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논문으로 박사학위 취득한 후보자는 당장 사퇴하라!”

2014년 5월 26일 서병수 당시 새누리당 후보 선거캠프는 제6회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직을 놓고 경쟁하던 상대 후보에게 사퇴를 촉구했다. 서 후보 캠프의 전용성 총괄선대본부장은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누군가의 연구물을 표절한 사람이 대표자가 되면 지역의 명예가 실추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날 부산시선거방송토론회가 주최한 TV 토론회에선 서 후보가 직접 “저작권 침해는 중범죄”라고 비판을 이어갔다.

다음 날인 5월 27일에도 서 후보는 평화방송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서종빈입니다’에 출연해, “논문 표절은 분명한 중죄에 해당하고 다른 공직에 있었다면 그 자체로 무효가 되는 중대한 사실”이라며 “(후보자) 본인이 사과하고 (후보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해 선거에서 당선돼 4년간 부산시장을 지낸 그는 2020년 21대 총선(부산 부산진구갑)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다. 서병수 의원은 2021년 3월 연구용역을 통해 정책보고서를 발간했다. 그런데 이 보고서, 표절 흔적이 가득하다. 2014년 표절에 투철한 문제의식(?)을 보였던 서 의원은 ‘복사-붙여넣기’로 범벅이 된 보고서로 국민 혈세를 낭비한 주인공이 됐다.

김미애 국민의힘 국회의원(왼쪽)과 서병수 국민의힘 국회의원(가운데). 두 의원실이 공동으로 발간한 <부산시 주거복지 실태와 정책 발전방안> 연구용역 보고서에서 심각한 표절 정황이 발견됐다. ⓒ연합뉴스

국회에서 의원에게 지원하는 예산 항목 중엔 ‘입법 및 정책개발비’가 있다. 의원당 연간 2550만 원까지 지원받는다(2022년 기준). ‘입법 및 정책개발비’ 중 ‘정책연구비’로는 소규모 연구용역 보고서를 만들 수 있다. 의원실에서 500만 원 이하의 연구용역 수행자를 정해 지급신청서를 내면, 국회 사무처에서 사후 지급하는 식이다.

서 의원도 2020~2022년 연구용역 보고서 세 건을 발간했다. 문제의 보고서는 <부산시 주거복지 실태와 정책 발전방안>으로, 2021년 3월 국민의힘 김미애 국회의원(부산 해운대구을)과 공동으로 발표했다.

연구를 수행한 책임연구원은 부산행복연구원 부원장 A 씨. 그는 2021년 1월 27일부터 2월 28일까지 약 한 달간 연구용역을 수행하고 330만 원(서병수의원실 220만 원, 김미애의원실 110만 원)을 받았다.

국민 세금 330만 원이 투입된 이 보고서, 표절 심사 프로그램 ‘카피킬러’에 돌려보니 표절률이 69%로 나왔다(표절 기준 ‘6어절 이상, 1문장 이상 일치’ 적용).

왼쪽 : 서병수·김미애 의원이 2021년 3월 공동 발간한 연구용역 보고서 <부산시 주거복지 실태와 정책 발전방안> 표지 / 오른쪽 : 두 의원이 진행한 용역 보고서가 표절한 블로그 게시글

자세히 들여다본 결과는 더 심각했다. 목차 포함 총 63쪽 중 약 50쪽에서 표절 정황이 보였다. 그중 32쪽 분량은 한 블로그 글을 긁어온 수준이었다. 나머지 17쪽은 타인의 연구물 두 건과 상당히 흡사했다. 한마디로 보고서 약 80%를 ‘남의 글’로 채운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2014년 2월 14일 작성된 블로그 글은 <한국 주거복지 정책 : 과제와 전망>(하성규 외, 박영사, 2012년)을 읽고 썼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글의 상당 부분은 책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책 이름은 서병수·김미애 의원의 보고서에도 찾아볼 수 있다. 보고서 마지막 쪽인 ‘참고문헌’에서 말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해당 보고서는 책이 아니라 블로그 글을 표절했다. 블로그 글 속 오자와 작성자의 개인 견해까지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보고서 첫 번째 챕터는 ‘사회적 약자와 주거 빈곤의 개념’이다. 첫 문단부터 보자. 블로그 글에서 문단 시작 기호인 ‘줄표(-)’를 없애고, 줄 바꿈을 제거해 이어붙이면 보고서 첫 문단과 동일하다. 큰따옴표(“”)를 통해 강조된 부분 역시 블로그 글과 같다.

