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자유로에도 청소노동자의 뒤를 지켜줄 보호차량이 생긴다. 고양시 구간 자유로에서는 과거 청소노동자가 작업 중 사망하는 사고가 잇달아 일어났는데도 제대로 된 안전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었다.

오는 8월부터 노동자들이 직접 자유로에 진입해 낙하물을 수거할 때 ‘안전지원 차‘가 그들의 뒤를 지키게 됐다. 고양시는 이런 내용이 포함된 안전매뉴얼을 처음으로 마련해 지난 3일 공개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로드킬 : 남겨진 안전모’ 프로젝트를 통해 고양시 관할 자유로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의 안전 문제를 지적한 지 약 6개월 만에 이뤄진 변화다.(첫 기사 : <매일 자유로를 걷던 남자, 철조망 위에서 스러졌다>)

자유로는 경기 고양시, 경기 파주시, 서울지방국토관리청 의정부국도관리사무소 등이 나눠서 관리한다. 셜록은 보도를 통해 경기 고양시가 관할 자유로에만 노동자들이 도로에 직접 들어가 낙하물을 처리할 때도 안전을 위한 보호차량과, 그런 규정을 명시한 안전매뉴얼이 없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지난 2015년 10월 보름 간격으로 두 차례 노동자 사망사고가 있었지만, 사람이 죽어나간 뒤에도 제대로 된 안전 조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자유로 청소 노동자가 도로에서 낙하물을 수거하고 있다 ⓒ윤재남

이번에 최초로 마련된 ‘고양시 자유로 청소 작업 안전매뉴얼‘의 핵심은 ‘작업 보호차량 의무화‘다.

그동안 청소노동자들이 자유로에서 작업할 때는 1톤짜리 트럭 한 대가 청소 도구 및 쓰레기를 싣는 수거 기능, 노동자들을 작업 지점까지 데려다주는 이동 기능에 더해, 작업 중인 노동자를 보호하는 기능까지 수행했다.

도로 위를 달리는 다른 차들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하려면 보호차량이 노동자들의 뒤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트럭 한 대로 이동, 수거, 보호까지 해결하다 보니, 노동자들은 수거물을 들고 트럭 앞뒤를 오가며 일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보호 기능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 노동자들은 제한속도 시속 90킬로미터인 고속화도로 위에서 안전모 하나만 쓰고 위험천만한 작업을 매일같이 반복해왔다.(관련기사 : <죽어야 시작되는 이야기… 우리는 자유로의 ‘유령’입니다>)

하지만 오는 8월부터는 새로 생긴 안전매뉴얼이 시행되면서, 기존 1톤짜리 ‘작업용’ 트럭과 별개로 노동자 보호만 위한 ‘안전지원 차‘가 2대가 필수적으로 투입된다. 안전지원 차에는 경고등(점멸등), 안전 유도판, 깃발, ‘작업중’ 표지 등을 장착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충격흡수장치’도 대해서도, “최후방 차량은 반드시 충격흡수장치가 장착된 차량으로 배치돼야 한다“고 못 박았다.

자유로처럼 트럭, 화물차 등 대형차량의 통행량이 많고 통행속도가 빠른 고속화도로의 경우, 노동자를 보호하려면 대형 차량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매뉴얼에는 안전지원 차로 ‘8t짜리 덤프트럭‘을 쓴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매뉴얼에는 자유로 본선, 갓길, 화단 등 청소구역별로 안전을 확보하는 방안이 세부적으로 규정돼 있다. 자유로 본선을 청소할 때는 안전지원 차를 포함해 차량이 기본 2대 이상 투입돼야 하는데, 대형 교통사고 현장이 발생하는 등의 경우에는 3대 이상 배치할 수 있다.

갓길 청소는 노면청소차를 활용해 기계 청소를 원칙으로 하되, 노면 청소차 진입이 어려운 구간을 노동자가 직접 청소할 때는 안전지원 차를 대동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과거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했던 급커브 구역이 많은 IC 연결로(램프구간)을 청소할 때도 반드시 안전지원 차를 배치하도록 했다.

그동안 청소노동자들이 이동 겸 작업 겸 보호 기능으로 이용하던 1톤 트럭 ⓒ셜록

고양시는 위와 같은 내용이 담긴 안전매뉴얼을 지난 3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오는 8월부터 고양시 구간 자유로 청소를 맡을 용역업체 선정을 위한 입찰공고를 게재하면서다. 안전매뉴얼은 입찰 공고문에 첨부된 ‘용역과업지시서’ 속에 포함됐다. 용역과업지시서는 안전에 관한 사항을 포함해 용역 업무 전반의 내용을 규정한 문서다.

