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범 서진환은 미리 신호를 보냈다. 자신의 범행을 막기 위해 배정된 보호관찰관에게 말이다.

“사람을 칼로 찌르거나 성폭력을 하는 등으로 사고를 치고 교도소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보호관찰관은 서진환의 ‘경고’를 공식 문서에 기록했다. 그는 서진환의 말을 일반적인 푸념이지 “사람, 사회에 대한 적개나 분노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아무 조처도 하지 않았다. 2012년 6월 20일의 일이다.

판단은 빗나간다. 약 2개월 뒤, 서진환은 자신의 말을 실천으로 옮긴다. 한치의 오차 없이, 정확하게.

2012년 7월 31일이었다. 서진환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집으로 들어가는 여성 A씨를 봤다. 그는 A씨를 강간하기로 작정했다. 한쪽 발목에 채워진 전자발찌와 돈 문제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던 차였다.

‘강간해서 경찰에 안 잡히면 좋고, 잡히면 교도소에 들어가 살지 뭐.’

일주일이 지난 8월 7일, 서진환은 칼을 들고 A씨 집으로 향한다. 그는 A씨 집 대문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운동화에서 끈을 풀었다. 그는 혼자 있던 A씨를 제압한 뒤 강간했다. 범행을 마친 서진환이 A씨에게 말했다.

“신고할 거야? 신고하면 서로 좋을 거 없어. 신고하지 말고, 소리도 지르지 마.”

A씨는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수사를 시작했다. 서진환은 범행 현장에 자기 DNA 정보도 남겼다.그의 발목에 채워진 전자발찌는 ‘나 여기 있었다’는 신호를 법무부 산하 위치정보중앙관제센터에 보냈다.

입으로 경고했고, 현장에 DNA 정보를 남겼으며, 발목의 전자발찌가 계속 신호를 보내는 상황. 세상에 이렇게 쉬운(?) 범인이 또 있을까? 서진환은 멀리 도망가지도 않았다. ‘경찰에 잡히면 교도소에 들어가 살면 되니’ 도망갈 이유가 없었다. 그는 범행 현장에서 약 2km 떨어진 자기 집에서 살던대로 살았다.

그럼에도 ‘경찰에 안 잡히는 좋은’ 일이 서진환에게 이어졌다. 서진환은 이제 파국을 향해 걸어간다.

A씨 강간 이후 13일이 지난 8월 20일 아침이었다. 서진환은 두 아이의 엄마 장주영(가명)을 강간살해 한다. 그는 현장에서 체포돼 현재 교도소에서 무기수로 살고 있다. 모든 게 강간범 서진환이 말한 대로 이뤄졌다.

강간범의 바람이 실현될 때까지 정부는 무엇을 했을까?

검찰-법원—교도소-경찰-보호관찰소는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꼬리를 물며 잘못과 실수를 범한다. 강간범의 경고는 이런 과정을 거쳐 현실이 됐다. 믿기 어렵다고? 하나씩 살펴보자.

검찰-법원의 잘못 덕에(?) 서진환은 교도소에서 10년이 아닌 7년만 살고 나온다. (2화 기사 참고) 이제 교도소가 잘못의 꼬리를 물 차례다. 출소 직전인 2011년 8월 29일,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원은 서진환에게 7년간 전자발찌 부착을 결정한다. 성폭력 재범의 위험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서진환은 21세인 1991년부터 41세가 된 2011년까지 성폭력 범죄 등으로 18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그는 상습 강간범으로 법원의 조치는 당연했다.

교도소는 수형자가 출소하면 이름, 주소, 죄명, 형기 등이 적힌 석방통보문을 관할 경찰서에 보낸다. 우범자를 관리해 범죄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경북북부제2교도소는 2011년 11월 서진환을 풀어주며 엉뚱한 내용의 석방통보문을 보낸다.

이름 : 서진환
죄명 : 절도
형명형기(통산) : 징역 6개월
범죄개요 : 2004년 4월 여성 B씨 집에 침입해 강간. 탁자 위에서 2만 원 강취.

서진환이 절도범이라니. 게다가 징역 6개월? 서진환은 ‘범죄개요’에 적힌 대로 특수강도강간죄로 징역 7년을 복역했다. 복역 중 절도죄가 발각되어 징역 6개월이 추가됐다. 통산한 형기는 징역 7년 6개월이며, 죄명에는 특수강도강간이 추가돼야 했다.

이번엔 경찰서가 잘못의 꼬리를 문다. 경찰은 석방통보문의 ‘범죄개요’는 살피지 않고 ‘죄명’만 확인했다. 따로 서진환의 범죄이력도 조회하지 않았다. 결국 서진환은 상습 강간범이 아닌 절도범으로 분류됐다.

경찰의 ‘우범자 첩보수집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서진환은 성폭력 재범 가능성이 높은 ‘첩보수집대상자’다. 경찰은 2년 동안 서진환을 관리하는 담당 직원을 두고, 3개월에 1회 이상 범죄 관련 여부 첩보를 수집해야 했다. 하지만 경찰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서진환은 자유롭게 살았다. 경찰의 해명은 이렇다.

