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당할 게 뻔한 기획 보도여서 동료에게 일을 맡기는 게 미안했다. 맞은편에 앉은 김보경 기자가 코맹맹이 소리로 말했다.
“제가 할게요.”
고소 공포보다 막힌 코 뚫는 게 급해 보였다. 내가 “괜찮겠냐?”고 물자 김 기자는 또 짧은 코맹맹이 소리로 “아니, 뭐…” 하며 웃었다.
비염이 있는 김 기자의 코맹맹이 소리를 참 많이도 들었다. 출장 가는 ktx 안에서, 함께 밤샘하는 작업실에서, 회의실에서, 술집에서, 기사 다시 쓰라는 내 요구에 제대로 항변도 못하고 어버버 할 때… 김 기자는 어김없이 코를 훌쩍였다.
그토록 많이 들었지만, 그날의 “아니, 뭐…” 콧소리는 유난히 내 마음에 파장을 일으켰다. 코는 뚫어주지 못하더라도 <셜록>에서 일하는 동안엔 취재의 길이라도 잘 열어줘야겠다고, 나는 제법 꼰대 같은 생각을 했다.
상대는 <동아일보>, 하나고등학교, 검찰, 하나은행 등인데 어떻게 부담스럽지 않겠나. 미안하면서도 믿음이 가는, 참으로 복잡한 마음이었다. 기획 ‘입시에서 채용까지, 동아 가족이 남긴 그림자’는 그렇게 출발했다.
2017년 여름, 김보경 기자를 처음 만났다. <셜록>과 카카오가 탐사보도 기자학교를 열고 교육생을 모집할 때였다. 인생에선 우연한 타이밍이 중요할 때가 있는데, ‘김보경과 친구들’이 그 기회를 잡았다.

이들은 자기들이 면접 마지막 순번이라며 오히려 내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거꾸로 면접’이 진행됐고, 거의 만담 수준의 온갖 말들이 오갔다. 그땐 김보경에게 비염이 있다는 걸 몰랐다. 김보경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김보경은 대학 3학년이었다.
기자학교도 끝나고 가을도 가고 겨울도 갔다. 2018년 2월, 우연한 타이밍을 잡아 나와 만담을 즐겼던 ‘김보경의 친구들’을 서울 합정역 인근으로 불렀다. 일단 고기부터 왕창 먹였다. 난 다 계획이 있으니까, 일단 배불리 먹였다.
2차 맥줏집에 가서 내가 친구들에게 툭 던졌다.
“여기서 누가 제일 성실해요?”
친구들은 모두 “김보경이 제일 어린데, 가장 성실하다”고 말했다. 오케이, 이걸로 고깃값이 아깝지 않게 됐다. 이때도 김보경은 별로 말을 하지 않았기에 나는 코맹맹이 소리를 듣지 못했다. 김보경은 종종 코만 훌쩍였다.
얼마 뒤 김보경에게 직접 전화했다. 내가 “나중에 얼굴 한 번 보자”고 했더니, 김보경은 “지금 보자”고 했다. 그날 만나자는 뜻은 아니었는데, 김보경은 고양시에서 내가 사는 서울 마포까지 튀어왔다. 정말 ‘당장 튀어왔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게 총알처럼 날아 왔다.
김보경은 “주말에 카페 알바를 하며 언론고시를 준비한다”고 했다. 내가 물었다.
“주말에 일하면 월 얼마를 받습니까?”
“30만원 정도요.”
“내가 그 돈 줄 테니까… <셜록>에서 알바 해볼래요?”
2018년 3월, 김보경은 <셜록>에서 ‘왓슨’과 주로 소통하는 알바를 시작했다. 그때 김보경의 꽤 심한 코맹맹이 소리를 처음 들었다. 약도 없다는 불치병, 비염이 분명했다.
알바를 해도 서로 얼굴 볼일은 많지 않았다. 나는 때 되면 급여만 지급했다. 친구들이 가장 성실하다고 했으니, 일은 믿고 맡겼다. 김보경에게 회사 메일 관리를 맡기고 급여도 올려줬다.

<셜록>이 양진호 위디스크 회장을 보도할 때, 김보경이 내 ‘오더’를 받고 기사 하나를 썼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어쨌든 뭘 쓰긴 썼다. 첫 기사여서, 당연히 엉망이었다.
해가 바뀔 무렵 회사 메일을 관리하던 김보경이 사고(?) 하나를 쳤다. 김 기자가 조심스럽게 전화로 걸어, 공기 반 코맹맹이 반 소리로 말했다.
“저기 동물권단체 <케어>에서 몰랠 동물을 안락사 한다는 제보가 왔는데요. 이미 제가 좀 알아봤어요…”
어쭈, 이 친구 봐라. 그 좋은 제보를 받고선 선배들에게 공유하기 전에 본인이 꽉 움켜쥐고 밑취재를 진행한 거다. 화가 나기는커녕 오히려 기특했다. 내 눈치를 살피는지 김 기자는 코맹맹이가 더 심해진 훌쩍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케어> 문제… 제가 취재해봐도 될까요?”
