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집 남자가 휘두른 칼에 집주인 일가족이 살해된 사건은 대낮에 벌어졌다.

조성인(가명)은 초여름, 신민재(가명)가 소유한 주택 지하 방으로 이사 왔다. 신민재 가족은 2층에 살았다.

“제발 저를 용서해주세요!”

이사 온 지 이틀 만에 조성인은 이상한 행동을 했다. 신민재 집 바로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절을 하며 허공에 용서를 빌었다. 며칠 뒤 밤 11 30분께 집주인 신민재 씨 집 현관문을 발로 차면서 외치기도 했다.

“너희 집 씨를 말려 버릴 거야. 죽일 거야!”

신민재는 경찰에 신고했다. 조성인은 뚜렷한 죄목이 없단 이유로 훈방 조치됐다.

조현병 환자였던 조성인은 환청에 시달렸다. 주로 너는 어차피 죽을 거다. 왜 당하고만 있느냐는 내용의 목소리를 들었다. 망상 증세도 겪었다. 특히 한 여자가 자기를 괴롭힌다는 망상이 심했다. 여자의 하수인이 항상 자신을 미행하고, 고막에 도청 장치를 몰래 넣었다고 생각했다. 집주인 신민재는 이 여자의 사촌 오빠고, 자신을 괴롭힌다고 여겼다.

조성인이 심한 난동을 피울 때 가족들이 그를 정신 병원에 입원시켰다. 하지만 치료는 꾸준히 이어지지 않았다. 신민재 집으로 이사 오기 약 한 달 전인 5월 말, 조성인은 아내를 찾는다며 남의 집 문을 두드리며 소란을 피웠다. 조성인의 친형이 동생을 보름간 서울시 광진구에 있는 한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퇴원 전 의사가 장기 입원을 권유했지만, 조성인은 거부했다.

그는 정신과가 아닌 응급실이나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자기도 모르게 누가 귀에 도청 장치를 심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8월 말, 9월 말 두 차례 귀에서 이물감이 느껴진다며 종합병원 응급실에 찾았다. 조성인은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정신과 전문의 말은 듣지 않았다.

2014년 12월 12일 오후 수원 팔달산 토막살인사건의 유령한 용의자가 거주한 것으로 알려진 경기도 수원 구도심의 단독주택 앞에서 경찰 병력이 경계를 서고 있다. 용의자는 이 단독주택 반지하 방의 세입자로 알려졌다.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습니다.) ⓒ연합뉴스

조성인이 본격적인 위험 신호를 보낸 건 9월 말이다. 종합병원 응급실에 다녀온 다음 날인 9 25일 밤 11 30, 톱을 들고 신민재 집으로 올라갔다. 이때 신민재의 아내 김혜선(가명)은 톱을 든 아랫집 남자를 보고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조성인은모두 죽여버리겠다”면서 톱으로 현관문을 훼손하고 유리창을 깼다.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에요?”

집 밖으로 피신했다 3시간 만에 돌아온 김혜선이 지하 방으로 찾아가 항의했다. 조성인이 소리쳤다.

“죽여버리려 했는데, 더 이상 말 시키지 말고 가라.”

그날 김혜선은 A 파출소를 찾아가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다.

“조성인은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고 이웃들을 불안에 떨게 하는 정신질환자니 경찰의 협조를 바랍니다.”

A 파출소 경찰은 다음 날 조성인 집에 찾아가 응급 입원 절차를 밟았다. 응급 입원은 자해・타해 위험이 높은 정신 질환자를 경찰과 의사의 동의를 받아 입원시키는 제도다. 당시에도 경찰관직무집행법 제4 제1항에 따라 경찰은 자해・타해 위험이 높은 정신 질환자 응급입원 신청을 할 수 있었다. 조성인은 9 26일부터 10 5일까지 서울 은평구 소재 OO시립병원에 입원했다.

퇴원 후에도 이상 행동은 이어졌다. 조성인은 어떤 여자가 귀에 이물질을 집어넣고 자기 이름을 부른다고 소리쳤다. 아랫집 남자가 또다시 소란을 피우자 10 20, 김혜선은 다시 경찰에 신고했다.

“수도 없이 난동을 부리는 정신질환자인데 그 가족들조차 방치해 이웃들이 모두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경찰은 조성인을 A 파출소로 데려와 훈계한 뒤 귀가시켰다. 이후 A 파출소 소속 경장 최지훈(가명)조성인의 친형과 모친을 만나 입원을 권유했다. 가족들이 치료비 문제로 난색 표하자, 최지훈은 생활보호대상자(기초생활수급자에 해당)에 지정되면 월 십만 원 정도에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설득했다. 이때 그는 실제로 낮은 가격에 입원 치료가 가능한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한 정신병원을 소개하기도 했다.

약 한달 뒤인 11 17, 최지훈은 주민센터 동장 앞으로 조인성을 생활보장대상자로 지정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해가 바뀌었다. 다음 해, 1 9, 조성인은지하 방 보일러가 고장 났는데 왜 수리해주지 않느냐”며 신민재에게 항의했다. 두 사람은 다퉜고 조성인은 그 길로 집을 나와 여관에 투숙했다.

