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도 없는 밤은 어두웠습니다

4km 가면 강물이 바다와 만나는 부산 엄궁동 낙동강 동쪽 하류, 누군가 여자 시신을 강변 갈대숲에 버리고 사라졌습니다. 어둠은 모든 가리고 숨겼습니다. 1990 1 4 새벽에 발생한낙동강 부녀자 살인사건입니다. 경찰은 한참 동안 범인을 검거하지 못합니다.

그로부터 1 10개월이 지난 1991 11 8 오후, 낙동강 서쪽 부산 명지동에 살던 최인철(당시 29) 바다 양식장에서 일하고 항구로 돌아왔습니다. 경찰이 최인철을 맞았습니다.

잠시 경찰서로 가서 이야기 합시다.”

잠시 영원처럼 길었습니다. 최인철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합니다. 그에겐 아내와 일곱 아들, 딸이 있었습니다. 며칠 , 일곱 아들은 포승에 묶인 아버지를 TV뉴스에서 봅니다. 뉴스는 아버지를 두고 살인 혐의자라고 했습니다.

최인철을 잡아들인 경찰은 같은 저녁, 이번엔 장동익(당시 32) 집으로 향합니다. 공장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와 저녁 먹을 준비하던 장동익을 경찰이 불렀습니다. 장동익은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잠깐 나갔다 올게.”

잠깐역시 영원처럼 길었습니다. 장동익은 자신이 살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그에겐 아내와 18개월 딸이 있었습니다. 며칠 , 이웃은 장동익의 늙은 어머니에게아들 TV 나온다 말했습니다. TV뉴스는 아들을 살인 혐의자라고 소개했습니다.

당시 뉴스는 진실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남자는 살인범이 아닙니다.

부산 사하경찰서는 최인철과 장동익을낙동강 부녀자 살인사건 범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손찌검과 발길질은 물론이고 물고문을 수차례 자행했습니다. 검찰은 경찰의 조작을 검증하지 못했습니다. 범죄를 입증할 명확한 물적 증거가 없는데도 법원은 사람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1990년대 초반,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한 문재인 변호사가 2 때부터 장동익, 최인철을 변론했습니다. 2 법원에 이어 대법원도 무기징역을 확정했습니다.

살인 누명을 장동익, 최인철의 삶은 무너졌습니다. 장동익의 가족은 해체됐고, 최인철의 가족은 한동안 뿔뿔이 흩어져 살았습니다. 사람은 감형을 받아 2013 석방됐습니다.

사람을 변론했던 문재인 변호사는 정치인이 됐습니다. ‘친구 노무현 유산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세상밖으로 나온 장동익, 최인철은 억울한 누명을 벗겨 사람을 찾아 나섰습니다. 사람은 2016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를 만났습니다. 또한 운명일지 모릅니다.

작년 9, 문재인박준영장동익최인철은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자리에서 정치인 문재인은 장동익, 최인철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30년가량 변호사로 일했는데, ( 사람 사건은) 가장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박준영 변호사는 지난 5 8 장동익, 최인철의 재심청구서를 부산지방법원에 접수했습니다. ‘재심시리즈 3부작‘ – 무기수 김신혜 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 이은 새로운 재심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팀이 더욱 커졌습니다. 김예원, 박성철, 신윤경, 양승철, 허정택 변호사가 힘을 보냅니다.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 진범을 체포했던 황상만 군산경찰서 형사반장도 나섭니다.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진실 규명을 위해 노력하는 북한 이탈 주민 홍강철도 함께 합니다.

사건을 세상에 처음 알린 문상현 <일요신문> 기자와 진실탐사그룹 <셜록> 박상규 기자는 글로 싸웁니다. 독자 여러분과 함께 다시 진실의 문을 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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