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 아침이 마지막이란 걸 아무도 몰랐다.

태양은 어김없이 떴고, 아침 풍경은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남편은 오전 6시에 일어나 출근을 준비했다. 아내도 일어나 간단한 아침을 차렸다. 남편은 오전 7시에 대문을 나서 서울 구로에 있는 직장으로 향했다.

“늦지 않게 들어와요.”

남편은 고개를 돌려 아내에게 오른손 한 번 흔드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결혼한 지 5년, 남편 박귀섭과 아내 장주영(가명)의 마지막 인사였다.

상습 강간범 서진환도 비슷한 시각에 움직였다. 그는 오전 6시 40분께 가불을 하기 위해 서울 성북구에 있는 일터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는 여성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오늘..누구든 걸리면..꼭..’

서진환은 강간을 하기로 작정했다. 그는 집에서 비아그라 두 알을 먹고 칼, 공사용 테이프, 마스크를 챙겼다. 무작정 거리를 배회했다. 길에서 선물 포장용 끈을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그의 발길이 중곡동 주택가 쪽으로 향했다.

그 시각, 장주영은 중곡동 집에서 부산하게 움직였다. 다섯 살 성재(가명)와 네 살 소현이(가명)를 깨워 씻기고 먹였다. 유치원에 보내야 했다. 오전 9시 20분, 장주영은 깨끗한 옷을 입은 두 아이 손을 잡고 집밖으로 나왔다.

장주영은 아이들과 함께 오른쪽 길로 걸었다. 유치원 통학버스는 그쪽에서 온다. 아이들은 통학버스 안에서 엄마에게 손을 흔들었다. 엄마에게 하는 마지막 인사였다.

서진환은 장주영이 두 아이를 데리고 집에서 나오는 걸 길에서 지켜봤다. 장주영이 통학버스가 오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 때, 서진환은 왼쪽 방향에서 몰래 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안방 문 뒤에 숨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장주영은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혼자 들어왔다.

서진환이 흉기를 들고 장주영 앞에 섰다.

“가만히 있어.“

남편은 회사에 있었다. 오전 10시쯤 됐을까. 휴대전화기가 몸을 떨었다. 이웃집 아주머니다. 낮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아주머니는 누구에게 쫓기듯이 높은 톤의 목소리로 크게 말했다.

“성재 아빠, 빨리 건국대학교 병원으로 가봐! 성재 엄마가 칼에 찔렸어!”

목소리는 컸지만 알아 들을 수 없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성재 엄마가 칼에 찔렸다고! 강도한테!”

칼, 아내, 강도, 병원..잘 연결되지 않는 낱말이 가슴을 찔렀다. 휴대전화처럼 몸이 떨렸다. ‘크지 않은 부상이겠지’라고 생각하며, 아니 억지로 그렇게 믿으며 병원 갈 준비를 했다. 다시 휴대전화가 떨렸다. 박귀섭 씨는 그 진동에 깜짝 놀랐다.

“건국대학교병원 응급실입니다. 지금 어디세요? 빨리 오셔야 합니다. 아내분이 지금..”

의사가 채근했다. 박 씨는 전화를 끊었다. 구로에서 광진구 건국대학교병원까지, 거의 서울의 서쪽과 동쪽 끝이다. 박 씨는 회사 사장 수행비서다. 차 운전도 한다. 오전 10시면 아직 차가 밀린다는 걸 잘 안다. 지하철이 가장 빠르다. 전화기가 또 떨렸다.

“박귀섭 씨, 응급실입니다. 아내분 심폐소생술 하고 있는데요. 서두르셔야 합니다.”

“네..가고..네..가고 있습니다.”

목소리가 전화기보다 더 떨렸다. 박 씨가 아무리 급해도 지하철은 상관하지 않았다. 모든 역에서 멈춰 문을 열고 닫았다. 지하철 안은 박 씨의 가슴과 머리처럼 텅 비었다. 전화기가 다시 무섭게 떨렸다.

“지금 어디쯤이세요? 계속 아내분 심폐소생술 하고 있는데, 좀 어려울 거 같습니다. 빨리 오셔야..”

빨리 가고 싶은데, 전철은 다음 역에도 섰다. 눈물이 후두둑 전철 바닥으로 떨어졌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내는 죽었다. 의학 소견으로는 ‘저혈량성 쇼크’로 인한 사망. 더는 숨을 쉬지 않는 아내 모습은 아침과 많이 달랐다.

“그걸 어떻게 말로..(한동안 침묵) 얼굴을 거의 알아볼 수가 없었죠. 한쪽 눈과 뒤통수가 함몰됐고, 내부 장기가 손상됐는지 배가 임신부처럼 부었어요. 아내가 반항했다고 그놈이 엄청 때렸다고 하더라고요.“

박 씨는 다시 말을 멈췄다. 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더는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목소리를 가다듬은 박 씨가 말을 이었다.

“그놈은 거의 아내를 때려 죽였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병원에 먼저 도착했는데, 아내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박귀섭 씨가 지난 2016년 2월, 아내 장주영(가명) 씨의 유골이 안치된 경기도 용인의 한 공원묘지를 찾았다. ⓒ셜록

어머니는 주저앉았다. 정신적 충격으로 이명이 생겼다.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며 고통을 호소했고, 아들이 하지 않은 말을 했다고 우기셨다.

박 씨는 유년 시절에 많이 아팠다. 부모님은 어린 아들 살리겠다고 고향의 모든 땅을 팔아 큰 병원이 있는 서울로 이사했다. 박 씨는 큰 수술을 하며, 죽을 고비를 넘겼다. 병원 생활이 지겨워 그곳에서 탈출하는 꿈을 자주 꿨다. 가까스로 살아 남았는데, 이젠 아내가 지옥에서 죽었다.

