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따라 저녁 공기가 차가웠다. 하루 8시간 아르바이트 노동을 마친 노희철(28세. 가명)은 외투 없이 서울 한 경찰서로 왔다. 그는 정신이 없어 보였다.

“제가 늦어서… 얼른 (경찰서로) 들어가야 합니다.”

노희철은 바쁜 걸음으로 경찰서 정문을 통과했다. 민원실 직원 안내를 받아 경찰서 본관으로 들어서는 그를 끝까지 바라봤다. 양쪽 어깨에 멘 가방으로 다 가려지지 않은 그의 등이 추워 보였다. 3월 22일 오후 7시 30분께 일이다.

동아일보 인턴기자 출신 노희철(가명) ⓒ남궁현

노희철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기자를 꿈꾸는 취업준비생이다. 없는 집 자식들은 이렇게 ‘투 트랙’을 뛰면서 정규직을 준비한다. 노희철은 경찰 수사를 받는 피의자이기도 하다. <동아일보>가 그를 고소했다.

언론사에 고소당한 기자 지망생이라니. 기막힌 일의 중심에는 노희철과 다른 삶을 살아온 또래 청년이 있다. 그는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의 딸이다.

취업준비생 노희철 – 거대 언론 <동아> – 언론사 사장 딸, 이들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모든 일은 제 인턴동기 김새미(가명)가 김재호 <동아> 사장 딸이란 걸 알아차린 순간에 시작됐죠. 그 황금올리브 치킨…”

노희철 말대로 일은 예상 못한 곳에서부터 출발했다. 노희철은 ‘범 <동아> 패밀리’ 언저리까지 갔던 인물이다.

동아미디어그룹은 작년 7월 ‘채용연계형 DNA 인턴 전형’으로 기자 공채(동아일보-채널A-동아매거진)를 진행했다. 노희철도 여기에 지원했다. 공채는 ‘서류-필기 및 면접-8주 인턴 실습-최종 임원 면접’ 총 네 단계로 진행됐다.

노희철은 인턴 실습을 거쳐 마지막 관문인 ‘임원 면접’까지 진출했다. 여기만 통과하면 정규직 기자가 된다. 노희철은 면접을 준비하면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을 검색했다.

김 사장이 페이스북 등 SNS에 수시로 글을 올리며 내부 직원과 소통한다는 걸 알았다. 노희철은 김 사장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들어가 하나하나 살폈다. 2020년 4월 등록된 한 게시물이 눈에 띄었다.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이 2020년 4월경 인스타그램 본인 계정에서 딸 김새미 씨와 대화를 나눈 모습.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 인스타그램

김 사장은 “꿈이 뭐예요?”라는 문구가 적힌 <동아> 건물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을 올렸다.

“내 꿈은 우리 아이들에게 조금 더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어 주는 거~^^“

이 게시물에 노희철 인턴동기 김새미(가명, 당시 23세)가 댓글을 달았다.

내 꿈은 비비큐 황금올리브 먹는 거~^^”

김 사장은 이 댓글에 다시 댓글을 달았다.

“오늘 먹을까?”

언론사 사장에게 황금올리브 치킨을 먹는 게 꿈이라고 밝힌 인턴동기. 뭔가 이상했다. 노희철은 김새미 페이스북 계정에도 들어갔다. 프로필 사진을 보니, 김재호 사장 얼굴이 겹쳐 보였다. 김새미가 밝힌 학력도 살폈다.

‘중앙중학교 졸업, 하나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재학’

중앙중학교는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이 운영하는 곳이다. 김재호 사장은 2012년 5월 24일부터 지금까지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재호 사장은 ‘딸 하나고 부정 편입학 의혹’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상태가 아닌가. 그런데, 김새미가 그 하나고를 졸업했다.

인턴동기 김새미와 김재호 사장이 닮았다는 ‘감’은 이제 확신으로 이어졌다.

‘인턴 기자 김새미가 김재호 <동아> 사장 딸이구나!’

<동아>에서 인턴을 하는 8주 동안 그 누구도 이런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노희철은 지난해 11월 12일, 최종 불합격을 통보 받았다. 김새미는 합격했다. 김새미는 인스타그램에 <동아> 사원증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을 남겼다.

