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살인범 서진환은 나의 이웃이다. 지금 사는 집에서 조금만 가면 그가 나고 자란 땅이다. 그가 많은 시간 보낸 오래된 집도 있다. 차에 시동을 걸고 내비게이션에 그의 본적지 주소를 찍었다.

‘전남 구례군 OO리 OOO번지.‘

10분이면 닿는다는 메시지가 떴다. 서진환에게 가는 길, 바람이 벚나무를 흔들어 꽃잎이 눈처럼 쏟아졌다. 왕복 2차선 도로 왼쪽으로 섬진강이 흐르고, 오른쪽은 지리산이다. 한국에서 이름난 ‘아름다운 길’이다. 그 길을 따라 그에게 다가갈수록 고민이 깊어졌다.

악마는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경찰이 보는 앞에서 두 아이의 엄마 장주영(가명)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서진환. 체포된 그는 성범죄자 재범위험성을 평가받을 때 경찰에게 “나는 이제 악마가 되어 바뀔 수 없다”고 말했다. 자신을 상담한 여자 경찰에게 이런 성희롱도 했다.

“사회에서 보는 마지막 여자인데, 당신 얼굴만 떠오를 것 같네요. 솔직히 처음에는 여자라 뒷모습 보고 발기가 되었는데, 이야기하다보니 그런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이 강간살해한 장주영의 죽음에 대해 이런 말도 했다.

“그녀의 저승길에 길동무라도 해주고 싶어요.“

강간범 서진환에게 가는 길, 꽃잎이 눈처럼 쏟아졌다. ⓒ 박상규

자신이 죽여놓고 길동무해주고 싶다니. 상식, 통념으로 서진환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왜, 무엇 때문에 그는 악마가 되었을까. 그의 고향과 오래된 집으로 향한 이유다. 정답은 아니어도 작은 실마리라도 찾고 싶었다. 무엇보다 오래된 집에는 서진환의 삶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 산다.

그 인물은 서진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법원 판결문, 경찰의 재범위험성 및 정신병질자 선별도구 평가 문서, 보호관찰소의 판결전조사서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다. 서진환의 아버지, 바로 그다. 그를 꼭 만나야 했다.

서진환이 태어나 유년을 보낸 마을은 구례에서 예전에 가난한 동네로 불렸다. 지금도 종종 “저쪽 구석에 있는 동네”라고 불린다. ‘구석 동네’에서 서진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의 본적지에는 다른 집이 들어섰다.

동네 사람들에게 “서진환을 아느냐”고 물으니 거의 “모른다”고 했다. 약 1시간을 헤맨 뒤였다. 듬성듬성 허리가 하얀 노인이 저쪽에서 걸어왔다. 노인에게서는 술냄새가 났다.

“혹시, 서진환 씨라고 아시나요?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랐는데요.”

“서진환이라..모르겠는데요.”

이번에도 허탕. 그냥 동네를 뜨려는 찰나, 그 노인이 불렀다.

“어이, 일루 와봐요.“

노인은 또랑 옆에 앉아서 불렀다.

“일루 와서 옆에 앉아봐요.”

노인이 시키는 대로 했다. 술냄새가 더 진하게 풍겼다. 

“서진환을 찾아왔으면, 분명히 좋은 일로 오지는 않았을 텐데..맞죠?”

“..”

“걔가 지금 살인으로 교도소에 있는데..그건 알고 왔을 테고. 무슨 일이오? 교도소에서 뭔 사고라도 쳤나?“

노인은 서진환의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서진환의 유년, 그의 가족, 심지어 그의 할아버지까지. 그는 서진환의 가까운 친척이었다. 노인에게 서진환의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럼 같이 갑시다. 지금은 여기에 없고, 저기 옆 동네에서 혼자 살아요.”

노인을 차 뒷좌석에 태웠다. 차 안에 술냄새가 퍼졌다. 하지만 노인의 말과 행동에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몇 번 한숨을 토한 노인이 말했다.

“진환이가 사람을 죽일 만큼 대담하거나 거친 놈이 아닌데..그게 참 이상해요. 걔가 어릴 적엔 순하고 착했어요. 어른들에게 인사도 잘하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아이여서 말도 별로 없었어요. 그런 진환이가 어쩌다가 사람을 칼로 찔러 죽였을까.“

노인의 기억과 추억은 기록과 거의 일치한다. 서진환은 구례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녔다. 그의 생활기록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항상 우울한 얼굴로 말을 잘 하지 않음.’ – 초등학교 3학년
‘문제성이 있었으나 차차 순화되어 가며 말이 없음.’ – 초등학교 4학년.
‘결석이 잦고 성적은 저조하나 심성이 착하고 온순함. 가끔 절제력이 요구됨.’ – 중학교 3학년.

