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위키백과’다. 국민의힘 서병수 국회의원(부산 부산진구갑)의 ‘표절’ 연구용역 보고서가 추가로 발견됐다.
인터넷 블로그 글을 통째로 긁어온 보고서로 국민 혈세를 낭비해 비판을 받은 서 의원은 2020년에도 엉터리 연구용역 보고서를 발간했다. 서 의원이 발간한 연구용역 보고서는 인터넷 위키백과부터, 언론사 칼럼, 정부부처의 정책보고서까지 골고루 베꼈다. 한마디로 ‘백화점식 표절’이다.
서 의원은 2014년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직을 놓고 경쟁하던 상대 후보의 논문 표절 문제를 강하게 지적했던 인물. 당시 서 의원은 “논문 표절은 분명한 중죄에 해당하고 다른 공직에 있었다면 그 자체로 무효가 되는 중대한 사실”이라며, “(후보자) 본인이 사과하고 (후보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상대 후보의 표절 문제에 민감했던 서 의원이지만, 본인의 문제엔 너무도 관대해 보인다
서 의원은 인터넷 블로그 글 속 오자와 작성자의 개인 견해까지 그대로 가져온, ‘복사-붙여넣기’로 범벅이 된 연구용역 보고서를 2021년 3월 발간한 바 있다.
[관련 기사 보기 : “표절은 중범죄”라더니… 서병수 의원의 낯선 ‘침묵’]
이뿐만이 아니다. 서병수의원실은 2020년 11월 정보기술(IT) 전문가인 대학교수 A씨에게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책임연구원 A씨는 약 한 달 동안 <한국판 디지털 뉴딜 정책분석>을 주제로 연구용역을 진행했다. 하지만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해당 연구용역 보고서와 원자료를 비교한 결과 표절 흔적이 뚜렷했다.
보고서에 무단으로 활용된 원자료 출처는 다양했다. 먼저 위키백과다. 위키백과는 익명과 공동 편집을 허용한 인터넷 지식백과로, 통상 비학술적 자료로 인식돼 학술 인용에 잘 활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해당 보고서는 위키백과 내용을 그대로 가져왔다.
보고서는 한국판 뉴딜산업의 장단점을 분석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의 주요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위 내용은 위키백과 중 ‘창조경제’ 페이지에 등록된 박근혜 정부의 ‘9개 전략산업’ 부분 서술과 동일하다.
“재난관전”(재난안전)이라는 오자와 “좀더”(좀 더)라는 띄어쓰기 실수를 포함해, 문장부호까지 단 한 글자도 다르지 않고 위키백과 내용과 똑같았다. 차이가 있다면, 보고서는 위키백과 내용을 표로 정리했다는 점밖에 없다.
다음은 언론사 칼럼이다. 해당 보고서는 미래를 위한 제안을 하면서 ‘경박단소 산업도시’를 설명했다. 이때 국민일보 2018년 12월 4일자 경제시평 <중후장대에서 경박단소로>를 통째로 가져왔다. 베낀 문장만 총 25개, 페이지 수로는 3쪽 분량이다.
해당 칼럼을 쓴 평론가는 A 교수와 같은 대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동료 교수다. 칼럼 마지막 문장의 “기대해 본다”라는 표현만, 보고서에선 “요구된다”로 수정했다. 한 문장도 아닌 한 어절만 빼고 전부 무더기로 가져온 것이다.
마지막은 정부부처가 발행한 정책보고서다. 정책보고서 인용은 더 과감하게 이뤄졌다. 문제의 보고서 총 65쪽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개요 부분(34쪽)은 아예 다른 정책보고서에서 전체를 가져왔다고 봐도 무방했다.
표절로 보이는 주요 정책보고서 두 건은 다음과 같다. 하나는 2020년 10월 13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간한 <지역과 함께하는 지역균형 뉴딜 추진방안>이다. 문제의 보고서는 해당 정책보고서에서 9쪽 분량을 가져와 제멋대로 짜깁기했다.
