미안했습니다. 그녀가 “춥고 외로운 투쟁을 해본 사람”들의 곁에서 밥을 짓고 나눠온 30년 세월. 그 세월 동안 저는 그녀의 ‘현장’에 있어본 적 없다는 게 부끄러웠습니다.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그녀의 밥차가 찾아갑니다. 2017년 추정. ⓒ유희 페이스북

그녀의 이름은 ‘유희’입니다. 그녀는 노점상이었습니다. 30년 전인 1990년대부터 그녀는 “춥고 외로운 투쟁”을 하는 사람들과 밥을 나눴습니다. 노동자들만 찾아다닌 게 아닙니다. 쪽방촌과 판자촌을 다니며 음식과 연탄을 나눴습니다. 전국의 요양원을 다니며 목욕봉사와 ‘노래’ 봉사를 한 세월도 20년이 넘습니다.

그녀의 식당은 언제나 ‘길’ 위에 있었습니다. 숨 막히게 더운 여름날. 혹독하게 추운 겨울날. 햇볕과 칼바람을 피할 길 없이 길 위에 남은 사람들을 위해 그녀는 밥을 지었습니다.

권리를 빼앗기고 존엄을 짓밟힌 사람들 곁으로, 그녀는 밥차를 몰고 나타났습니다. 일터에서 쫓겨난 노동자들, 삶터를 빼앗긴 빈민들, 참사의 진실을 밝히자는 부모들, 우리 산과 강을 지키자는 주민들,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자는 시민들을 위해 그녀는 밥을 나눴습니다.

밥값은 따로 없습니다. 그냥 “잘 싸우면” 됩니다.

“먹어야 싸우지! 싸워서 이겨야지!”

여기까지만 보면 그녀를 엄마(?)나 천사(?) 같은 이미지로만 상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땡. 틀렸습니다. 그녀는 ‘욕쟁이’ 큰언니입니다. 경찰과 용역들도 겁먹게 만드는 ‘싸움짱’이고요, 원칙 앞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는 ‘강철여인’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사람들의 배꼽을 노리는 ‘코미디언’이고, 무대를 찢어버리는 가창력과 퍼포먼스의 ‘가수왕’입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지나서야, 외상 밥값을 갚는 마음으로 그녀의 삶 이야기를 뒤쫓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7월 10일부터 8월 13일까지, 열다섯 명의 사람을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그녀의 구술이 담긴 문서와 영상, 녹음 파일도 구해서 찬찬히 읽고 보고 들었습니다. 그녀가 살아온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서적과 논문 자료들도 여럿 읽고 참고했습니다.

“밥은 하늘이다” 유희의 묘비명 ⓒ셜록

하늘을 짓는 여자, 유희.

그녀의 묘비명은 “밥은 하늘이다”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밥을 짓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을 짓는 사람입니다. 땅에서 발 디딜 곳 없는 사람들에게, 평등한 하늘을 나눠준 사람입니다.

가장 낮은 곳을 지키며, 가장 높은 밥을 지었던 그녀의 삶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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