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발신자가 ‘◯◯◯의원실’인 메일이 메일함에 도착할 때마다 사무실에선 짧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9월 말부터 국회의원 연구용역 보고서의 표절 실태를 검증하는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국회의원은 입법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소규모 연구용역 보고서를 만든다. 의원실에서 연구 주제와 용역 수행자를 정해 지급 신청서를 제출하면 국회사무처가 용역비를 지급한다. 보고서 한 편당 최대 500만 원, 의원실별 연간 255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 용역 집행비가 포함된 예산인 ‘입법 및 정책 개발비’에는 약 76억 원이 편성됐다(2022년 기준).

<셜록>이 21대 국회 개원 이후 발간된 연구용역 보고서 323건을 표절 심사 프로그램 ‘카피킬러’를 통해 확인한 결과, 약 64%에 이르는 208건이 표절률 10%를 넘겼다. 표절률이 20%를 초과한 보고서도 3분의 1 이상(37%)을 차지했다. 표절률 50%를 초과한 보고서는 19건(6%)이었다.

<셜록>은 표절률이 높은 보고서를 발간한 국회의원들에게 서면 질의서를 보냈다. 몇 번의 요청 끝에 속속 도착한 의원실의 답변서에는 ‘답변’이 없었다. 사과도 없었다. 오히려 책임을 국회 사무처에 넘기는 태도가 보였다.

‘표절’ 연구용역 보고서를 발간한 의원실들은 ‘책임’ 이야기가 나오자 한결같이 발을 뺐다 ⓒ셜록

‘표절률 1위(71%)’의 주인공 이헌승(국민의힘, 부산 부산진구을) 국회의원실은 지난 4일 답변서에서 “의원실에선 연구주제만 협의했고 구체적인 내용과 결과에 대해선 관여한 바 없다”며, “앞으로도 현재 국회 사무처에서 적용하고 있는 연구용역 관련 규정에 따라 집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러 군데서 문장을 긁어와 종결어미조차 통일하지 않은 연구용역 보고서를 내놓은 임오경(더불어민주당, 경기 광명시갑) 국회의원실의 답변서에도 국회 사무처가 소환됐다. 임오경의원실은 지난 4일 표절 보고서에 대한 용역비 반환 의사에 대해 “국회 사무처의 절차와 방법을 정상적으로 준수하였기에 반납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아예 의원실은 표절 검증 의무가 없다는 답변도 있었다. 블로그 글을 통째로 ‘복사-붙여넣기’한 연구용역 보고서를 발간한 주인공, 김미애(국민의힘, 부산 해운대구을) 국회의원이다.

김미애의원실의 한 비서관은 지난달 22일 셜록과 한 전화 통화에서 “표절을 심사하는 건 의원실이 아니라 돈을 주는 쪽(국회 사무처)에서 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서병수·김미애 의원이 공동 발간한 연구용역 보고서 <부산시 주거복지 실태와 정책 발전방안>(왼쪽)은 개인 블로그 게시글(오른쪽)을 표절한 것으로 <셜록>의 취재 결과 확인됐다

일을 시키는 건 의원실이고 돈을 주는 건 국회 사무처다. 일을 시킨 이들은 ‘책임’ 이야기가 나오자 한결같이 발을 뺐다. 또 다시 허탈함이 몰려온 순간은 돈을 주는 국회 사무처조차 책임을 떠밀었을 때였다.

<셜록>은 지난달 19일 국회 사무처에 ▲표절률 50% 이상 보고서 용역비 환수 조치 계획 ▲표절 보고서 검증 시스템 마련 의사 등을 묻는 서면 질의서를 발송했다.

사흘 뒤 국회 사무처는 전화 통화를 통해 “이메일로 보낸 질의서는 사적 창구라 답변할 수 없다”며, “국회 민원 사이트를 통해서 다시 질의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셜록>은 국회 민원 사이트에 동일한 질의사항을 올렸다.

그로부터 약 3주 뒤인 지난 14일, 맨 처음 서면 질의서를 보낸 날로부터는 거의 한 달이 지나서야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국회 사무처가 국회 민원 사이트에 남긴 답변에도 개선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국회 사무처는 표절 수준이 심각한 연구용역 보고서라 할지라도 용역비를 강제로 환수할 순 없단 입장이다. 국회 사무처는 “현재 입법 및 정책개발비의 지침에는 강제 환수 규정이 없다”며, “의원실이 자체적인 조사, 검증 등을 통하여 연구용역이 부적절하게 이뤄졌다고 판단하는 경우 경비를 자발적으로 반납하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보고서 검증 시스템 마련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2018년 이후 구축된 공개 시스템을 통해 국민이 연구용역 보고서를 열람하고 직접 검증할 수 있도록 했다”며, “이러한 조치가 국회 사무처가 직접 검증하는 것보다 더 투명성을 강화한 것”이라고 답했다.