“우리 경찰서에서 관리하는 우범자는 총 498명으로 전국에서 제일 많은 인원수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 인원을 우범자 담당자 1명이 우범자 관리 업무 외 다른 업무를 병행하면서 관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 사실조회요청에 대한 답변

우범자가 전국에서 제일 많으면 담당자를 늘리는 게 합당한 조처 아닐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게 경찰의 책임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경찰은 이를 책임 회피의 핑계로 삼았다.

2012년 8월 20일 장주영을 강간살해한 서진환. 사진은 현장검증 때의 모습이다. ⓒ 연합뉴스

우범자 관리에 실패한 경찰은 이제 강간범 검거에도 실패한다. 전자발찌를 찬 서진환이 A씨를 강간하고, 13일 뒤에는 장주영을 강간살해 할 때까지 경찰은 무엇을 했을까?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철저히 기초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피해자(A씨) 확보하고 현장감식을 통해 (범인) DNA를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했습니다. 범행현장 주변 CCTV 검색 및 녹화기록을 확보해..” – 2013년 7월 사실조회요청에 대한 경찰서 답변

한마디로, 전자발찌 신호 확인 빼고 다 했다는 이야기다. 그럼 전자발찌 확인은?

“(장주영) 살인 피의자로 서진환이 검거된 뒤에야 그가 전자발찌 착용자라는 걸 인지했습니다. 전자발찌 착용자에 대한 피해자(A씨)의 진술이나 기기 증거부품 등 전자발찌와 관련된 어떠한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전자발찌 착용자를 우선 수사하기로 결정하고 2012년 8월 21일 전자발찌 수사도 병행 의뢰했습니다.“

경찰은 전자발찌관련 진술을 하지 않은 강간 피해 여성을 탓했다.

흉기를 든 강간범에게 끔찍한 일을 당하는 그 순간에도 피해 여성은 두 눈 똑바로 뜨고 가해자의 발목을 살폈어야 했다는 말인가? 게다가 ‘전자발찌 증거부품’이 발견되지 않았다니. 전자발찌는 인간처럼 머리카락 등이 없다. 파손되지 않는 한 범행 현장에 증거물이 남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경찰이 “피해자 진술이 없었음에도, 전자발찌 착용자를 우선 수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힌 8월 21일은 장주영이 살해된 다음날이다. 경찰은 ‘우선 수사’한 게 아니다. 뒤늦게 수사했다.

그동안 경찰 측은 “사건 발생 직후 전자발찌 부착자를 수사했어도 서진환 검거는 어렵다”며 “전자발찌 정보조회를 신속하게 했으면 장주영씨 강간살해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란 장씨 유가족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정말 그럴까? 감사원은 경찰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감사원은 장주영 사망 직후 전자발찌 제도가 잘 운영되는지 살펴보기 위해 법무부, 경찰청 등을 감사했다. 감사원의 결론은 경찰 주장과 판이하다.

“OO경찰서는 전자발찌 착용자인 서진환이 2012년 8월 20일 서울 중곡동에서 성폭행 및 살인사건을 일으킨 사실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자, 그 다음날(21일) 위치추적관제센터에 서진환의 위치정보를 요청했다. (중략)  이렇게 전자발찌 착용자의 위치정보를 수사지침상 기초 수사자료에 포함시키지 아니함으로써 서진환의 2차 범행을 예방할 수 있었는데도 예방하기 힘든 상황을 초래하였다.“

감사원은 “2차 범행(장주영 강간살해)을 예방할 수 있었다”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감사원은 경찰청장에게 관할 경찰서 “수사업무에 대한 지도, 감독을 철저히 하라”는 조치를 내린다. 감사원은 놀라운 사실도 밝혀냈다.

“2012년 5월 15일 서울보호관찰소에서 OO경찰서를 방문해 형사과 소속 직원 8명에게 성폭력, 살인 등 강력범죄 발생 시 위치추적관제센터 등에 전자발찌 착용자의 위치정보를 요청하여 수사에 활용하도록 안내하고 관련 책자까지 배부했다. 그럼에도 OO경찰서는 A씨 성폭행 사건을 수사할 때에는 수사지침에 위치정보 활용 내용이 없다는 사유 등으로 전자발찌 착용자의 위치정보를 조사하지 않은 채 CCTV 수사나 탐문 수사 등 다른 수사기법만 활용했다.”

서진환의 전자발찌 신호 정보를 관리한 서울보호관찰소도 감사원과 같은 의견이다.

“서진환이 8월 7일 A씨를 강간한 범죄를 저지른 이후 (경찰이 우리에게 전자발찌 신호를 조회했으면) 충분히 그를 검거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사후처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서진환은) 8월 20일 강간을 재차 감행했고, 그 과정에서 살인에까지 이른 것으로 사료된다.” – 2012년 감사원에 낸 의견

경찰이 제대로 수사했으면 최소한 장주영은 살릴 수 있었다. 장주영 유가족만의 주장이 아니다. 감사원과 보호관찰소도 같은 의견이다.

재범 위험성이 높은 상습 강간범 서진환을 관리하지 않은 건 ‘인력이 없어서’ 전자발찌 신호 확인 안 한 건 ‘피해 여성 진술이 없어서’. 경찰은 늘 ‘OO이 없어서’라는 식으로 핑계를 댔다. 지금도 경찰은 말한다.

“당시 수사에 문제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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