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농부들은 스스로를 ‘유령농부’라 부른다. 내 땅이 아닌 남의 땅에서 농사를 짓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실제 농사를 짓고도 ‘농민’은 될 수 없는 본인들을 자조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 나라의 농지 위에 떠도는 유령은 따로 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이 땅을 지배하고 있는 유령. 불로소득이란 ‘욕망’과 개발이익이란 ‘탐욕’의 유령.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한 통의 제보 메일을 계기로 이 유령의 실체를 찾기 시작했다. 장문의 메일에서 한 글자 한 글자 간절함이 느껴졌다.

“기후위기 시대에 중요성이 날로 커져가는 친환경농업이 지속될 수 있도록, 친환경농사를 일구는 임차농들의 노력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취재요청드립니다.”

기후위기와 친환경농업, 그리고 임차농까지. 과거 고위공직자들의 불법 농지 소유 문제를 취재한 경험이 있었지만,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 조합이었다. 메일을 다시 꼼꼼하게 읽어봤다.

“전국 곳곳에서 땅을 빌려 농사짓는 임차농들이 하루아침에 쫓겨날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LH사태 이후 정부가 직불금 부정수급 단속을 위해 경영체등록정보와 여러 행정 정보를 대조하는 단속을 시행하자, 지주들이 친환경 임차농에게 친환경인증을 포기할 것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농지 투기꾼을 잡겠다는 취지로 직불금 부정수급 단속이 강화됐지만, 피해는 애꿎은 친환경농업 임차농들에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

농사는 짓지 않지만 땅을 갖고 싶은 사람과, 땅은 없지만 농사를 짓고 싶은 사람. 대한민국 법은 누구 편일까?

셜록은 친환경 농업인들이 땅을 소유하지 못해 겪은 불합리한 현실을 집중 취재했다. ⓒ셜록

‘경자유전(耕者有田), 농지는 농사 지을 사람만 가질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원칙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경자유전의 원칙이 무너진지 오래다. 비농업인으로 농지를 소유한 부재지주(不在地主)가 이미 한계치를 넘어섰다. 2015년 기준 전체 경지면적 168만㏊ 가운데 비농업인이 소유한 농지는 약 44%로 집계된다.(출처 : <‘농지법’상 예외적 농지소유 및 이용 실태와 개선과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채광석 연구위원, 2019년)

고령화와 영농 승계 상황을 고려할 때 약 10년 뒤 우리나라 전체 농지 소유자의 84%가 비농업인이 될 거라는 예측도 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친환경 농업인들이 땅을 소유하지 못해 겪은 불합리한 현실을 집중 취재했다. 실제로 지주의 압박으로 친환경인증을 취소한 사례도, 지주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직불금 부정수급을 눈 감아준 사례도 만났다. 한 달 동안 경기 파주, 안성, 광주, 충북 청주 등을 돌아다니며, 친환경 농업인들의 피해를 두 눈으로 확인했다.

친환경농업의 가치는 갈수록 더 중요해지고 있다. 기후위기 속 농민들이 친환경 농사를 더 많이 지으면 지을수록 땅은 살아난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친환경 농업은 탄소배출을 감량하고, 생물다양성을 복원시키기 때문이다. 친환경 농업은 그 자체로 지구를 살리는 일이다.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려는 친환경농업이 싹도 틔우기 전에 뽑혀 나가고 있는 현실. ‘유령의 땅’에서 셜록이 목격한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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