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한구 영남공고 선생님이 ‘단톡방’에 메시지를 남긴 건 오늘, 4 16일 아침이었다. 선생님은 교문 사진 한 장을 첨부했다.

영남공고 교문 위에는 ‘4.16 세월호 참사 7주기 추모라 적힌 주황빛 현수막에 걸려 있었다. 지 선생님은 이 모습이 그렇게 좋았는지 장문의 글을 썼다.

“기자님! 예전에 우리 학교는 세월호 관련 추모 리본을 달고 등교를 하면 교문에서 달지 못하도록 지도를 했습니다. 오늘 저희는 세월호 7주기를 맞아 학교 전체가 추모식을 하고,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학생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누군가는 또 정치 프레임을 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념을 넘어 수많은 아이들이 아침에 수학 여행을 떠나 가정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 넋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교육계 전체가 애도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참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지 선생님 메시지에 이어 김광섭 영남공고 교감선생님은 세월호 추모 리본이 새겨진 마스크 사진을 보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학생들 세월호 배지를 강제로 수거한 학교였죠~^^ 두 분 덕분에 이만큼이나 학교가 바뀌었습니다~”

교문에 걸린 현수막 하나, 세월호 추모 리본이 새겨진 마스크가 뭐라고 이러실까 싶지만, 사실 내 마음도 선생님들처럼 뭉클하고 짠하고 그랬다.

추모하고 함께 아파할 수 있는 그 당연한 자유가 사립 영남공고에선 오랫동안 허락되지 않았다. 허선윤 재단 이사장과 이상석 교장 체제가 굳건했던 2019년까지는 말이다. 선생님들 말대로 학생이든 교사든 세월호 추모 리본과 배지는 교문에서 수거됐다.

노란 리본 하나 허용하지 않는 학교가 다른 자유를 줄 리 없다. 교사들은 연애할 자유, 기간제 여성 교사는 임신 출산의 자유, 심지어 모든 교사는 원하는 곳에서 회식할 자유마저 없었다. 이 외에도 다 열거할 수 없는 비리와 전횡, 억압이 영남공고에선 공기처럼 익숙했다.

나와 김보경 기자는 2019년 여름영남공고, 조폭인가 학교인가기획보도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기사 42개를 썼다. <셜록>에서 가장 길게, 많이 보도한 기획이다.

영남공고 여러 교사와 학생의 도움으로 허선윤 이사장은 구속되고, 이사진 전원이 관선이사로 교체되면서 학교는 정상화 됐다.

이미 몇 번 글로 쓰고 말한 대로, 영남공고 기획보도는 사실 내키지 않았었다. 서울도 아닌 대구에 있는 특성화고 비리전횡 문제에 누가 관심을 가질까 싶었다. 이런 마음이 위선이자 또다른 차별인 걸 알지만, 어쨌든 생각은 자꾸 그쪽으로 기울었다.   

학교가 정상화된 이후, 지금까지도 나는 그때의 위선과 복잡했던 심정을 종종 떠올리곤 한다. 당시 마음을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에 담기도 했다. 드라마 17부에서 공고생 다영과 삼수가 날 선 대화를 하는 93씬은, 내 솔직한 내면이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혜영(교사) – 기자님, 저는 10년째 이 학교 비정규직 교삽니다. 재계약 안 될 각오하고 제보하는 거예요.

삼수 – (안타까운 얼굴. 작은 한숨) 네.. 오늘 말씀 정리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혜영 – 우리 학생들 좀 도와주세요.

삼수 – (가방 챙긴 뒤) 솔직히 말씀 드려도 되죠? 그래야 상처 안 받을 테니까.

혜영과 다영, 말없이 삼수 본다.

삼수 – 솔직히, 뭔가 확실한 한 방이 없네요. (눈치보며) 안타까운 건 알겠는데.. 우리 같이 작은 매체에서 공고 이야길 쓰면 누가 볼까 싶기도 하고…

다영(학생) – (껄렁하게) 그래서 취재 안 하고, 안 쓰겠다는 거죠?

삼수 – 그게 아니라…

다영 – 최저임금도 안 주면서 내 손가락 절단 낸 사장님보다, 심심하면 찾아와 공순이라 부르는 이사장 아버지보다 당신같은 사람이 더 재수 없어.

혜영 – 다영아.

삼수 – (굳은 얼굴) 학생… 나 재수 아니야 삼수야.

다영 – (삼수 노려보며) 겉으론 정의로운 척, 세상 불쌍한 사람 위하는 척 하지만 속은 위선으로 가득차 있잖아.

삼수 – 학생… 말이 좀 심하네.

다영 – 왜… 아니야?

삼수 – (물러서지 않는다) 어, 아니야.

