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을 작심한 남자가 길 저쪽에서 한 여자와 두 아이를 지켜봤다. 그는 주머니 속 칼, 테이프, 끈을 만졌다.

더위가 물러난 선선한 월요일 아침이었다. 남편 출근에 이어 네 살 소현(가명)이와 다섯 살 성재(가명)가 유치원에 갈 차례다. 장주영(가명)은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집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유치원 버스에 오른 두 아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버스는 아이들을 태우고 떠났다.

소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왔을 땐 세상이 달라졌다. 할머니는 쓰러졌고, 아버지는 죽을 듯이 울었다. 모든 어른이 울어 4살 소현(가명)이도 같이 울었다.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울어도 엄마는 오지 않았다. 어른들이 자기들끼리 조용히 말하는 걸 소현이도 들었다. 죽음이 뭔지 몰라도 소현이는 어렴풋이 생각했다.

‘엄마가 죽었구나. 오늘 아침이 마지막이었구나.‘

엄마는 떠났다. 엄마의 흔적이 소현이 얼굴에 남았다. 소현이는 엄마를 빼 닮았다. 아버지 박귀섭은 딸의 얼굴에서 아내를 본다. 소현이는 거울에 자기 얼굴을 비치면 엄마가 보인다는 걸 모른다. 그걸 모른 채 4년을 살았다.

소현이는 올해 여덟 살이다. 지난 2일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소현이는 학교 가는 날을 고대했다. 입학식에는 가방이 필요 없는데도 굳이 메고 갔다. 학교 갈 때는 꼭 가방을 메야 한다는 게 여덟 살 소현이의 생각이다.

아버지 박귀섭은 소현이 입학식 날에 맞춰 휴가를 냈다. 하지만 학교에는 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소현이가 할머니 손을 잡고 학교 가는 모습을 보면서 차에 시동을 걸었다. 서울에서 출발한 차는 남쪽으로 내려갔다.

1시간 쯤 달린 차는 용인 공원묘원에 도착했다. 박귀섭씨는 노란색, 흰색 국화를 샀다. 수많은 묘가 들어선 산과 봉분 위에 흰눈이 아직 녹지 않았다. 박씨는 공원묘원 높은 곳으로 향했다. 수많은 묘지 위로 찬 바람이 불었다. 건너편 산이 보이는 납골당 앞에 박씨가 섰다. 소현이 책가방처럼 사각형인 납골함 앞에 국화꽃을 놓았다.

“소현이 오늘 초등학교 들어갔어. 할머니랑 같이 갔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박씨 목소리는 묘지를 훑는 바람처럼 낮았다. 책가방보다 작은 유골함, 거기 아내가 잠들어 있다. 납골함 앞에는 아내 사진이 붙어 있다. 다시 보고, 또 봐도 소현이를 닮았다.

여자 장주영은 1975년 12월 8일(음력)에 태어나 2012년 8월 20일 사망했다. 서진환이 죽였다. ⓒ 박상규

장주영

1975년 12월 8일(음) ~ 2012년 8월 20일(양)

이 세상에 태어나고 죽은 날짜가 선명하다. 여자 장주영은 딸 입학식에 가지 못하고 왜 이곳에 잠들어 있을까. 2012년 8월 20일, 그 하루는 어땠을까.

역설적이게도, 한 가족의 평범한 일상과 장주영의 최후를 목격한 이는 강간범 서진환이다. 그가 모든 걸 끝장냈다.

서진환은 아이들이 유치원으로 가는 짧은 틈을 이용해 몰래 집으로 들어가 안방 문 뒤에 숨었다. 장주영이 들어왔을 때 서진환은 흉기를 들이댔다. 장주영은 끝까지 저항했다. 살고 싶었고, 살아야했다. 서진환은 끝까지 장주영을 때렸다. 그녀는 위기를 모면하려 애원도 했다.

“애들이 밖에 있는데, 유치원에 보내야 해요. 안 보내면 유치원 선생님이 올 거예요.”

“네 몰골이 엉망이니 내가 보내고 올게.”

서진환은 ‘몰골이 엉망’이 될 정도로 여자를 때렸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장주영은 탈출을 시도했다. 현관문으로 달려가 손잡이를 잡았을 때, 서진환이 그녀를 잡아챘다. 장주영은 손잡이를 붙잡고 버텼다. 그때, 아랫집의 신고로 경찰이 현관문 앞에 도착했다. 장주영은 온 힘을 다해 문을 열고 소리질렀다.

“아저씨, 살려주세요!”

문이 열린 순간에 본 세상의 빛과 하늘과 한 경찰. 장주영이 마지막으로 본 이 세상의 모습이다. 서진환은 경찰이 보는 앞에서 장주영을 흉기로 찔렀다. 현관은 붉게 젖었다.

체포된 서진환은 경찰서에서 말했다.

“만약 현관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일반 시민이었다면 밀치고 도망가자는 생각이 들 수도 있었는데, 경찰이다 보니 도망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모든 것이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피해자(장주영)가 갑자기 미워져 들고 있단 칼로 찔렀습니다.”

