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는 대한민국 법관 세 명, 진현민-전경호-이미나 판사다. 모두가 말리는 싸움, 후배는 이런 말도 했다. 

“형, 변호사 그만둘 거야?”

돈도 명예도 기대할 수 없는 일. 법조계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싸움. 눈 딱 감고 하루만 흘려 보내면 끝인데.. 3년간 이어진 의문이 또 불쑥 올라왔다. 

‘그 판결, 정말 재판부의 단순 실수일까?’

이번에도 고개는 끄덕여지지 않았다. 손해배상 청구 권리가 사라지는 소멸시효 완성 마지막 날인 2017년 10월 16일, 법원에 소장을 접수했다. 거기에 “재판부의 불법행위”를 분명히 적었다. 

14년간 노동력 착취로 피해를 입은 원고 박홍준은 당연히 가해자가 공정한 재판을 통해 처벌받을 것을 기대했습니다. 인권의 최후 보루인 형사사법 과정에서 자신의 의사, 그것도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는지 여부와 관련한 의사가 왜곡되어 반영된 것을 알게 된 박홍준의 정신적 충격은 어떤 언어로도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피고 대한민국은 제1심 재판부의 불법행위로 인해 원고 박홍준이 입은 정신적 손해배상으로 1억 원을 지급함이 마땅합니다.

신안군 염전노예 사건 피해자 박홍준 씨를 대리해 판사의 책임을 묻는 국가배상소송을 진행한 최정규 변호사 ⓒ주용성

일명 ‘염전판사’의 과실 책임을 묻는 국가배상소송은 이렇게 출발했다. 염전노예 사건 피해자 수십 명을 대가 없이 도운 원곡법률사무소의 최정규 변호사에게 해당 사건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었다.  그는 지난 4월 펴낸 책 <불량 판결문>에 이렇게 적었다. 

“도대체 판사는 왜 처벌불원서 검증 절차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은 것일까? 지구 끝까지 가더라도 반드시 대답을 들어야겠다고 시작한 이 싸움은…”

그야말로 스펙터클하게 진행됐다. 재판부가 피고 측을 변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소송 당사자인 세 판사는 답을 회피하고, 세 판사를 증인으로 불러달라는 요청을 재판부가 또 극구 반대하고… 판사의 책임을 묻는 재판은 대개 이런 식이다. 

[첫 기사 보기 – 20만원에 팔려 염전으로.. 마지막엔 판사에게 당했다]

기울어진 듯한 운동장에서 펼쳐진 대결은, A4 문서 한 장에서 비롯됐다. 발달장애인 박홍준(65년생) 씨를 신안군 섬으로 유인해 약 14년간 염전 노동을 시키고 급여를 1원도 안 준 혐의로 구속된 피고인 염전주인 A 씨 측이 낸 처벌불원서. 내용은 이렇다. 

“피고인의 가족들이 찾아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피고인(염전주인)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으니 하루빨리 석방되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선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자필이 아닌 문장. 진위를 가릴 만한 신분증사본, 인간증명서도 내지 않았다. 무엇보다 박홍준 씨는 한글을 제대로 쓰거나 읽을 줄 몰라, ‘처벌불원’의 의미를 모를 가능성이 컸다. A 씨를 대리한 이재강 변호사는 이 문서를 선고 3일 전인 2014년 10월 13일에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형사1재판부에 냈다.

신안군 염전노예 사건의 가해자인 염전주인 A 씨 측이 선고 3일 전에 재판부에 낸 처벌불원서. 이 문서는 조작으로 드러났다. ⓒ주용성

누가 봐도 이상한 문서. 더 이상한 건 따로 있었으니, 진현민-전경호-이미나 판사로 구성된 재판부가 조작된 처벌불원서를 검증도 않고 효력을 인정해 A 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는 점이다.  

재판부는 왜 그랬을까? A 씨를 대리한 이재강 변호사가 목포지원장 출신인데, 혹시 세상에 떠도는 그 ‘전관의 힘’이 작동한 걸까?

이 당연한 물음이 판사들은 그렇게 불편했는지, 국가배상소송을 담당한 1심 재판부는 첫 기일 때 오히려 최 변호사에게 반문했다. 

“내가 형사 단독 사건 다룬 지가 좀 되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 달에 300건 정도 처리하는데, 처벌불원서를 제출하면 피해자들을 다 법정에 불러야 하나요? 그게 가능한가요?” – <불량 판결문> 참고.

형사 재판에서 판사가 얼마나 바쁜지는 핵심이 아니다. 가해자 반성을 포함한 피해자-가해자 합의 여부를 확인하는 등 사건의 실체적 진실 규명이 형사재판의 핵심이자 재판부의 책임이다. 

진현민-전경호-이미나 판사는 조작된 처벌불원서를 양형이유에 반영해, 반성하지 않은 가해자를 선처했다. 결과적으로 실체적 진실 규명에 실패한 셈이다. 이게 가벼운 일일까? 최정규 변호사는 소장에 이렇게 적었다. 

“처벌불원서의 진위 여부를 확인해야 할 재판부가,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피해자의 서명과 무인만이 있는 처벌불원서의 진정 여부를 의심할 만한 충분한 사정이 있고, 간략한 방법으로 이를 확인할 방법이 있음에도, 서명과 무인이 있다는 형식적 판단만으로 확정한 것은 법관이 그에게 부여된 권한의 취지를 명백히 위반한 것으로 위법한 직무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정규 변호사 ⓒ주용성

이 소송을 맡은 1심 재판부는 공판을 1회만 열고 바로 원고 패소를 판결했다. 

“위 형사사건의 제1심 재판부 법관들이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하였다거나 법이 법관의 직무수행상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기준을 현저하게 위반하는 등 자신들에게 부여된 권한의 취지에 명백히 어긋나게 이를 행사하였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으므로,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다.”