블로그 게시글의 시작 부분(위)과 서병수·김미애 의원 연구용역 보고서의 본문 첫 문단(아래)이 거의 일치한다. 블로그 작성자가 큰따옴표로 강조한 부분(노란색 표시)까지 똑같다.

두 번째 챕터 ‘주거복지의 개념과 발전 배경’에서는 더 노골적인 표절 정황이 보였다. 책에 대한 블로그 작성자의 개인적 평가까지 보고서에 옮겼다. 주의를 기울여 읽으면 해당 내용은 책에 서술된 내용이 아니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지만, 보고서 작성자는 타인의 견해까지 베꼈다. ‘1980년대’가 아니라 ‘1980년댜’라는 오자까지 말이다.

서병수·김미애 의원의 연구용역 보고서(아래)는 책 <한국 주거복지 정책 : 과제와 전망>에 대한 블로그 게시글(위)을 거의 그대로 표절했다. 심지어 책 내용 요약이 아닌 작성자 개인의 견해(노란색 표시)와 “1980년댜”라는 오자(주황색 표시)까지 그대로 베꼈다.

세 번째 챕터 ‘한국 주거복지 정책의 역사’에서도 표절 패턴은 비슷했다. ‘강북 뉴타운으로’ 옆 소괄호 안에 붙은 물음표와 ‘마련하였따’라는 오자까지, 모든 문장이 블로그 글과 판박이였다.

블로그 작성자가 문단 말미에 붙인 “뉴타운 사업을 주거격차 해소로 평가하는 것은 금시초문?”이라는 개인 견해는 “뉴타운 사업을 주거격차 해소로 평가하는 건 무리라는 시각도 있다”라고 살짝(?) 변형했다. 총 63쪽짜리 보고서에서 절반에 해당하는 32쪽까지는 모두 이렇게 블로그 글을 ‘복사-붙여넣기’ 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보고서 후반부는 다른 연구물을 베낀 흔적이 가득했다. 표절했다고 추정되는 연구물 두 건은 다음과 같다. 하나는 2020년 부산광역시에서 도시와공간연구소에 연구용역을 맡긴 <부산광역시 주거실태조사>, 다른 하나는 2016년 부산발전연구원에서 발간한 <서민 주거복지서비스를 향상하려면>이다.

연구용역 보고서 말미에 기재된 참고문헌 목록에는 이 두 연구물 이름도 있다. 하지만 보고서를 들여다보면 ‘참고했다’보다는 ‘베꼈다’는 표현이 더 적합했다. 보고서를 이룬 후반부 약 17쪽 분량이 두 연구물 내용과 문장, 도표, 그래프 자료까지 똑같았기 때문이다.

왼쪽은 <서민 주거복지서비스를 향상하려면> 7쪽, 오른쪽은 서병수·김미애 의원의 연구용역 보고서 <부산시 주거복지 실태와 정책 발전방안> 여섯 번째 챕터 일부.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표를 포함한 모든 내용이 똑같다.

표절로 범벅이 된 ‘엉망진창’ 보고서의 용역 집행비로 두 의원이 국회 사무처에 청구한 돈은 330만 원. 평범한 직장인 한 달 치 월급을 훌쩍 넘는 액수(2020년 기준 임금근로자 중위소득 242만 원)의 혈세가 낭비된 거다.

연구 주제와 책임연구원을 선정하고 용역 집행비를 책정한 건 서병수·김미애 의원실이다. 엉터리 정책보고서의 용역 집행비를 청구한 주체 역시 두 의원실이다. 정책보고서 표지에 적힌 이름 역시 ‘국회의원 서병수, 국회의원 김미애’였다.