어제와는 모든 게 다른 아침이 시작됐다. 남은 가족은 지옥을 견뎌야 했다. 어머니부터 네 살 딸 소현이까지, 모두 병원 치료를 받았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아픔과 슬픔이 가족을 덮쳤다.

“눈 뜨고 있는 것 자체가 괴로웠죠. 누가 위로해 주는 말도 듣기 싫고, 말하기도 싫고..세상 모든 게 다 싫었어요. 그냥..모두 다.”

집에 있는 게 가장 힘들었다. 아내의 빈자리가 가슴을 쥐어짰다. 자주 밖으로 나갔다. 거리에서 노숙인으로 살다 죽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 아니었으면 정말 집을 나갔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을 위해 집으로 들어갔다. 제대로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아이들도 아버지만큼 힘들어 했다.

“특히 첫째 성재가 고통스러워 했어요. 엄마가 왜 갑자기 사라졌는지 알더라고요. 거의 매일 자다가 경기를 일으켰어요. 벌벌 떨면서 깨어나고, 막 소리 지르면서 우는데..뭐에 홀려서 헛것을 보는 것 같더라고요. 너무 심해서 ‘굿이라도 해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했어요.“

아버지는 아들의 숙면을 위해 모든 걸 했다. 지쳐 떨어져 잘 수 있게 저녁이면 달리기, 자전거 타기, 줄넘기 등 심한 운동을 아들과 함께 했다. 마음의 고통이 육체의 피곤함보다 컸다. 어떤 운동을 해도 아들은 거의 1년 동안 밤마다 울며 깼다. 박씨와 할머니는 밤마다 전쟁을 치렀다.

아내를 강간살해 한 서진환에 대한 법원의 1심 공판이 열린 지난 2012년 11월 8일, 박귀섭 씨는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처절히 맞아 얼굴도 알아볼 수 없는 상태로 아내를 보냈습니다. (중략) 집 앞 계단에 처참하게 흐른 아내의 핏자국을 봤습니다. 가녀린 우리 아내, 눈 앞에 무서운 살인마를 두고 살아보겠다고 아둥바둥했을 아내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집니다. (중략)  저에게 시집와 고생만 하다가 처참하게 간 아내를 떠올리면 어차피 살아가는 게 지옥입니다. (중략) 서진환은 범행을 반복하면서도 선처를 받았고 범죄자 관리도 안 되는 상황에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박귀섭 씨는 사형을 선고해 달라고 탄원했다. 서진환은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박 씨가 한 말 중에서 마지막 문장에 눈이 간다.

“범행을 반복하면서도 선처를 받았고 범죄자 관리도 안 되는 상황”이라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박 씨는 아내 죽음 뒤에 가려진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검사-판사-경찰-교도소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잘못을 범했다. 아내를 살해한 그 순간, 서진환은 교도소에 있어야 했다. 무슨 말이냐고?

장주영을 강간살해하기 전까지, 서진환은 강간 혐의로만 세 차례 복역했다. 1991년, 강간과 강간미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 받았다. 1997년엔 강간치상을 저질러 (징역 5년), 2002년 9월에 출소했다. 출소 후 1년 7개월가량이 지난 2004년 4월엔 특수강도강간을 저질러 징역 7년을 선고 받았다. 서진환은 2011년 11월 9일에 출소했다.

법을 잘 아는 사람은 ‘어, 이거 좀 이상한데?’ 할 거다. 먼저 서진환이 저지른 1997년 강간치상, 2004년 특수강도강간 범죄를 잘 봐야 한다. 강간치상, 특수강도강간은 특정강력범죄에 해당한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강법)’ 3조는 이렇게 규정돼 있다.

“특정강력범죄로 형(刑)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끝나거나 면제된 후 3년 이내에 다시 특정강력범죄를 범한 경우에는 그 죄에 대하여 정하여진 형의 장기(長期) 및 단기(短期)의 2배까지 가중한다.”

이해를 위해 서진환에게 적용해 보자. 1997년 강간치상의 죄로 징역 5년을 선고 받은 서진환이 출소 후 3년 이내에 특정강력범죄를 저지르면 법원은 최소 징역 10년을 선고해야 한다는 뜻이다. 서진환은 출소 19개월 만인 2004년에 특수강도강간을 저질렀다. 최소 징역 10년형에 해당하는 범죄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검사는 징역 7년을 구형했고, 법원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운 좋게(?) 교도소에서 7년을 살고 2011년 11월에 나온 서진환. 출소 9개월 만에 장주영을 강간살해했다.

명백한 검사, 판사의 잘못이다. 법률전문가인 이들이 서진환의 범죄경력만 확인했어도 그에게 법령 적용을 제대로 했을 터다.

박귀섭 씨가 지난 2016년 2월, 아내 장주영(가명) 씨의 유골이 안치된 경기도 용인의 한 공원묘지를 찾았다. ⓒ셜록

박귀섭 씨는 지난 2013년 2월,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아내의 죽음 배경에는 국가의 범죄예방 소홀과 공무원의 책무위반, 법령 위반이 있다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국가의 잘못은 있지만, 서진환이 저지른 범죄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법 다루는 사람들이 법대로 해야죠. 실수를 했지만 ‘책임은 없다’는 주장인데, 그럴거면 자신들이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하지 않았으면 해요.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데, 많이 배웠다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하는지 모르겠네요.“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승소하든 패소하든, 아내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그날 그 아침이 마지막이었다.

(2016년 카카오 스토리펀딩에 연재한 기사입니다. 2021년 <셜록> 홈페이지 옮겼다는 걸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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