한마디로 용역비 환수는 의원실이 알아서 하고, 표절 및 부실 검증은 국민들이 직접 보고 알아서 하라는 소리다.

국회사무처는 2020년부터 국회정보포털을 통해 소규모 연구용역 보고서를 공개해오고 있다. 표절 등 연구용역 보고서를 둘러싼 여러 문제가 2018년 언론을 통해 제기된 후 이뤄진 조치다. 하지만 이번 <셜록>의 보도가 보여주듯, 공개 조치 이후로도 연구용역 보고서의 표절 문제는 국민들의 상식 수준보다 한참이나 뒤떨어져 있었다.

2020~2022 국회의원 소규모 연구용역 보고서 표절률 집계 결과 그래프. 2018년 국회의 자정노력 발표 이후에도 표절 문제는 제대로 개선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셜록

지난달 20일 <셜록>이 정보공개 청구한 ‘제21대 국회의원 소규모 연구용역 집행내역’을 열람하러 국회에 방문했을 때, 국회 사무처 담당 직원에게 용역비 책정 기준에 대해 물었다.

“연구 주제, 용역 수행자, 집행비 모두 의원실에서 정합니다. 저희는 지급 신청서가 들어오면 대부분 승인합니다.”

국회 사무처 직원의 말처럼, 의원실이 용역을 맡길 전문가, 보고서 한 편당 용역비를 자체적으로 결정해 연구용역을 진행하면 국회 사무처는 별도의 점검 없이 예산을 지급한다.

소규모 연구용역 집행비가 포함된 ‘입법 및 정책개발비’에 관한 규정이 없는 건 아니다. 2005년에 제정된 ‘국회의원의 입법 및 정책개발비 지급 등에 관한 규정’이 있지만, 연구용역 보고서 검증에 관련한 내용은 없다. 전문가 사이에서 표절 문제를 막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승수 변호사(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지난 11일 <셜록>과 한 인터뷰에서 “현재 ‘입법 및 정책개발비 지급 등에 관한 규정’이 있지만 일종의 국회 내부 방침 정도로, 법적 효력이 명확하지 않아 우려스럽다”고 설명했다.

국회 사무처가 제작한 <국회의원 의정활동지원 안내서>(2022)는 아래와 같이 밝혀뒀다.

연구용역 수행과정에서 다른 논문 또는 도서 등 자료를 인용한 경우에는 반드시 인용출처를 상세히 명시하여 「저작권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실제로 국회 사무처에서 저작권법 위반 여부 등을 따지진 않기 때문에, 언론이나 국민이 직접 감시하지 않는 한 표절 여부를 알아낼 방법이 없다.

<셜록>의 취재로 연구용역 보고서의 표절 사실이 확인된 이용우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경기 고양시정)은 ‘자율적으로’ 표절률 심사를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용우의원실은 지난달 30일 <셜록>에 보낸 답변서에서 “향후 소규모 연구용역에 대해 사전에 카피킬러 등으로 체크하는 등 자율적 관리지침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소가 ‘또’ 달아났다. 외양간을 고쳐야 할 자들은 지금 뭘 하고 있나. ⓒpixabay

‘누가 검증할 것인가’라는 책임의 공이 이리저리 떠넘겨지고 있다. 표절 보고서로 세금을 낭비한 국회의원들은 국회 사무처로, 국회 사무처는 의원들에게 공을 넘기는 상황이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그렇게 낭비되는 돈은 의원실의 돈도, 국회 사무처의 돈도 아니라는 점이다. 엉터리 표절 보고서에 허비되는 돈은 바로 ‘국민’의 돈이다.

국회의원 연구용역 보고서 표절 문제가 드러난 2018년, 국회는 비록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었지만 나름의 방지책을 내놨다. 그런데 그때 외양간 수리가 엉망이었는지 또 소가 도망갔다. 이제는 ‘핑퐁 게임’을 멈추고, 외양간을 ‘제대로’ 고칠 때다. 그래야 다시는 소를 잃지 않는다.

 

주보배 기자 treasure@sherlockpress.com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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