열흘 뒤, 여관에서 나온 조성인은 미리 시장에서 구매한 칼 세 자루를 소지한 채 동네를 배회했다. 오후 2시께 마침내 집주인 신민재와 마주쳤다. 신민재는 조성인을 집으로 데려가 그의 짐을 집어 던지면서 말했다.

“남은 짐까지 다 가지고 나가!”

그때 조성인이 칼을 꺼내 집주인을 향해 휘둘렀다. 조성인은 신민재만 죽이지 않았다. 아내 김혜선, 장모 그리고 그의 아들이 조성인의 칼에 찔려 숨졌다. 1994 1 19일, 서울 성동구에서 벌어진 ‘일가족 살인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조성인은 1994 5 6 1심에서 징역 20년과 치료감호를 선고 받았다. 조성인은 항소했으나 그해 8 18일 기각됐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약 30년 전 사건을 언급하는 이유가 있다. 피해자 유가족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당시 판결 지금도 많은 걸 시사한다. 

유가족은 이듬해 국가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며 “A 파출소의 소극적 조치가 조성인의 범죄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주용성

원고 신민재・김혜선의 유가족과 피고 대한민국이 치열하게 대립했던 대목은 조성인이 톱으로 신민재 집을 파손했을 때 이뤄진 경찰의 대처다.

원고는 이때 경찰이 조성인을 응급입원 시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수사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원고 측 법률 대리인은 당시 조성인은 신민재 집을 파손했으므로 금고 이상의 법정형에 해당하고, 그의 정신질환 상태를 고려하면 재범의 위험성도 인정됐을 거라고 봤다. 만약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면 조성인은 재판에 넘겨져 치료감호처분을 선고받고, 장기간 구금돼 범행시키기까지 신민재 일가족과 격리됐을 것이라 주장했다.

각각 12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은 모두 피고 대한민국의 손을 들어줬다. 유가족은 대법원에 상고했다. 법률 대리인은 상고 이유서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 사건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위해 ‘경찰권이 어디까지 발동해야 하는지’ 그 한계와 기준에 대해 판단하는 사건입니다.”

대법원 역시 A 파출소가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했다고 봤다. 1996 10 25, 유가족의 상고를 기각해 피고 대한민국의 승소를 확정한 것이다. 대법원 판결문에서 눈에 띄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경찰관은 조성인(가명)을 일시적으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등 경찰관 직무집행법의 규정에 의한 긴급구호 조치를 취했고, 정신질환자가 장기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생활보호대상자 지정의뢰를 하는 등 나름의 조치를 취했다”

즉 경찰은 조성인을 상대로 응급 입원을 진행했고, 생활보호대상자 지정 의뢰 등 지속적인 입원 치료를 받도록 노력도 했으므로 책임을 다 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준 2019년 진주 방화살인사건, 일명 ‘안인득 사건’과 비교해보자.

조성인처럼 안인득은 아파트 주민을 살해했다. 안인득 역시 조현병 환자였으나 지속적인 치료를 받지 못했다. 안인득은 환청과 망상에 시달렸다. 그는 2019 4 17일 새벽, 자기 집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주민들을 칼로 찔러 죽였다.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혐의로 구속된 안인득(42)이 병원을 가기 위해 2019년 4월 19일 오후 경남 진주경찰서에서 이동하고 있다.

성동구 일가족 살해 사건과 진주 방화살인 사건에는 유사한 점이 많다.

두 사건 모두 범인이 치료를 중단한 조현병 환자였고, 저소득층 1인 가구였으며, 범행 전 이상 행동을 반복했다. 범인이 난동을 피울 때마다 여러 차례 경찰에 신고한 이웃 주민이 살해됐다는 점 역시 동일하다.

이 두 사건엔 한 가지 결정적 차이가 있다. 바로 경찰 대응이다.

2019 1월 안인득에게 뺨을 맞은 자활센터 직원은 경찰에게 “(안인득과) 상담 중에 정신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내가 보기에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다.

안인득을 5차례나 경찰에 신고한 윗집 주민 강선정(가명) 역시 같은 해 3안인득에게 정신질환이 있는 것 같으니 알아봐 달라고 호소했다.

[관련 기사 보기 – 경찰은 왜 안인득을 봐줬나]

현장에 출동한 진주시의 경찰들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안인득의 정신질환을 무겁게 여기지도 않았다. 이와 달리 1993 A 파출소 경장 최지훈은 조성인의 정신질환을 파악하고 복지 혜택을 받아 치료를 지속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한 조성인의 응급 입원을 추진한 A 파출소와 달리 2019년 주민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진주시 경찰들은 안인득을 응급입원 대상으로 고려하지 않았다.

“국가(경찰)는 어디까지 노력해야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있나?”

진주 방화살인 사건 일부 유가족 및 피해자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재판부는 약 30년 전 질문을 다시 받았다.

안인득 사건의 일부 유가족 및 피해자는 ‘경찰이 안인득을 응급 입원 대상으로 검토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고 있다. 반면 2022년 피고 대한민국은진주 방화살인 사건에 국가 책임은 없다고 주장한다.

진주 방화살인 사건의 일부 유가족 및 피해자와 국가 간 법정 공방은 오는 9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이어질 예정이다.

약 30년이 지난 지금, 법원은 어떤 답을 내놓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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