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라 : “(일광학원) 임시이사회에서 다뤄져야 할 가장 중요한 안건 첫 번째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정근식 : “공익제보자 권리 회복을 먼저 해야겠죠.”
이소라 : “권리 회복이라면 복직을 말씀하시는 거죠?”
정근식 : “그렇죠.”

20일 오전 서울시의회 본회의장. 이소라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과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의 시정질문 질의응답 내용이다. 정 교육감은 일광학원 임시이사회의 과제 중 ‘공익제보자 복직이 최우선’임을 밝히는 동시에, 이규태 회장의 측근인 한혜빈 임시이사장 선임 과정에서 “검증에 실패”했음을 인정했다.

이날 본회의장 2층 방청석에는 우촌초 공익제보자 최은석(56) 전 교장이 앉아 있었다. 최은석 전 교장은 방송사 영상기자와 사진기자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가운데, 홀로 앉아 교육감의 입을 지켜봤다.

최은석 전 교장은 두 손으로 깍지를 꼈다가, 팔짱을 꼈다가 연신 자세를 바꿨다. 정근식 교육감 입에서 “권리 회복”이라는 말이 나오자, 그제야 자세를 고정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촌초 공익제보자 최은석 전 교장은 서울시의회 본회의장 2층 방청석에서 정근식 서울시교육감과 이소라 의원의 질의응답을 지켜봤다.  ⓒ셜록

서울 돈암동에 있는 우촌초등학교. 학교법인 일광학원이 운영하는 ‘대한민국에서 학비가 가장 비싼 사립 초등학교’다.

2019년 이곳의 교직원들은 전 이사장인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의 비리 의혹을 폭로했다. 돌아온 것은 해고 등 징계와 고소·고발 및 소송. 긴 시간이 지나 지난해 10월에야 서울시교육청은 일광학원과의 행정소송을 최종 승소로 마무리하고, 이사회 전원을 임시이사로 교체했다. 이제 공익제보자들에게도 복직의 길이 열릴 거란 기대가 생겼다.

지난해 11월 서울시교육청은 공문을 보내, 최은석, 유현주, 박선유 등 우촌초 공익제보자들의 복직을 권고했다. “소송 취하 또는 화해·합의를 통해 조속히 마무리해 복직 등의 신분회복이 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신분상, 재정상 불이익 받은 사항들이 모두 회복될 수 있도록 복직 등 조치”하라는 내용.

하지만 12월 13일 일광학원 임시이사회는 최은석 전 교장을 복직 대상자에서 ‘제외’했다. 그가 해고된 것이 아니라 ‘임기만료’로 퇴직했다는 게 이유. 옛 재단이 몇 년째 반복해온 주장 그대로였다.

이 주장에는 교묘한 함정이 숨어 있다. 일광학원은 최은석 전 교장의 임기를 줄여 ‘임기만료’라며 학교에서 쫓아냈다. 나중에 재판에서 패소하자, 복직시키는 대신 단축한 임기만큼의 급여를 주고는 ‘퉁쳤다’. 실제로 최은석 전 교장이 학교에 다시 발 들인 적은 없었다.(관련기사 : <마이바흐 타는 고액체납자… ‘욕심 없는’ 회장님의 기도>)

최은석은 48세, 비교적 젊은 나이에 교장직을 제안받았다. 이른 교장직을 수락하는 대신, 임기를 종전 3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고, 이후 정년을 보장해주겠다는 약속도 받아냈다.

하지만 2019년 5월 공익제보 이후, 약속은 물거품이 됐다. 일광학원은 교장 임기 3년에서 4년으로 연장한 의결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최은석 전 교장은 2020년 4월 9일 자로 임기만료 통지를 받고, 울며 겨자 먹기로 퇴직당했다.

지난해 12월 13일 일광학원 임시이사회는 최은석 전 교장을 ‘임기 만료 퇴직’했다며, 복직 대상에서 제외했다. ⓒ셜록

국민권익위원회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일광학원이 제멋대로 ‘임기만료 퇴직’으로 처분한 행위는 부당하다고 결정했다.

일광학원은 역시 행정소송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법원도 최은석의 임기만료 퇴직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일광학원은 최은석 교장을 학교로 돌아오게 하는 대신, 단축된 임기 1년 치 급여만 지급했을 뿐이다.

최은석 전 교장은 원로교사 채용을 심사해달라고 신청했지만, 일광학원은 거절했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이를 ‘부당한 거부 처분’이라고 결정했다.

“피청구인(일광학원)은 청구인(최은석)의 교원임용 신청에 대하여 어떠한 임용 절차도 거치지 않고 부작위 함으로써 거부 의사를 표시하였는데, 이는 청구인에게 부여된 교원임용 심사를 받을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으로서 위법하다.”(교원소청심사위원회 결정서, 2021. 8. 11.)

하지만 일광학원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의 결정도 따르지 않은 채 현재까지 온 것이다.

이런 과정이 과연 공익제보와 아무 상관없는, 자연스러운 ‘임기만료에 의한 퇴직’이라 볼 수 있을까.

