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제한구역 관리 방안에 대한 연구> / 표절률 71% / 500만 원
<양산시 상북면과 하북면 항일독립운동 스토리텔링 사업> / 표절률 63% / 500만 원
<부산시 주거복지 실태와 정책 발전방안> / 표절률 69% / 330만 원

국민을 위한 정책을 연구하라고 지원하는 세금을 표절투성이 보고서에 퍼주는 ‘국가기관’이 있다. 우리나라 임금근로자 중위소득은 월 242만 원(2020년 기준). 이 기관은 표절률이 70%가 넘는 보고서를 쓴 연구자에게, 보통 월급쟁이의 두 달 치 월급이 넘는 돈을 손쉽게 줬다.

표절은 범죄라는 국민적 상식도, 국민의 혈세를 쓴다는 책임감도 사라진 이곳은 바로 ‘국회’다.

국회는 2005년부터 국회의원에게 ‘입법 및 정책 개발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 비용은 세미나, 토론회, 공청회 등 국회의원의 입법 및 정책 개발을 위한 모든 행사와 활동에 지원된다. 2022년 기준 이 예산은 약 76억 원에 이른다.

국회의원 한 명당 지원되는 연간 예산은 약 2550만 원. 이 비용에 정책연구비가 포함되는데, 1회 500만 원 이하로 소규모 연구용역 집행이 가능하다. 국회의원들은 정책연구비를 사용해 외부에 연구용역을 주고 결과보고서를 받는다.

하지만 용역보고서의 ‘품질’을 검증하기 위한 구체적 지침이나 규정이 없어 그동안 문제가 많이 발생했다. 500만 원 이하의 소규모 연구용역이다 보니, 경쟁계약이 아닌 임의로 수행자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계약이 이뤄진다. 의원실이 친분 관계에 따라 원하는 사람을 골라 용역을 맡길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이 예산이 ‘국회의원의 쌈짓돈’으로 불리는 이유다.

용역보고서에 대한 검증 과정도 전무했다. 의원실에서 500만 원 이하의 연구용역 수행자를 정해 지급신청서를 내면, 국회 사무처는 아무 검증 없이 예산을 지원해준다. 표절과 짜깁기로 만든 엉터리 결과보고서가 제출된다 해도 걸러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2018년 11월 29일 유인태 당시 국회 사무총장(가운데)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 공개 등 국회 투명성 강화 및 제도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이에 국회 혁신자문위원회(위원장 심지연, 활동기간 2018년 9월~2020년 5월)와 유인태 당시 국회 사무총장은 2018년 11월 29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책개발비 예산집행 과정에서 표절과 부정행위가 발생하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며 국회 혁신을 약속했다.

혁신자문위원회는 2020년 5월 활동결과보고서를 통해, 입법 및 정책개발비 사용결과에 대한 검증이 가능하도록 국민들에게 정보공개 체계를 갖추고 의원실별로 연구용역의 용도와 근거자료를 직접 공개하도록 권고했다. 또 연구용역 결과물의 표절 및 부실 여부를 검증해 그 결과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그 뒤로 2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지금, 국회는 스스로 발표한 개선안대로 연구용역 보고서를 검증하고 있을까. 500만 원 이하 연구용역비는 여전히 국회의원들의 쌈짓돈 취급을 받고 있지 않을까.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국회 사무처에, 21대 국회 임기를 시작한 2020년 5월부터 2022년 7월까지 의원실별 소규모 연구용역 집행 내역을 정보공개 청구했다. 입수한 3년치 집행 내역서를 통해 의원실별 연구용역 제목과 정책연구비, 계약기간, 계약상대자 등을 파악했다.

이후 열린국회정보 정보공개포털(open.assembly.go.kr)에 공개된 ‘2020년~2022년 국회의원 소규모 연구용역 결과보고서’ 523건(9월 21일 기준) 중 정책연구보고서 원본 323건을 열람해 표절 여부를 살폈다. 여론조사와 번역 보고서는 분석 대상에서 제외했다.

<셜록>이 국회에서 직접 확인한 입법 및 정책 개발비 집행내역과 지출 증빙 서류의 일부. 서류는 양이 방대해 국회사무처 직원이 초록색 이동식 수레에 실어 가져왔다. ⓒ셜록

표절 판단 방법은 이랬다. 우선, 표절 심의 사이트 ‘카피킬러’에 용역보고서 323건을 모두 돌려 표절률을 살폈다. 이후 용역보고서와 표절 의심 원자료를 비교했다. 그걸 근거로 용역보고서 표절 수치를 정리했다.