노인의 한숨이 깊어졌다. 저 멀리 지리산 노고단이 짙어 보였다. 서쪽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노인이 말을 이었다.

“가난했어. 엄청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았지. 진환이 할아버지부터 술, 노름으로 가정을 돌보지 않았아요. 할아버지가 노름으로 돈을 다 써 버려서 진환이 아버지가 제대로 못 배웠다고. 그러더니 아버지가 또 술 마시고, 노름하고 그랬으니 집이 엉망이었지. 그래서 진환이 형제들이 전부 공부를 많이 못 하고 뿔뿔이 흩어졌어요.“

노인의 이야기에서도 핵심 인물은 서진환의 아버지다. 말이 없는 서진환의 ‘우울한 얼굴’ 뒤에는 아버지가 있다.아버지가 술, 도박을 좋아하는 가정은 거의 가난하다. 술, 도박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대개 아내를 때린다. 아내를 때리는 아버지는 자식들도 때린다. 서진환은 피보다 진하고 진한 이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 성장했다. 그는 10남매 중 여섯째다.

친척 노인의 말대로 10남매는 힘들게 살았다. 가난과 가정폭력을 피해 초등학교 시절부터 집을 떠나거나 도망치곤 했다. 엄마가 노점 등을 하며 가정을 지키려 애썼으나 역부족이었다. 엄마는 2001년 암으로 사망했다. 서진환은 경찰서에서 말했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숱하게 맞았습니다. 엄청 많이 맞았어요. 나는 도망이라도 갔지, 형들은 바보처럼 멍청하게 다 맞고 있었다니까요!”

하루는 엄마가 작정하고 술을 마신 뒤 아버지를 찾아가 도박판을 엎어버린 적이 있다. 서진환의 기억 속에 그 하루는 또렷하다.

“엄마가 술 먹고 도박판 ‘깽판’ 놔서 또 아버지에게 맞았어요. 엄마도 맨 정신으로 그렇게 하기 어려우니 술을 마셨겠죠.“

말이 없는 서진환에게도 ’15살’이 위기였다. 가난과 가정폭력에 시달린 서진환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가출을 반복했다. 소년 서진환은 멀리 가지 못했다. 동네 빈집이나 묘지 등에서 잠을 잤다. 슈퍼에서 먹을 것을 훔치면서 비행을 시작했고, 중학교 3학년 때 자전거를 훔친 죄로 처음 입건돼 소년보호처분을 받았다.

2012년 8월 20일 장주영을 강간살해한 서진환. 사진은 현장검증 때의 모습이다. ⓒ 연합뉴스

하지만 소년 서진환을 보호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잘못 들어선 길에서 질주를 시작한다. 단기사병으로 근무하던 군 시절, 서진환은 선배 부인을 강간하고 또 다른 여성을 강간하려고 시도했다. 이 일로 그는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처음으로 교도소에 들어갔다. 이후 서진환은 강간, 폭행, 절도 등으로 생의 대부분을 교도소에서 보낸다. 그러다 2012년 두 아이의 엄마 장주영을 강간살해해 무기수가 됐다.

당시 법원 판결문의 한 대목은 이렇다.

‘가정폭력 및 유년기 방치로 인해 두려움이나 공포 감정을 인지적 처리와 분리시키는 등 피고인에게 정서공감능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우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게 있어 변화에 대한 스스로의 기대도 찾아보기 어렵다.‘

서진환을 상담한 뒤 경찰이 작성한 문서 내용 역시 비슷하다.

‘가정폭력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있음.’
‘스스로를 매우 부정적인 존재로 인식, 우울하다는 생각과 우울감을 경험하고 있음.’
‘특정 상황에 대한 불안과 사회적 관계의 위축감 등 자신감이 없음.‘

자존감이 낮고 인간관계에서 자신감이 없던 서진환. 하지만 성적인 문제에서는 집착과 과시 성향을 보였다. 그는 경찰에게 “나는 원래 성욕이 강해 통제가 안 되기 때문에 겁탈을 해서라도 해소해야 한다”며 여성을 향한 폭력과 강간을 합리화했다.

엄마를 때리는 아버지를 보면서 상처를 받았던 서진환. 안타깝게도 서진환은 아버지라는 산을 넘지 못했다. 서진환은 아버지를 향한 감정이 안 좋은지 구속 직후 “보고 싶은 생각이 없고, 면회를 오든지 말든지 상관없다”고 말했다. 이번엔 서진환의 아버지를 만날 차례다.

