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동안 한집에 살고 있는 50대 중년 부부가 있다. 부부는 빌라 테라스에 작은 텃밭을 꾸몄다. 함께 과일나무와 채소를 기르고, 손을 꼭 잡고 시장에 간다. 배우자로서 서로 돌봄과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2003년 겨울에는 혼인신고서도 썼다.

이들이 가족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부부는 혼인신고서를 미처 접수하지 못했다. 액자에 걸어 간직하고 있을 뿐. 거실 벽 한 쪽에는 부부의 첫 제주도 여행 사진이 붙어 있다. 야자수 앞, 어깨를 겹쳐 다정하게 선 두 남자의 앳된 얼굴이 미소 짓고 있다.

한 남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식상한 질문을 던졌다.

“혼인평등법이 시행된다면, 그날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남자는 뻔한 질문에 웃으며, 당연한 대답을 내놨다. 한 마디 한 마디 이어갈수록 얼굴이 상기됐다.

“구청에 혼인신고 하러 가야겠죠. 아마 기념일이 하나 또 생기겠죠. 우리가 법적으로 부부가 된 날.

가족을 구성할 권리. 누군가에겐 당연하지만, 어떤 이들에겐 넘을 수 없는 한 줄의 선이다. 남녀가 만나서 아이를 낳고 가족을 구성하는데 무슨 권리가 필요하냐는 ‘정상 이성애 규범’ 속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법에 관한 자유는 마치 공기 같다고 한다. 가볍고 무색무취에 심지어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공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법적 권리는 존재 자체를 알아채지 못하는 너무 당연한 삶의 일부다. 그러나 성소수자, 가까운 친구 또는 룸메이트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매순간 절실히 깨닫는다. 서로 돌봄을 약속한 사람과 ‘식구’로 10년 넘게 지내고 있어도 가족으로 나설 수 있는 권리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그런데도 법적 테두리 밖, 넘을 수 없는 단 한 줄의 선 밖에서 그들은 오늘도 열렬히 사랑한다. 언젠가 세상이 바뀔 거라고 희망을 놓지 않으며.

가족을 구성할 권리조차 없는 사람들을 위한 법안이 지난 5월 발의됐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가족구성권 3법’이다. 혼인평등법, 생활동반자법, 비혼출산지원법 3가지 내용이 담겼다.

취재원 섭외에 한 달을 보냈다. 소수자 가족을 설득하는 작업은 조심스러웠다. 가족이라는 개인의 영역에 무리하게 비집고 들어가는 무례한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

열 손가락을 다 접어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소수자 가족을 찾아 연락했다. 당연히 인터뷰를 거절한 숫자도 열 손가락을 넘는다. 인터뷰를 수락했다가 돌연 번복하는 이들도 있었다. 대체로 할 말은 많지만, 의제가 아닌 개인의 이야기를 드러내기 조심스럽다는 이유였다. 혼자가 아닌 가족이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카메라 앞에 나서 준 취재원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가족이 아니라면’ 프로젝트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어렵게 꺼낸 아주 사적인 이야기를 귀하게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이들은 화려하지도, 특별하지도, 이상하지도 않은 평범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다만, 당신들과는 다르게 보장받지 못하는 권리가 너무나도 많다고.

이제 우리는 지금껏 넘지 못했던 ‘단 한 줄의 선을 넘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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