국회의원이 연구용역 보고서를 만드는 근본적 이유는 ‘입법 역량 강화’다. 법안을 발의하기 전에 정책을 연구해서 법안의 ‘품질’을 높이겠단 거다. 그러나 서병수·김미애 의원은 21대 국회 들어 해당 연구용역의 주제인 주거복지와 관련한 법안을 발의한 적이 없다.

연구용역의 책임연구원 A 씨가 속한 부산행복연구원은 2015년 7월 당시 새누리당 부산광역시당이 만든 정책연구소다. A 씨는 부산광역시 행정자치국장 출신으로, 2015년 연구원이 개소할 때부터 참여했다. A 씨는 지난 6·1 지방선거에 국민의힘 소속 부산 북구청장선거 예비후보자로 등록했다. 하지만 경선에서 패해 본선에 출마하진 못했다.

2014년 부산시장 선거 당시 상대 후보의 표절 의혹을 집중 공략하며 “(후보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인 서병수 의원. 그가 발간한 용역보고서가 표절 투성이임이 확인됐지만 그는 사과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19일 서병수·김미애 의원실에 ▲보고서 표절에 대한 입장 ▲연구용역비 반환 의사 ▲재발 방지 대책 등을 묻는 질의서를 발송했다.

김미애의원실 관계자는 지난 22일 문자 메시지로 답변을 보내왔지만, 표절 문제에 대한 입장 없이 연구용역의 배경과 취지만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특정의 사적 이익을 고려한 것은 전혀 아니며 부산시의 발전을 위해 국민의힘 부산시당 행복연구원이 중심이 되어 12차례의 전문가 릴레이 초청간담회를 개최(2020.9~2020.12)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진행된 것임을 말씀드립니다.

정책연구용역 내용 역시 각 분야의 여러 전문가들로부터 기존 부산시의 정책 및 제도의 문제점과 향후 과제, 대안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의견을 구한 것으로 지역 국회의원의 역할과 책임으로 부산의 향후 정책과제를 검토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셜록>은 표절에 관한 입장을 듣기 위해 같은 날 전화로 추가 반론을 요청했다. 김미애의원실의 한 비서관은 “우리가 만드는 게 논문 같은 창작물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자료들에서 내용을 가져오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며, “의원실에서 표절률 같은 심사를 해야 한다는 절차가 없고, 절차가 있더라도 그건 국회 사무처에서 할 일”이라고 답했다.

반면 서병수의원실은 27일 현재까지 아무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서병수의원실 관계자는 지난 23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질의서를) 검토 중으로 알고 있다”며 답변을 미뤘다. 지난 26일 다시 전화로 반론을 요구했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 같은 날 서 의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고, 서 의원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도 답은 오지 않았다.

<셜록>은 지난 19일부터 서면 질의서에 이어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여러 차례 서병수의원실에 답변을 요청했지만 아무 대답도 듣지 못했다 ⓒ셜록

국회의원이 발간하는 소규모 연구용역 보고서를 향한 지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언론을 통한 문제제기 후 국회 혁신자문위원회는 같은 해 11월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책개발비 예산 집행 과정에서의 문제 해결 등 국회 혁신안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시점에도 문제는 반복됐다. <셜록>이 21대 국회 개원 이후 발간된 소규모 연구용역 보고서 323건을 표절 심사 프로그램 ‘카피킬러’를 통해 확인한 결과, 약 64%에 이르는 208건이 표절률 10%를 초과했다. 표절률이 20%를 초과한 보고서는 약 37%로, 3분의 1 이상을 차지했다. 표절률이 무려 50%를 초과한 보고서도 19건(6%)이나 됐다.

서병수 의원의 2014년 발언처럼 “표절은 중범죄”고 “명예와 자존심 실추의 문제”다. 그리고 또 하나, 국민과 한 약속을 저버리고 혈세를 낭비하는 무책임한 일이다. 본인부터 돌아봐야 할 국회의원은 서병수·김미애 의원뿐일까.

 

주보배 기자 treasure@sherlockpress.com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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