서진환은 이런 말도 했다.

“여태까지 겁탈한 여성들 중에서 유별나게 저항했습니다. 그냥 순순히 복종했으면 아무 일 없었을 것을 왜 이렇게 일을 크게 만들었는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는 장주영을 탓했다. 경찰은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곧바로 세상이 납득하기 어려운 경찰의 이상한 행각이 드러난다. 시작은 서진환의 한쪽 다리였다. 경찰은 그의 다리에 채워진 전자발찌를 발견했다. 이제 경찰은 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받게 된다.

“전자발찌를 찬 강간범이 또 여자를 강간살해하다니, 그동안 경찰은 무엇을 했는가?”

알고 봤더니, 서진환은 상습 강간범이었다. 그는 장주영을 살해하기 전까지, 강간 혐의로만 세 차례 복역했다. 2004년엔 특수강도강간 죄를 저질러 교도소에서 10년을 살아야했지만, 검사와 판사의 실수와 잘못으로 7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2화 기사 보기) 그는 2011년 8월 29일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원에서 7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받았다.

소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날, 박귀섭씨는 아내를 찾아갔다. ⓒ 박상규

이런 서진환이 흉기를 들고 자유롭게 강간 대상을 물색하며 거리를 활보했다니. 더 무서운 서진환의 감춰진 진실은 따로 있다.

장주영이 살해된 날로부터 정확히 13일 전, 장주영의 집과 가까운 곳에서 강간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서진환이다. 그때도 그는 한쪽 다리에 전자발찌를 차고 있었다. 범행 현장에 유전자 정보도 남겼다.

경찰은 서진환을 안 잡고 13일 동안 무엇을 했을까? 전자발찌 신호는 조회했을까? 나중에 관할 경찰서 측은 이렇게 말했다.

“직전 범행(장주영 사망 13일 전에 발생한 강간 사건)의 피해자에게 성폭력 우범자 354명 중 핵심 전과자인 50명의 사진을 보여주고,이후 서진환을 포함해 다른 전과자의 사진을 보여줬지만 피해자가 서진환을 지목하지 못해 수사에 진전이 없었습니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성폭력 재범을 막으려 인권침해 논란에도 실시된 전자발찌 부착 제도. 정작 경찰은 과학을 버리고 우범자 50명의 사진을 피해자에게 들이 밀며 아픈 기억을 복기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사건은 서진환의 집에서 불과 2km 떨어진 곳에서 발생했다. 서진환은 범행 후 도망가지도 않았다. 13일 동안 자기 집에서 계속 살았다. 밤마다 ‘야동’을 보면서 말이다.

사건 발생 직후, 범행 장소에서 전자발찌 신호가 있었는지만 파악했어도 경찰은 서진환을 쉽게 검거할 수 있었다. 이걸 왜 안 했을까? 어렵고, 기간이 오래 걸리는 일일까? 전자발찌 수신자료를 보관하는 보호관찰소의 말을 들어보자.

“18시 이전에 경찰에게 전자발찌 위치기록 조회 의뢰 공문이 오면 당일 통보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경찰의 공문 도착 이후) 대부분 2시간 이내에 범행 장소에 전자발찌 신호가 있었는지 여부를 통보합니다. 경찰에서 신속한 답변을 요청하면 전화로 먼저 통보한 후 정식 공문으로 공식 답변하는 방법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 사실조회요청에 대한 보호관찰소의 답변

범행 장소에서 전자발찌 신호가 있었다는 답변을 받으면, 경찰은 법원의 영장을 받아 누구의 전자발찌 신호인지 확인할 수 있다. 빠르면 2~3일 내에 끝나는 일이다. 하지만 경찰은 이걸 안 했다. 전자발찌를 차고 강간을 저지르고도 체포되지 않은 서진환은 13일 뒤에 장주영을 강간살해했다.

경찰은 장주영이 살해된 지 사흘이 지난 2012년 8월 23일에야 서울동부보호관찰소에 강간 사건 현장에서 전자발찌 신호가 있었는지 조회했다. “신호가 있었다”는 답변을 하루만인 24일 받았다.

“경찰은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일을 했는지..앞선 피해 여성이 부잣집 여자나 높은 권력자였어도 경찰이 허술하게 수사를 했을까요? 검사, 판사, 경찰 다 잘못했는데, 단 한 명도 미안하다는 말을 한 해요. 세상이 정말 밉고 싫죠.”

박귀섭씨의 목소리는 무덤 봉분 위의 눈처럼 쓸쓸하고 차가웠다. 박씨는 국화꽃을 아내 사진 앞에 두고 공원묘원에서 발길을 돌렸다. 그는 아내 닮은 소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니 짜장면이라도 한 그릇 사줘야겠다고 말했다.

박씨가 떠난 자리에서 소현이를 닮은 아내만 혼자 남아 건너편 눈덮인 산을 바라봤다. 묘지 위로 부는 바람이 노란 국화꽃을 몇 번 흔들었다.

(2016년 카카오 스토리펀딩에 연재한 기사입니다. 2021년 <셜록> 홈페이지 옮겼다는 걸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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