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는 목숨 걸고 들어가야 되는 곳이에요. (일 끝나고) 차고지로 돌아오면 ‘오늘도 무사히 왔구나‘ 하죠.”
제1자유로 청소노동자인 신재호(가명) 씨가 기자에게 한 말.
기자가 신채호 씨를 비롯해 ‘목숨 걸고’ 자유로를 청소하는 이들을 만난 건 지난해 11월이다. 취재를 바탕으로 자유로의 안전 문제를 보도하기 시작한 때는 지난 1월.
보도 후 반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에도 자유로의 근본적 변화는 ‘아직‘이다. 고양시가 새로운 안전 대책을 포함한 입찰 공고 공개를 미루면서 청소노동자들의 안전에 대한 희망도 미뤄지고 있다.
자유로를 지나는 시민 수십만 명의 안전을 위해 청소노동자들이 투입된다. 청소노동자들은 매일 자유로에 직접 들어가 낙하물을 수거한다. 도로에 떨어진 모든 것은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물이기 때문이다.
2015년 10월, 자유로에서 일하던 청소노동자 두 명이 사망했다. 둘 다 아침에 갓길을 청소하다 달려오는 차량에 치여 숨졌다. 첫 번째 사망 사고가 발생한 지 2주가 채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사고가 일어났다.(관련기사 : <매일 자유로를 걷던 남자, 철조망 위에서 스러졌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프로젝트 ‘로드킬 : 남겨진 안전모’를 통해 고양시 관할 자유로의 청소노동자 안전 문제를 지적했다. 약 46㎞에 달하는 자유로는 경기 고양시, 경기 파주시, 서울지방국토관리청 의정부국도관리사무소가 각각 구역을 나눠서 관리한다. 자유로를 관리하는 세 주체 중에서 청소 업무를 ‘민간 기업‘에 위탁한 고양시에서 특히 문제가 두드러졌다.
문제는 크게 세가지로, ▲안전매뉴얼 부재 ▲작업 보호차량 부족 문제 ▲낮은 등급의 충격흡수장치 사용 문제 등이었다. 또, 고양시가 3년 전 ‘안전매뉴얼을 마련하라‘는 국토부 공문도 무시했다는 사실도 보도했다.
셜록의 보도 이후 이동환 고양시장은 ‘안전 문제 해결’을 공식 약속했다. 이 시장은 지난 3월에 열린 제272회 고양시의회 임시회에서 ▲시 자체 안전 매뉴얼 마련 ▲노동자 후방 보호를 위한 노면 차량 상시 배치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관련기사 : <셜록이 해냈다… 고양시장, “자유로 안전매뉴얼 마련” 약속>)
이동환 시장의 약속이 기사로 보도된 날, 한 청소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안전문제 해결해보겠다고 별짓을 다해봤어요. 국민신문고에 민원 넣고, (고양시) 자원순환과에 직접 찾아가고, 노조 가입해서 집회도 하고…. 그때마다 (현장이) 달라지지 않아서 허무해지곤 했는데 이번엔 좀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시장님이 약속해주셨잖아요. 믿어봐야죠. 다른 노동자들도 비슷한 생각이에요.”
시장은 한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다. 그렇기에 공식적인 자리에서 아무 말이나 내뱉지 않는다. 지킬 약속만 해야 한다. 자유로 청소노동자들이 이동환 시장의 약속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믿어보는 이유다.
이동환 시장의 약속이 가지는 의미가 하나 더 있다. 고양시는 민간업체에게 자유로 청소 용역을 맡긴 ‘원청 기업’이다. ‘위험의 외주화’가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은, 사고는 현장 노동자가 겪지만 안전의 키는 원청이 쥐고 있다는 거다. 안전 관련 인력과 예산은 원청이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거나 용역 대금을 정할 때 정해진다. 즉, 고양시가 안전 문제에 관심이 없으면 노동자들의 안전도 지켜질 수 없다.
“우리 시의 (용역) 설계와 계약조건 등이 근로자 안전과 복지 수준에 영향을 미칩니다. (자유로 노동자 복지 및 안전 문제가) 시 행정의 공정성과 보편적 인권의 문제라는 점에 동의합니다.”
이동환 시장은 지난 3월, 원청기업인 고양시가 자유로 노동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 시장의 약속은 원청기업인 고양시가 용역업체에 소속된 청소노동자들의 안전문제 해결에 나서겠다는 의지이기도 했다.
이제 남은 건 ‘약속 이행’뿐인 상황. 셜록의 최초 보도일부터 166일이 흘렀다. 이동환 시장의 약속으로부터는 103일이 흘렀다. 그러나 아직 현장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이뤄지지 않았다.
시가 자체적으로 마련하겠다던 안전 매뉴얼은 현장에 배포되지 않았다. 또한 노동자들은 아직도 본래 다른 업무가 있는 ‘노면청소 차량’을 작업 보호차량으로 대동하고 있다. 노면청소 차량은 애초에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차량이 아니다. 게다가 이 차량에는 트럭 탈부착형 충격흡수시설(TMA)이 없다. TMA는 교통사고 시 탑승자와 상대 운전자 모두의 안전을 위해 고안된 충격 흡수 장치다.
이동환 시장의 약속 이후 고양시 자원순환과는 “다음 용역업체부터 달라진 안전 매뉴얼을 적용받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달 2일 자원순환과 관계자는 셜록과의 전화통화에서 “해당 매뉴얼을 따라야 한다는 내용이 용역과업지시서에 포함될 것“이라며, “매뉴얼에는 노면 청소차가 아닌 작업 보호차량을 상시 대동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항목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다음 용역업체를 입찰하기 위해 공고를 5월 말부터 6월 초 사이에 게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양시는 2년마다 자유로 청소를 담당할 용역업체를 선정한다. 입찰 공고 시 함께 공개되는 게 ‘용역과업지시서‘인데, 이는 안전에 관한 사항을 포함해 용역 업무 전반의 내용을 규정한 문서다. 그러나 입찰 공고는 27일 현재까지도 공개되지 않았다.
기다리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일부 노동자들은 불안을 느끼고 있다.
한 자유로 청소노동자는 셜록과의 전화통화에서 “지난달 10일에 노면 청소차와 시민이 운전하는 차량이 추돌하는 사고가 있었다”며, “노면청소 차량에 충격흡수장치가 달려있지 않아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시민 차량의 피해가 컸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이 탄 차와 충돌하고 싶은 노동자가 어딨겠냐”며, “우리뿐만 아니라 시민 분들도 위험한 상황이 답답하다”고 전했다.
이동환 시장의 약속은 노동자 뿐만 아니라 고양시민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노동자의 안전이 중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첫 번째로는 ‘노동자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이들이 안전해야 시민도 안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장치가 없어서 청소노동자가 자유로에 진입하는 게 두려워지면 도로 청소는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도로에 낙하물이 쌓일수록 위험해지는 건 시민이다. 또한 지난달 10일에 발생한 사고처럼, 노동자가 작업차량에 적합한 충격흡수장치를 달지 않으면 그 차량에 충돌한 시민 역시 위험하다.
안전은 노동의 대전제임을 되새겨본다. 안전해야, 일할 수 있다. 안전은 일단 일을 시작한 후에 도모하는 것이 아니다.
‘안전문제 해결’ 이동환 고양시장의 약속이 있던 날 뒤에도 자유로 청소노동자들에게는 매일 매일 위험이 스치고 있다. 103일째, 청소노동자들에게는 하루 22만 번의 위험이 지난다.
주보배 기자 treasure@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