회원과 회사 메일 관리하던 알바생이 제보를 움켜쥐고 취재를 허락해 달라는 상황. 이걸 거부하면 무능한 사장이다. 나는 오케이 했다. 김보경의 취재를 위해 때로는 운전을 해줬고, 취재비를 지원했다. 함께 밤샘을 하기도 했다. 비밀 안락사의 책임자 박소연 <케어> 대표는 김보경에게 무너졌다.
이쯤되면 더 볼 것도 없다. 알바생 김보경은 수습기자가 됐다. 그때부터 나랑 숱하게 대구를 오가며 영남공고를 취재했다. 영남공고 허선윤 이사장은 구속됐고, 학교는 정상화 됐다. 김 기자가 많은 힘을 보탰다. 내가 준 건 월급과 법인카드뿐이다.

2019년 9월, 김보경 기자는 수습을 마치고 <셜록>의 정식 기자가 됐다. 2021년 4월, 김 기자는 나와 함께 <동아일보>, 하나고, 검찰, 하나은행을 상대로 한 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고소당할 확률이 99.999 정도 되는 사안이다. 상대방은 딸 문제를 거론하면 대개 그렇게 했다. 5일 아침, 마지막으로 김 기자에게 메신저로 물었다.
“집에선 걱정 안 하십니까?”
“집에선 뭐.. ㅎㅎ 괜찮습니다.”
메신저에 목소리 전달 기능이 없으니, 나는 김 기자의 코맹맹이 소리를 못 들었다. 하지만 상상은 됐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대학 3학년 때 처음 만나 벌써 5년이 흘렀다. 김보경 기자는 그동안 많이 성장했을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셜록>은 김 기자 덕분에 쑥쑥 자랐다. 회사만 커진 게 아니다. 사람도 얻었다.
최근 모 변호사와 모 의원을 만났는데, 두 사람은 내가 똑같은 말을 했다.
“김보경 기자 잘 있죠? 나 김보경 기자 너무 맘에 들어!”

좋은 동료와 일한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곧 김보경 기자와 나는 함께 경찰에 출석할 거다. 최근 내가 다시 “괜찮냐?”고 물었다. 김 기자는 “아니, 뭐…” 하며 또 웃었다.
어김없이 코맹맹이 소리였다.
- 69화 오늘만큼은 ‘무능한 휴머니스트’로 남겠습니다 2026.08.03
- 68화 ‘피겨 아동학대’ 피해자 모녀의 용기에 상을 바칩니다 2026.01.14
- 67화 1등보다 이웃을 키웁니다… ‘못난 나무’를 사랑한 교사 2026.01.09
- 66화 ‘공고선생’ 지한구의 꿈… ”학생과 눈 맞추며 늙고파” 2025.12.05
- 65화 “학교 쫌 살려주이소!” 기자 붙들던 공고 교사의 약속 2025.11.25
- 64화 올 추석도 공고에 ‘셜록 장학금’… 학교를 믿습니다 2025.10.13
- 63화 셜록의 ‘액션스타’ 김보경 기자가 상을 받았습니다 2025.08.14
- 62화 ‘잠시만 안녕’ 김보경 기자가 두고 간 편지 2025.08.05
- 61화 “채 상병 누구냐는 김문수 말이 가장 화났다” 2025.06.02
- 60화 심용환 “이제 보수 집단에 남은 자산은 ‘혐오’뿐” 2025.04.18
- 59화 천관율 “극우 주류화 이후, 반드시 사회붕괴 온다” 2025.03.17
- 58화 상금 찾아 헤맨 며칠… 내가 잊은 건 ‘먼 산’이었다 2025.03.07
- 57화 ‘셜록의 자존감’ 왓슨과 함께한 자존감 수업 2025.02.14
- 56화 불의엔 뜨겁고 이웃엔 따뜻했던… 김인규를 기억한다 2025.02.10
- 55화 “사채왕이 남긴 건 번아웃이 아니라 Q저널리즘상!” 2024.12.24
- 54화 내란사태에 말 못한 ‘기쁜’ 소식, 드디어 알립니다 2024.12.19
- 53화 “굿바이 윤석열” 이 말을 해서 행복합니다 2024.12.13
- 52화 선을 넘었습니다… 셜록은 김건희 가족이 아닙니다 2024.12.09
- 51화 “견디고 이겨내는 욕망과 야성을 버리지 마세요” 2024.11.22
- 50화 사채왕이 아니라 ‘고소왕’이라 불러야겠습니다 2024.10.28
- 49화 정유정 작가의 인간탐구… 왓슨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2024.10.25
- 48화 김지수 “실패한 인터뷰는 세상에 없는 거예요” 2024.10.25
- 47화 ‘5인 5색’ 셜록클럽…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해봤어 2024.10.18
- 46화 훅 하는 이야기, 팔리는 글쓰기… ‘셜록 창작클럽’ 모집 2024.10.18
- 45화 ‘손석춘과 함께 책을’, 언론지망생을 초대합니다 2024.10.18
- 44화 왓슨과 함께 푸르고 풍요로운 ‘한강’을 건넙니다 2024.10.18