“김새미, 경제적 독립 가능해지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 딸 김새미(가명)가 2020년 11월경 본인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게시물. ⓒ김새미 인스타그램

노희철은 공채 공정성을 의심했다. 기자 선발 권한을 가진 사람들은 김세희가 김재호 사장 딸이라는 걸 미리 알지 않았을까?

서류전형에서 1만자 자기소개서는 물론이고 ‘영상 자기소개서’도 냈는데, 과연 김새미가 사장 딸이란 걸 <동아> 간부들이 몰랐을까요? 최종면접에서도 김재호 사장의 이해 관계자들이 면접관으로 참여했구요. 공정한 채용이 맞나 하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죠.”

노희철은 자신이 안 내용과 문제의식을 언론사 취업준비생들에게 알리기로 했다. 그는 2020년 11월 16일, 카카오톡 익명 오픈채팅방 ‘(전현직 기자와 함께하는) 언론고시 준비방’에 이런 글을 올렸다.

동아일보 사장 딸은 끼워 넣어서 신문 기자에 합격시켰던데요.(중략) 서류에서 (지원자를) 거르고 최소한으로 (정규직으로) 합격시킨 건데. (김 씨가 합격한 건) 자기 능력은 아닙니다.”

당시 오픈채팅방에는 취준생과 전 현직 기자 등 931명이 참여하고 있었다. 노희철 글에 다양한 의견이 올라왔다.

  • “(동아일보 사장 딸이 입사한 게) 자기 능력이 아닌지 어떻게 단정하세요?”
  • “하나고 편입 문제 있었던 그 딸인가요?”
  • “말 그대로 DNA 채용이 돼버렸네요. 아빠 DNA.”

노희철은 다음날에도 오픈채팅방에 의견을 올렸다.

“(김세희는 최종면접을) 아빠랑 본 거죠. 특채도 아니고 공채로 들어간 건데 위장이라고 봅니다. (동아일보) 인사팀 할 것 없이 사주에 밉보이면 안 되니 입 다물고 있을 겁니다. 누군가 1명은 (공채에서) 밀려났을 수 있다는 것도 문제죠. 남 비판하는 언론사가 자기들 문제는 (눈) 싹 감고. 사설로 조국이든 정유라든 비판하는 게 코미디 아닐지. (동아일보는) 왜 공채로 남들을 들러리 세우면서까지 (사장) 딸을 뽑습니까?

이런 의견에 <동아>는 ‘허위사실 명예훼손죄’와 ‘모욕죄’ 혐의로 글쓴이를 종로경찰서에 고소했다. 노희철이 문제제기한 지 나흘 만이다.

고소장에 나오는 <동아>의 주장은 이렇다.

“피고소인의 발언은 모두 허위임에 명백합니다. 1)김재호 동아일보 사장 딸이 동아일보 기자 직군에 합격한 건 사실이 맞으나, 다른 인턴들과 동일한 조건 속에서 현장실습을 거쳐 최종면접을 치르고 정상적으로 합격했습니다. 2)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은 딸의 최종면접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3)이번 2020년 동아일보 공채는 채용 인원을 정해두지 않고 진행했습니다. 즉, 누군가가 합격하면 대신 누군가가 떨어지게 되는 구조가 아닙니다.“

<동아> 고소 이후 일은 착착 진행됐다. 수사기관은 익명의 ‘오픈채팅방’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은 영장을 내줬다. 카카오 측은 익명 채팅방에 문제 의견을 남긴 사람이 노희철이란 걸 경찰에 알려줬다.

종로경찰서 소속 경찰은 지난 2월 24일 노희철에게 전화를 걸어 이 모든 사실을 전했다. 곧 경찰서로 나오라는 말과 함께.

“저는 진실이라 믿고 문제를 제기했고, 단순히 의견을 말했을 뿐입니다. <동아>는 제가 문제제기한 게 못마땅하면 반박을 하면 되죠. 오픈채팅방에서 말한 걸 두고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는 게, 참…”

동아일보 ⓒ남궁현

노희철이 남긴 글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오픈채팅방 참여자들의 반응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반박이나 해명 대신 고소를 택한 <동아>에 대한 생각은? 여기서 잠깐, 작년 2월 25일 자 <동아일보> 사설 한 대목을 보자.