다영 – 서울 외고, 과학고에서 체벌하고 컨닝만 해도 세상 망할 것처럼 보도하지만, 취업 나간 공고생들은 팔 하나 날라가도 당신들에겐 뉴스도 아니잖아.

삼수 – (굳은 얼굴로 본다)

다영 – 우린 떨어져 죽고, 기계에 몸 빨려 들어가고, 머리가 몸통이랑 분리가 돼야 당신들의 그 거룩한 눈길 한 번 받아볼 수 있어. 맞지?

삼수 – (뭔가 말하려다가 못한다)

다영 – 죽은 노동자 가방에선 먹지 못한 컵라면 하나, 삶은 계란 하나 나오면… (울먹) 그림 좋다고 박수치고.

삼수 – (버럭) 학생, 말이면 단 줄 알아!

다영 – (같이 버럭) 박삼수 기자님! 솔직히 말해 보세요! 당신 찢어져 죽고, 떨어져 죽고, 기계 빨려 들어간 공고생 없나 찾아온 거잖아!

삼수 – 세상이 관심 없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다영 – 잘난 박삼수 기자님! 세상 핑계 좀 대지 마! (울먹)

삼수 – (역시 눈이 붉어졌다)

다영 – 세상이 그런 게 아니라, 당신들이 관심 없으니까, 세상도 관심 없는 거야.

실습하던 학생들, 모두 이상한 눈으로 삼수를 본다.

삼수 – (가방 들고 냉정히 밖으로 나간다. 울 듯한 얼굴이다)

그때 내가 이런 마음이었다는 걸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그러는 건지, 영남공고 선생님들은 학교 정상화 2년이 지난 지금도 <셜록> 덕분입니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셜록>이 무슨 보도를 하든, 기사를 많이 퍼 나르는 사람도 영남공고 선생님들이다. 게다가 학교 선생님들 거의 모두가 <셜록>을 후원하는 왓슨이기도 하다.

지한구 선생님은 4 16일인 오늘, 교실에서 진행된 세월호 추모 장면을 찍은 사진도 단톡방에 공유했다. 학생들의 모습을 보니 괜히 또 짠하고뭐 그렇다. 지 선생님은 이런 장문의 글도 보냈다.

“요즘 셜록 기자님들의 프로젝트를 보면서, 왜 기자님들은 저렇게 별볼일(?) 없는 일을 하는, 모두가 외면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지 궁금했습니다. 정말 큰 사건들도 많은데… 채용 시험에 탈락한 청년 또는 음식 배달 기사의 죽음을 그 누가 관심을 갖겠습니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안에 함의된 것은 결코 개인의 잘못으로 인한 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열심히 일해도 최소한의 욕구가 충족되기 어려운 세상, 약간의 질서를 헤치더라도 단돈 1000원을 더 벌기 위해 아슬아슬한 운전을 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관심이 있었기에 이런 훌륭한 기사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누구의 간섭과 방해에도 흔들리지 마시고, 지금하시는 것 그대로 앞을 향해 무겁고 굳건한 발걸음을 옮겨 주세요. 수많은 사람들이 기자님들을 응원하고 그 정신을 배우고 있습니다. 결국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 개인이 바로 우리들의 구성원이고 그에 대한 관심과 애정어린 시선이야말로,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열쇠라는 것을 기자님들께 배웁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기자님!”

고맙고, 무섭고도 무거운 당부. 나는 문자메시지로알겠다고 대답했지만, 나란 인간이 이걸 제대로 실천할 수 있을지솔직히 잘 모르겠다.

내가 영남공고 제보를 받은 그때 흔들렸듯이, 드라마 속 삼수가겉으론 정의로운 척, 세상 불쌍한 사람 위하는 척 하지만 속은 위선으로 가득 차있었듯이, 지금의 나는 여전히 마음이 복잡하고 머릿속에선 쉼 없이 계산기를 두드린다.

이런 내 곁에단돈 1000원을 더 벌기 위해 아슬아슬한 운전을 할 수밖에 없는사람들을 잊지 말아 달라고 말해 주는 이가 있는 게 다행일 뿐이다.

영남공고 학생들이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종일 보고 또 봤다. 대단하진 않아도, 세상 한 귀퉁이가 제 자리를 찾았다는 안도감이 든다.

노란 리본 하나 교문 통과시키는 것, 교문에 현수막 하나 거는 일이 하찮게 느껴지거나, 내 마음이 타인의 고통에 둔감해질 때면, 지한구 선생님의 당부가 문득 떠올라 나를 잡아줬으면 좋겠다. 

2019년 여름 그때, 우리가 저 하찮은 자유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도 함께 떠오르면 더욱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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