고양시 측은 매뉴얼에서 안전 기준을 정하는 과정에서 국토교통부의 ‘도로 공사장 교통관리 지침‘, 한국도로공사의 ‘고속도로 작업장 교통관리기준’ 등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셜록은 지난 2월에 보도한 기사에서, 고양시가 과거 ‘안전매뉴얼을 만들라‘는 국토교통부의 지시를 무시한 적이 있음을 알린 바 있다(관련기사 : <‘자유로 안전매뉴얼 만들라’ 국토부 공문도 무시한 고양시>).

안전매뉴얼이 포함되면서 과업지시서 분량은 이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노동자 안전을 위한 사항 없이 용역업체가 지켜야 할 사항만 규정했던 지난 과업지시서는 18쪽에 불과했으나 이번엔 약 50쪽에 달한다.

이번 과업지시서에는 노동자에게 휴게시설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도 새로 담겼다. 제8조 ‘시설확보’에서 “업무를 안전하고 원활하게 처리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시설 및 장비를 구비해야 한다”고 규정하면서, 구비해야 하는 시설에 ‘휴게실, 샤워장’을 포함했다. 이는 이전 과업지시서에는 없던 내용이다.

지난 2월 자유로 청소노동자와 셜록, 전국민주연합노동조합 고양지부 일원이 고양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셜록

현장의 노동자들은 고양시의 안전 대책 수립을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제2자유로 청소노동자 이승민 씨(63)는 “노동자들의 뒤를 보호해주는 차량이 생긴 것은 중요한 변화다“라며, “후방에 대형 차량이 있으면 작업할 때 든든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안전지원 차를 2대 늘렸으면서 인원은 늘리지 않아 노동자들의 업무가 과중될까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제1자유로에서 2015년부터 근무한 윤재남(40) 씨 역시 “지난 6년간 줄기차게 주장한 대책이 드디어 반영됐다“며, “고양시의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관련기사 : <“죽고 싶지 않다” 시청 앞에 모인 자유로의 ‘유령’들>)

하지만 안전매뉴얼을 만드는 과정에서 현장 노동자들의 의견을 듣는 시간이 부족했던 점은 아쉽다고 지적했다. 윤 씨는 “늘어난 업무를 어떻게 분장하고 관리하면 좋을지 노동자 의견을 조금 더 듣고 마련했다면 조금 더 현장 상황에 잘 맞았을 것“이라며, “앞으로 고양시 측과 현장 노동자 간 간담회가 예정돼 있으니 그때 관련 내용을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자유로 사망사고 로드킬
청소노동자 김동현(가명) 씨는 2015년 10월 자유로를 걷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사진은 당시 경위서에 실린 사진. ⓒ윤재남

한편 고양시가 이번에 게재한 과업지시서에는 이전과 달라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 바로 안전사고 발생 시 모든 책임을 용역업체에 넘긴 점이다.

과업지시서 제27조 ‘책임과 의무 및 사고책임 부담‘에는 “(용역업체는) 사업 수행상 발생하는 일체의 사고에 대해 민·형사상의 책임을 지고 처리한다“는 내용이 있다. 즉, 원청인 고양시가 규정한 안전매뉴얼을 이행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모든 책임을 용역업체가 진다는 것.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해당 규정이 있어도 중대한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원청인 고양시가 모든 책임에서 벗어날 순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박준성 노무사(금속노조법률원)는 “안전매뉴얼을 제작한 것만으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원청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의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는 없다“며, “자유로 청소 업무는 고양시의 운영에 필수적이고, 시민 안전과 관련한 업무이며 상시 수행되는 업무인 만큼 ‘직접고용’을 통해 노동자들의 안전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원청인 고양시에게 더 중요한 책무는 매뉴얼이 잘 지켜지는지에 대한 관리·감독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조승규 노무사(노무사사무소 씨앗)는 “매뉴얼을 잘 마련했다면 이제 이를 잘 이행하고 유지하기 위한 과정이 남아 있다“며, “만들어만 놓고 지켜지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으므로 안전 교육, 안전 수칙 이행 여부 점검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주보배 기자 treasure@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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