개인도 아닌 공당(公黨)이라면 칼럼에 불만이 있더라도 우선 반론을 요청하고, 반론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중재를 요구하고, 중재 결과가 불만스러우면 고소 고발로 가는 것이 순서다. 민주당 지도부는 발끈해 고발로 직행했다. (중략) 민주당 지도부는 실은 홍의락 의원의 말처럼 ‘작은 핀잔도 못 견디고 듣기 싫어하는’ 오만함을 드러낸 것일 뿐이다.“

<동아> 역시 사설에 나오는 순서나 절차를 따르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동아>는 김재호 사장 딸의 하나고 부정 편입학 의혹을 보도한 최승호 MBC 대표이사, 박성제 보도국장, 이OO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2019년경 고발했다. 해당 취재 인터뷰에 응한 하나고 공익제보자 전OO 교사도 고발했다.

올해에는 김재호 사장 딸 입사 관련 내용을 보도한 <미디어오늘> 박OO 기자에게 고소를 암시하는 내용증명을 두 차례 보냈다. 취준생 노희철 사례까지 고려하면, 공통점이 하나 나온다.

바로 ‘김재호 사장 딸 특혜 의혹’, 이 문제를 제기하면 <동아>는 법적 대응을 했다. 상대가 방송사 사장이든, 취업준비생이든 가리지 않고 말이다. 정말 부당한 공격이어서 그랬을까?

김새미는 아버지가 이사장으로 있는 중앙중학교를 졸업했다. 그가 하나고에 편입할 땐 ‘면접 점수가 상향 조작되는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것도 하나고에 재직하던 교사에 의해서 말이다.

서울시교육청은 2015년 하나고를 상대로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시교육청은 문제를 발견해 김승유 하나고 이사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김새미의 면접 점수를 잘못 입력한 건 사실이나 최종합격 당락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취지로 수사 1년 만에 무혐의 처분했다.

전교조는 ‘특혜 편입 의혹’ 관련 새 증거를 확보해 2019년 10월 24일 검찰에 재고발 했다. (추후 보도 예정) 수사는 여전히, 아직도 진행중이다.

노희철은 군 제대 후 수년간 언론사 취업을 준비했다. 대학 학보사부터 인터넷 매체 인턴 기자까지, 여러 활동을 하며 스펙을 쌓았다. 실력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언론사 사장 아버지가 없기 때문인지 그동안 숱하게 언론사에 공채에서 떨어졌다.

사실 노희철의 길은 특별하지 않다. 많은 언론인지망생은 대체로 이런 길을 간다. 졸업하자마자, 그것도 아버지가 사장인 언론사에 취직하는 김새미가 오히려 이례적이다.

<동아>는 노희철 고소 건에 대해 지난 3월 22일 서면을 통해 “김재호 대표이사의 자녀는 동아미디어그룹 채용 연계형 인턴 모집에 응시해 다른 지원자와 동일한 전형을 거쳐 합격했다“며 “당사의 채용 절차와 관련해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근거 없이 허위 내용을 적시 하고, 유포하는 행위에 대해 대응했다”고 밝혔다.

동아일보 인턴기자 출신 노희철(가명) ⓒ남궁현

언론사에 고소당한 노희철은 네 시간 조사 받고 밤 11시께 경찰서에서 나왔다. 기온은 더 떨어져 추웠다. 수사는 이제 시작 단계다. 앞으로 검찰 출석, 법원… 지금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싸움의 출입문일 뿐이다.

김재호 <동아> 사장의 꿈은 “우리 아이들에게 조금 더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어 주는 거”라고 했다. 그의 딸은 농담으로 “내 꿈은 황금올리브 치킨 먹는 거”라고 했다. 노희철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다.

“좋은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계절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찾아온다지만 그 느낌은 사람마다 다르다. 봄이 왔지만, 노희철에겐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혹독한 추운 겨울이 시작됐는지 모른다.

경찰 수사를 마친 아르바이트 노동자, 취업준비생, 피의자 노희철은 어깨를 웅크린 채 집으로 돌아갔다.

그나저나, 김새미는 정말 ‘아빠 찬스’를 쓰지 않았을까? <셜록>이 살핀 <동아>의 고소장은 뭔가 이상했다. 2화에서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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