국가배상법 제2조에 따르면 모든 공무원은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면 배상책임을 진다. 판사도 공무원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법관에게 배상책임을 묻기 위해선 몇 가지 전제조건이 더 필요하다는 판례를 남겼다. 바로 “부당한 목적”으로 법령을 “현저하게” 위반한 게 “명백히” 드러나야 한다는 점이다. 

‘법관 면책특권’이라 불리는 이 판례 탓에 엉터리 판결을 한 판사에게 배상 책임을 묻는 재판은 거의 모두 실패로 끝났다. 최정규 변호사는 항소하면서 이 문제를 지적했다. 

“법관이 재판을 함에 있어서 권한을 명백하게 남용한 경우라야 위법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은 지나치게 위법성을 제한하여 법관을 보호하는 것이므로 국가의 책임을 원칙으로 하는 국가배상법의 취지에 반합니다.”

최 변호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진현민-전경호-이미나 판사를 증인으로 불러달라고 항소심 재판부에 요청했다. 

최정규 변호사. ⓒ주용성

그는 증인신문을 통해 ▲염전노예 사건 재판 진행에서 특별히 고려한 게 있었는지 ▲선고기일 3인 전 피고인 측 변호인이 낸 처벌불원서의 효력을 인정한 근거는 무엇인지 등을 확인하고 싶다고 밝혔다. 판사별 증인신문은 15분, 총 45분이면 족하다고 했다. 

특히 최 변호사는 “해당 형사재판부는 신안군 염전노예사건 관련 다른 재판에선 처벌불원서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피해자들을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시킨 것이 확인됐다”며 “박홍준 씨 사건에서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 3일 동안 어떤 방법으로 진위를 확인했는지” 직접 묻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그 45분조차 허락하지 않고, 세 판사에 대한 증인신문 요청을 2020년 3월 37일 기각했다. 재판부는 “이미 확보된 자료를 보면 해당 법관들이 공정하게 업무를 처리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상태”라며 취지의 근거를 들었다. 

최 변호사는 “해당 법관들에 대한 증인신문 신청을 모두 기각한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재판부 기피 신청으로 맞섰다. 재판은 한동안 중지됐다. 최 변호사가 이렇게 ‘세게’ 나온 이유가 있다. 

그는 그동안 수차례 세 판사 측에게 물었다. 

“처벌불원서에 기재된 피해자 주민등록번호, 피해자 이름이 자필인지 여부를 어떤 방법으로 확인한 것인지, 피해자 이름 옆에 찍힌 무인이 피해자의 무인이 맞는지 어떤 방법으로 확인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재판부를 통한 구석명 신청을 해도 답하지 않던 피고 측은 2020년 11월 23일에야 문서로 이렇게 답했다. 

“처벌불원서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법관의 자유판단에 맡겨져 있고, 이는 법관 또는 사건마다 달리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피해자의 서명-무인 등이 있고, 변호인이 제출하였다는 점에서 그 진정성립을 인정할 만한 서면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무인-서명 등이 피해자 것이 맞는지 어떻게 확인했느냐고 물었는데, 무인-서명이 있어서 믿었다는 도돌이표 같은 답변. 답답한 상황은 이어졌고, 재판부 기피신청은 대법원까지 갔지만 최종 기각됐다. 

최정규 변호사. ⓒ주용성

올해 2월 16일 나온 2심 선고 역시 원고 패소. ‘법관 면책특권’ 논리가 또 등장했다. 

“설령 대상 법관들이 진행한 제1심 재판에 법령의 규정을 따르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보더라도, 대상 법관들이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하는 등 그들에게 부여된 권한의 취지에 명백히 어긋나게 이를 행사하였다거나…”

박홍준은 상고했지만,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지난 6월 심리불속행 기각을 결정했다. 염전판사들에게 “지구 끝까지 가더라도 반드시 대답을 들어야겠다”고 시작한 싸움은 4년 만에 이렇게 끝났다. 

경찰은 수사로, 기자는 기사로,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자기 직무에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지, 결과물을 내놓은 이후에 입을 닫으라는 의미가 아니다. 검사가 수사 결과에 대해서 질문과 검증을 받듯이, 판사의 판결도 예외는 아니다. 

진현민-전경호-이미나 판사가 가해자를 선처할 때 이용한 조작된 처벌불원서는, 2심 재판 때 효력이 부정됐다. 이들이 잘못된 판결을 했다는 게 상급심에서 인정된 셈이다. 하지만 검사가 항소할 때 처벌불원서를 문제 삼지 않았기에 2심에서 그 문제는 다툼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박홍준을 14년간 노예로 부린 가해자의 선처는 유지됐다. 

정말이지 세 판사는 왜 그런 판결을 했을까? 최정규 변호사가 못 받은 대답, 혹시나 들을 수 있을까 해서 기자가 세 판사 측에 지난 10월 연락을 해봤다. 

세 ‘염전판사’는 엉터리 판결문 뒤에 숨어 있다. ⓒ주용성

광주가정법원에 있는 이미나 판사. 그는 공보담당 직원을 통해 “인터뷰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전경호 판사는 현재 외국에 체류 중이다. 

서울고등법원에 있는 진현민 판사. 그는 공보담당 판사를 통해 “이미 확정된 판결에 대해 더 말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답을 해왔다. 

왜 그렇게 판결했는지를 물었는데, 판결에 대해 더는 말하지 않겠다는 이 무한 도돌이표 반응이라니. 실수든 고의든,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면 누구나 배상 책임을 지는 세상. 엉터리 판결문 뒤에 숨는 판사들에겐 언제쯤 적절한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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