그에게 아들 서진환은 어떤 존재일까. 서진환의 아버지는 구례의 한 허름한 농가에서 홀로 지낸다. 나를 안내한 친척 노인이 “안에 있소?”하면서 서진환의 아버지를 불렀다.

“누구여?”

목소리가 크고 선명했다. 팔순이 넘은 서진환의 아버지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건강해 보였다. 친척 노인이 소개했다.

“진환이 때문에 기자가 왔네. 진환이 아직 교도소에 있지요? 근데 누구를 죽인 겨?”

“과부를 건드렸어!“

서진환의 아버지는 사실과 다른 내용을 거침없이 말했다. 친척 노인은 편하게 이야기 하라며 자리를 비켜줬다. 서진환의 아버지는 마루에 앉고, 나는 마당 평상에 앉았다.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면서 멋쩍에 웃었다. 조금 어색한 상황, 서진환 아버지가 “뭐가 궁금해? 물어봐요. 다 말해줄게”라며 긴장을 풀어줬다.

  • 아들 서진환씨 언제 마지막으로 봤어요?

“뭐, 한 10년 됐나? 그 새낀 집에 잘 오지도 않아.”

  • 진환씨 안 보고 싶으세요? 면회라도 한 번 가시죠.

“안 보고싶어!”

  • 그래도 아들이잖아요. 왜 안 보고 싶으세요?

“하도 나쁜짓을 하고 다니니까! 그 새끼 아주 나쁜 놈이야.”

  • 서진환씨가 어릴 적엔 착했죠?

“그럼! 착했지. 근데 언젠가부터 아주 글러 먹었어.”

  • 왜 그렇게 됐을까요?

“내가 어떻게 알아요!”

  • 어르신께서 예전에 아내분을 많이 때리셨죠?

“아니, 때리긴 누가 때려! 그런 거 없어.”

  • 술, 도박 좋아하지 않았어요?

“남들 마시는 만큼만 마셨지! 도박을 하긴 누가 해?!”

과거 행동 부정. 특별한 일 아니다. 그는 과거 보호관찰소 관계자와의 면담에서도 “(서진환은) 그동안 연락도 없었고 보고싶은 생각도 없다. 원수 같은 놈이다.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서진환의 다른 형제들도 아버지의 가정폭력, 음주, 도박 등을 이야기했지만 정작 당사자는 예전부터 관련 내용을 부정했다.

서진환은 지리산과 섬진강을 보면서 자랐다. 그의 집을 떠날 때 머리가 복잡했다. ⓒ 박상규

서진환 아버지와 오래 대화할 수는 없었다. 그는 “무릎이 아파 쉬어야 한다”며 빨리 방으로 들어가고 싶어했다. 그와 헤어져 집 밖으로 나왔다. 친척 어른은 우리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짐작이 가는지 “저 양반도 술, 도박 좋아하는 아버지 밑에서 힘들게 자랐다”고 말했다. 서진환의 아버지 역시, 자신의 아버지를 넘지 못했다.

서진환에게 아내 장주영을 잃은 박귀섭 씨. 그는 사건 직후 “서진환을 사형시켜 달라”고 법원에 탄원서를 냈다. 그는 여전히 서진환을 용서할 수 없다. 그런 박씨도 서진환의 과거를 동정한다.

“서진환과 그 형제들도 참 비참하게 살았더라고요. 참 불쌍하죠. 그런데 이젠 그 사람 때문에 나와 두 아이가 비참하게 됐네요.”

여러 기록과 이야기를 봤을 때, 서진환은 분명 상처 속에서 성장했다. 그는 여러 여자를 강간했고, 끝내 여자 장주영을 살해했다. 장주영에겐 다섯 살, 네 살 남매가 있었다. 두 아이는 지금 아홉 살, 여덟 살이다. 엄마가 왜 사라졌는지, 왜 집에 오지 않는지, 두 아이는 안다. 두 아이는 지금 “엄마”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엄마”를 부르면, 자신과 아버지가 아프다는 걸 안다.

서진환의 오래된 집을 떠나는 길, 봄바람 치고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오래된 집 어딘가에서 끼걱 거리는 소리가 났다. 섬진강과 지리산 사이에 놓인 길은 해질녘에도 아름다웠다. 그 길을 따라 집으로 향하며 또 스스로에게 물었다.

‘악마는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2016년 카카오 스토리펀딩에 연재한 기사입니다. 2021년 <셜록> 홈페이지 옮겼다는 걸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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