- 43화 ‘도파민 덩어리’ 숏폼 120편 대신, 영화 한 편 봅시다 2024.10.18
- 42화 오마이갓생! 김연정 기자의 ‘가면낭독회’에 초대합니다 2024.10.18
- 41화 [셜록클럽]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이번 주인공은 왓슨입니다 2024.10.04
- 40화 강원국이 풀어낸 글과 말의 여정에 스며들었습니다 2024.10.02
- 39화 셜록클럽 첫 행사,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2024.09.23
- 38화 강원국 작가 강연에 왓슨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2024.09.11
- 37화 ‘사람, 배우, 그리고 왓슨’ 셜록클럽 9월 행사 초대장 2024.09.04
- 36화 이제 김혜민의 ‘기분 좋은 수다’에 빠져들 시간입니다 2024.08.22
- 35화 [신청] 왓슨 북클럽 ‘인터뷰 읽기 모임’의 문을 엽니다 2024.01.02
- 34화 “꼭 해결하고 싶었다” 셜록 주보배 기자, Q저널리즘상 수상 2023.12.22
- 33화 블랙리스트 정권의 민낯, ‘용산 지킴이’와 셜록이 파헤치다 2023.10.05
- 32화 [영상] 우리의 출근은 왜 ‘불법’인가… 이규식은 오늘도 지하철을 탄다 2023.06.02
- 31화 [신청]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 북토크에 초대합니다 2023.05.02
- 30화 ‘인간 로드킬을 멈춰라!’ 당신과 함께 만든 작은 변화 2023.04.03
- 29화 [신청] 4월 왓슨 북클럽, 이번에는 ‘영화’로 만납니다 2023.03.24
- 28화 [영상] 왓슨 북클럽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2023.02.22
- 27화 [신청] ‘왓슨 북클럽’ 최정규 변호사… “판검사와 싸우는 이유” 2023.02.14
- 26화 [영상] 왓슨 북클럽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 2023.01.19
- 25화 [신청] 고 임세원 교수가 남긴 온기, ‘왓슨 북클럽’에서 나눕니다 2023.01.17
- 24화 [신청] 2023년 첫 번째 ‘왓슨 북클럽’, 희정 작가와 함께합니다 2022.12.14
- 23화 공익제보자와 셜록, 함께 ‘호루라기’를 불다 2022.12.05
- 22화 [신청] 이슬아 × 셜록… 왓슨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2022.11.15
- 21화 [공개채용] 우는 사람을 찾습니다 2022.11.09
- 20화 [신청] ‘왓슨 북클럽’ 11월의 책은 ‘대한민국 치킨전’입니다 2022.10.20
- 19화 왓슨 북클럽 ‘두 번째 금요일’ 10월 멤버를 모집합니다 2022.09.15
- 18화 셜록이라는 ‘개구멍’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2022.09.07
- 17화 ‘가짜 논문’ 피해자 고려대, 꼭 경찰 조사 받으시길 2022.05.16
- 16화 르포-논픽션 공부 모임을 시작합니다 2022.04.04
- 15화 ‘간병청년 강도영’ 인권보도상 수상과 숨은 조력자들 2022.03.02
- 14화 술 좋아하는 세 여자가 ‘셜록’ 보도 방식을 바꿨다 2022.02.20
- 13화 [공개채용] 기자 같지 않은 사람을 찾습니다 2021.11.15
- 12화 왓슨 여러분을 ‘홈리스 네트워크’에 초대합니다 2021.10.11
- 11화 [셜록 기자 채용] 무모한 당신을 기다립니다 2021.08.09
- 10화 4월 16일, 영남공고에서 온 ‘무서운’ 편지 2021.04.16
- 9화 그 코맹맹이 소리.. 언제나 김보경이 있었다 2021.04.06
- 8화 8개월 취재, 보도로 부정입사자 23명 정리했습니다 2021.03.09
- 7화 굿바이 공개채용.. ‘유러스 프로그램’을 시작합니다 2021.03.03
- 6화 그 귀찮은 자필 청구서.. 벌써 200명 참여했습니다 2021.02.08
- 5화 양육자-셜록 협업 1년.. “양육비 안 주면 형사처벌” 2020.12.23
- 4화 우리은행, 김앤장 내세워 ‘셜록’에 10억원 요구했다가.. 2020.12.16
- 3화 조지 오웰 읽기 모임 ‘집으로 가는 길’ 멤버 모집 2020.10.08
- 2화 종편 기자와 오마이뉴스 기자의 만남 2019.12.23
- 1화 모든 일은 이 사직서에서 시작됐다 2018.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