최은석 전 교장은 절박한 심정으로,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셜록

최은석 전 교장은 본회의 시작에 앞서, 서울시의회 본관 1층 입구에서 정근식 교육감을 만났다.

“교육감님, 안녕하세요. 이 자료 한번 좀 봐주십시오.

최은석 전 교장은 정근식 교육감에게 셜록 기사 세 편을 인쇄한 서류봉투를 건넸다. 정 교육감은 반갑게 인사하더니, 잠시 멈춰 서서 최은석 전 교장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최은석 전 교장은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듯했다. 기자가 최은석 전 교장 대신 교육감에게 말을 걸었다.

“우촌초 공익제보자 선생님들 면담 한번 해주시면 어떨까요?”

정근식 교육감 보좌관은 최은석 전 교장에게 명함을 건네며, 연락달라고 흔쾌히 화답했다. 최은석 전 교장의 떨림은, 본회의장에서도 계속됐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일광학원 임시이사회가 다뤄야 할 가장 중요한 안건은 공익제보자 ‘복직’이라고 말했다.  ⓒ셜록

이소라 의원은 한혜빈(71) 일광학원 임시이사장(서울신학대 명예교수) 선임 과정에 대한 질의를 이어갔다.

한혜빈 이사장은 서울시교육청에 의해 임원승인이 취소된 유석성 전 이사(서울신학대 전 총장)의 부인이다. 남편이 빠진 자리에 부인을 넣은 셈. 그리고 한 이사장은 일광그룹 산하 일광복지재단 이사로 13년째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밖에도 이규태-유석성-한혜빈 세 사람은 서울신학대와 일광그룹 산하 여러 재단의 이사직으로 서로 얽혀 있고, 심지어 수천만 원의 돈거래까지 오간 것으로 의심되는 가까운 사이다.(관련기사 : <서울교육청은 왜? 이규태 측근을 우촌초 이사장에>)

더 큰 문제는 한 이사장이 서울시교육청 추천 인사라는 점이다. 서울시교육청은 “한혜빈 이사장이 이규태 측근인 줄 몰랐다”고 해명했다. 한 이사장이 일광복지재단 이력을 누락한 경력기술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또, 유석성 전 일광학원 이사와 부부인 줄도 몰랐다고 설명했다.

이소라 : “교육감은 교육청에서 계속 (일광학원) 신경 쓰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건 석고대죄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사 실패잖아요.”
정근식 : “실패. 검증 실패죠.”

정근식 교육감은 일광학원 한혜빈 임시이사장 선임이 서울시교육청의 인사 검증 실패라고 자인했다. 정 교육감은 “(한혜빈 이사장이) 이사장직은 사임 의사를 표명했고, 이사직까지도 사임하라는 사회적 압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이소라 의원은 “한혜빈 임시이사장의 빠른 퇴직” 처분을 요청한 뒤, 질의를 마무리했다.

이소라 의원은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에게 공익제보자 복직과 한혜빈 임시이사장 해임을 촉구했다. ⓒ셜록

정오께 본회의는 정회가 선포됐다. 최은석 전 교장은 본회의장을 나서는 정근식 교육감에게 다시 다가갔다. ‘우촌초 공익제보자들을 꼭 만나달라’는 부탁에 정근식 교육감은 “알겠다”고 답했다.

한편, 이날 참여연대 공익제보자지원센터는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서울시교육청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는 “일광복지재단과 일광그룹의 특수한 이해관계를 고려할 때, 일광그룹 현 주요 임원인 전 이사장은 해당 임시이사를 통해 여전히 일광학원의 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며, “해당 근무 경력(일광복지재단 경력)은 일광학원의 임시이사 선임을 논의하는 데 있어 반드시 고려되었어야 하는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해당 임시이사(한혜빈 이사장)가 10년 넘게 근무한 경력을 기재하지 않은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서울시교육청이 경력을 누락한 해당 임시이사(한혜빈 이사장)의 해임을 요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광학원과 이규태 회장 측은 취재 초기인 지난해 1월,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23회에 걸친 반론 요청에 모두 응하지 않았다.

이후 일광학원은 셜록을 상대로 한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신청서 등을 통해 ‘최은석은 임기만료로 우촌초에서 근무를 하지 못하게 된 것’이며, 공익제보자들은 ‘서울시교육청에 공익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것이 아니며, 비위행위 사유로 인하여 사립학교법에 근거한 교원징계절차에 따라 파면, 해임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한혜빈 이사장은 서울시교육청에 제출한 경력기술서에 일광복지재단 이력을 누락한 이유에 대해, “다른 복지재단 활동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기자) 얘기를 들으니 (일광복지재단 이력이) 생각났다”고 해명했다. 이규태 회장과의 인연에 대해서는 “옛날 고릿적 얘기”라며 “개인적인 관계는 없다”고 밝혔다.

유석성 전 총장에게도 이규태 회장과의 관계에 대해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질의했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

취재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사진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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