수치 집계 시 고려한 점은 이렇다. 다수의 의원실에서 진행한 공동연구물은 용역보고서 한 건으로 계산했다. 용역보고서를 분할해 여러 개로 제출한 경우엔, 평균 표절률로 집계했다. 열람되지 않는 오류 파일 2개는 제외했다.

학위논문의 경우 대개 ‘표절률 10% 미만’으로 인정범위를 정해두고 있다. 국회의원실 용역보고서를 ‘카피킬러’를 통해 검증한 결과, 323건 중 무려 208건이 표절률 11% 이상을 기록했다.(표절 기준은 ‘6어절 이상, 1문장 이상 일치’로 설정) 만약 학위논문이었다면, 세 건 중 두 건 꼴인 64%의 보고서는 정상적인 연구결과로 인정받지 못했을 거다.

표절률 20%를 초과한 용역보고서는 전체의 3분의 1이 넘는 37%였다. 내용의 절반 이상을 표절한 용역보고서도 전체의 6%를 차지했다. 개수로는 19건이다.

결국 연간 70억 원이 넘는 예산 가운데 상당한 금액이 표절과 짜깁기로 뒤범벅된 연구보고서를 발간하는 데 쓰이고 있는 셈이다.

2020~2022 국회의원 소규모 연구용역 보고서 표절률 집계 결과 그래프 ⓒ셜록

<셜록>은 ‘카피킬러’ 검증 결과 표절률 50% 초과 용역보고서 19건 중 8건을 집중 분석했다.

표절률 50% 미만을 기록한 보고서들이 ‘문제 없는’ 보고서라는 뜻이 절대 아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표절률 집계 결과는 국민의 상식이나 학문적 양심과 동떨어져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심각성을 생각할 때, 전체 내용 가운데 연구자 자신의 생각보다 타인의 지식을 도둑질 한 내용이 더 많다는 것은 무엇으로도 변명할 수 없는 심각한 수준의 ‘부정’이다. 더욱이 그런 행위에 세금 수백만 원이 쓰였다는 점을 용인할 국민은 아마 없을 것이다.

표절률 50% 초과 보고서 중에서, 수많은 자료를 산발적으로 표절한 사례는 제외했다. 법령, 경전, 합의문 등으로 절반 이상을 채운 보고서도 뺐다. 국민들이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표절 사례 8건에 집중했다.

<셜록>은 문제의 용역보고서 8건이 표절한 원자료를 찾아 한 문장씩 직접 대조했다. 주로 공공기관의 정책보고서 일부를 통째로 베끼거나, 타인의 논문을 짜깁기한 사례가 많았다. 목차와 각주까지 그대로 가져온 경우도 있었다. 원자료에서 문단별로 어미만 다르게 쓴 보고서도 있었다.

<셜록>은 표절률 50% 초과 용역보고서 19건 중 8건을 집중 분석했다 ⓒ셜록

지난 3개월간 <셜록>이 직접 검증한 엉터리 용역보고서 8건을 낱낱이 공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보도 대상부터 기막히다. A 의원이 집행한 용역보고서는 블로그 글을 통째로 긁어와 보고서의 절반 이상을 채웠다. 이미 보도된 기사를 100% 그대로 가져오기도 했다.

A 의원은 과거 지방선거에서 상대 후보자를 향해 논문 표절 의혹을 끈질기게 제기한 바 있다. “저작권 침해는 중범죄”라며, 상대 후보를 향해 “지역의 명예와 자존심을 생각해 당장 사퇴하라”고 목소리 높인 인물이었다.

혹시나 국회의원들의 머릿속에, 500만 원 정도는 ‘푼돈’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임금근로자 79.1%는 한 달 소득이 450만 원이 되지 않는다. 월급쟁이 다섯 명 중 네 명은 한 달 내내 일해도 손에 쥘 수 없는 돈을, 어떤 사람은 표절률이 70%가 넘는 엉터리 보고서를 쓰고도 잘만 받아가고 있는 셈이다.

10원이든 10억 원이든 모든 세금에는 국민의 피와 땀이 녹아 있다. 정책연구비를 ‘쌈짓돈’ 쓰듯 해온 국회의원들의 이름을 다음 기사부터 공개할 계획이다. <셜록>의 바람은 하나다. 국회의원들의 세금 씀씀이가 본인 돈 쓸 때만큼이나 알뜰하고 정직했으면 한다는 것. 아마도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러하듯이.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주보배 기자 treasure@sherlockpress.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