두 번째는 2020년 7월 14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간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이다. 총 35쪽으로 이뤄진 정책보고서에서 22쪽 분량이 그대로 문제의 보고서로 옮겨갔다. 원자료의 약 3분의 2를 그대로 베낀 셈이다.
위키백과부터 언론사 칼럼과 정부부처의 정책보고서까지 표절로 얼룩진 연구용역 보고서. 참고문헌 목록은 물론 주석까지 샅샅이 뒤져봐도 원자료 출처에 대한 표기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2020년 국회사무처가 발간한 <의정활동지원 안내서>는 “연구용역 수행과정에서 다른 논문 또는 도서 등 자료를 인용한 경우에는 반드시 인용출처를 상세히 명시하여 ‘저작권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엉터리 보고서는 수치로도 증명된다. <셜록>이 해당 연구용역 보고서와 원자료를 비교해 표절 여부를 살펴본 결과, 전체 보고서 65쪽 중 37쪽에서 표절 정황이 확인됐다. 표절 심의 사이트 ‘카피킬러’를 통해 문제의 연구용역 보고서를 검사한 결과에서도 표절률 58%를 기록했다. 보고서의 절반 이상을 다른 사람의 지식을 훔쳐서 채운 셈이다.
해당 연구용역 보고서에 지급된 정책연구비는 300만 원. 정책연구비는 ‘입법 및 정책개발비’에 포함되는 비용으로, 1회 500만 원 이하의 소규모 연구용역 집행이 가능하다. 2022년 기준 ‘입법 및 정책개발비’ 예산은 약 76억 원에 이른다.
이 예산의 목적은 국회의원의 ‘입법 역량 강화’다. 법안 발의 전 연구용역을 통해 정책을 심도 있게 연구해 법안의 품질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서 의원은 21대 국회 개원 후 해당 연구용역의 주제와 관련한 법안을 대표발의한 적이 없다.
<셜록>은 서병수의원실의 설명을 듣기 위해 지난 19일 서면 질의서를 보냈다. ▲연구용역 보고서 표절에 대한 입장 ▲연구용역비 반환 의사 ▲재발 방지 대책 등에 대해 질의했다. 이후 수차례 전화로 답변을 요청했지만 의원실은 계속 침묵하고 있다. 서 의원에게도 직접 전화를 걸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지만, 30일 현재까지 아무런 답도 하지 않고 있다.
사실 ‘입법 및 정책개발비’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까지 여정은 지난했다. 국회 혁신자문위원회(위원장 심지연)는 2018년 11월 정책개발비 예산집행 과정에서 표절과 부정행위가 발생하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며 국회 혁신을 약속했다.
국회의원들은 반성의 뜻으로, 이미 집행한 예산을 국회에 반납하기도 했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2017년 12월부터 2019년 2월까지 입법 및 정책개발비 예산을 반납한 국회의원은 21명이다. 반납한 금액은 1억 3791만 원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국회가 혁신을 약속한 때로부터 약 4년이 지난 지금도 문제는 지속되고 있다. <셜록>은 21대 국회 임기 시작 이후 집행한 소규모 연구용역 보고서 323건을 ‘카피킬러’를 통해 조사했다. 표절률이 10%를 초과한 보고서가 전체의 3분의 2에 가까운 208건(64%)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내용의 절반 이상을 표절한(표절률 50% 초과) 연구용역 보고서도 전체의 6%를 차지했다. 개수로는 19건이다. 여기서 2건이 서병수의원실에서 나온 보고서다.
국민의힘 의원 중 최다선인 5선 의원이면서 부산시장까지 역임한 서 의원은 현재 국회부의장 후보로 거론된다. 서 의원 본인 역시 국회부의장을 향한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표절 연구용역 보고서로 세금을 낭비하고도 침묵과 외면으로 일관하고 있는 서 의원. 자리에 대한 욕심보다 본인의 행위에 대한 반성과 책임감부터 먼저 느껴야 하지 않을까.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