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진주 방화·살인 사건에 국가 책임이 있다는 내용의 프로젝트 <여름은 오지 않았다>를 연재했습니다. 진주 방화·살인 사건은 치료 중단 후 방치된 조현병 환자 안인득이 자기 집에 불을 내고, 화재경보기 소리에 놀라 대피하는 주민을 아파트 비상계단에서 칼로 찌른 사건입니다. 2019년 4월 17일에 일어난 이 사건으로 5명이 사망했습니다.

진주 방화·살인 사건을 취재하면서 여름을 보내는 동안 마음 한쪽에 빚처럼 쌓인 생각이 있었습니다. 바로 안인득이 되지 않은 수많은 조현병 환자에 대한 이야기도 다뤄보고 싶단 마음이었습니다.

‘1%’.

조현병 발병률입니다. 100명 중 한 명에게 발생하는 병인 만큼 우리 주변에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조현병 환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모두 잠재적 범죄자가 아닙니다. 안인득의 생애를 되짚어 올라가 보니, 그조차 처음엔 열심히 일해서 생계를 유지하고 싶은 개인이었습니다.

지난여름을 ‘어떻게 하면 안인득을 막을 수 있었을까’에 집중하면서 보냈습니다. 그러면서도, ‘안인득이 아닌 다른 조현병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소망을 간직했습니다.

이 소망을 실현할 기회는 가을에 찾아왔습니다. 지난 9월 진주 방화․살인 사건을 취재하던 중 인연을 맺은 이영렬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 센터장이 영화에 출연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이영렬 센터장은, 영화에 조현병 환자를 아버지로 둔 기자가 등장하는데 그 역할을 제가 맡아줄 수 있겠냐고 했습니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평범한 조현병 환자의 모습을 조명하고, 이들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기자인 제게 연기는 익숙한 전달 방식이 아닙니다. 하지만 고민 끝에 해보기로 했습니다. 방식은 다르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안인득이 아닌 조현병 환자의 삶’이라는 점에서 같습니다.

단편영화 <F20, 그 이후>에 출연하게 된 계기와 과정을 여러분께 전하려 합니다. 조현병 환자를 형으로 둔 양수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어머니가 조현병 환자였던 이영렬 센터장이 각본을 썼습니다. 제가 연기하는 주인공 ‘이보미’ 기자 캐릭터에는 그의 어린 시절 모습이 투영됐습니다.

연기는 처음이라 모든 게 낯설기만 한 이 여정, 여러분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우리 곁에 존재하는 모든 ‘1%’를 위해, 레디-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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